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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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생명체와도 같다. 그 표면 아래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은 마치 심장이 뛰는 것처럼, 지구의 생명력을 유지하는 원동력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과거의 대륙들이 하나의 거대한 대륙, 즉 판게아로 뭉쳐 있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 교양 시간에 배웠던 판게아는 지구의 역사와 생명체의 진화에 깊은 영향을 미친 사건이다. 이번에 이 구조론의 역사와 최근 분석 이론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주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로스 미첼의 <다가올 초대륙> 이었다.

판게아 이론은 지구의 역사에서 가장 매혹적인 주제 중 하나로, 대륙의 이동과 초대륙의 형성에 대해 흥미로운 사실들을 이야기 한다. 이 이론은 20세기 초 독일의 지리학자 알프레드베게너에 의해 처음 제안되었으며, 당시에는 많은 비판과 의구심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판구조론이 발전하고, 다양한 증거들이 발견됨에 따라 판게아 이론은 지질학의 중요한 기초로 자리 잡게 되었다. 판게아는 약 3억 년 전부터 2억 년 전까지 존재했던 초대륙으로, 모든 대륙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던 시기를 의미한다. 이 시기에 대륙들은 서로 가까이 위치해 있었고, 생 물들은 대륙 간의 이동이 용이했기 때문에 다양한 생물종이 공통의 조상을 공유할 수 있었다. 이러한 대륙의 배열은 생물학적, 지질학적 증거를 통해 확인되었으며, 이는 판게아 이론의 신뢰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예를 들어,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화석 기록에서 유사한 생물종이 발견되었고, 이는 두 대륙이 한때 연결되어 있었음을 시사한다. 베게너는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대륙들의 유사성을 통해 판게아의 존재를 주장했다. 그는 화석, 지질 구조, 기후의 유사성을 근거로 대륙들이 한때 연결되어 있었음을 입증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의 이론은 당시 과학계에서 물리적 기제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륙이 어떻게 이동할 수 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판구조론이 발전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베게너의 이론은 그 당시에는 혁신적이었지만, 과학적 증거가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고, 이는 그의 연구가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는 원인이 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해저 지도 제작이 이루어지면서, 지질학자들은 해양 바닥의 구조를 연구하게 되었고, 이는 판 구조론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다. 해저에서 발견된 다양한 지질 구조와 화산 활동은 대륙이 이동하고 있다는 강력한 증거로 작용했다. 이러한 발견은 베게너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판게아의 존재를 입증하는 데 기여했다. 특히, 해저 확장 이론은 대륙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었으며, 이는 판구조론의 발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판게아 이전의 초대륙들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다. 많은 규칙이 달라지고, 과거의 화석들은 잘 보존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증거를 찾는 것이 어렵다. 그러나 지질학자들은 고대의 변성암 속에서 초대륙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였다. 이는 판게아 이전에도 여러 차례 대륙 충돌이 있었음을 시사하며, 초대륙의 순환 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연구는 과거의 대륙 이동 패턴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가 되며, 지구의 역사에 대한 통찰을 제공한다.

​초대륙 순환의 개념은 과학자들 사이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판게아와 로기니아와 같은 두 개의 초대륙이 존재 하는 것만으로는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세 개의 초대륙이 존재한다면 이는 과학적 사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과거의 초대륙들을 연구하는 것은 지구의 역사와 대륙 이동의 패턴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연구는 또한 지구의 기후 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진화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키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질시대는 지구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틀을 제공한다. 지구의 역사는 수억 년에 걸쳐 있으며, 이를 구분하는 체계는 지질학자들이 자연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지질시대의 구분은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흐름에 따라 결정되며, 이는 대륙 이동과 초대륙 형성의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각 지질시대는 특정한 생물군과 환경 조건을 특징으로 하며, 이는 지구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다.

판구조론은 현재의 지구 판 경계를 설명하는 데 중요한 이론이지만, 고대의 판구조 운동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과거의 과정이 현재의 과정으로 어떻게 진화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지구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중요 한 요소가 될 것이다. 판게아 이론은 과거의 이야기로서 만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와 미래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열쇠다. 이러한 다양한 측면에서 판게아 이론은 지구의 역사와 대륙 이동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하며, 과학적 탐구의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판게아의 존재는 과거의 사실로서 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지구를 이해 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다. 이러한 연구는 지구의 복잡한 역사와 그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하고 있다.

‘판게아, 로디니아, 컬럼비아’ 지구의 역사 동안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되는 초대륙이다. 이들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와 미래의 초대륙을 예측해보는 재미가 있다. 최근 미얀마에서 발생한 지진은 이러한 판구조론의 원리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는 판들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며, 그 경계에서 발생하는 힘은 지진과 화산활동을 일으킨다. 미얀마 지역은 이러한 판 의 경계에 위치해 있어, 지구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힘이 표면으로 전달되면서 지진이 발생하게 된다. 이처럼 지진은 자연재해로 뿐만 아니라, 지구의 역사와 생명체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현상이다. 판게아의 분열은 대륙이 갈라지는 과정으로 뿐만 아니라, 생태계의 변화와 생물의 진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륙이 분리되면서 새로운 환경이 형성되고, 이는 다양한 생물종의 출현과 멸종을 초래했다.  이러한 변화는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지구의 모습과 생태계의 다양성을 만들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판구조론을 통해 우리는 이러한 지구의 숨결을 이해 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존재를 되새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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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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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멀티버스라는 용어에 익숙한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설가들과 SF 영화 기술의 발달과 함께 멀티버스 영상을 쉽게 구현가능하게 되어 많은 멀티버스 영화들이 만들어 졌고 많은 흥행을 이뤄냈다. 멀티버스(Multiverse)는 우리 우주와 함께 존재하는 다른 우주들의 집합을 말한다. 즉 우리 우주 이외에 또 다른 많은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멀티버스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아직까지는 없지만,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멀티버스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 왔다고 한다. 멀티버스는 소설의 영역에서도 많이 도입되어 우리도 익숙한 '인터스텔라',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소설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많은 만화에도 도입된 멀티버스의 기본 가정은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우리 우주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진 우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하에서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 만화들도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면 진정 이러한 멀티버스가 가능할까?

이 주제의 기본이 된 것은 아인슈타일의 상대성 이론일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변형될 수 있다... 물리학적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이번에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대한 생각을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이다. 몰랐는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로 미 대학의 학습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니, 나중에 원문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다. ^.^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그 얇은 두께에 살짝 안심했었다. 읽기 어렵지 않겠지, 쉽게 넘길 수 있겠지, 하고.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그 안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일하던 시절, 그가 꾸었다는 꿈의 세계.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던 시간의 관념을 뒤흔드는 사유의 실험장이었다. 책은 시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하며, 몽환적인 철학 에세이 같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과학과 문학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며, 아주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책 속에는 30가지의 시간 개념이 등장한다. 어떤 시간은 고요히 멈추어 있고, 어떤 시간은 반복되며, 또 어떤 시간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작은 우주다. 나는 그 각각의 시간에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곤 했다. 나도 이런 시간 속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 하고. 혹은, 나는 이런 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하고.

‘시간이 맛일 수도 있는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시각이나 미각처럼 감각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떤 시간은 달콤하고, 어떤 시간은 쓰고, 또 어떤 시간은 불쾌하다. 시간을 하나의 감각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 설정은 나로 하여금 내 삶의 ‘쓴 시간’과 ‘짠 시간’,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달콤한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시간을 언제나 일정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양으로만 여겼지만, 사실 그것은 마음의 결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하는 유동적인 존재다. 다른 꿈에서는 시간이 반복된다. 아침이 되면 어제의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처음엔 그 순환이 위안처럼 느껴졌지만, 곧 그것이 끝없는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도 일상의 루틴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는가, 아니면 무의미한 흐름 속에 휘말리고 있는가.

책을 읽으며, 어떤 시간은 나를 무섭게 했다. 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는 시간의 세계. 그곳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무의미하고, 선택은 환상이다. 이 세계에서 '책임'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모든 것은 단지 예정된 방에서 예정된 자리에 앉는 일처럼 무기력하다. 나는 문득 현실의 우리 사회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의문에 빠졌다. 그에 반해, 시간이 없는 세계도 등장한다. 그 세계에서는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과거와의 연결 없이 떠 있고, 미래와의 약속 없이 흐른다. 나는 이 세계가 무척 슬프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기억 위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나눈 말, 함께 웃던 시간,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 그것들이 쌓이고 연결되어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기억 없는 세계는 존재의 토대가 사라진 세계다. 책 속의 시간들은 때로 우아하고, 때로 섬뜩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결국 인간 존재의 한 단면을 비추고 있다. 나는 그 시간들을 따라가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가? 나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 꿈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존재, 선택, 고통, 기쁨, 그리고 사랑까지도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세계의 비극은 고통의 시간에 들러붙은 사람이건, 기쁨의 시간에 들러붙은 사람이건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비극은 모두가 혼자라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우리는 늘 행복을 기억 속에서 찾고, 불행을 과거로 돌린다. 하지만 그 어느 시간에도 집착하는 삶은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 이끈다. 고통은 고통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 그게 진정한 현재를 사는 법 아닐까. <아인슈타인의 꿈>은 삶의 단조로움에 금을 낸다. 마치 평범한 유리잔에 반짝이는 금가루를 넣은 것처럼, 일상의 시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읽는 동안의 체험이 아니라,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파동이다. 일상 속에서 문득, 지금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 자문하게 만든다.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얇지만 무겁고, 짧지만 깊다. 때로는 멈춰 서서 숨을 고르게 하고, 때로는 문장을 반복해 읽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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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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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도록 맴돌기를, 우리의 이름이 잊힌 이후에도 글의 진실이 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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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 글쓰기의 분투 - 스콧 피츠제럴드는 ‘이렇게 글을 씁니다!’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래리 W. 필립스 엮음, 차영지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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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눈빛은 어딘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푸른 불빛처럼, 그 눈빛은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의 붕괴를 직감하면서도 끝내 그것을 부정하려는 누군가의 것이었다. 나는 영화 <위대한 개츠비>를 보며, 화려하고 낭만적인 화면의 이면에서 끝없이 가라앉는 자의 고독을 느꼈다. 사랑 이야기로 보기엔 너무도 깊고, 단지 허영과 몰락의 서사로 보기엔 어쩐지 비극적이었다. 1920년대, 물질 만능과 소비의 시대였던 미국. 그 시대를 살아간 인간 군상들은 마치 무대 위의 배우처럼 허울 좋은 번영을 노래했지만, 무대 뒤편에는 언젠가 꺼질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불을 밝히려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 중 한 명이 피츠제럴드였다고 믿는다.

‘재즈 시대’라 불리는 그 찬란한 시절은, 사실은 모래성 같았다. 눈부신 파티와 샴페인, 황금빛 드레스의 뒤편에는 결핍과 허무,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이 있었다. 피츠제럴드는 그걸 썼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는 그것만을 썼다. 젊은 시절의 성공, 명성과 부를 얻고자 한 열망, 그리고 끝끝내 문학으로 구원받고 싶었던 갈망. 그 모든 것이 그의 작품, 특히 <위대한 개츠비> 속에 농축되어 있다. 그는 미국 드림의 유령을 사랑했고, 결국 그 유령에 쫓겨 다녔다. 피츠제럴드에게 글쓰기는 부서진 자아를 붙잡고 현실을 견디기 위한 마지막 보루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글쓰기의 분투>라는 책에 마음이 깊이 끌렸다. 작가로서의 피츠제럴드를 이해하려면, 그가 겪었던 실패와 몰락, 그리고 계속해서 글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절박함을 들여다봐야 한다. 헤밍웨이처럼 육중한 문장으로 세계를 붙들려 한 것이 아니라, 피츠제럴드는 가녀리고 섬세한 언어로 무너지는 자신의 세계를 붙잡으려 했다. 그는 한때 젊고 아름다웠고, 한때 모든 것을 가졌다고 믿었으며, 그래서 더 철저히 무너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있었다.

빛바랜 오후, 창문 너머로 바람이 지나간다. 피츠 제럴드가 글쓰기를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들이 문득 떠오른다. 그에게 글쓰기는 직업도, 화려한 명성의 수단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의 존재 자체였고, 살아 있다는 증명이었다. 그의 글을 읽는다는 것은, 잿빛 영혼의 속삭임을 듣는 일과 같다. 그 속삭임은 늘 어떤 상처에서 비롯된다. 아픈 고양이 옆에서 글을 쓰던 그에게 삶은 한 편의 문학이자 한 편의 고통이었고, 글쓰기는 그 고통을 감당하기 위한 도구였다. 우리는 종종 아름답게 보이는 것에 이끌리지만, 제럴드는 아름다움조차 도려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한다. 예술이란 그렇게 무자비해야 하며, 정확해야 하고, 정직해야 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의 고백에는 끊임없는 결단과 포기가 있다. 어느 한 장면, 어느 한 인물을 버린다는 것은 창작만의 행위가 아닌, 자기 자신을 깎아내는 일이다. 그러나 그는 그 결정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결정을 내려야만 진짜 작가로서 설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에게 무자비했고, 동시에 세상에 단 한 줄의 진실이라도 남기고자 애썼다. 그가 퇴고를 말할 때면, 나는 무너진 성벽을 하나하나 쌓아올리는 장인을 떠올린다. 약한 곳을 보완하고, 다시 그다음 약한 곳을 찾아내는 반복된 노동 속에서 그는 완벽을 꿈꿨다. '충분히 괜찮은 것'을 잘라내는 고통은 상상 이상이었을 테지만, 그는 언제나 더 나은 글을 위해 자신을 밀어붙였다. 그는 형용사가 아닌 동사로 문장을 움직이게 하라고 했다. 그의 말은 문장 교정의 조언을 넘어선다. 그것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멈춰선 단어들이 아니라, 움직이고 흔들리고 뛰어드는 삶의 언어. 그런 언어를 찾아내기 위한 그의 고뇌는 나의 마음에도 깊은 잔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그가 나에게 던진 가장 깊은 울림은 "작가는 자신이 속한 세대의 젊은이들과 다음 세대의 비평가들, 그리고 후대의 교육자들을 위해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단지 시간의 구분이 아니다. 그것은 책임의 말이며, 지향성의 말이다. 그는 글쓰기를 통해 시대와 소통하고자 했고, 그 글이 미래까지 살아남기를 바랐다. 문학은 인생의 연습이 아니라, 인생 자체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고, 두려워했다. '끝까지 밀고 나갈까? 아니면 돌아가야 하나?' 이 질문은 단지 소설 속 인물의 길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길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나의 삶에도, 나의 글에도 머물러 있다.

그는 말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이며, 그것을 다듬는 사람보다 더 위대하다고. 그는 창조자였고, 동시에 분투자였다. 쓰는 모든 순간이 영혼의 씨름이었고, 문장 하나하나가 피와 같았다. 그런 글은 쉽게 쓰일 수 없다. 그런 글은 삶 전체를 걸어야만 다가설 수 있는 진실이 된다. 나는 그의 조언을 되뇌이며 어휘를 확장하고자 한다. 더 많은 단어, 더 섬세한 표현, 더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기 위해 애쓴다. 그것이 내가 글을 쓰는 이유이기도 하다. 누군가 나를 이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내 글을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저 종이와 펜으로 내 세계를 건너갈 것이다. 그것이 작가라는 존재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언젠가 ‘밤은 부드러워라’처럼 부드러운 어둠 속에 우리만의 여운을 남기고 싶어 한다. 그 여운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아주 오래도록 맴돌기를, 우리의 이름이 잊힌 이후에도 글의 진실이 남기를.

그래서 나는, 피츠 제럴드처럼 오늘도 써 내려간다. 말할 거리를 가지고,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나, 끊임없이 질문하고 다시 지우는 그 여정 위에서. 그 여정이 너무도 고단하고 때로는 끝이 보이지 않을지라도, 단 한 줄의 문장이 누군가의 삶에 스며들기를 바라며. 그리고 마침내, 글이 나 자신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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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상술 - 맨주먹으로 5000억 브랜드를 일군 교촌치킨 창업주 권원강 회장의 진심 경영
권원강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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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치맥’을 말할 것이다. 치킨과 맥주의 궁합은 그야말로 환상의 조합이다. 특히 야구나 축구와 같은 스포츠 경기를 시청할 때면, 치킨 한 마리와 시원한 맥주 한 캔이 있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골이 터지거나 홈런이 터졌을 때 치킨을 한 입 베어 물고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는 그 순간, 일상의 스트레스도 함께 날아가는 것 같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치맥’이라는 말을 그저 유행어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덧 하나의 문화이자,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이기도 하다.

하지만 치킨의 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다채롭다. 브랜드만 해도 수십 가지, 조리 방식과 양념 스타일까지 더하면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치킨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사람마다 좋아하는 치킨은 조금씩 다르다. 누군가는 매운 양념을 좋아하고, 또 누군가는 고소한 후라이드를 고집한다. 하지만 내게 있어 치킨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언제나 같다. 바로 '교촌치킨'이다. 처음 교촌을 맛본 것이 언제였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느샌가 내 손에는 늘 교촌의 봉투가 들려 있었고, 모임 자리나 야식 타임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브랜드 역시 교촌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만은 아닌 듯하다.

왜 하필 '교촌치킨'일까? 왜 그 수많은 브랜드 가운데 교촌이라는 이름이 나의 기억과 입맛을 사로잡았을까? 처음에는그냥 ‘맛있어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더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맛 외에도 분명히 다른 요소들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던 중, 교촌치킨의 창업주이자 현재 회장인 권원강 씨가 자신의 경영 철학과 성공 원칙을 담아 한 권의 책을 출간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제목은 다소 도발적이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최고의 상술》이었다. 그 제목에서 느껴지는 기운만으로도 이 책은 자서전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곧장 책을 구입했고, 책장을 넘기며 '맛있는 치킨' 이면에 숨어 있던 깊고 단단한 원칙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권원강 회장은 스스로를 '닭에 미친 사람'이라 불러도 좋다고 했다. 그가 치킨 한 조각에 담은 집념과 절박함은 한 시대의 외식문화를 선도하게 만들었다. <최고의 상술>은 정직이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위기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자신만의 길을 걸어간 한 기업가의 치열한 기록이다.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바로 '절박함'이라는 단어다. 그는 재능이나 운이 아닌, 절박함이 성과를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이는 나에게 깊은 울림을 주었다. 누구나 삶의 어떤 지점에서든 절박한 순간을 마주한다. 그 절박함을 어떻게 품고, 어떻게 행동으로 연결시키느냐에 따라 인생의 궤적이 바뀐다. 권원강 회장은 그 절박함을 두려움으로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그 순간을 기회로 전환해냈다.

또한 그는 가격보다 '가치'를 중시했다. '비싸지만 후회하지 않는다'는 고객의 평가는 그가 얼마나 치킨 하나에 철학과 품질을 담았는지를 보여준다. 저가 경쟁의 유혹이 클 때조차, 그는 타협하지 않았다. 단기적 이익보다 장기적인 브랜드 신뢰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인간의 신념과 철학이 어떠한 가치를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광고를 하지 못했던 초창기의 어려움도 기억에 남는다. 그는 광고를 외주화된 포장으로만 보지 않았다. 광고란, 자원을 쏟아 붓기보다 창의적인 발상과 진정성으로 소비자에게 다가가는 일이라 했다. 그래서 그는 '사람이 먼저 찾는 브랜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요즘처럼 마케팅이 과잉된 시대에, 다시금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책을 읽으며 느낀 것은, 성공은 단지 운이나 기술이 아닌 '방향'의 문제라는 것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진짜 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 믿는 그의 태도는 나에게 큰 위로이자 배움이 되었다. 나도 때때로 실패 앞에 주저앉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지만, 그것이 단지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길을 찾는 과정이라는 말을 듣고 마음이 환해졌다. 교촌치킨의 성공은 단지 맛있는 치킨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그 속에 정직과 절박함, 그리고 타협하지 않는 원칙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따라 하더라도 해가 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따라 한다'는 여유로운 시선으로 경쟁을 대했다. 더 나아가, '따라올 수 없는 큰 발걸음을 내딛겠다'는 결심은 진정한 리더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내가 교촌치킨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맛있어서가 아니다. 그 맛에는 스토리가 있고, 철학이 있으며, 사람을 감동시키는 진심이 담겨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은 단지 기업가의 성공담이 아닌,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는 힘을 지닌 이야기다. 정직함이 결국 최고의 상술이라는 문장은 단순한 문구가 아니라, 그의 삶을 온전히 요약하는 말이었다.

나는 더 이상 치킨을 먹을 때 단지 맛을 음미하지 않는다. 그 맛 너머에 있는 수많은 밤, 실패와 도전, 그리고 포기하지 않았던 한 사람의 마음을 함께 느낀다. 책을 읽고 난 후, 나는 장사를 바라보는 시각뿐 아니라, 내 삶을 살아가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어떤 일을 하든, 나만의 원칙을 세우고 그 원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았다. 정직, 절박함, 타협하지 않는 원칙, 그리고 창의성. 권원강 회장이 지켜온 이 네 가지 가치는 단지 교촌이라는 브랜드를 만든 것이 아니라, 오늘날 수많은 이들에게 영감이 되고 있다. 그래서 단지 책이 아닌, 하나의 길잡이다. 나도 나만의 삶에서, 나만의 분야에서 정직한 상술을 펼치고 싶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가 나를 보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 사람의 일에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오늘도 나는 교촌치킨을 한 입 베어 물며 생각한다. 이 맛은 단순한 레시피의 결과물이 아니다. 수많은 실패를 딛고, 정직함으로 지켜낸 하나의 철학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상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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