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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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의 작별 인사와도 같은 소설 <바움가트너> 읽고서 한참 동안 마음을 먹먹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 작품은 평생을 함께한 아내 안나를 사고로 잃고 홀로 남겨진 70대 철학 교수 시모어 바움가트너의 일상을 담담하게 담았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뒤에 남겨진 사람이 마주하는 상실의 무게가 문장마다 묵직하게 배어 나와서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목이 메기도 했습니다.


바움가트너는 서재에서 글을 쓰거나 차를 마시는 사소한 순간에도 아내의 부재를 실감하며 살아갑니다. 소설 속에서 묘사되는 '환기통' 개념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잘려 나간 신체 부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처럼 통증을 느끼는 상태를 사별의 슬픔에 비유한 대목이 참 날카롭습니다. 아내와의 사별 후에 오는 고통의 정도를 가늠할 수 없을 테지만,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지 9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그녀의 목소리를 듣고, 함께했던 집 안의 모든 물건에서 그녀의 흔적을 발견하곤 해요.


작가는 바움가트너의 기억을 통해 안나와의 첫 만남부터 뜨거웠던 사랑의 순간들을 세밀하게 복원합니다. 단순히 슬픔에 침잠하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남겨진 자가 어떻게 다시 삶의 불씨를 지피는지 그 과정을 집요하게 추적합니다. 바움가트너가 젊은 학생과 교류하거나 새로운 관계를 모색하며 고독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모습에서는 묘하게 안도감을 주기도 합니다.


이번 책은 폴 오스터가 투병 중에 집필한 생애 마지막 장편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면, 소설 속 죽음과 삶에 대한 통찰이 더욱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문장들은 화려한 수식 없이도 인간의 근원적인 외로움을 정확하게 관통해요. 생의 끝자락에서 그가 남기고 싶었던 메시지는 결국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삶'의 숭고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상실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움가트너의 서툰 발걸음에 깊이 공감하며 책장을 넘기게 될 거예요.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이 어떻게 기억으로 치환되고, 그 기억이 다시 살아갈 힘이 되는지를 목격하는 시간은 매우 경건했습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지금 내 곁에 있는 소중한 존재들을 다시금 떠올려보기도 했습니다.

*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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