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쓰기를 둘러싼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이것일 터이다. 글이란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도구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언어학자 김진해가 제시하는 글쓰기의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에게 글쓰기란 홀로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전제로 한 공동 작업이다. <쓰는 몸으로 살기>다.
매주 칼럼을 써내는 그조차 글을 쓸 때마다 난리법석을 떤다고 고백한다. 서재의 책들을 바닥에 쌓아놓고, 집 안을 휘젓고 다니며,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글쓰기가 단순히 머릿속 생각을 옮겨 적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독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쓰기는 독자를 상대로 한 간절한 부름이다.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 글쓴이는 독자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거나 멱살을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곡진하게 말해야 한다.
김진해님은 좋은 글의 조건으로 '힘을 뺀 글'을 꼽는다. 이는 모든 운동에서 코치가 선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타격 자세를 보면 손과 허리에 힘을 빼고 바람을 가르듯 방망이를 휘두른다. 축구에서도, 농구에서도, 심지어 역도나 유도에서도 힘을 빼라고 한다. 힘을 빼야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는 여유가 생기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힘을 빼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눈앞에는 공책이나 모니터밖에 없지만,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써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마구 내뿜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에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이런 글쓰기에서는 독자가 건너편 자리에 앉아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 얘긴 좀 긴걸?", "그건 말이 좀 안 된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군!" 등등. 진정한 글쓰기는 이처럼 처음부터 독자가 곁에 있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대화의 과정이다.
좋은 글의 또 다른 특징은 구체성이다. 김진해는 두 가지 예문을 통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라는 추상적 표현보다는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두 번 인사한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이고 상대가 '안녕하세요'라고 답하면 다시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인다"는 구체적 묘사가 훨씬 강력하다. 구체적인 글은 독자의 머릿속에 생생한 장면을 그려준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글을 읽으면 글의 주인을 만나보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백과사전이나 요리법처럼 정보만 전달하는 글에서는 글쓴이가 궁금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글 속에 글쓴이의 목소리와 체온이 담긴 글을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해진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이 더 매력적이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알고 싶어진다.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야말로 진정 독자에게 가닿은 글이다.
저자의 글쓰기 철학은 '말의 본성'과 '몸의 움직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말에는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특성이 있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뭔가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다른 뭔가를 감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말의 본성을 이해하면 글이 차분해지고 겸손해진다. 몸의 움직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합기도를 8년간 수련하면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 몸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한다. 특히 힘을 빼라는 가르침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몸의 감각을 통해 배운 것들이 글쓰기의 자세를 만드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모양과 재질의 글감을 손재주를 부려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이를 퇴비간 만들기에 비유한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팰릿,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 무료 나눔으로 얻은 목재 쪼가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튼튼한 퇴비간을 만드는 것처럼, 글쓰기도 손에 잡힌 글감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기술이다. 구성은 서론-본론-결론 같은 정해진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내 손안에 잡힌 글감에서 출발한다. 부엌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요리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라면 한 봉지밖에 없다면 간단하지만, 대파와 양파와 달걀이 있다면 순서를 달리할 수 있다. 있는 것을 빼는 것도 배치다. 과감한 포기도 구성의 중요한 전략이다. 좋은 구성은 다음 문장이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글을 만든다. 독자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주제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고 작은 에피소드끼리 맞물려서 더 큰 이야기에 합류하는 흐름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다.
김진해님은 다시 쓰기야말로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글 쓰는 사람이 인간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나는 확고하지 않다. 언제든 뒤집어엎어질 수 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 것을 버리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질락 말락 하는 기우뚱함, 가장 견고하다고 믿었던 내 안의 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의 희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생각하던 찰나에 주머니에 든 것을 몽땅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는 경험. 이런 감각이야말로 글쓰기를 통해 삶에 새겨야 할 것들이다. 다시 쓰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내 속에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며 놀라고, 버리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긴다.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게 되고, 꽃은 사랑해도 지고 잡초는 싫어해도 핀다는 삶의 이치를 배운다. 글쓰기를 통해 삶과 생명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글은 오감을 동원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를 담는다. 저자는 '사진 찍듯이 포착하기'라는 연습법을 제안한다. 시간을 멈춰두고 그 순간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시간을 멈추지 않으면 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중심으로 쓰게 된다. 하지만 시간을 멈춰 세우면 냄새, 감촉, 바람, 햇빛, 향기 같은 것들까지 묘사하게 된다. 신나게 놀다가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냥 쳐다보기만 할까? 아이의 손과 발을 만져보고, 뺨과 머릿결을 쓰다듬고, 냄새도 맡아볼 것이다. 어지럽혀진 방을 둘러보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느껴볼 것이다. 시간을 멈춰야 나에게 눈 말고도 코, 귀, 입, 피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간적인' 글쓰기다. 인간적인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이다. 관조하는 삶이 아닌 행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사건을 만들고, 예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닌 몸을 써야 한다. 내 몸의 기억을 믿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 몸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하는 바탕이다.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일과 왠지 모르게 하기 싫은 일을 구분하는 능력도 몸을 움직여 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를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용서하는 힘'과 '약속하는 힘'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용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고, 약속은 미래라는 불확실성의 바다에 안전한 섬을 세우는 일이다. 환원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의 조건에서, 용서와 약속은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세우고 새로운 행위를 시작하는 능력이 된다.
저자의 글쓰기론은 삶의 자세에 대한 철학이다. 글쓰기란 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전인적 활동이다. '쓰는 몸'이란 고착화된 표현과 통념을 넘어 말해지지 않는 것을 살피는 눈, 세계와 타인의 흔적을 섬세하게 감지하는 감각, 내 글에 기꺼이 타자의 자리를 만드는 유연함을 갖춘 몸이다. 진정한 글쓰기는 완결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을 계속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이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다시 쓰는 편지 같은 것이다. 다 썼다, 다했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글쓰기는 자기 완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가며 타자와 만나는 방식이다. 그런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글 쓰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