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서울대 TEPS 공식 기출문제집 5회분 - TEPS 출제기관 공식 수험서
서울대학교 TEPS관리위원회 지음, 시원스쿨 어학연구소 엮음 / 시원스쿨LAB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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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영어 능력을 측정하는 공인 시험은 여럿 있지만, 그 목적과 방식은 저마다 다르다. 토익(TOEIC)이 비즈니스 중심의 실용 영어를 측정하고, 토플(TOEFL)이 미국 대학 진학을 위한 학문적 영어 역량에 초점을 맞춘다면, TEPS(Test of English Proficiency developed by Seoul National University)는 그 두 가지를 모두 아우르면서도 독자적인 방향을 추구한다. 1999년 서울대학교 언어교육원이 개발하고 TEPS관리위원회가 주관하는 이 시험은, 실용 영어와 학술 영어의 균형 잡힌 평가를 지향하며 지식의 측정을 넘어 제한된 시간 안에서 정확성과 신속성을 동시에 요구하는 고난도 시험으로 알려져 있다. 이전에 TEPS를 준비하면서 책이 제공한 문제집을 풀어본다.

TEPS 준비를 위해 다른 영어 시험의 학습 전략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 시험은 다른 공인 영어 시험과 구별되는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청해(Listening Comprehension) 영역의 독특한 구성이 눈에 띈다. 총 5개 파트로 이루어진 이 영역에서는 질문과 선택지가 문제지에 인쇄되지 않는다. 수험생은 오직 귀에 들리는 음성 정보만으로 문제를 이해하고 정답을 골라야 한다. 이는 단순히 영어 듣기 능력만이 아니라, 빠른 정보 처리 능력과 순간적인 판단력을 함께 요구하는 설계로, 다른 영어 시험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방식이다. 어휘·문법 영역 역시 독특하다. 문법적으로 어색하거나 틀린 표현을 찾아내는 문제 유형은 토익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는 형식으로, 영어 구조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접근하기 어렵다. 독해 영역의 지문은 일상적인 비즈니스 맥락에 국한되지 않고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주제를 광범위하게 다루며, 분량이 길고 풀이 시간은 촉박하여 체감 난도가 상당히 높다.

TEPS와 같이 출제 경향의 이해가 결정적인 시험에서는, 학습 자료의 출처가 매우 중요하다. 시중에는 TEPS를 표방한 다양한 예상문제집과 변형문제집이 있지만, 이들은 실제 출제기관의 의도와 출제 원리를 완전히 재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모의 문제는 실제 시험의 외형을 모방할 수 있지만, 출제자가 설계한 함정의 구조, 오답지의 정교한 배치, 그리고 문항 간의 난이도 균형은 쉽게 복제되지 않는다. 공식 기출문제는 이 모든 요소를 그대로 담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르다. 실제 출제기관이 만든 문제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과정에서, 수험생은 출제자의 사고방식과 언어 사용 패턴을 내면화하게 된다. 어떤 유형의 오답이 매력적으로 설계되는지, 어떤 지점에서 수험생의 실수를 유도하는지, 어떤 방식으로 시간을 소모하게 만드는지를 몸으로 익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문제 풀이를 넘어 출제 원리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 학습이며, 그 효과는 예상문제 반복 풀이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또한 기출문제는 실전과 동일한 긴장감과 조건 속에서 자신의 현재 실력을 객관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가장 정확한 도구이기도 하다. 내가 어느 영역에서 취약한지, 어떤 유형의 문제에서 시간을 낭비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효과적인 학습 계획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기출문제집의 가치는 문제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문제 풀이 이후의 학습 과정, 즉 해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실력 향상의 핵심이다. 많은 수험생이 정답 확인 후 틀린 문제의 답을 암기하는 수준에서 복습을 끝내지만, 이는 기출문제 학습의 잠재력을 절반도 살리지 못하는 방식이다. 충실한 해설은 정답의 근거를 설명하는 동시에, 오답이 왜 오답인지를 논리적으로 분석해 준다. 출제자가 어떤 의도로 그 선택지를 배치했는지를 이해하면, 비슷한 유형의 함정에 다시 빠지지 않을 수 있다. 더 나아가, 해설에 수록된 어휘 설명과 문법 참고 내용은 그 자체로 학습 자료가 된다. 실제 시험에서 사용된 단어와 표현을 맥락 속에서 익히는 것은, 단어장을 통한 암기보다 훨씬 효과적인 어휘 습득 방법이다. 특히 독학으로 TEPS를 준비하는 수험생에게 해설집은 사실상 교사의 역할을 대신한다. 어떤 개념이 이 문제에서 핵심이었는지, 어떤 문법 규칙이 적용되었는지를 해설을 통해 스스로 파악하고 정리하는 과정이 곧 자기주도 학습의 본질이다. 이런 의미에서 해설의 완성도는 기출문제집을 선택하는 기준에서 문제의 질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출제기관이 직접 제공하는 공식 기출문제를 중심으로 학습을 구성하고, 문제 풀이 후의 철저한 복습을 통해 시험에 대한 이해를 깊게 쌓아가는 것일 것 같다. 많은 문제를 빠르게 소비하는 방식이 아니라, 적은 수의 공식 문제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 내면화하는 방식이 TEPS라는 시험의 특성에 훨씬 잘 맞는다. 잘 풀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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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지 않는 투자 - 쉬운 투자는 당신을 가난하게 만든다
김상훈 지음 / 파지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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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워런 버핏은 투자의 제1원칙으로 '절대 돈을 잃지 마라'를 꼽았다. 제2원칙은 '제1원칙을 절대 잊지 마라'였다. 이 단순한 명제가 놀랍도록 많은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이익을 좇느라 손실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거나, 보면서도 외면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저자의 <잃지 않는 투자>를 잃으며 현재 과열 양상을 보이는 시장을 다시한번 보고자 한다.

투자에서 손실이 갖는 수학적 비대칭성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원금 100만 원이 50%의 손실로 50만 원이 되었을 때, 이를 회복하려면 50%가 아닌 100%의 수익이 필요하다. 손실은 복리의 역방향으로 작동하며, 한번 깊이 빠진 구렁에서 나오기 위해서는 들어갈 때보다 훨씬 큰 힘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수익을 내는 것보다 손실을 피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 그러나 금융시장의 현실은 이 단순한 진리에 역행한다. 은행 창구와 증권사 객장에서, 그리고 온갖 매체의 전문가들은 수익률 이야기만 한다. '연 5~6% 수익', '조건만 충족하면 원금 손실 없음', '지금 안 사면 늦는다.' 이런 말들이 투자자의 이성을 마비시킨다. 손실의 구조는 설명서의 작은 글씨 속에 숨겨지고, 투자자는 그것을 읽지 않는다. 읽더라도 이해하지 못한다. 그리고 결국 손실을 당한 뒤에야 자신이 무엇에 투자했는지를 깨닫는다.

금융상품의 복잡성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고 신호다. 신종자본증권은 평상시에 채권처럼 이자를 지급하지만, 금융위기가 닥치면 주식처럼 가치가 소멸될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ELS는 기초지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수익을 주지만, 그 한계를 넘는 순간 원금의 상당 부분이 사라진다. CFD는 실제 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가격 차이만으로 손익을 정산하는데, 레버리지가 결합되면 작은 변동에도 투자금 전액이 날아갈 수 있다. 이 상품들의 공통점은 무엇인가. 설명을 들을 때는 이해한 것 같지만, 정작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이 오면 왜 손실이 생기는지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악의 순간에 이 자산은 몇 층에 서게 되는가.'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그 상품을 이해한 것이 아니라 단지 믿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투자는 믿음의 영역이 아니라 이해의 영역이다. 2023년 크레디트스위스 사태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다. 수십 년간 존재해온 거대 은행의 신종자본증권이 하루아침에 전액 상각되었다. 투자자들은 채권처럼 이자를 받던 상품이 주식보다도 더 불리한 조건으로 소멸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서야 알았다. 옵티머스 사태도 마찬가지다. '공공기관'이라는 단어가 주는 안정감이 투자자의 판단을 흐렸고, 그 결과 수천억 원이 증발했다. 투자에서 '정부', '공공', '보증'이라는 단어는 안전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단어가 반복될수록 더 깊이 의심해야 한다.

금융상품의 수익률 이면에는 항상 비용이 있다. 선취 수수료, 운용 보수, 판매 보수, 사무관리비, 그리고 재간접 펀드의 이중 비용 구조까지. 이 비용들은 한꺼번에 드러나지 않고 여러 시점에 조금씩 빠져나가기 때문에, 투자자가 체감하기 어렵다. 그러나 복리의 세계에서 연 0.6%포인트의 비용 차이는 30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 투자금 원금에 맞먹는 손실로 돌아온다. 브라질 국채는 고금리의 매력으로 개인 투자자를 유혹한다. 그러나 이 상품에는 브라질 정부의 신용 위험, 헤알화의 환율 변동 위험, 달러를 매개로 한 이중 환전 구조가 모두 결합되어 있다. 주가가 올라도 환율이 급락하면 원화 기준으로는 손실이 난다. P2P 금융이 제시하는 12~15%의 수익률은 매력적으로 보이지만, 은행 금리와의 차이가 곧 투자자가 감내해야 할 위험의 가격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고수익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위험이 따른다. 연금보험은 더욱 조용하고 완만한 방식으로 투자자의 자산을 잠식한다. 10년간 납입한 1억 원에서 사업비로 2천만 원이 빠져나간 채 8천만 원만 운용에 투입되고, 낮은 운용수익률과 물가상승률이 결합되면 30년 후 실질 구매력은 오히려 줄어든다. 노후 대비라는 이름 아래, 가장 긴 시간 동안 가장 조용하게 일어나는 손실이다.

방송에 나오는 전문가들은 투자 실패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증권사 연구원의 추천 리포트는 참고 자료일 뿐, 손실이 나도 그 누구도 내 계좌를 채워주지 않는다. 시장이 급등할 때는 기회를 놓칠까봐 조급해지고, 급락할 때는 더 큰 손실이 두려워 원칙을 버리게 된다. 탐욕과 공포는 투자자의 가장 큰 적이며, 이 두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투자는 투기로 변한다. 잃지 않는 투자의 출발점은 자기 자신에 대한 정직한 질문이다. '어떤 여유자금으로, 얼마의 손실을 감당하며, 어떤 투자 전략으로, 얼마의 기간 동안, 몇 퍼센트의 수익률을 목표로 투자할 것인가.' 이 질문에 명확히 답할 수 없다면, 아직 투자를 시작할 때가 아니다. 투자는 종목을 고르기 전에 원칙을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시장이 흔들릴 때 가장 빛을 발한다. 복잡한 금융상품을 피하고, 이해할 수 없는 구조에 투자하지 않으며, 비용을 꼼꼼히 따지고, 분산투자의 원칙을 지키는 것. 이것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오랜 시간 자산을 지켜주는 방법이다. 잃지 않는 투자는 결코 소극적인 투자가 아니다.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 편으로 만드는, 가장 능동적인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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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핑계만 댈 건가요?
지유진 지음 / 모티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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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계가 없어지는 날은 오지 않는다. 그러니 핑계를 없애려 할 것이 아니라, 핑계를 옆에 두고도 걸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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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 -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철학자의 시선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민유하 편역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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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오백 년을 건너온 마키아벨리의 차가운 문장들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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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마키아벨리의 문장들 - 권력은 어떻게 태어나고, 무엇으로 무너지는가 철학자의 시선 1
니콜로 마키아벨리 지음, 민유하 편역 / 리프레시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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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릴 때 우리는 이런 말을 들으며 자랐다.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 진심은 언젠가 통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 그 말들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에 나와 처음으로 배신을 당하고, 진심이 오해받고, 선의가 무기처럼 사용되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느꼈던 것은 배신감이 아니라 당혹감이었다. 세상이 내가 배운 것과 다르게 작동한다는 사실, 그 진실이 왜 이렇게 오랫동안 감춰져 있었을까. <군주론>의 저자로만 알고 있었던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는 오백 년 전에 이미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세상이 마땅히 어때야 하는가를 쓰지 않았다.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썼다. 그것이 불편한 이유는, 그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너무 많이 맞았기 때문이 다. 진실은 종종 따뜻한 위로보다 훨씬 더 오래 남는 상처의 형태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관계를 이야기할 때 늘 사랑과 신뢰를 먼저 꺼낸다. 팀을 이야기할 때는 소통과 공감을 말하고, 조직을 이야기할 때는 비전과 열정을 강조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라고 믿는 순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기 시작한다. 마키아벨리가 사랑보다 두려움을 말했을 때, 그것은 잔인함을 권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것은 관계의 본질에 관한 가장 냉정한 통찰이었다. 사랑은 상대의 마음 상태에 달려 있다. 상대가 오늘 기분이 좋으면 유지되고, 더 매력적인 누 군가가 나타나면 흔들리며, 내가 실망을 주면 금세 식어버린다. 그러나 선을 넘으면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는 일관된 구조, 그 예측 가능성은 감정과 무관하게 작동한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장 오래 신뢰해온 것들은 대부분 예측 가능한 것들이 었다. 아무리 화가 나도 약속 시간은 지키는 사람, 이익이 충돌해도 원칙만큼은 굽히지 않는 사람, 기분에 따라 규칙이 달 라지지 않는 조직. 그 일관성이 신뢰를 만든다. 사랑은 신뢰를 시작하게 하지만, 신뢰를 유지시키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일관된 구조다. 마키아벨리는 그것을 두려움이라는 단어로 불렀지만, 오늘의 언어로 바꾸면 그것은 '신뢰할 수 있는 규칙'이다.

우리는 갈등을 두려워하도록 훈련받았다. 회의에서 의견 충돌이 생기면 불편해하고, 공동체 안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면 빨리 봉합하려 하고, 조용하고 원만한 분위기를 건강함의 증거로 여긴다. 그러나 마키아벨리는 로마를 보면서 정반대의 결론에 이르렀다. 로마의 위대함은 원로원과 평민이 조화로웠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끊임없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그 긴장이 어느 한쪽의 독주를 막았고, 그 과정에서 더 정교한 법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갈등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갈등 이 파괴가 아닌 제도로 흐를 수 있는 구조가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하는 것은 갈등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갈등이 보이지 않는 조직이다. 다른 의견을 말했을 때 눈치를 봐야 하는 곳, 문제를 꺼내면 문제를 꺼낸 사람이 문제가 되는 곳, 표면은 조용하지만 그 아래에 불만이 층층이 쌓이는 곳. 그런 조직에서 갈등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건강함이 아니라 억압이다. 그리고 억눌린 갈등은 어느 순간 제도가 감당할 수 없는 폭발로 터져 나온다. 갈등을 없애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갈등이 말로 나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건강한 공동체의 조건이다.

우리는 종종 평화로울 때 준비를 멈준다. 일이 잘 풀릴 때 긴장을 늦추고, 관계가 안정될 때 마음을 닫으며, 조직이 순항할 때 변화를 미룬다. 그것이 자연스럽다. 인간은 위기가 없을 때 위기를 상상하기 어렵도록 만들어져 있으니까. 그러나 마키 아벨리는 그 자연스러움 속에서 가장 위험한 함정을 보았다. 전쟁을 잊은 군주는 이미 자기 영토를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고 그는 썼다. 이것은 군사적 의미만이 아니다. 경쟁이 없을 때도 실력을 갈고, 위기가 없을 때도 구조를 점검하며, 아무 일 도 없어 보이는 시간에도 다음 흔들림에 대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그 차이가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다. 평화는 쉬는 시간이 아니다. 준비하는 시간이다. 아직 위기가 오지 않았을 때, 우리는 그 위기를 맞을 자신을 만들어야 한 다. 마키아벨리가 이 말을 남긴 것은 전쟁을 부추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평화를 지키는 힘은 평화로울 때 길러진다는 것 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마키아벨리의 문장은 따뜻하지 않다. 그의 언어는 위로하지 않는다. 인간의 선함을 믿어도 괜찮다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진심은 반드시 닿을 것이라고 격려하지 않으며, 좋은 일을 하면 결국 좋은 결과가 온다고 약속하지 않는다. 그가 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세상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감정없이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도, 그 차가운 문장들에서 이상한 위안을 느낀다. 왜냐하면 그 문장들이 말하는 것은 순진했기 때문에 상처받은 것이라거나, 세상이 나쁘기 때문에 포기하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말하는 것은 착각을 걷어내면, 그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리고 착각 없이 서 있는 사람이, 착각 속에 서 있는 사람보다 훨씬 더 단단하게 버틸 수 있다. 마키아벨리를 읽는다는 것은 냉소를 배우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현실을 직시할 용기를 배우는 일이다. 사람이 언제나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 것, 충성이 이익 앞에서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신뢰를 설계하는 것, 사랑만으로는 권력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더 나은 구조를 만드는 것. 그것이 착각을 걷어낸 자리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그는 군주에게 말을 걸었지만, 결국 인간 전체를 해부했다. 그 말이 이 책의 마지막에 등장한다는 사실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마키아벨리가 진짜 쓰고 싶었던 것은 권력자를 위한 매뉴얼이 아니라,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한 가장 정직한 기록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어떤 의미에서 군주다. 책은 오백 년을 건너온 마키아벨리의 차가운 문장들이 오늘 우리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조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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