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새로운 서점이나 도서관을 찾아다니는 일은 제 삶의 커다란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낯선 도시에 도착했을 때 그 지역의 분위기가 가장 잘 녹아있는 서점 한두 곳을 둘러보는 일은 이제 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루틴이 되었는데요. 이번에 읽게 된 시미즈 레이나 작가의 <공간이 한눈에 보이는 영국 책방 도감>은 아직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영국을 향한 갈증을 채워주기에 충분한 책이었어요. 출판사 모두의 도감에서 펴낸 이 책은 단순하게 서점의 이름과 위치를 나열하는 수준이 아닌, 공간이 가진 고유한 공기와 구조를 세밀한 일러스트와 함께 보여주었어요. 영국이라는 나라가 가진 유구한 책의 역사와 그 문화를 지탱하는 서점들의 면면을 간접적으로나마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책의 첫 장을 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각 서점의 내부를 마치 투시도처럼 그려낸 정교한 그림들입니다. 사진으로는 다 담아내기 어려운 서점의 전체적인 동선과 서가의 배치, 심지어는 구석에 놓인 작은 소품들까지도 따뜻한 필치로 묘사되어 있어 마치 제가 그 공간의 중심에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런던의 화려한 번화가에 위치한 대형 서점부터 시골 마을의 한적한 고서점까지 각각의 공간이 품고 있는 이야기가 그림 위로 생생하게 펼쳐져요. 특히 영국의 서점들이 단순히 책을 파는 상점을 넘어 지역 공동체의 사랑방 역할을 하거나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존하면서 그 가치를 이어가는 모습에서 더욱더 멋스럽게 느껴졌는데요.책 속에서 소개하는 런던의 '돈트 북스'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꿀 법한 공간이었어요. 에드워드 시대의 건축 양식을 그대로 간직한 채 천장의 유리창으로 쏟아지는 자연광을 받으며 서 있는 그곳의 풍경은 상상만으로도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대륙별로 분류된 서가 배치는 여행자의 탐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해 보였어요. 그리고 왕실에 책을 납품하는 오랜 전통을 가진 서점이 여전히 건재하며 그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도 재밌는 부분이었고요. 붉은 카펫이 깔린 계단을 오르며 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책의 향기를 맡는 상상을 하며 페이지를 넘기게 되네요.스코틀랜드의 '위그 타운'이나 웨일스의 '헤이온 와이' 같은 책마을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을 전체가 서점으로 가득 찬 그곳들의 풍경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그야말로 성지와도 같은 곳이지요. 헌책방의 서가 사이를 거닐면서 우연히 발견하게 될 오래된 초판본이나 누군가의 손때가 묻은 메모가 적힌 책들을 상상해 보곤 했는데요. 작가는 이러한 서점들이 단순히 과거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대의 독자들과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세밀하게 기록하고 있어요. 서점마다 개성 넘치는 북 큐레이션과 독창적인 이벤트들은 영국인들의 책에 대한 남다른 애착을 느끼게 해줍니다.이번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서점의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그곳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철학까지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거대 자본이 지배하는 유통 환경 속에서도 독립 서점들이 자신들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결국 책과 독자를 연결하는 진심 어린 마음 덕분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방 곳곳에 숨겨진 작은 장식물 하나, 서점 주인이 직접 쓴 추천사 한 구절에 담긴 정성이 지면을 뚫고 전해지는 듯해요. 이것과 같은 이유로 저 또한 지역 내 독립서점을 검색해 보곤 하는데, 저도 언젠가 영국을 방문하게 된다면 이 책을 가방에 넣고 책 속에 등장한 서점들을 하나하나 직접 확인해 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습니다.그림과 글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이 책은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건축이나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도 훌륭한 참고서가 될 것 같습니다. 공간이 주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그리고 그 공간을 채우는 책이라는 존재가 우리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만드는지 다시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직접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주는 동시에 언젠가 마주할 그곳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만드는 마법 같은 책입니다. 책장을 덮고 나니 긴 영국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여행자가 된 기분이 듭니다.*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