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천 작가님의 장편소설 『어느 멋진 도망』을 한 장 한장 넘겨 읽으면서 쏟아지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서 잠시 멈춰 서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이 마주하는 풍경과 발걸음에 함께 걸으면서 저 또한 마음을 위로받기도 했고 책장을 덮은 뒤에도 여운이 잔상처럼 오래도록 남아 마음 언저리를 맴돌았던 기억이 납니다.우리는 살아가면서 예상치 못한 난관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시기를 겪고는 합니다. 저에게도 최근 그런 순간들이 찾아왔습니다. 오랫동안 곁을 지켜주었던 소중한 친구를 먼저 떠나보내야 했고, 유년 시절의 안식처였던 할머니와 영원한 작별을 고해야 했거든요. 슬픔의 무게가 한꺼번에 쏟아질 때면 숨을 쉬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이 책을 읽는 내내 저 또한 주인공처럼 모든 것을 뒤로하고 순례길을 걷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그 어떤 고민도 없이 순례길의 앞만 보고 걸어가는 그 여정 속에 그동안 나와 함께 했던 소중한 사람들과의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뇌이면서 걸어가는 시간을요.도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었는데 이 책은 진정한 나를 찾기 위해 떠나는 용기 있는 선택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낯선 길 위에서 만나는 인연들과 그들이 나누는 대화는 복잡했던 머릿속을 한결 차분하게 정돈할 수 있게 해주었고, 특히 길 위에서 마주하는 자연의 섭리와 인간의 유약함이 교차하는 지점들이 마음 깊이 와닿았습니다. 삶의 끝자락이라 생각했던 곳이 사실은 새로운 시작의 출발점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큰 용기를 건네주었고요.저는 이번 책이 특히나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고 여운이 오랫동안 남았던 이유 중 하나가 독자들에게 억지로 정답을 건네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그저 묵묵히 길을 걷는 뒷모습을 보여주면서 책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두는 구성이 더 담담하면서도 잔잔하게 우리의 삶을 상기시켜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끔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아 막막할 때 있지요. 어떤 방향을 선택해도 종착지가 보이지 않은 걸 같은 날이 있어요. 그렇게 방향을 잃고 헤매는 저에게 잠시나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주는 듯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삶의 기준점'이나 '길잡이' 같은 거창한 표현보다, 발바닥에 닿는 흙의 촉감이나 스치는 바람의 위로가 더 직접적으로 전해지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책 속에는 상처를 보듬는 섬세한 시선들로 가득했어요. 도망치는 것이 비겁한 행동이 아니라, 때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가장 적극적인 방어 기제일 수 있다는 걸 또 한 번 배웠어요. 친구와 할머니를 떠올리며 흘렸던 눈물들이 이 소설 속의 문장들과 함께 뒤섞여서 순간순간 감정이 울컥할 때가 있었어요. 또 산티아고의 먼지 섞인 바람이 제 방 안까지 불어오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묘사가 생생해서 책을 읽는 내내 함께 여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요.마음의 짐이 무거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쯤 이 책을 다시 한 번 꺼내서 읽어보려고요. 마음속에 담아둔 저만의 순례길을 향해서 아주 천천히 첫발을 내디뎌 보려 합니다. 슬픔은 여전하겠지만, 이제는 그 슬픔과 나란히 걷는 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