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상황이 1914년 이전 세계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독일의 GDP는 이미 영국을 추월했고, 두 나라는 긴밀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정확히 그렇다. 중국 수출의 17%가 미국으로 향하고,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면서도 기술 패권, 해양 통제권, 우주 개발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20세기 초 독일이 강력한 관료국가와 국영기업을 통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했듯, 21세기 중국 역시 국가자본주의를 통해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역사가 정확히 반복되지는 않지만, 패턴은 반복된다. 1914년 이전에도 세계화는 절정에 달했고, 사람들은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너무 깊어서 전쟁은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비극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는 다시 그 '기존 궤도'로 돌아가는 중이다. 단극 체제라는 역사적 예외가 끝나고, 다극 체제라는 역사적 정상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을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트럼프주의는 미국 패권 쇠락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1970년대 이후 지속된 제조업 공동화, 중산층의 몰락, 불평등의 심화가 누적되면서 기존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은 세계화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일자리는 해외로 떠났고, 남은 것은 마약 중독과 절망뿐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유일한 희망처럼 들렸다. 흥미롭게도 이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소련과 겹친다. 옐친이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치며 제국 유지 비용의 축소를 약속했듯,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로 해외 군사 개입의 축소를 공약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제국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제국을 더 빠르게 붕괴시킨다. 동맹을 경시하고, 다자주의를 거부하며, 거래적 외교에만 매달리면 패권국이 누리던 '상징 자본' 즉 자발적 동의와 신뢰이 급격히 소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