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미래에서 인간은 더 이상 하나의 얼굴을 갖지 않는다. 눈이 셋이고 코가 없는 존재, 초록빛 피부로 광합성을 하는 존재, 이름 대신 숫자로 불리는 존재, 복제되어 무수히 늘어난 '나'들. 이 낯선 형상들은 공포스럽다기보다 오히려 애잔하게 다가온다. 인간이라는 종이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얼마나 변형시켜야 했는지를, 그 필사적인 적응의 흔적으로 읽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변형의 끝에서 인류가 도달하는 곳은 다툼도 없고 질투도 없는, 고요하고 평평한 세계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오랫동안 꿈꿔온 평화에 가깝다. 그런데 왜 그 평화는 이토록 쓸쓸하게 느껴지는가 생각하게 된다.
생각해 본다. 다툼이 없다는 것, 경쟁심과 질투가 사라진다는 것은 분명 인간을 괴롭혀온 많은 고통의 뿌리가 뽑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뿌리와 함께 뽑혀 나가는 것은 다툼만이 아니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마음, 누군가에게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 그 안에는 동시에 누군가를 더 사랑하고 싶다는 마음, 더 잘 살고 싶다는 열망, 미지의 것을 향한 호기심이 함께 얽혀 있다. 감정은 좋은 것과 나쁜 것으로 깔끔하게 분리되지 않는다. 미움을 없애려면 사랑까지 함께 무디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소설 속 인간들이 점점 움직이지 않는 식물처럼 변해간다는 설정은, 바로 그 무뎌짐의 극단적인 형상화로 읽힌다. 갈등할 능력을 잃은 존재는 동시에 갈망할 능력도 잃는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마음, 낯선 유전자와 만나고 싶다는 욕망마저 사라진 존재는 결국 태어난 자리에서 뿌리내린 채 움직이지 않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