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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통역사
리 랑그바드 지음, 손화수 옮김 / 푸른숲 / 2026년 6월
평점 :
'입양'이라는 주제에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도서이기도 합니다. 작가는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생후 두 달 만에 덴마크로 입양된 인물입니다. 이번 작품은 어린 시절 낯선 나라로 보내진 한 여성이 성인이 되어 한국의 원가족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은 오랜 시간이 지나 혈육과 다시 만나지만 곧바로 가족이 되지는 못합니다. 서로 다른 언어를 쓰고 있어서예요. 그래서 통역사의 도움 없이는 대화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통역사는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주인공의 연인이기도 합니다. 같은 여성을 사랑하는 사이라는 사실을 원가족에게 밝힐 수 있을지 없을지, 그 고민이 이야기 내내 팽팽한 긴장감을 만들었어요.
작품의 형식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내가 말한다', '통역사가 말한다', '어머니가 말한다'처럼 인물의 이름 뒤에 대사가 붙는 극본 같은 구성으로 쓰였습니다. '나는 생각한다'라는 지문 다음에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속마음이 이어지기도 해요. 특히 한국어 대사 상당 부분이 빈칸, 즉 '공백'으로 처리되어 있는 점이 이 소설만이 가지는 특징인데요. 작가는 애초에 덴마크어와 한국어, 영어를 모두 담아내려 했으나 한국어 실력이 충분하지 않아 여러 달 시도 끝에 공백을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공백은 단순히 못 알아듣는 말을 가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입양인이 평생 접근하지 못했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상실감 자체를 표현하는 언어로 기능합니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작가님의 이전 작품들도 살펴보았어요. 《그 여자는 화가 난다》는 2014년 덴마크에서 최초로 국가 간 입양을 비판적으로 다룬 책으로, 그 책의 정서가 분노에 가까웠다면 이번 도서 《나의 통역사》는 슬픔에 조금 더 가깝게 느껴졌어요. 삼계탕집에서 피자헛으로, 큰언니 집에서 부모님 댁으로 장소가 옮겨가는 사이 인물들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되었고요. 트라우마에 머물지 않고 서로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마음들이 문장 곳곳에서 느껴져서 여운이 오래 남았던 작품이기도 해요.
이 작품은 덴마크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몬타나상과 북유럽 최고의 퀴어 문학 작품에 수여되는 프리즈마 문학상을 함께 받았다고 해요. 심사위원단으로부터는 소설이라는 장르 자체를 새롭게 갱신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던 작품인데, 책의 구성 자체가 연극 한 편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들었고, 문자가 주는 차분함도 함께 담겨 있어서 작가님의 문장에 조금 더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던 작품입니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 단지 말을 못 알아듣는 문제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오래 남았습니다. 이름도 얼굴도 닮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공백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담담하게 표현한 도서라 오히려 더 책 속의 인물들의 감정선에 매료되어 더욱더 집중하며 고민해 볼 수 있는 도서라 생각합니다.
#나의통역사 #푸른숲 #리랑그바드 #북유럽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