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 시대의 귀환 - 팍스 아메리카나의 몰락과 무한 각축의 시작
박노자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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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지금 역사적 전환점을 목도하고 있다. 2026년 초 미국이 보여준 일련의 행보들 즉, 베네수엘라에 대한 무력 개입, 그린란드를 향한 노골적인 영토적 야욕등은 언뜻 강대국의 위용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힘의 과시가 아니라 오히려 쇠락의 징후다. 진정한 패권국은 군사력만으로 세계를 지배하지 않는다. 그들은 생산력으로, 기술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상식'을 만드는 힘으로 세계를 이끈다. 17세기 네덜란드가 해양 무역과 금융으로, 19세기 영국이 산업혁명과 자유무역 이념으로, 20세기 미국이 대량생산 체계와 자유민주주의 담론으로 세계를 재편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은 더 이상 그런 '총체적 조정자'의 지위를 유지하지 못한다. 제조업은 이미 수십 년 전 아시아로 이전되었고, 기술적 우위마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달러 패권과 군사적 네트워크는 여전히 강력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세계를 설득할 수 없다. 설득이 불가능해지자 강제에 의존하게 되고, 강제에 의존할수록 정당성은 더욱 훼손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패권국이 겪어온 악순환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금의 상황이 1914년 이전 세계와 놀라울 만큼 닮아있다는 사실이다. 당시 영국의 패권에 도전하던 독일의 GDP는 이미 영국을 추월했고, 두 나라는 긴밀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식민지 쟁탈전을 벌였다. 현재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정확히 그렇다. 중국 수출의 17%가 미국으로 향하고, 두 나라는 경제적으로 깊이 얽혀 있으면서도 기술 패권, 해양 통제권, 우주 개발권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20세기 초 독일이 강력한 관료국가와 국영기업을 통해 후발주자의 약점을 극복했듯, 21세기 중국 역시 국가자본주의를 통해 미국을 추격하고 있다. 역사가 정확히 반복되지는 않지만, 패턴은 반복된다. 1914년 이전에도 세계화는 절정에 달했고, 사람들은 전쟁이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경제적 상호의존이 너무 깊어서 전쟁은 모두에게 파멸을 가져올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결국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고, 그 비극은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지금 우리가 맞이하는 세계는 다시 그 '기존 궤도'로 돌아가는 중이다. 단극 체제라는 역사적 예외가 끝나고, 다극 체제라는 역사적 정상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등장을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로 보는 것은 착각이다. 트럼프주의는 미국 패권 쇠락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1970년대 이후 지속된 제조업 공동화, 중산층의 몰락, 불평등의 심화가 누적되면서 기존 엘리트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쳤다. '러스트 벨트'의 노동자들은 세계화가 자신들에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지 뼈저리게 느꼈다. 일자리는 해외로 떠났고, 남은 것은 마약 중독과 절망뿐이었다. 이들에게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구호는 단순한 선동이 아니라 유일한 희망처럼 들렸다. 흥미롭게도 이 상황은 1980년대 후반 소련과 겹친다. 옐친이 '러시아 제일주의'를 외치며 제국 유지 비용의 축소를 약속했듯, 트럼프는 '미국 제일주의'로 해외 군사 개입의 축소를 공약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제국을 유지하려는 시도가 오히려 제국을 더 빠르게 붕괴시킨다. 동맹을 경시하고, 다자주의를 거부하며, 거래적 외교에만 매달리면 패권국이 누리던 '상징 자본' 즉 자발적 동의와 신뢰이 급격히 소진된다.


패권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다. 전 세계에 군사 기지를 유지하고, 동맹국을 보호하며, 국제 질서를 관리하는 데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그러나 이 비용을 지불하는 이유는 그로부터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달러 패권, 기술 표준 설정권, 금융 시장 지배력, 문화 산업의 영향력 등이 그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주의가 비용만 줄이고 이익은 그대로 누리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불가능한 조합이다. 동맹을 홀대하면서 동맹의 충성을 기대할 수 없고, 국제 규범을 무시하면서 규범 설정자로 군림할 수 없다. 더 심각한 것은 트럼프주의가 10~15년 지속될 경우 미국의 장기적 경쟁력 자체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이민 제한 정책은 실리콘밸리의 인재 풀을 말리고, 고립주의는 과학기술 협력을 단절시키며, 반지성주의는 교육 시스템을 붕괴시킨다. 미국의 진정한 힘은 전 세계의 우수한 인재들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몰려드는 데 있었다. 그러나 혈통과 국경을 강조하는 배타적 민족주의가 강화되면, 미국은 더 이상 인재들의 메카가 아닌 폐쇄적 사회로 전락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현재 세계가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어두운 미래의 한 가지 버전을 보여준다. 혈통 중심의 국가 정체성, 영구적 전쟁 상태, 군사주의의 일상화, 타자에 대한 무제한적 폭력의 수용—이 모든 것이 1930년대 유럽의 유물처럼 보이지만, 21세기에도 현실로 작동하고 있다. 시온주의는 본래 진보적 성격을 띠고 있었다. 초기 이스라엘 건국 주역들은 노동 시온주의자들이었고, 사회민주주의적 복지국가를 꿈꿨다. 그러나 '우리 민족만의 국가'라는 배타적 토대 위에서는 진정한 평등과 보편적 인권이 실현될 수 없었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배제하는 순간, 시온주의는 사회주의가 아니라 민족주의를 선택한 것이다. 결국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화와 극우화가 가속화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1인당 군사비 지출에서 이스라엘은 세계 최상위권이다. 전체 인구의 4%가 동원되는 전쟁이 일상이고, 병역 기피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통령의 아들도, 장관의 딸도 전선에 나간다. 이것이 '시민=군인'이라는 등식이 완성된 사회의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회에서 타자의 생명은 '우리'의 안보라는 명분 앞에 언제든 희생될 수 있다. 가자지구에 대한 정기적 공습을 '잔디 깎기'라고 표현하는 것은, 폭력이 얼마나 일상화되고 탈감각화되었는지를 보여준다. 문제는 이런 체제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이다. 해외 유대인들조차 선택권만 있다면 이스라엘로의 '귀환'을 사양한다. 전 세계 인재들이 혈통주의와 군사주의로 점철된 사회로 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국제 사회에서의 고립은 심화되고, 심지어 유대인 디아스포라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평화 없이는 미래가 없다. 그러나 극우 세력에게 영구적 전쟁 상태는 오히려 권력 유지의 수단이다. 이것이 바로 민족주의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어두운 종착역이다.

우리는 지금 거대한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미국 패권의 쇠락은 한국에게 위기이자 동시에 기회다. 위기인 이유는 명백하다. 우리는 지난 70년간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서, 미국 주도의 세계 경제 질서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 토대가 흔들리면 우리의 생존 전략 전체를 재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기회이기도 하다. 수출 구조를 보면 이미 중국과 아세안의 비중이 구미권과 일본을 넘어섰다. 문화 상품은 비서구권에서 더 잘 팔린다. 지정학적으로도 우리는 더 이상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할 필요가 없다. 자주국방을 전제로 한 지역 안보 구도를 만들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바람직하다. 중요한 것은 감상적 친미도, 맹목적 반미도 아닌 냉철한 현실 인식이다. '모든 것이 미국 탓'이라는 식의 단순한 프레임은 객관적 상황 파악에 방해가 된다. 중국과 러시아도 각자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고, 한반도는 그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 간 모순의 심화와 경쟁의 첨예화 속에서 우리의 생존 공간을 최대화하는 전략적 사고다.


1914년 이전으로 돌아가는 세계에서 한반도는 다시 한번 완충지대가 될 위험이 크다. 핵무기 시대에 열강 간 전면전은 불가능하지만, 대리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크라이나가 그 비극적 사례다. 한반도가 그런 전장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이를 위해서는 남북 관계 개선, 주변국과의 다자 외교 강화, 자주국방 역량 확보가 동시에 필요하다. 동시에 우리는 '포스트 서구 세계'를 준비해야 한다. 서구 중심의 세계 질서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알게 되었다. 새로운 세계는 더 다원적이고, 더 경쟁적이며, 어쩌면 더 폭력적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비서구 국가들에게는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 열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 기회를 포착하려면 과거의 성공 방정식에 안주해서는 안된다.

야만 시대의 귀환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영토와 자원을 둘러싼 무한 각축, 민족주의와 배타주의의 폭발, 전쟁과 혐오의 일상화 등 이 모든 것이 이미 시작되었다. 그러나 역사는 결정되어 있지 않다. 1914년 인류는 제1차 세계대전을 막지 못했고, 1930년대 인류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예방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똑같은 실패를 반복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중요한 것은 냉철한 인식과 전략적 대응이다. 미국 패권의 몰락을 부정하거나 미화할 필요가 없다. 동시에 그것을 단순히 환영만 할 일도 아니다. 패권의 공백은 혼돈을 낳고, 그 혼돈 속에서 가장 먼저 희생되는 것은 약소국과 민중이다. 우리의 과제는 이 혼돈을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질서 속에서 우리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는 더 큰 목표를 잃지 말아야 한다. 민족주의의 폐쇄회로에 갇히지 않고, 진정한 평등과 연대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것이 궁극적으로 야만을 넘어서는 유일한 길이다. 이스라엘의 사례가 보여주듯, 혈통과 배제에 기반한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평화 없이는 미래가 없고, 연대 없이는 희망이 없다. 야만 시대를 건너는 지혜는 결국 여기에 있다. 힘의 논리를 이해하되 그것에 함몰되지 않고, 생존을 추구하되 인간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균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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