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자동차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 벤츠에서 테슬라까지, 150년 역사에 담긴 흥미진진 자동차 문화사전
루카 데 메오 지음, 유상희 옮김 / 미래의창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루카 드 메오(Luca de Meo)의 <자동차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는 자동차 애호가들을 위한 사전 형식의 에세이집이다. 현재 르노 그룹의 CEO로 재직 중인 저자는 30년 이상 자동차 업계에서 활동하며 피아트, 폴크스바겐, 세아트 등 유럽의 주요 자동차 브랜드를 거쳐온 독특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독일, 스페인, 그리고 현재 프랑스까지 유럽 전역의 자동차 문화를 체험한 저자만이 쓸 수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책은 사전 형식을 취하고 있다. 'ㄱ'부터 시작해 'ㅎ'로 끝나는 이 책은 자동차 백과사전만이 아니라, 자동차를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 문화, 그리고 사회적 의미를 탐구하는 인문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할 것 같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전설적인 자동차 모델들(2CV, DS, R5 등)과 유명 브랜드들에 대한 이야기를 예상하지만, 저자는 'R comme robots(로봇)', 'S comme Sans permis(무면허)'와 같은 현대적이고 때로는 의외의 주제들도 이야기 한다. 이러한 접근은 자동차 산업이 과거의 향수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모빌리티까지 아우르는 역동적인 영역임을 보여준다. 저자는 각 항목에서 개인적인 경험과 업계 내부자로서의 통찰을 절묘하게 조합한다. 예를 들어, 특정 모델의 기술적 혁신을 설명할 때는 그 뒤에 숨겨진 인간적 드라마나 경영진의 결정 과정까지 포함시켜, 자동차가 인간의 창조물임을 강조한다. 이는 자동차 산업의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위치를 경험한 저자만이 제공할 수 있는 독특한 관점이다.
드 메오의 접근법에서 주목할 점은 자동차를 교통수단만이 아닌 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는 자동차가 지난 150년간 우리 사회의 기둥 역할을 해온 과정을 추적하면서, 각 시대의 사회적 변화와 자동차의 진화가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특히 유럽의 서로 다른 자동차 문화를 경험한 저자의 독특한 위치에서 나오는 통찰이다. 책에서 다루는 인물들의 초상화들은 자동차 산업을 만들어온 인간의 이야기로 읽힌다. 엔지니어, 디자이너, 경영자들의 개인적 동기와 창조적 과정을 통해 자동차 역사 뒤에 숨겨진 인간적 요소를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접근은 기술사를 인문학적으로 해석하는 현대적 경향과도 맞닿아 있다. 또한 저자는 자동차와 관련된 언어, 은유, 사회적 의미들을 깊이 있게 탐구한다. 자동차가 개인의 정체성, 사회적 지위, 라이프스타일의 표현 수단이 되어온 과정을 추적하면서, 현대인의 자동차에 대한 '사랑'이 어떻게 형성되고 발전해왔는지를 보여준다.
저자의 오랜 업계 경험은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피아트에서 폴크스바겐, 세아트, 그리고 르노까지 거쳐온 경험은 유럽 자동차 산업에 대한 깊이 있는 내부자적 관점을 제공한다. 공식 발표나 언론 보도에서는 알 수 없는 의사결정 과정, 브랜드 전략의 배경, 그리고 업계의 숨겨진 역학관계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업계 내부자적 시각은 때로는 비판적 거리감의 부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자동차 산업의 환경적 영향, 도시화 문제, 사회적 불평등과 같은 현대적 쟁점들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접근을 보인다. 이는 현직 CEO로서의 입장과 개인적 자동차 애호가로서의 감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또한 유럽 중심적 시각도 아쉬운 부분이다. 아시아나 미국의 자동차 문화, 특히 현재 전기차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이나 테슬라 같은 신생 기업들에 대한 다룸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이는 저자의 경험 범위와 관련이 있지만, 글로벌 자동차 산업을 다루는 책으로서는 균형감의 문제를 제기한다.
현재는 자동차 산업에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다. 전기차로의 급속한 전환, 자율주행 기술의 발전, 그리고 모빌리티 서비스의 부상 등은 전통적인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드 메오는 'Génération Z'나 'robots' 같은 항목을 통해 이러한 변화를 다루고 있지만, 동시에 전통적인 자동차 문화에 대한 애착도 강하게 드러낸다. 이러한 양가적 태도는 오히려 현재 자동차 산업이 직면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기술과 환경적 요구사항에 대응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자동차가 가진 문화적, 감정적 가치를 유지해야 하는 상황이다. 저자의 관점에서 이는 단순한 기술적 전환이 아니라 인간과 자동차의 관계 자체에 대한 재정의를 의미한다. 특히 전기차에 대한 저자의 시각은 흥미롭다. 기술적 혁신을 인정하면서도,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가 가진 감성적, 문화적 요소들이 상실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표현한다. 이는 기술 발전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 과정에서 보존되어야 할 가치들에 대한 성찰로 읽힌다.
책의 사전 형식은 선형적 읽기보다는 관심 있는 항목을 골라 읽는 방식을 권한다. 이는 바쁜 현대인들의 독서 패턴에도 적합하며, 각 항목이 독립적으로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공한다. 하지만 전체를 통독할 경우, 저자의 자동차에 대한 총체적 시각과 철학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전문적이면서도 접근하기 쉽게 쓰여있어, 자동차 업계 종사자부터 일반적인 자동차 애호가까지 폭넓은 독자층을 아우를 수 있다. 기술적 세부사항보다는 이야기와 맥락에 중점을 둔 서술 방식은 자동차에 대한 전문 지식이 부족한 독자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한다. 특히 각국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가진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이해는 저자의 통찰을 더 깊이 있게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루카 드 메오의 책은 자동차 애호서의 범주를 넘어서는 문화사적 의미를 가진다. 자동차 산업의 내부자이자 동시에 진정한 애호가로서의 저자의 시각은, 기술과 인간, 산업과 문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독특한 관점을 제공한다. 책의 강점은 저자의 풍부한 경험에서 나오는 생생한 통찰과 자동차를 문화적 현상으로 바라보는 인문학적 접근에 있다. 각 항목에서 드러나는 개인적 경험과 전문적 지식의 조합은 독자들에게 자동차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