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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25년 5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5년 대선을 앞둔 지금, 진보와 보수의 극심한 대립을 지켜보면서 조선 후기 정조와 다산 정약용의 대화가 새삼 절실하게 다가온다. 역사는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현재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통찰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주했던 조선의 현실과 우리가 직면한 대한민국의 모습 사이에는 묘한 기시감이 흐른다. 붕당의 대립, 기득권의 독점, 인재의 매몰, 백성의 고통. 시대를 초월한 문제들이 여전히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오늘날 우리 정치 현실과 얼마나 닮아있는가. 진정한 쟁점은 권력과 이익의 분배인데, 우리는 여전히 이념과 지역감정, 세대갈등이라는 허상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정조가 가장 사랑했던 신하인 다산에게 묻고 답하는 글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신창호님의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였다.
현재 진행 중인 대선 국면을 보면서 가장 답답한 것은 여전히 '인물론'에 매몰된 우리의 정치 문화다. 언론과 국민 모두 후보자 개인의 카리스마, 과거 이력, 스캔들에만 집중할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놓치고 있다. 바로 '시스템'이다. 정조가 위대한 군주였던 이유는 그 개인의 탁월함보다는 다산과 같은 유능한 참모진을 곁에 두고 끊임없이 소통하며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그는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하려 하지 않았다. 대신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역사적 사례를 검토하며, 백성의 실정을 파악한 후에야 정책을 결정했다. 이것이 바로 시스템의 힘이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대통령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다고 믿는다. 마치 조선시대 전제군주제보다도 더 원시적인 지도자관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정조조차도 다산에게 "나라의 폐단도 깁고 보수할 수 있는가?"라고 묻으며 겸손한 자세로 해법을 구했거늘, 우리 정치인들은 모든 답을 안다는 듯 큰소리를 친다. 현재의 대선 국면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대통령이 얼마나 똑똑한가가 아니라, 그가 얼마나 유능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가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가다. 하지만 우리 선거에서는 이런 논의를 찾아보기 어렵다.
정조와 다산의 대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부분 중 하나는 인재 등용에 관한 것이다. 정조는 지역 인재를 발굴하고 신분제의 벽을 허물려 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시도였다. 그런데 200년이 넘은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지역주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 선거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 있다. 특정 지역 출신 후보가 당선되면 그 지역에 예산이 몰리고 인프라가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 혹은 우려. 이는 정조가 비판했던 "벼슬이나 녹봉을 누가 차지하느냐"의 문제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정조는 "독과점의 폐단"을 해소하고자 했다. 특정 집단이나 지역이 권력과 이익을 독점하는 것을 막으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떤가. 여전히 영남과 호남,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진정한 인재가 제대로 등용될 수 있을까.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지역주의적 사고가 정책 검증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보다는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 어느 정당 소속인지가 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되고 있다. 이는 민주주의의 퇴보다.
정조와 다산이 논의한 주제들을 보면 놀랍도록 현재적이다. 인재 등용, 경제 정책, 국방, 지역 균형 발전, 교육 등. 200년이 넘었지만 국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경제 문제에 대한 그들의 접근법은 주목할 만하다. 정조는 "백성들이 모두 잘 먹고 잘 사는 일"을 국정의 기반으로 삼았다. 추상적인 이념이나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실질적인 민생 개선에 집중했다. 소금 생산처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해법을 찾았다. 현재 우리가 직면한 경제 문제들을 보라. 청년 실업, 부동산 가격, 양극화, 저출산... 이 모든 문제들의 핵심은 결국 "잘 먹고 잘 사는 일"과 직결된다. 하지만 우리 정치권의 해법은 어떤가. 거창한 구호와 장기적 비전만 난무할 뿐, 당장 실행 가능한 구체적 대안은 부족하다. 국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정조는 "병사란 100년 동안 써먹지 않을지언정, 하루라도 방비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북핵 문제, 중국의 부상,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의 안보 상황은 정조 시대보다도 더 복잡하다. 하지만 우리의 안보 논의는 여전히 이념적 대립에 매몰되어 있다.
정조와 다산의 관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그들의 소통 방식이다. 비록 군주와 신하라는 위계질서가 있었지만, 그들은 끊임없이 대화하고 토론했다. 정조는 권위를 내세우지 않고 다산의 의견을 경청했으며, 다산은 아첨하지 않고 솔직한 조언을 했다. 현재 우리 정치 현실은 어떤가. 대통령과 참모진 사이의 소통은 원활한가. 여당과 야당 사이의 대화는 가능한가. 정치권과 국민 사이의 의사소통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모든 답이 부정적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 조선시대보다 훨씬 발달된 정치 제도를 갖고 있다. 하지만 소통의 질은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 SNS와 언론이 발달했지만, 진정한 의미의 대화는 사라졌다. 대신 일방적인 선전과 상호 비방만 남았다. 정조와 다산이 "돌려서 얘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전제군주제의 한계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돌려서 말하거나, 아예 말하지 않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민주주의의 역설이다.
우리도 이번 대선을 통해 단순히 새로운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을 넘어서, 우리 정치 문화 전체를 성찰하고 개선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했듯이, 우리도 계속해서 묻고 답해야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좋은 지도자란 어떤 사람인가?" "국민과 정치권은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민주주의의 발전이다. 200년 전 정조와 다산이 꾸었던 꿈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 꿈을 이어받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것은 이제 우리의 몫이다. 선거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