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임상 심리학자인 저자가 겪은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정서적 학대와 가스라이팅의 본질을 파헤쳐요. 많은 이들이 겪으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던 '교묘한 상처'들이 문장마다 가득합니다.흔히 트라우마라고 하면 거창한 사건을 떠올리기 쉽지만, 작가는 신체적 폭력이나 눈에 보이는 비극이 없더라도 한 사람의 영혼이 어떻게 무너질 수 있는지 보여주었어요. 부모나 주변인으로부터 지속적으로 자신의 감정을 부정당할 때 발생하는 '정서적 무효화'의 과정이 서늘하게 느껴졌어요. 스스로를 믿지 못하게 만드는 그 과정이 얼마나 치밀하게 작동하는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서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습니다.책 속에서 강조하는 '포닝(Fawning)'이라는 개념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선택으로 읽힙니다. 위협적인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타인의 기분을 살피고 스스로를 지우는 행위를 의미하는데, 타인에게 순응하는 것이 배려가 아니라 고통스러운 방어 기제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 특히나 기억에 많이 남네요. 자신의 고통을 '그 정도는 아니야'라며 깎아내리던 습관을 멈추게 하는 힘이 느낄 수 있었습니다.저자는 치유의 시작은 자신의 진실을 온전히 믿어주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말해요. 주변의 가스라이팅보다 무서운 것은 나 스스로가 가해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몰아세우는 일입니다. 복합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이들이 느끼는 특유의 고립감과 수치심심 또한 섬세하게 다뤘어요. 아픔의 크기를 비교하며 서열을 매기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상처가 가진 고유한 무게를 인정받는 기분이 들기도 하더라고요. 책 속의 문장들이 날카로우면서도 따뜻하게 다가와서 위로가 전해지는 듯 하기도 했습니다. 상처 입은 내면 아이를 달래고 현재의 나를 지키는 법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나를 믿어주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끼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