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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읽고 말하다
아사쿠라 가스미 지음, 전화윤 옮김 / 현암사 / 2026년 7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소설 <읽고 읽고 말하다(よむよむかたる)>를 읽고 나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소설이 '읽는 행위'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타루의 작은 찻집, 카페 시트론에 모이는 여섯 명의 노인들과 스물여덟 살 청년 야스다. 그들 사이에는 육십 년이라는 세월의 간극이 있지만, 책 한 권을 함께 소리 내어 읽는 순간만큼은 그 간극이 무색해진다. "재밌겠다, 재밌겠어, 나 아흔 두 살 두근두근, 콩닥콩닥, 셀 수 없이 많지, 고를 수 없지." 아흔이 넘은 나이에도 설렘을 노래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 소설이 그리는 노년의 얼굴이다.
문득 부끄러워졌다. 나이 든다는 것을 그저 상실의 연속으로만 생각해온 것은 아니었는지. 기력이 줄고, 곁을 지키던 이들이 하나둘 떠나고,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드는 것. 그러나 이 소설 속 노인들은 서로의 부고 소식보다 다음 달 첫 금요일의 독서 모임을 더 간절히 기다린다. "최고의 동료들과 보내는 최고의 시간이 매달 첫 번째 금요일에 기다리고 있다." 이토록 소박하면서도 확실한 기쁨이라니. 스무 해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이루어져 온 약속이라니. 나는 그 꾸준함 앞에서 오히려 내 삶의 조급함을 돌아보게 되었다.
한편으로 책은 읽는다는 행위가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님을 계속해서 일깨운다. 야스다는 회원들이 낭독하는 것을 들으며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이 이야기를 저마다 경험하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을 몇 번이고 곱씹었다. 같은 책을 읽어도 우리는 결코 같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기억과 상실과 사랑이 문장 사이사이에 스며들어,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아내를 먼저 보낸 회원의 고백, "아내가 그어놓은 밑줄이나 본인만 읽을 수 있게 써놓은 메모가 깜짝 선물처럼 튀어나오는 겁니다"라는 말은, 책이 단순한 텍스트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매개임을 보여준다. 그는 병상의 아내에게 책을 읽어주지 못한 것을 후회한다.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그저 목소리로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을지 모른다는 뒤늦은 깨달음이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
그러면서도 이 소설은 결코 노년을 미화하지 않는다. 회장이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애틋한 이야기를 하는 순간, 다른 회원이 불쑥 끼어들어 분위기를 깨뜨리는 장면처럼, 일상은 언제나 예측 불가능하고 다소 무례하며, 그래서 더욱 생생하다. 죽음의 그림자는 소설 내내 은은하게 드리워 있다가, 후반부에 이르러 불현듯 표면으로 떠오른다. 늘 기운차고 제멋대로였던 노인들이 사실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죽음을 두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 나는 이 모임이 왜 그토록 간절하게 매달 한 번의 만남을 지켜왔는지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을 덮으며 나는 읽는다는 것이 결국 함께 늙어간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혼자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시간도 소중하지만, 누군가와 한 문장을 나누어 읽고, 그 문장이 서로에게 어떻게 다르게 스며드는지를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잠시나마 각자의 고독에서 벗어난다. 카페 시트론의 여섯 노인과 야스다처럼, 언젠가 나도 누군가와 정기적으로 만나 책을 소리 내어 읽고, 그 안에서 각자의 이야기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것이 이 풍성하고 복잡한 소설이 내게 남긴, 가장 소박하고도 가장 큰 선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