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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멀티버스라는 용어에 익숙한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소설가들과 SF 영화 기술의 발달과 함께 멀티버스 영상을 쉽게 구현가능하게 되어 많은 멀티버스 영화들이 만들어 졌고 많은 흥행을 이뤄냈다. 멀티버스(Multiverse)는 우리 우주와 함께 존재하는 다른 우주들의 집합을 말한다. 즉 우리 우주 이외에 또 다른 많은 우주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멀티버스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과학적 증거는 아직까지는 없지만,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은 오랫동안 멀티버스의 가능성에 대해 논의해 왔다고 한다. 멀티버스는 소설의 영역에서도 많이 도입되어 우리도 익숙한 '인터스텔라', '닥터 스트레인지' 등의 소설들이 많은 사랑을 받았다. 많은 만화에도 도입된 멀티버스의 기본 가정은 멀티버스가 존재한다면, 우리 우주와는 매우 다른 특성을 가진 우주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가정하에서 수많은 상상의 나래를 펼친 만화들도 사랑을 받고 있다. 그러면 진정 이러한 멀티버스가 가능할까?
이 주제의 기본이 된 것은 아인슈타일의 상대성 이론일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과 공간은 변형될 수 있다... 물리학적 내용은 너무 어려워서... 이번에 아인슈타인의 시간에 대한 생각을 문학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앨런 라이트먼의 <아인슈타인의 꿈>이다. 몰랐는데,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로 미 대학의 학습 교재로도 쓰이고 있다니, 나중에 원문으로 다시한번 읽어봐야 겠다. ^.^
처음 이 책을 손에 들었을 때, 나는 그 얇은 두께에 살짝 안심했었다. 읽기 어렵지 않겠지, 쉽게 넘길 수 있겠지, 하고. 하지만 첫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그 안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아인슈타인이 특허청에서 일하던 시절, 그가 꾸었다는 꿈의 세계. 그것은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던 시간의 관념을 뒤흔드는 사유의 실험장이었다. 책은 시 같기도 하고, 우화 같기도 하며, 몽환적인 철학 에세이 같기도 하다. 『아인슈타인의 꿈』은 과학과 문학의 경계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흔들리며, 아주 특별한 체험을 선사한다.
책 속에는 30가지의 시간 개념이 등장한다. 어떤 시간은 고요히 멈추어 있고, 어떤 시간은 반복되며, 또 어떤 시간은 미래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 시간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그 자체로 작은 우주다. 나는 그 각각의 시간에서 나의 그림자를 발견하곤 했다. 나도 이런 시간 속에 있었던 적이 있었지, 하고. 혹은, 나는 이런 시간을 두려워하고 있었구나, 하고.
‘시간이 맛일 수도 있는 세계’에서는 모든 일이 시각이나 미각처럼 감각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떤 시간은 달콤하고, 어떤 시간은 쓰고, 또 어떤 시간은 불쾌하다. 시간을 하나의 감각처럼 느끼게 만드는 이 설정은 나로 하여금 내 삶의 ‘쓴 시간’과 ‘짠 시간’, 그리고 때때로 찾아오는 ‘달콤한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다. 우리는 시간을 언제나 일정하게 흘러가는 물리적 양으로만 여겼지만, 사실 그것은 마음의 결에 따라 천차만별로 변하는 유동적인 존재다. 다른 꿈에서는 시간이 반복된다. 아침이 되면 어제의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된다. 처음엔 그 순환이 위안처럼 느껴졌지만, 곧 그것이 끝없는 감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도 일상의 루틴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 반복되는 하루하루 속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새롭게 창조해내고 있는가, 아니면 무의미한 흐름 속에 휘말리고 있는가.
책을 읽으며, 어떤 시간은 나를 무섭게 했다. 미래가 완전히 정해져 있는 시간의 세계. 그곳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변화는 무의미하고, 선택은 환상이다. 이 세계에서 '책임'이라는 개념은 사라진다. 모든 것은 단지 예정된 방에서 예정된 자리에 앉는 일처럼 무기력하다. 나는 문득 현실의 우리 사회도 점점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깊은 의문에 빠졌다. 그에 반해, 시간이 없는 세계도 등장한다. 그 세계에서는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는 과거와의 연결 없이 떠 있고, 미래와의 약속 없이 흐른다. 나는 이 세계가 무척 슬프게 느껴졌다. 왜냐하면 우리의 존재는 기억 위에 쌓여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나눈 말, 함께 웃던 시간, 책을 읽으며 느꼈던 감정들… 그것들이 쌓이고 연결되어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이다. 기억 없는 세계는 존재의 토대가 사라진 세계다. 책 속의 시간들은 때로 우아하고, 때로 섬뜩하다. 그리고 그 모든 시간은 결국 인간 존재의 한 단면을 비추고 있다. 나는 그 시간들을 따라가며 나의 삶을 되돌아보았다. 나는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가? 나에게 시간이란 무엇인가? 아인슈타인의 꿈은 시간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존재, 선택, 고통, 기쁨, 그리고 사랑까지도 다루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다음과 같다. "이 세계의 비극은 고통의 시간에 들러붙은 사람이건, 기쁨의 시간에 들러붙은 사람이건 누구도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비극은 모두가 혼자라는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읽고 책을 덮었다. 그리고 한참을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었다. 우리는 늘 행복을 기억 속에서 찾고, 불행을 과거로 돌린다. 하지만 그 어느 시간에도 집착하는 삶은 결국 우리를 불행으로 이끈다. 고통은 고통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 그게 진정한 현재를 사는 법 아닐까. <아인슈타인의 꿈>은 삶의 단조로움에 금을 낸다. 마치 평범한 유리잔에 반짝이는 금가루를 넣은 것처럼, 일상의 시간들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읽는 동안의 체험이 아니라,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파동이다. 일상 속에서 문득, 지금 이 시간은 어떤 시간인가, 자문하게 만든다.
쉽게 넘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얇지만 무겁고, 짧지만 깊다. 때로는 멈춰 서서 숨을 고르게 하고, 때로는 문장을 반복해 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