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천만 원 부동산 투자 : 초수익 시크릿
제승욱 지음 / 원앤원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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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최근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가 15억 원을 넘어섰다는 뉴스를 접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한숨부터 내쉬었을 것이다. 내 집 마련조차 요원한 현실 앞에서 '투자'라는 단어는 마치 부자들만의 전유물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제승욱 교수의 책은 바로 이러한 고정관념에 균열을 낸다. 핵심은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시작하는 용기와 올바른 방법론에 있다는 것이다. 2023년 초판 출간 이후 불과 2년여 만에 개정판이 나온 이유는 명확하다. 부동산 시장을 둘러싼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 졌기 때문이다. 금리 정책은 급변했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 역시 끊임없이 변화했다. 무엇보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정보 접근성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과거에는 전문가들만 누릴 수 있었던 시장 분석 도구들이 이제 일반인에게도 열려 있다.

챗GPT와 같은 Al 도구로 투자 지역을 분석하고, 빅데이터 플랫폼으로 실시간 시세를 확인하며, 알고리즘이 제시하는 투자 적기를 포착할 수 있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는 투자 판단의 민주화를 의미한다. 더 이상 발품을 팔며 중개사무소를 찾아다니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물론 임장의 중요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그 이전 단계에서 훨씬 정교한 사전 분석이 가능해진 것이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처럼, 지금은 경험과 감각에만 의존하던 시대에서 구조적이고 논리적인 접근이 요구되는 시대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소액 투자자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큰 자본이 없어도 정확한 정보와 분석 능력으로 승부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셈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메가시티 개념을 통한 입지 분석이다. 더 이상 서울이라는 단일 도시 중심의 사고방식으로는 진정한 기회를 포착하기 어렵다. 서울-인천-경기로 이어지는 수도권 메가시티, 부산-울산-경남을 연결하는 동남권 메가시티, 대구-경북을 아우르는 대경권 메가시티가 새로운 판을 짜고 있다. 특히 GTX 노선은 단순한 교통 인프라를 넘어 부동산 지형도 자체를 재편하는 혁명적 변수다. 동탄이 좋은 예시다. 과거에는 서울에서 멀다는 이유로 외면받던 곳이 GTX-A 노선 개통으로 강남까지 30분 거리가 되면서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게 되었다. IT와 반도체, 바이오 산업이 집중 되고, 교육 인프라가 수도권 최고 수준으로 갖춰지면서, 30만 인구의 독립적인 도시 기능을 확보한 동시에 서울 접근성까지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제2의 강남' 혹은 '제3의 강남'이 등장할 수 있다는 저자의 예측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메가시티 시대에는 물리적 거리보다 시간 거리가 더 중요해진다. 1시간 생활권 내에서 직주근접이 가능하다면, 그곳이 어디든 새로운 프리미엄 지역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KTX 역세권, 데이터센터와 물류센터 주변 지역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들은 사람과 자본이 모이는 새로운 중심지로 기능한다. 소액 투자자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이런 구조적 변화의 초입 단계다. 모두가 알아차린 이후에는 이미 가격이 올라 있기 때문이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6%를 넘어서는 시대, 부동산 시장의 수요 구조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넓은 평수가 무조건 좋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면, 이제는 효율성과 관리 편의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특히 2030세대는 미니 멀한 라이프스타일을 선호하며, 불필요하게 큰 공간보다는 입지와 교통, 주변 인프라가 우수한 소형 평수를 찾는다. 이러한 변화는 소액 투자자에게 분명한 기회다. 대형 평수에 비해 진입 장벽이 낮으면서도, 수요는 오히려 더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1인 가구는 계속 증가할 것이고, 이들의 주거 수요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것이다. 저자가 소형 아파트와 오피스텔을 비교하며 제시한 관점도 실용적이다. 단기 투자라면 오피스텔의 유동성이 매력적일 수 있지만, 중장기적 자산 가치 상승을 기대한다면 소형 아파트가 더 나은 선택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예상되는 금리 하락과 부동산. 시장 회복 국면에서, 아파 트는 오피스텔보다 가격 상승 탄력성이 더 클 가능성이 높다. 같은 1천만 원이라도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따라 5년 후 결과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저자의 조언은 곱씹어볼 만하다.

부동산 투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단호하게 '매도 타이밍'이라고 답한다. 사는 것보다 파는 것이 더 어렵고 중요하다는 것이다. 3억 원에 산 아파트가 4억 2천만 원이 되었을 때, 목표 수익률을 달성했다면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을 부린다. 조금 더 오르면 팔겠다는 생각이 결국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영끌빚투에 대한 경고도 같은 맥락이다. 대출은 분명 투자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대출은 독이 된다. 저금리 시대에는 누구나 레버리지의 유혹에 빠지기 쉽지만, 세상에 영원히 우상향하는 자산도, 영원히 낮은 금리도 없다. 분수에 맞는 투자, 감내할 수 있는 선에서의 대출, 명확한 목표 수익률 설정. 이 세 가지는 소액 투자자가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다. 여러 부동산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갈아타기' 전략도 이와 연결된다. 처음부터 강남에 투자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변두리에서 시작해 수익을 실현하고, 그 자금으로 조금 더 나은 지역으로 이동하는 과정을 반복하면, 결국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다. 조급함보다는 꾸준함이, 욕심보다는 원칙이 승리를 가져온다.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지금의 시장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막연함을 느끼고 있다면, 이 책은 분명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1천만 원이라는 금액이 적어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변화를 시작하는 의지의 표현이다. 작은 시작이 큰 변화를 만든다는 진리는, 부동산 투자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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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탄생 - 량치차오의 국민국가 건설 분투기
정지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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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나는 현재 중국의 여러 모습이 량치차오 시대의 고민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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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탄생 - 량치차오의 국민국가 건설 분투기
정지호 지음 / 경희대학교출판문화원(경희대학교출판부)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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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중국의 탄생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흔히 황하 문명이나 만리장성, 진시황의 통일을 떠올린다. 그러나 정지호 교수가 조명한 량치차오의 분투기를 접하며, 나는 '탄생'이라는 단어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끊임없는 재구성의 과정임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특히 근대라는 격변기를 살았던 량치차오의 고민은 백여 년 전 한 지식인의 사유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히 진행 중인 '중국 만들기'의 원형질 같은 것이었다. 량치차오가 살았던 청말 민초는 제국이 무너지고 국민국가가 요청되던 시기였다. 그는 이 틈새에서 역사, 경제, 재정, 정치체제, 민족 정체성에 이르기까지 총체적 설계를 시도했다. 마치 한 사람이 나라 전체의 청사진을 그려내려 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보통 혁명가는 파괴에, 보수주의자는 보존에 집중하는 법인데, 량치차오는 둘 사이 어딘가에서 '혁명적 보존'을 꿈꾼 듯하다. 그래서 그는 입헌군주제를 주장하면서도 소설계 혁명을 외쳤고,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도 재정 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 모순처럼 보이는 태도가 사실은 당대 중국이 마주한 현실 그 자체였다. 흥미로운건 량치차오의 사상이 일관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망명 초기와 귀국 후 그의 입장은 때로 정반대로 보이기까지 한다. 자본 집중을 강조하다가 소농사회를 긍정하고, 연방제를 소개하다가 강력한 중앙집권을 옹호했다. 이런 변화를 두고 누군가는 기회주의라 비난할 수 있겠지만, 나는 오히려 이 불일치 속에서 진정성을 본다. 그는 교조적 이론가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는 실천가였다. 정치적 필요가 우선이었고, 경제학은 도구였으며, 역사는 국민을 만들 기 위한 서사였다. 이것이 량치차오를 단순한 사상가가 아니라 국가 건설자로 봐야 하는 이유다.

량치차오가 구상한 '대민족주의'는 혈통이나 언어 같은 객관적 요소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나는 중국인이다"라는 자각, 그 주관적 동일시가 핵심이었다. 이 발상은 매우 근대적이면서도 동시에 위험하다. 왜냐하면 민족이라는 것이 발견되는 게 아니라 발명되는 것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치차오는 이 허구를 적극적으로 추동했다. 그에게 중요한 건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정치적 효용이었다. 청말 국적법 제정 과정을 보면 이 딜레마가 더욱 분명해진다. 근대 국민국가는 명확한 국민의 경계를 필요로 한다. 누가 우리이고 누가 타자인지 법적으로 정의해야 한다. 그런데 청조는 귀화 이전의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 해외 화교의 이중국적을 어떻게 다룰지 명확한 기준을 세우지 못했다. 전통적 천하 질서에서는 국적이라는 개념 자체가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황제의 덕화가 미치는 범위가 곧 세계였고, 그 안의 사람 들은 모두 잠재적 신민이었다. 그러나 근대 국제 질서는 배타적 주권을 요구했고, 중국은 급히 국민을 '만들어내야'했다.

동북지역 조선인의 법적 지위 문제는 이 혼란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중국은 만주 개척을 위해 조선인을 받아들였다가, 일본과의 갈등이 불거지자 그들을 귀화시키려 했다. 일본은 조선인을 자국민으로 규정하면서도 권리는 주지 않고 의무만 부 과했다. 조선인은 두 제국 사이에서 어느 쪽 국민도 온전히 될 수 없는 상태로 남겨졌다. 국민이라는 범주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정치적인지,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사람들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사례다. 량치차오의국성론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는 외부 충격과 내부 규범의 상실 속에서 방황하는 중국인에게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하려 했다. 국성이란국민으로서의 본성, 즉 집단적 성격을 의미한다. 이는 개인의 자유보다 국가의 생존을 우선하는 국가 주의적 발상이지만, 동시에 해방의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량치차오는 민족주의를 통해 국가를 강화하되, 그것이 궁극적으로는 보편적 질서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 긴장이 바로 근대 중국이 안고 있는 근본적 모순이다.

량치차오는 입헌파로 분류되지만, 그의 입장은 보수주의만이 아니었다. 그는 루소를 소개하고 미국 연방제를 검토했으며, 블룬칠리의 국가 유기체설을 수용했다. 입헌군주제를 지지한 것은 이념적 선호가 아니라 전략적 판단이었다. 광활한 제국을 급격히 공화제로 전환할 경우의 혼란을 우려했고, 청조를 유지하면서 점진적으로 입헌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현실적이 라고 본 것이다. 신해혁명으로 청조가 무너지자 치차오는 입헌군주제의 꿈을 접었지만, 곧바로 강력한 총통제 중심의 통일 공화정체를 지지했다. 연방제는 여전히 경계했다. 분열의 위험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대신 지방자치제도를 도입해 연방제의 장점을 일부 흡수하려 했다. 이런 태도는 일관성 없어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의 목표는 처음부터 명확했다. 강력한 국민국가의 건설. 체제는 수단이었고, 상황에 따라 조정 가능한 것이었다. 량치차오의 소설 속에서 황제가 퇴위하고 총통이 취임하는 설정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혁명적 전환을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청조의 유산을 완전히 버리지 않으려 했 다. 제국의 판도를 유지하되 그 안에 새로운 질서를 심으려 한 것이다. 실제로 청조는 멸망 직전 '중국'과 '중화'라는 가치를 만주족을 넘어 전체 판도로 확산시키려 했다. 이는 량치차오가 꿈꾼 '대민족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 입헌파와 혁명 파는 격렬히 대립했지만, 둘 다 국가주의 담론에 기반했고, 둘 다 청조 권력의 외부에 있었다. 이 점은 중요하다. 국민국가 건설 논의가 기존 권력 구조 밖에서 전개되었다는 것은, 그것이 단순한 정치 개혁이 아니라 근본적인 체제 전환이었음을 의미한다. 량치차오는 그 전환의 한복판에서 이론과 실천을 동시에 추구한 인물이었다.


책을 읽으며 나는 현재 중국의 여러 모습이 량치차오 시대의 고민과 연결되어 있음을 느꼈다. 강력한 중앙집권, 국가주의적 민족주의, 경제 발전을 통한 국가 강화, 주변부에 대한 통합 의지. 이 모든 것이 백여 년 전 량치차오가 씨름했던 문제들이다. 중국은 여전히 '탄생'하고 있는 중이다. 제국의 유산과 국민국가의 요청 사이에서, 보편주의와 민족주의 사이에서. 량치차오를 보수 개량주의자로만 치부하는 것은 그의 사상이 지닌 복잡성을 놓치는 일이다. 그는 혁명과 보존, 전통과 근 대, 제국과 국가 사이에서 제3의 길을 모색했다. 그 길이 성공했는지는 논쟁적이지만, 그 시도 자체가 근대 중국 형성 과정의 핵심이었다. 중국의 탄생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 과정이며, 량치차오는 그 과정을 설계하고 추동한 건축가 중 한 명이었다. 우리가 량치차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국가란 무엇이고, 국민이란 누구이며, 정치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하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지기 위해서다. 량치차오의 분투는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여전히 중국 안에서, 그리고 동아시 아 전체의 질서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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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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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을 목도하고 있다. 2026년 초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들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개입, 그린란드를 향한 노골적인 영토적 야욕등은 언뜻 강대국의 위용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오히려 쇠락의 징후다. 진정한 패권국은 군사력만으로 세계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산력으로, 기술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상식'을 만드는 힘으로 세계를 이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해양 무역과 금융으로, 19세기 영국이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이념으로, 20세기 미국이 대량생산 체계와 자유민주주의 담론으로 세계를 재편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더 이상 그런 '총체적 조정자'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제조업은 이미 수십 년 전 아시아로 이전되었고, 기술적 우위마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달러 패권과 군사적 네트워크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를 설득할 수 없다. 설득이 불가능해지자 강제에 의존하게 되고, 강제에 의존할수록 정당성은 더욱 훼손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패권국이 겪어온 악순환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상황이 1914년 이전 세계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독일의 GDP는 이미 영국을 추월했고, 두 나라는 긴밀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정확히 그렇다. 중국 수출의 17%가 미국으로 향하고,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면서도 기술 패권, 해양 통제권, 우주 개발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20세기 초 독일이 강력한 관료국가와 국영기업을 통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했듯, 21세기 중국 역시 국가자본주의를 통해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역사가 정확히 반복되지는 않지만, 패턴은 반복된다. 1914년 이전에도 세계화는 절정에 달했고, 사람들은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너무 깊어서 전쟁은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비극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는 다시 그 '기존 궤도'로 돌아가는 중이다. 단극 체제라는 역사적 예외가 끝나고, 다극 체제라는 역사적 정상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을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트럼프주의는 미국 패권 쇠락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1970년대 이후 지속된 제조업 공동화, 중산층의 몰락, 불평등의 심화가 누적되면서 기존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은 세계화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일자리는 해외로 떠났고, 남은 것은 마약 중독과 절망뿐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유일한 희망처럼 들렸다. 흥미롭게도 이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소련과 겹친다. 옐친이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치며 제국 유지 비용의 축소를 약속했듯,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로 해외 군사 개입의 축소를 공약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제국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제국을 더 빠르게 붕괴시킨다. 동맹을 경시하고, 다자주의를 거부하며, 거래적 외교에만 매달리면 패권국이 누리던 '상징 자본' 즉 자발적 동의와 신뢰이 급격히 소진된다.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전 세계에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동맹국을 보호하며, 국제 질서를 관리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그러나 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로부터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달러 패권, 기술 표준 설정권, 금융 시장 지배력, 문화 산업의 영향력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주의가 비용만 줄이고 이익은 그대로 누리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불가능한 조합이다. 동맹을 홀대하면서 동맹의 충성을 기대할 수 없고, 국제 규범을 무시하면서 규범 설정자로 군림할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주의가 10~15년 지속될 경우 미국의 장기적 경쟁력 자체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이민 제한 정책은 실리콘밸리의 인재 풀을 말리고, 고립주의는 과학기술 협력을 단절시키며, 반지성주의는 교육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미국의 진정한 힘은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몰려드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혈통과 국경을 강조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화되면, 미국은 더 이상 인재들의 메카가 아닌 폐쇄적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현재 세계가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미래의 한 가지 버전을 보여준다. 혈통 중심의 국가 정체성, 영구적 전쟁 상태, 군사주의의 일상화, 타자에 대한 무제한적 폭력의 수용—이 모든 것이 1930년대 유럽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21세기에도 현실로 작동하고 있다. 시온주의는 본래 진보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초기 이스라엘 건국 주역들은 노동 시온주의자들이었고,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를 꿈꿨다. 그러나 '우리 민족만의 국가'라는 배타적 토대 위에서는 진정한 평등과 보편적 인권이 실현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배제하는 순간, 시온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결국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화와 극우화가 가속화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1인당 군사비 지출에서 이스라엘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전체 인구의 4%가 동원되는 전쟁이 일상이고, 병역 기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아들도, 장관의 딸도 전선에 나간다. 이것이 '시민=군인'이라는 등식이 완성된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타자의 생명은 '우리'의 안보라는 명분 앞에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 가자지구에 대한 정기적 공습을 '잔디 깎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폭력이 얼마나 일상화되고 탈감각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 유대인들조차 선택권만 있다면 이스라엘로의 '귀환'을 사양한다. 전 세계 인재들이 혈통주의와 군사주의로 점철된 사회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은 심화되고, 심지어 유대인 디아스포라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평화 없이는 미래가 없다. 그러나 극우 세력에게 영구적 전쟁 상태는 오히려 권력 유지의 수단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종착역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패권의 쇠락은 한국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위기인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는 지난 70년간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 토대가 흔들리면 우리의 생존 전략 전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다. 수출 구조를 보면 이미 중국과 아세안의 비중이 구미권과 일본을 넘어섰다. 문화 상품은 비서구권에서 더 잘 팔린다.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는 더 이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필요가 없다. 자주국방을 전제로 한 지역 안보 구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감상적 친미도, 맹목적 반미도 아닌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모든 것이 미국 탓'이라는 식의 단순한 프레임은 객관적 상황 파악에 방해가 된다. 중국과 러시아도 각자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한반도는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 간 모순의 심화와 경쟁의 첨예화 속에서 우리의 생존 공간을 최대화하는 전략적 사고다.


1914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한반도는 다시 한번 완충지대가 될 위험이 크다. 핵무기 시대에 열강 간 전면전은 불가능하지만, 대리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크라이나가 그 비극적 사례다. 한반도가 그런 전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 개선, 주변국과의 다자 외교 강화, 자주국방 역량 확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는 '포스트 서구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는 더 다원적이고, 더 경쟁적이며, 어쩌면 더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비서구 국가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 열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기회를 포착하려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야만 시대의 귀환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무한 각축, 민족주의와 배타주의의 폭발, 전쟁과 혐오의 일상화 등 이 모든 것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1914년 인류는 제1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고, 1930년대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예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냉철한 인식과 전략적 대응이다. 미국 패권의 몰락을 부정하거나 미화할 필요가 없다. 동시에 그것을 단순히 환영만 할 일도 아니다. 패권의 공백은 혼돈을 낳고, 그 혼돈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약소국과 민중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혼돈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더 큰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한다. 민족주의의 폐쇄회로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평등과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궁극적으로 야만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 이스라엘의 사례가 보여주듯, 혈통과 배제에 기반한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평화 없이는 미래가 없고, 연대 없이는 희망이 없다. 야만 시대를 건너는 지혜는 결국 여기에 있다. 힘의 논리를 이해하되 그것에 함몰되지 않고, 생존을 추구하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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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문혁 교수의 이야기 민사소송법 호문혁 교수의 이야기
호문혁 지음 / 베네딕션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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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받지 못한다." 로마법 시대부터 내려온 이 원칙은 냉정하게 들린다. 하지만 더 냉정한 현실은 권리가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다. 호문혁 교수의 <이야기 민사소송법>은 우리시대의 민사소송법에 대해 친근하게 다가온다. 법을 알아야 권리를 지킬 수 있고, 소송이 무엇인지 알아야 비로소 법이 제공하는 보호막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전제 위에서 사례와 함께 설명해 준다.


민사법과 민사소송법은 수레의 양쪽 바퀴라는 비유가 이 책의 존재 이유를 명확히 보여준다. 권리를 안다는 것과 그 권리를 실제로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계약서를 쓸 줄 알아도 막상 분쟁이 생겼을 때 법원 문턱 앞에서 주저하는 사람들, 소장을 받고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사람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추상적인 법 이론이 아니라, 실제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다. 저자는 이 어려운 과제를 '이야기'라는 오래된 방식으로 풀어낸다. 법학교육에서 스토리텔링은 흔히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조문과 판례, 학설의 정확한 이해가 우선이고, 이야기는 기껏해야 흥미를 돋우는 양념 정도로 취급된다. 하지만 호문혁 교수는 이 통념을 뒤집는다. 이춘풍과 김선달이라는 익숙한 인물들이 겪는 구체적 사건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소송요건이 무엇인지, 왜 관할법원이 중요한지, 입증책임이 어떻게 분배되는지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교육방법론의 문제가 아니다. 법을 누구의 것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과 맞닿아 있다. 법률가들만의 전문 언어로 쓰인 교과서는 결국 법을 그들만의 영역으로 만든다. 하지만 법은 본질적으로 시민의 것이어야 한다. 특히 민사소송법은 개인의 권리를 실현하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다. 이 도구를 다루는 방법을 시민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치가 제대로 작동한다. 33개 이야기로 구성된 이 책의 체계는 실제 소송의 흐름을 그대로 따른다. 침해된 권리를 인식하는 순간부터 소장 작성, 답변서 제출, 증거 준비, 변론, 판결, 그리고 강제집행에 이르기까지. 독자는 마치 실제 소송 당사자가 된 것처럼 각 단계를 경험한다. 소송요건을 갖추지 못해 각하되는 상황, 증명이 어려워 입증책임 분배가 문제되는 경우, 판결에 불복하여 상소하는 과정까지, 이론이 아닌 경험으로 이해하게 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이 책이 법학 전공자만을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각 장마다 시민과 저자의 대화로 시작하는 구성, 용어와 핵심 개념을 정리한 박스, 복잡한 절차를 시각화한 도표들은 모두 비전공자를 배려한 장치다. 실제 소장과 답변서 예시까지 포함한 것은 더 나아가 독자가 필요할 때 직접 활용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다. 이것은 법학 교재가 아니라 시민을 위한 실용서에 가깝다. 민사소송법이 어렵다고 알려진 이유는 내용이 복잡해서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계약 위반, 손해배상, 소유권 분쟁 등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다만 그것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을 때 우리는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뿐이다. 이 책은 그 막막함을 덜어준다. 법원이 멀고 어렵게만 느껴지던 사람들에게, 소송이라는 절차가 사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한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야기 민사법'과 '이야기 민사소송법'으로 완성된 '권리보호의 기초'라는 수레는 이제 시민 누구나 탈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물론 복잡한 사건에서는 여전히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자신이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어떤 절차를 밟아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시민의 위치는 달라진다. 무지한 상태로 전문가에게 의존하는 것과, 기본을 이해한 상태로 협력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낳는다. 결국 책이 하려는 일은 법의 민주화다. 법을 법률가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시민 모두가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로 만드는 작업이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첫 문장처럼, 법을 아는 것은 지식 습득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앎이 진정으로 힘이 되려면, 그것은 이해 가능한 언어로, 접근 가능한 방식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호문혁 교수의 이 책은 바로 그 일을 해낸다. 법의 문턱을 낮추되 법의 본질은 지키면서 법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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