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용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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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다. 눈을 뜨면 수많은 정보가 쏟아지고, 손끝 하나로 세계의 모든 일에 반응할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그 속에서 정작 ‘나는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자주 막막해진다. 빠른 속도, 끊임없는 경쟁, 남의 시선에 맞춘 삶 속에서 우리는 점점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다. 바로 이때, 2,000년 전의 고전 <중용>이 우리를 향해 조용히 말을 건넨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지은 이 책은, 세상을 바꾸는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일’에서 출발한다. 외부의 화려함보다 내면의 성실을, 순간의 감정보다 지속되는 절제를 강조하며, 인간이 본래 지닌 ‘도(道)’를 일상 속에서 구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하지만 이 고전이 오늘날 우리에게 다시 울림을 주는 이유는 단지 ‘옛것의 지혜’ 때문이 아니다. <중용>은 21세기의 우리에게 혼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세우는 방법을 알려준다. 변화가 일상이고, 유혹이 끊이지 않는 시대에, ‘중용’은 균형과 절제의 언어로 ‘진정한 나’를 다시 일깨운다.이번에 박찬근님의 <중용>을 읽으며 그 의미를 다시한번 생각해 본다.

<중용>은 말한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 종교적 교리나 추상적 윤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도’란 곧 인간이 본래부터 지닌 올바름의 길, 즉 ‘양심의 방향’을 뜻한다. 주자는 이 구절에 대해, “사람은 본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하늘에서 비롯되었음을 모른다”고 해석했다. 이는 곧 우리가 타고난 ‘본성의 선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외부의 기준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비판한 말이다. 21세기 우리는 이전보다 훨씬 많은 선택지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만큼 중심을 잃기도 쉽다. SNS의 피드 한 줄, 익명의 댓글 하나가 우리의 판단과 감정을 쉽게 흔든다. ‘좋아요’의 숫자가 나의 가치가 되고, 타인의 시선이 나의 방향을 결정짓는다. 그러나 ‘도’는 언제나 내 안에 존재하며, 외부의 자극에 의해 좌우되지 않는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다’는 말은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스스로의 원칙을 잃지 않는 삶을 뜻한다. 그것은 완벽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흔들리는 순간에도 자신을 되돌아보고, 다시 중심을 세우려는 끊임없는 노력 그 자체가 ‘중용의 길’이다.

<중용>의 핵심 덕목 중 하나는 ‘신독(愼獨)’, 즉 ‘홀로 있을 때를 삼가라’는 가르침이다. 이 말은 공자의 제자들이 늘 곁에 있을 때가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는 순간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진짜 나를 성찰하라는 뜻이다. 오늘날 이 말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디지털 시대의 우리는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산다. 오프라인에서는 친절하고 예의 바른 사람처럼 보이지만, 온라인 익명 공간에서는 공격적이고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주자는 “군자는 보지 않는 곳에서도 삼가고, 듣지 않는 곳에서도 두려워한다”고 했다. 이는 감시가 없을 때 비로소 윤리가 시험된다는 말이다. 익명 뒤에 숨은 말 한마디, 감정적인 댓글 하나가 누군가의 하루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시대, ‘신독’은 단순한 자기 절제가 아니라 존엄한 인간됨의 기준이 된다. ‘신독’을 21세기의 시선으로 읽는다는 것은, ‘누구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용기’를 갖는 일이다.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윤리이자, 나의 내면을 지키는 방패다.

<중용>은 ‘몸을 닦는 일(修身)’에서 시작해 ‘하늘의 이치를 아는 일(知天)’에 이르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자신을 바르게 세우지 않으면 부모를 공경할 수 없고,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면 타인을 이해할 수 없으며, 타인을 알지 못하면 하늘의 이치를 깨달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가르침은 21세기의 인간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오늘의 우리는 ‘세상을 바꾸자’는 거대한 구호에 익숙하지만, 정작 ‘나를 바꾸는 일’에는 서툴다. 그러나 중용은 말한다. 모든 변화는 자기로부터 시작된다. ‘수신’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며, 진정한 성찰을 통해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때에야 비로소 부모를, 타인을, 세상을 올바르게 바라볼 수 있다. ‘수신에서 지천으로’ 이어지는 중용의 단계는, 개인의 내면과 사회적 관계, 그리고 우주의 질서를 하나로 엮는다. 즉, 나의 작은 성찰 하나가 결국 세상 전체의 조화를 이루는 씨앗이 된다는 것이다.

중용이 가장 강조하는 덕목은 ‘성(誠)’, 곧 ‘진실함’이다. 주자는 말한다. “성실함은 하늘의 도이고, 성실히 행함은 사람의 도이다.” 하늘은 거짓이 없고, 인간은 그 하늘을 본받아 ‘진정성’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는 겉으로 꾸미는 것에 익숙하지만, 내면의 진실함을 유지하는 일에는 서툴다. SNS의 세계에서는 꾸며진 삶, 연출된 행복이 넘쳐난다. 그러나 진정한 ‘성’은 보여주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정직한 태도다. 성실함은 단순히 노력의 의미를 넘어, 존재의 깊은 진정성을 뜻한다. 내가 진심으로 나 자신에게 정직할 때, 비로소 타인에게도 진정한 신뢰를 줄 수 있다. ‘성’은 하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을 이어주는 다리다.

<중용>은 완벽한 삶의 기술서를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완전한 인간이 어떻게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혜의 지도다. 21세기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중용』은, 균형 잡힌 마음으로 살아가는 법, 혼란 속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법,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진실하게 존재하는 법을 일깨운다. ‘중(中)’은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뜻하고, ‘용(庸)’은 그것을 한결같이 유지하는 삶의 지속성을 말한다. 우리는 언제나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흔들릴 때마다 다시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중용’의 길이며,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할 마음의 기술이다. 명절을 맞이하면서 고전을 읽는 기쁨을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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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의 과학
이선 크로스 지음, 왕수민 옮김, 김경일 감수 / 웅진지식하우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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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과의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제안한다. 감정을 억압하거나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그것들과 함께 춤추는 법을 배우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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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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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장강명의 《뤼미에르 피플》을 소개하는 이 글을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경계'에 대한 것이었다. 뤼미에르 빌딩 8층에 거주하는 10세대의 인물들은 모두 사회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존재들이다. 그들은 정상과 비정상, 인간과 비인간, 현실과 환상의 경계선 위에 서 있다. 박쥐 인간으로 자신을 규정하는 가출 청소년, 반은 인간이고 반은 쥐인 반인반서들, 청각장애인과 왜소증 연인 등은 모두 주류 사회가 정의한 '정상성'에서 벗어난 존재들이다. 이들의 존재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의 기준들이 얼마나 자의적이고 배타적인지를 드러낸다. 작가는 이들을 불쌍한 존재로만 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만의 논리와 생존 방식을 가진 독립적인 개체로 묘사한다. 박쥐 인간이 "인간이 훨씬 더 음흉한 존재"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는 기준이 과연 누구의 관점에서 설정된 것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신촌이라는 공간의 선택도 흥미롭다. 대학가이자 번화가인 신촌은 청춘과 활력의 상징이지만, 작가는 그 화려한 표면 아래 숨겨진 어두운 이면을 포착한다. 뤼미에르 빌딩의 주민들은 모두 이 도시의 그림자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그들의 존재는 현대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외와 배제의 메커니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805호의 서술 방식이다. 채무자와 재벌 2세의 이야기를 좌우로 나누어 동시에 서술하는 방식은 기교적인 실험만은 아닌 것 같다. 같은 사회 안에서도 전혀 다른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현실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맞는 사람과 때리는 사람,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의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한 지점에서 만나는 순간의 아이러니는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807호의 이야기에서 길고양이 업무를 둘러싼 공무원들의 책임 회피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부분은 현실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푸른환경과와 보건위생과 사이의 업무 떠넘기기, 과장의 해외 연수로 인한 공석, 동창 관계를 이용한 업무 이관 등은 우리 사회 관료제의 비합리성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이런 디테일들이 작품에 현실감을 부여한다. 작가는 거대한 사회 문제를 추상적으로 다루지 않고,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접근한다. 이는 기자 출신이라는 작가의 배경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취재를 통해 축적된 현실에 대한 이해가 작품의 사실감을 높여준다.

808호의 반인반서 이야기는 이 작품이 가진 환상적 요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설정이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현실적이다. 생김새 때문에 사회에서 배제당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어 절도나 원조교제로 생계를 유지하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는 현실의 소외계층이 처한 상황을 은유적으로 드러낸다. 작가는 환상적 설정을 통해 현실의 문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킨다. 반인반서라는 존재는 사회의 경계선 위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은유이다. 그들이 "주민등록번호도, 호적도, 졸업장도 없는" 존재라는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제도적 승인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존재론적 불안을 형상화한 것이다.

810호의 섬 이야기는 이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결정짓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섬이 꾸는 꿈에 대한 묘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완성된 시다. "섬은 궁극의 악기가 되고자 했다"는 구절에서 시작되는 일련의 서술은 자연과 예술,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에 대한 생각하게 한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아름다움이 인간적인 특성이라고 오해한다"를 통해 인간중심적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섬의 아름다움은 인간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섬이 자신을 악기로 만들어 영원히 노래하고 싶어 한다는 설정은 예술의 본질적 욕망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야기의 연결은 희미하다. 각 호수의 주민들은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서로 거의 만나지 않는다. 이는 현대 도시인들의 익명성과 고립을 반영한 것이다. 물리적으로는 가까이 있지만 정서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는 도시인들의 삶의 양상을 작품의 구조 자체가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이런 느슨한 연결이야말로 현대 사회의 특징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에 갇혀 살아가면서도, 보이지 않는 어떤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뤼미에르 빌딩이라는 공간적 틀은 이런 현대인의 존재 양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뤼미에르'는 프랑스어로 '빛'을 의미한다.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빛은 무엇을 의미할까.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물들의 의지가 바로 그 빛일 것이다. 각 인물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박쥐 인간은 결국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전신마비 환자는 삶을 돌아보며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이들의 변화는 극적이지 않지만, 그래서 더욱 진실하다. 작가는 거창한 구원이나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작은 변화와 깨달음을 통해 희망의 가능성을 암시한다. 뤼미에르 빌딩의 '빛'은 외부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에서 발산되는 것이다.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빛이 아닐까. 장강명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모두가 어떤 의미에서는 뤼미에르 피플임을 깨닫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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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탈디자인 - 악마의 속삭임에도 흔들리지 않는
임주리 지음 / 나비의활주로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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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인들이 겪는 반복적인 실패와 자책의 굴레에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우리는 흔히 "의지가 약해서", "노력이 부족해서"라고 자신을 탓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우리의 정신적 운영체제, 즉 '멘탈 OS'가 현재 상황과 맞지 않는 구버전이라는 점이다. 임주리 대표가 개발한 멘탈디자인 시스템은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20년간의 코칭 경험과 뇌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단순한 의지력 훈련이 아닌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정신 운영체제 업그레이드 방법론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는 개인의 변화 시도가 왜 번번이 실패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해답을 제공한다.

우리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부정적 메시지를 보내는 '독설가'는 부정적 사고가 아니다. 이는 어린 시절 형성된 심리적 보안 프로그램이 현재 상황에 부적절하게 작동하는 현상이다. 뇌과학적으로 분석하면, 독설가는 편도체의 과도한 활성화와 관련이 있다. 과거의 상처나 실패 경험이 뇌에 강력한 부정적 신경 경로를 형성하고, 이것이 자동 반응 회로가 되어 작은 자극에도 과도한 불안과 무기력을 유발한다. 마치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이 정상 파일까지 위험하다고 판단하여 차단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독설가 프로그램이 원래 선한 의도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어린 시절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받으려고, 안전하려고 만든 보호 장치였던 것이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이 구버전 보안 프로그램은 오히려 성장과 도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되고 있다. 반면 수호천사는 우리 안에 원래부터 존재했던 긍정적 신경 경로다. 격려와 지지를 통해 성장을 돕는 이 프로그램은 독설가의 목소리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수호천사는 실수를 성장의 기회로 재해석하고, 현재의 노력을 인정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적 전망을 제공한다. 뇌가소성의 원리에 따르면, 반복적인 긍정적 경험과 훈련을 통해 이러한 긍정적 신경 경로를 강화할 수 있다. 수호천사의 목소리를 의식적으로 키우는 과정은 뇌의 물리적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저자는 4단계 멘탈디자인 시스템을 제안한다. 첫 번째 단계는 자신이 현재 어떤 멘탈 운영체제를 사용하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의 시스템 정보를 확인하는 것과 같은 과정이다. 구체적으로는 어떤 상황에서 독설가의 공격이 강해지는지, 어떤 감정 패턴이 반복되는지, 어떤 행동을 회피하게 되는지 등을 세심하게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다. 마치 과학자가 실험 결과를 중립적으로 기록하듯이 자신의 정신적 반응 패턴을 데이터화하는 것이다. 두 번째 단계는 현재의 패턴이 언제, 왜,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 그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고고학자가 유물의 연대와 배경을 추정하는 작업과 유사하다. 대부분의 부정적 패턴은 어린 시절의 특정 경험과 연결되어 있다. 부모의 과도한 기대, 또래들 사이에서의 거부 경험, 실패에 대한 가혹한 처벌 등이 현재의 완벽주의나 회피 패턴으로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패턴이 그 당시에는 합리적이고 필요한 생존 전략이었다는 점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단계에서 자기 연민과 이해가 중요하다. 어린 자신이 최선을 다해 만든 보호 장치였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 노력에 감사하면서도 이제는 더 나은 방법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세 번째 단계는 구버전 운영체제의 자동 실행을 멈추는 것이다. 이는 컴퓨터에서 불필요한 백그라운드 프로그램을 종료하는 것과 같다. 구체적으로는 독설가의 목소리가 시작될 때 이를 인식하고 잠시 멈추는 연습을 한다. "아, 지금 구버전 프로그램이 작동하고 있네"라고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자동 반응을 차단할 수 있다. 이는 메타인지 능력을 활용한 것으로, 생각을 생각하는 능력을 통해 무의식적 반응 패턴을 의식적 선택으로 전환하는 과정이다. 이 단계에서는 완벽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독설가의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닫게 되고, 점진적으로 더 빨리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새로운 근육을 키우는 것과 같은 과정으로 꾸준한 반복이 필요하다. 마지막 단계는 현재의 자신에게 최적화된 새로운 멘탈 운영체제를 설계하고 설치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구버전을 제거하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이다. 수호천사의 목소리를 강화하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여기서 활용된다. 매일 1분간의 감사 명상은 감사의 신경 회로를 강화하고, 스마트폰을 통한 자기 격려 메시지는 긍정적 자기 대화를 각인시킨다. 실수를 성장 자료로 전환하는 리프레이밍 기법은 실패에 대한 인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이러한 새로운 패턴들이 자동화될 때까지 반복 연습하는 것이 핵심이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새로운 습관이 자동화되려면 평균 66일 정도의 반복이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꾸준히 새로운 멘탈 패턴을 강화해 나가면, 결국 수호천사의 목소리가 기본값이 되는 순간이 온다.

멘탈디자인은 개인의 변화에서 그치지 않고 관계 개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관점은 상대방을 바꾸려는 시도가 아니라 '호환성'을 높이는 것이다. 각자가 다른 멘탈 운영체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패턴을 이해하며, 공통의 소통 프로토콜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는 서로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하는 컴퓨터들이 네트워크를 통해 소통하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친밀감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고밀도형은 깊이 있는 대화와 집중적인 교감을 선호하고, 적정밀도형은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편안한 관계를 원한다. 자율형은 개인 공간을 중시하고, 의존형은 정서적 연결을 더 필요로 한다. 이러한 차이를 문제로 보지 않고 다양성으로 받아들일 때, 관계는 더욱 풍요로워진다. 서로의 스타일을 존중하면서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조율해 나가는 것이 관계에서의 멘탈디자인이다.


멘탈디자인의 효과는 일상적인 실천에서 나온다. 뇌과학 연구에 기반한 구체적인 습관들을 체계적으로 설계하고 실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1분 감사 명상은 하루 중 같은 시간에 실시하여 루틴화한다. 짧은 시간이지만 매일 반복할 때 뇌의 긍정성 회로가 강화된다. 자기 격려 메시지는 기술의 도움을 받아 자동화하고, 실수 리프레이밍은 즉시 적용할 수 있도록 간단한 질문 형태로 준비해 둔다. 취침 전 성찰 시간은 하루를 마무리하며 수호천사적 행동을 찾아보는 소중한 시간이다. 이를 통해 자기 인정과 격려의 패턴을 강화할 수 있다. 멘탈디자인 실천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만이라도 수호천사의 목소리를 들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변화는 선형적이지 않고 나선형으로 진행된다. 때로는 후퇴하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점진적인 발전을 이루어 나간다. 이러한 과정을 받아들이고 인내심을 가지는 것이 지속 가능한 변화의 열쇠다.


멘탈디자인은 삶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과거의 상처에 발목 잡히지 않고,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으며, 미래의 불안에 압도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얻는 길이다. 이 시스템의 진정한 가치는 외부의 상황이 자신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상황에 맞는 최적의 멘탈을 선택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점이다. 이는 반응적 삶에서 능동적 삶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물론 이 과정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20년 동안 미뤄온 책을 완성하게 만든 저자의 경험처럼, 꾸준한 실천과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결과는 삶의 질적 변화, 더 나아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멘탈디자인은 결국 우리가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정신적 도구를 갖추는 것이다. 구버전 운영체제의 한계를 벗어나 현재의 자신에게 최적화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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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몸으로 살기 - 나를 다듬고 타자와 공명하는 어른의 글쓰기
김진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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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글쓰기를 둘러싼 오해 중 가장 큰 것은 아마도 이것일 터이다. 글이란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하는 도구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언어학자 김진해가 제시하는 글쓰기의 본질은 전혀 다른 곳에 있다. 그에게 글쓰기란 홀로 완성되는 작업이 아니라, 타자와의 만남을 전제로 한 공동 작업이다. <쓰는 몸으로 살기>다.


매주 칼럼을 써내는 그조차 글을 쓸 때마다 난리법석을 떤다고 고백한다. 서재의 책들을 바닥에 쌓아놓고, 집 안을 휘젓고 다니며, 드러누워 천장을 바라보기를 반복한다. 이런 혼란스러운 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글쓰기가 단순히 머릿속 생각을 옮겨 적는 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독자와의 대화를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글쓰기는 독자를 상대로 한 간절한 부름이다. "당신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있으니 잠깐 시간을 내어주세요!"라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 글쓴이는 독자의 머리끄덩이를 낚아채거나 멱살을 잡으려 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겸손한 자세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고 목소리를 가다듬어 곡진하게 말해야 한다.

김진해님은 좋은 글의 조건으로 '힘을 뺀 글'을 꼽는다. 이는 모든 운동에서 코치가 선수에게 가장 많이 하는 조언이기도 하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타격 자세를 보면 손과 허리에 힘을 빼고 바람을 가르듯 방망이를 휘두른다. 축구에서도, 농구에서도, 심지어 역도나 유도에서도 힘을 빼라고 한다. 힘을 빼야 상대방의 움직임을 살피는 여유가 생기고, 걸리적거리는 것 없이 빠르게 반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에서 힘을 빼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상대방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다. 눈앞에는 공책이나 모니터밖에 없지만, 누군가가 내 얘기를 듣고 있다고 상상하며 써야 한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마구 내뿜는 것이 아니라, 독자의 기운을 느끼면서 그에게 간절하게 이야기를 풀어내야 한다. 이런 글쓰기에서는 독자가 건너편 자리에 앉아 다양한 반응을 보인다. "좀 더 자세히 말해봐", "그 얘긴 좀 긴걸?", "그건 말이 좀 안 된다", "다음 얘기가 궁금하군!" 등등. 진정한 글쓰기는 이처럼 처음부터 독자가 곁에 있는 상태에서 시작되는 대화의 과정이다.


좋은 글의 또 다른 특징은 구체성이다. 김진해는 두 가지 예문을 통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나는 눈치를 많이 보는 편이다"라는 추상적 표현보다는 "나는 아는 사람을 만나면 두 번 인사한다. 먼저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이고 상대가 '안녕하세요'라고 답하면 다시 '안녕하세요'라고 하며 고개를 숙인다"는 구체적 묘사가 훨씬 강력하다. 구체적인 글은 독자의 머릿속에 생생한 장면을 그려준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글을 읽으면 글의 주인을 만나보고 싶어진다는 점이다. 백과사전이나 요리법처럼 정보만 전달하는 글에서는 글쓴이가 궁금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글 속에 글쓴이의 목소리와 체온이 담긴 글을 만나면, 그 사람의 삶이 궁금해진다. 확고한 글보다는 흔들리는 글, 배회하고 찾아 헤매는 글, 삶의 두께가 느껴지는 글이 더 매력적이다. 그런 글을 쓴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알고 싶어진다. 글의 주인이 보고 싶어지는 글이야말로 진정 독자에게 가닿은 글이다.

저자의 글쓰기 철학은 '말의 본성'과 '몸의 움직임'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말에는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추는 특성이 있다. 뭔가를 쓴다는 것은 뭔가를 드러내는 일이지만, 동시에 다른 뭔가를 감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런 말의 본성을 이해하면 글이 차분해지고 겸손해진다. 몸의 움직임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는 합기도를 8년간 수련하면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내 몸은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배웠다고 한다. 특히 힘을 빼라는 가르침이 글쓰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몸의 감각을 통해 배운 것들이 글쓰기의 자세를 만드는 데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전혀 다른 모양과 재질의 글감을 손재주를 부려 하나의 완성된 작품으로 만드는 일이다. 저자는 이를 퇴비간 만들기에 비유한다. 공사장에서 얻어온 팰릿, 산에서 주워온 나뭇가지, 무료 나눔으로 얻은 목재 쪼가리들을 적절히 배치하여 튼튼한 퇴비간을 만드는 것처럼, 글쓰기도 손에 잡힌 글감들을 적절히 배치하는 기술이다. 구성은 서론-본론-결론 같은 정해진 틀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지금 당장 내 손안에 잡힌 글감에서 출발한다. 부엌에 있는 식재료만으로 요리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라면 한 봉지밖에 없다면 간단하지만, 대파와 양파와 달걀이 있다면 순서를 달리할 수 있다. 있는 것을 빼는 것도 배치다. 과감한 포기도 구성의 중요한 전략이다. 좋은 구성은 다음 문장이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글을 만든다. 독자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며 그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는 주제보다도 더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글을 읽는 것은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주제 때문이 아니라, 문장과 문장이 이어지고 작은 에피소드끼리 맞물려서 더 큰 이야기에 합류하는 흐름 자체를 즐기기 위해서다.


김진해님은 다시 쓰기야말로 글쓰기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글 쓰는 사람이 인간적인 사람일 확률이 높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시 쓰기를 거듭하면서 "나는 확고하지 않다. 언제든 뒤집어엎어질 수 있다. 아무리 소중한 것도 미련 없이 버릴 수 있고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된다. 가장 나답다고 생각한 것을 버리면서 중심을 잃고 쓰러질락 말락 하는 기우뚱함, 가장 견고하다고 믿었던 내 안의 체제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의 희열, 가까스로 자리를 잡았다 생각하던 찰나에 주머니에 든 것을 몽땅 잃어버리고 빈털터리가 되는 경험. 이런 감각이야말로 글쓰기를 통해 삶에 새겨야 할 것들이다. 다시 쓰는 과정을 거듭하다 보면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내 속에 이런 면이 있구나 하며 놀라고, 버리는 것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마음이 생긴다.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않게 되고, 꽃은 사랑해도 지고 잡초는 싫어해도 핀다는 삶의 이치를 배운다. 글쓰기를 통해 삶과 생명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글은 오감을 동원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묘사를 담는다. 저자는 '사진 찍듯이 포착하기'라는 연습법을 제안한다. 시간을 멈춰두고 그 순간을 집중적으로 관찰하는 것이다. 시간을 멈추지 않으면 주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 중심으로 쓰게 된다. 하지만 시간을 멈춰 세우면 냄새, 감촉, 바람, 햇빛, 향기 같은 것들까지 묘사하게 된다. 신나게 놀다가 곤히 잠든 아이를 바라보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그냥 쳐다보기만 할까? 아이의 손과 발을 만져보고, 뺨과 머릿결을 쓰다듬고, 냄새도 맡아볼 것이다. 어지럽혀진 방을 둘러보고,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느껴볼 것이다. 시간을 멈춰야 나에게 눈 말고도 코, 귀, 입, 피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은 '인간적인' 글쓰기다. 인간적인 사람은 '시작하는 사람'이다. 관조하는 삶이 아닌 행동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다. 사건을 만들고, 예상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다.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서는 머리가 아닌 몸을 써야 한다. 내 몸의 기억을 믿고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우리 몸이야말로 이 세계에서 새로운 것을 '시작'하게 하는 바탕이다. 왠지 모르게 하고 싶은 일과 왠지 모르게 하기 싫은 일을 구분하는 능력도 몸을 움직여 계기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기를 수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용서하는 힘'과 '약속하는 힘'도 여기서 중요해진다. 용서는 우리가 행한 일의 결과로부터 우리를 해방해주고, 약속은 미래라는 불확실성의 바다에 안전한 섬을 세우는 일이다. 환원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한 삶의 조건에서, 용서와 약속은 다른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세우고 새로운 행위를 시작하는 능력이 된다.


저자의 글쓰기론은 삶의 자세에 대한 철학이다. 글쓰기란 타자와의 만남을 준비하고 자신을 성찰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전인적 활동이다. '쓰는 몸'이란 고착화된 표현과 통념을 넘어 말해지지 않는 것을 살피는 눈, 세계와 타인의 흔적을 섬세하게 감지하는 감각, 내 글에 기꺼이 타자의 자리를 만드는 유연함을 갖춘 몸이다. 진정한 글쓰기는 완결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쓰지 않은 것'을 계속 발견하고 찾아가는 여정이다. 편지를 부치고 나서 다시 쓰는 편지 같은 것이다. 다 썼다, 다했다는 말이 도무지 성립하지 않는 것이 진정한 글쓰기의 모습이다. 저자가 제시하는 글쓰기는 자기 완성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끊임없이 자신을 열어가며 타자와 만나는 방식이다. 그런 글쓰기를 통해 우리는 좀 더 인간적인 사람이 될 수 있고, 좀 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글 쓰는 용기를 잃지 않는 것, 그것이 그가 우리에게 전하는 마지막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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