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의 기분 - 한문학자가 빚어낸 한 글자 마음사전
최다정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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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어는 감정의 그릇이다. 우리는 기쁨과 슬픔, 분노와 평온 사이를 오가며 살아가지만, 정작 그 감정을 정확히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해한다. "우울해", "외로워"라는 말로는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하는 미묘한 감정의 결들이 있다. 한문학자 최다정은 바로 이 지점에서 한자라는 오래된 문자 체계가 지닌 힘을 발견한다. 한자는 인간의 복잡한 내면을 형상화하는 독특한 문법을 가지고 있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의 희로애락이 응축된 한자 하나하나는, 때로 긴 문장이나 두꺼운 책보다 더 정확하게 우리의 기분을 대변해준다. 저자는 이러한 한자의 특성을 "표정"이라고 명명한다. 네모난 틀 안에서 여러 방향으로 뻗어나간 획들이 만들어내는 조형미는, 단지 시각적 아름다움에 그치지 않고 감정의 질감까지 전달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한자 해석은 학술적 엄밀함과 시적 상상력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예컨대 '名(명)'이라는 글자는 저녁(夕)과 입(口)이 결합한 형태다. 인공조명이 없던 시대, 어둠 속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던 사람들은 스스로 이름을 말해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해야 했다. 이 글자 하나에는 어둑한 길목에서 "나는 아무개입니다"라고 서로의 이름을 호명하며 반갑게 인사하던 밤의 풍경이 담겨 있다. 이처럼 한자의 자형(字形) 분석은 부수와 획수만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글자가 만들어지던 순간의 인간적 정황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坐(좌)' 자는 두 사람이 나란히 땅에 앉아 있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애초에 '앉다'라는 행위는 혼자가 아닌 둘이 주체였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저자는 함께 앉아 온기를 나누는 시간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는다. 돗자리 하나를 깔고 나란히 앉아 체온으로 연결되던 가을날의 추억이, 한자 한 글자를 통해 보편적 감성으로 확장된다. 저자는 카페 창가에서 플라타너스 꼭대기를 바라보다가 '梢(초)'라는 글자를 떠올리고, 시인 두보와윤잉의 시구를 음미한다. 나무의 끝을 표현하기 위해 별도의 한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자연을 세심하게 관찰하고 언어화했던 선인들의 감수성을 배운다.

한자는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제시한다. '生(생)' 자는 땅 위로 돋아나는 새싹의 형상이다. 저자는 봄날 밤, 시멘트 틈을 비집고 올라온 연약한 풀 한 포기를 발견한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꿋꿋하게 자라나는 이 풀은, 생명 그 자체의 숭고함을 일깨운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고 생활을 일구며 생존하는 일의 가치를 쉽게 잊고 산다. 하지만 태어나 숨 쉬며 살아간다는 것, 그 자체가 이미 귀한 일이다. '生'이라는 한 글자는 과거(태어남), 현재(살아감), 미래(살아갈 삶)를 모두 아우른다. 한 존재의 생애는 과거-현재-미래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채 전개된다. 지금 이 순간은 인생이라는 파노라마를 구성하는 하나의 장면이다. 이러한 통시적 관점을 가질 때, 현재의 고통이나 기쁨은 전체 삶의 맥락 속에서 재해석된다. '甘(감)'이라는 글자는 입 속에 맛있는 음식을 머금은 모양이다. 저자는 힘든 일을 견뎌낸 후 자신에게 달콤한 레몬 케이크를 선물한다. 입의 감각은 잠깐이지만, 빠르게 생의 의지를 돋운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처럼, 쓴 일을 견딘 끝에는 반드시 달콤함이 온다. 작은 위안이 때로는 삶을 지속하게 하는 큰 힘이 된다.

저자는 망각에 서툰 사람이다. 언젠가 쓸모 있을까 싶어 낱낱이 헤아리며 기억하고, 자신을 반성하고 미워하기 위해 되새김질한다. 하지만 작은 조각도 너무 많이 모이면 무겁고 따갑다. '忘(망)'이라는 글자는 마음(心)에서 기억이 미끄러져 달아나버리는(亡) 모습을 형상화했다. 이제는 이 글자가 시키는 대로, 지난 기억들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내버려두고 싶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반대로 '緖(서)'라는 글자는 실마리를 뜻한다. 실로 짠 천의 첫 실밥 하나를 당기면 전체가 풀린다. 복잡하게 꼬인 문제의 해결책도 결국 가장 처음, 초심에 있다. 실마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다면, 돌아갈 용기만 있으면 된다. 이처럼 한자는 때로는 놓아주라고, 때로는 돌아가라고 조언한다. '箴(잠)'은 바늘이다. 흐트러진 나를 따끔하게 찔러 제자리로 돌아오게 하는 글이 곧 箴言이다. 가늘고 미약해 보이지만, 본성을 잃지 않게 단속하는 센 힘을 지녔다. 저자의 箴 제목은 "평정箴(平靜箴)"이다. 쉽게 초조해지는 마음을 달래 평정심을 되찾게 하는 자기만의 잠언. 우리 각자도 스스로를 일깨우는 箴을 지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자 문화권에서 자란 우리는 한자를 통해 오래된 성정과 조우한다. 자신이 존재하는 양상을 충분히 이해받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는 한자가 하나의 세계관이기 때문이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삶의 지혜와 철학, 감성이 글자 하나하나에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한자가 자신에게 영원히 권력이나 실리의 대상이 아니기를 바란다. 순수한 애정으로 한자와 한문을 공부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럴 수만 있다면, 세상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낄 때 돌아갈 곳은 언제나 한자의 세계관일 것이다. 기분이 엉망인 순간에 숨어 들어가 웅크리고 울 수 있는 곳이, 작은 한자 한 글자였으면 좋겠다는 고백은 절절하다.

책은 한자 해설서가 아니라 감정 일기이며, 학술서가 아니라 위로의 편지라 할 것이다. 저자는 한자라는 렌즈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들여다보고, 동시에 한자에 일상의 온기를 불어넣는다. 고대의 글자와 현대의 감정, 학문적 엄밀함과 시적 상상력, 개인적 체험과 보편적 정서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우리는 누구나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순간들을 겪는다. "답답해, 우울해, 슬퍼"라든가 "신나, 설레, 기뻐"라는 단어들로는 다 아우르지 못하는, 생전 처음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 저자는 그럴 때마다 한자 자전을 펼친다. 반드시 어떤 글자 하나는 나를 언어화해줄 수 있다. 기분을 말해줄 정확한 언어를 찾는 것만으로 덜 외로울 수 있을 것이다. 한자가 짓는 표정의 기분을 읽어 나가다 보면, 궁색했던 마음의 어느 구석이 소환되고, 비로소 그늘진 마음의 목소리를 명쾌하게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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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 퍼스널 브랜드 전략!
안영재 지음 / 가나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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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을 펼치기 전, 나는 ' 퍼스널 브랜딩' 이라는 말에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SNS에서 자신을 포장하고, 화려한 이력을 과시하며, 끊임없이 노출되어야 한다는 강박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선입견을 정면으로 뒤집었다. "브랜드를 만들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 당신의 브랜드를 만든다"는 제프 베조스의 말처럼, 퍼스널 브랜드란 포장이 아니라 '나를 어떻게 기억되게 할 것인가'의 문제다. 중세 북유럽에서 목축업자들이 가축에 불에 달군 표식을 새긴 것이 브랜드의 시작이었다. 소유 표시에서 출발한 브랜드가, 이제는 신뢰와 정체성, 철학을 담는 그릇이 되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브랜드는 이제 감각적 경험이자 약속이 되었다. 그렇다면 개인은? 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성실하지만 존재감 없는 사람", 일은 잘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람", 혹은 항상 바쁜데 정작 무슨 일하는지 모르는 사람" 내가 정의하지 않으면, 타인이 나를 정의한다. 책은 바로 그 지점에서 출발한다.

맥킨지는 2030년까지 약 8억 개의 일자리가 AI로 대체될 것이라 예측했다. 이미 ChatGPT는 글을 쓰고, 미드저니는 이미지를 만들며, AI는 코드를 작성하고 데이터를 분석한다. 단순 반복 업무는 물론이고, 창의적이라 여겨졌던 영역까지 Al 가 침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저자는 명확하게 답한다."AI는 기술을 대체할 수 있지만, 신뢰와 감정을 얻는 브랜드는 대체할 수 없다." 사람들은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로부터 그 정보를 듣느냐를 중 요하게 생각한다. 같은 조언이라도 신뢰하는 사람에게서 들으면 설득력이 있고, 낯선 이에게서 들으면 그저 정보일 뿐이 다. 책에 등장하는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10년간 전통 마케팅만 해온 한 마케터는 AI의 등장으로 위기를 느꼈지만, 오히려 Al 도구를 자신의 경험과 결합해 '데이터 기반 AI 마케팅 전문가'로 재정의했다. 기술은 도구일 뿐, 결국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그 사람만 의 관점과 철학'이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를 특정 유형으로 분류하고, 각자의 출발점에 맞는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퍼스널 브랜딩을 9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브랜딩 무관심형;, 백지 탐색가형', '다재다능 방황가형', '의도적 리브랜딩형, '부정적 평 판 개선형' 등. 나는 자기진단표를 보며, 내가 ‘존재감 부족형’에 가깝다는 것을 깨달았다. 실력은 있지만 드러나지 않고, 회의에서 의견을 잘 내지 않으며, SNS나 네트워크에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항목에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는 이 런 유형에게 "문제는 능력이 아니라 노출 부족"이라고 진단한다.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도, 그것이 보이지 않으면 존재 지 않는 것과 같다. 나는 그동안 '열심히 일하면 알아주겠지'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는 알았다. 기다려서는 안 된다. 나를 정의하는 언어를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셀프 코칭 질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이것이었다. "당신은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나는 답하지 못했다.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가치를 제공하는지, 사람들이 나를 떠올릴 때 무엇이 연상되는지 명확하게 정리한 적이 없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정리를 도와준다.

책의 또 다른 강점은 실용성이다. 거창한 이론이나 추상적인 조언이 아니라, 당장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콘텐츠를 카테고리별로 나누고, 메인 콘텐츠와 서브 콘텐츠를 구분하며, 요일별 템플릿을 만들어 일관성을 유지하라는 조언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특히 AI 활용 부분이 흥미로웠다. ChatGPT에게 "이번 주 자기계발 관련 콘텐츠 아이디어 5가지를 추천해줘"라고 요청하거나, 콘텐츠 캘린더 초안을 작성하게 하는 식으로 AI를 보조 도구로 사용하는 방법은 부담 없이 따라 할 수 있었다. Al를 경쟁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는 파트너로 활용하는 관점이 신선했다. 또한 저자는 "작게 시작하라"고 강조한다. 처음부터 매일 글을 올리겠다는 다짐은 오히려 부담이 되어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주 1~2회로 가볍게 시작하고, 습관이 자리 잡으면 점차 횟수를 늘려가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법이다. 이런 조언은 완벽주의에 갇혀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많이 떠올린 문장은 톰 피터스의 말이었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라는 브랜드의 CEO다." 처음에는 과장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로 다가온다. 변화가 빠른 시대, 회사와 직무는 사라질 수 있지만, 내가 어떤 문제를 해결해온 사람인지, 어떤 태도로 일해왔는지는 남는다. 퍼스널 브랜드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저자는 퍼스널 브랜드를 단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쌓이며 형성되는 패턴과 구조로 설명한다.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은 단편적인 게시물 하나가 아니라, 일관되게 드러나는 세계관이다. 명품이 단지 품질로만 명품이 아닌 것처럼, 한 사람의 브랜드도 말투, 행동, 태도, 글쓰기, 사고방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완성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브랜딩이 자기 PR이나 포장이 아니라, 나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과정임을 깨달았다. 내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일하는지, 왜 이 일을 하는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를 명확히 하는 작업. 그것이 진정한 브랜딩이다.

책을 읽고 당장 인생이 바뀌거나, SNS를 시작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브랜드에 무관심하다고 해서, 브랜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무관심했기 때문에, 나를 대신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정의해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AI는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진정성 있는 사람'은 대체되지 않는다. 사람들은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흥미로운 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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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세 추종 트레이딩 비법 - 세상에서 가장 안전하게 매일 1% 수익 내는 PST 시리즈
Richard Kwon 지음 / 두드림미디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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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주식 시장에 뛰어든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들은 착각 속에 산다. 마치 자신이 시장을 움직일 수 있는 것처럼, 혹은 적어도 시장의 다음 움직임을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하지만 냉정한 현실은 이렇다. 우리는 추세를 만드는 '마켓 메이 커'가 아니라, 그들이 만든 파도를 뒤늦게 쫓아가는 '마켓 팔로어'일 뿐이다. 이 근본적인 자기인식의 부채가 수많은 손실을 낳는다. HTS 화면에 표시되는 각종 보조지표들을 맹신하며 매수와 매도 버튼을 누르지만, 정작 그 지표들은 이미 지나 간 과거를 분석할 뿐 현재 진행형의 추세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다. 마치 백미러만 보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이때문에 활황인 주식시장에서도 손해를 보곤 한다. 이번에 <추세 추종 트레이딩 비법>을 이야기하는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주식 시장의 본질을 보다 근본적으로 알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대부분의 트레이더는 추세를 '방향'으로만 본다. 지금 오르고 있는가, 내리고 있는가. 하지만 이것은 3차원 세계를 2차원 평면으로 압축해서 보는 것과 같다. 중요한 정보가 송두리째 사라진다. PST이론은 추세를 '사이클'이라는 더 큰 개념의 틀 속에서 바라본다. 모든 추세에는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클 안에서 추세는 '강화 구간'과 '보합 구간'을 반복하며 진행된다. 마치 파도가 밀려왔다 빠지는 것처럼, 강한 힘으로 밀고 나가다가 잠시 숨을 고르는 것처럼 말이다. 핵심 전략은 강화 구간에서만 진입하고, 보합 구간에서는 철저히 관망한다. 왜인가? 같은 시간을 투자하더라도 강화 구간에 서의 진입은 편안한 보유와 큰 수익을 동시에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보합 구간에서의 진입은 스트레스는 많고 수익은 적다. 많은 고수들조차 PST 교육을 받으며 사이클의 시작과 끝을 찾는다는 개념을 처음 접한다고 한다. 기존의 모든 이론과 정보들이 이 본질적인 부분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이클의 개념을 이해해야만 추세의 구성, 방향, 기울기, 속도, 변화를 제대로 읽어낼 수 있다. 이것이 순서다.

나는 실시간으로 차트를 보며 상승추세라고 판단했다. 자신 있게 매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막상 진입하니 가격이 밀리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 한두 번쯤은 있지 않은가? 문제는 이' 상승추세 '가 실제로는 여러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라는 점이다. 상승 사이클 내의 상승 강화 구간일 수도 있고, 상승 보합 구간일 수도 있다. 더 심각한 것은 하락 사이클 내의 일시적 반동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엔 모두 ' 상승 ' 이지만, 그 의미와 지속성은 천차만별이다. 이것이 바로 타임 프레임의 함정이다. 단일 시간대의 차트만 보고 추세의 위치를 잘못 분석하면, 손실을 안고 가는 거래를 시작하는 셈이다.

PST이론은 여러 타임 프레임을 동시에 고려하며, 현재 가격이 전체 사이클 속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먼저 파악하라고 강조한다. 마켓 메이커는 우리가 원하는 추세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계획이 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계획의 흔적을 읽어내고, 그들이 만든 강력한 흐름에 올라타는 것뿐이다. 추세를 분석한다는 것은 결국 '힘'을 분석하는 것이다. 매수세력과 매도세력 중 누가 더 강한가? 그 힘이 얼마나 오래 지속 될 것인가? 얼마나 큰 가격 변동을 만들어낼 것인가? PST이론은 이를 세 가지 개념으로 분석한다. 첫째, 매수·매도 '면적'이다. 일정 기간 동안 축적된 매수와 매도의 양적 규모를 의미한다. 면적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힘이 비축되어 있 다는 뜻이다. 둘째, 매수·매도 '세력'이다. 현재 시점에서 실제로 작동하고 있는 힘의 크기다. 면적이 잠재적 에너지라면, 세력은 운동 에너지다. 세력이 강할 때 진입하면 빠르게 수의권에 진입할 수 있다. 셋째, 매수•매도 '관점'이다. 지금 보이는 움직임이 큰 사이클에서는 어떤 의미인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같은 상승이라도 상승 사이클에서의 상승과 하락 사이클 에서의 일시적 반등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는다. 이 세 가지가 모두 맞아떨어지는 지점, 그것이 바로 고확률 진입 구간이다. 해외선물처럼 양방향 거래가 가능한 시장에서 매도 진입을 한다면, 하락 사이클 내에서 매도세력이 매수세력보다 크고 매도면적이 충분히 존재하는 3박자가 맞는 구간을 찾아야 한다.

PST이론의 가장 혁명적인 부분은 아마도 신호 체계일 것이다. 일반적인 보조지표가 제공하는 '일반신호'는 이미 추세가 충분히 진행된 후에야 나타난다. 뒤늦은 탑승이다. PST는 이보다 앞선 단계의 신호들을 포착한다. '예비신호'는 추세가 본격화되기 직전의 징후를 알려준다. '잠재신호'는 아직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곧 폭발할 에너지를 감지한다. '양자신호'는 두 가지 가능성 사이의 확률적 우위를 계산한다. 그리고 정점에 '메타신호'가 있다. 책은 24년 연구의 결정체다. 마켓 메이커의 마음을 읽는 신호. 상승 사이클에서 상승추세를 만들 때와 하락 사이클에서 상승추세를 만들 때를 구분해낸다. 하락 사이클에서의 하락추세와 상승 사이클에서의 하락추세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였다. 마켓 메이커가 아닌데 어떻게 그들의 의도를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24년간의 도전 끝에 찾아냈다. 그들이 남긴 흔적, 가격과 거래량의 패턴 속에 숨겨진 의도의 지문. 메타신호는 그것을 가시화한다.

PST이론을 배운다고 해서 자동으로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이론은 지도일 뿐, 실제 여행은 각자가 해야 한다. 그래서 PST 교육에서 가장 강조하는 것이 ' 본인만의 거래규칙 '을 만드는 것이다. 밀리지 않는 진입. 이것이 첫 번째다. 매수나 매도 버튼을 누른 직후부터 가격이 유리한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역방향으로 밀린다는 것은 타이밍이 틀렸다는 증거다. PST의 신호 체계를 활용하면 이 진입 타이밍의 정확도를 극적으로 높일 수 있다. 편안한 보유. 이것이 두 번째다. 감정에 휘둘리고, 노이즈에 현혹되고, 과거만 보는 지표에 의존하다가 손실을 보는 평범한 투 자자로 남을 것이다. 책을 통해 나만의 무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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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디렉션 - 사진작가 이준희 직업 에세이
이준희 지음 / 스미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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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누군가 내게 "당신은 무엇을 쫓으며 살아가고 있나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한동안 말문이 막힐 것 같다. 이번에 읽을 기회가 있었던, 이준희 작가의 책 여정을 따라가며 나는 계속해서 나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무엇을 향해 걷고 있는가. 내 손에 든 것은 무엇이고, 내가 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작가는 "빙빙 도는 나침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얼마나 정확한 비유인가. 우리는 모두 어느 시점에 그런 나침반을 들고 서 있었을 것이다. 바늘은 미친 듯이 회전하고, 우리는 그것이 멈추기를 기다리며 불안해한다. 때로는 그 기다림이 너무 길어서, 나침반을 내던지고 싶은 충동마저 느낀다. 그런데 작가는 그 회전하는 바늘을 붙들고 세계를 방랑했다. 카메라라는 무거운 쇳덩이를 어깨에 메고, 의미를 찾아 헤매며, 빛을 쫓았다.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깨달았다. 방향을 찾는 것은 어느 날 갑자기 계시처럼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무수한 발걸음, 수많은 셔터음, 끝없는 자기 질문의 축적 속에서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빛이란 무엇일까. 작가에게 빛은 사진의 기술적 요소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선이었고, 방향이었으며, 존재의 이유였다. “빛이 없으면 어둠 조차 인식할 수 없다"는 C.S. 루이스의 통찰을 사진으로 체현한 사람. 나는 그의 글에서 빛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헌신을 느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빛을 쫓는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음악일 수도, 글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빛을 향해 걷는 것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설령 그 빛이 때로 너무 강렬해서 눈이 부시고, 때로 너무 희미해서 길을 잃을 것 같아도...

"3승 20패." 작가가 자신의 인생을 야구 전적으로 표현한 이 대목에서 나는 웃음과 동시에 서늘함을 느꼈다. 얼마나 솔직한가. 얼마나 용감한가. 자신의 실패를 숫자로 정량화하고,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태도다. 우리 사회는 승리만을 기억한다. 603승을 기록한 임요환을 기억하지, 그가 430번 패배했다는 사실은 쉽게 잊는다. 하지만 작가는 정확히 그 지점을 파고든다. 승률 60%의 '황제'도 열 번 중 네 번은 진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가 진다는 것, 실패한다는 것에 대해 가진 공포 는 얼마나 과장된 것인가. 이 대목을 읽으며 내 삶의 전적표를 떠올렸다. 아마도 나는 작가보다 훨씬 더 참담한 성적표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포기한 꿈들, 중단한 프로젝트들, 실패한 관계들. 그것들을 일일이 세어본다면 나는 아마 2승 30패 쯤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리그는 아직 한참이나 남았다." 무엇보다 감동적인 것은 그의 목표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아니라, "와일드카드 결정전에라도 나가서 언더도그로서 한 팀 한 팀 격파"하는 것. 이 얼마나 현실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목표인가. 그는 자신이 1등 팀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래도 플레이오프에는 진출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만들어내고 싶어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런 종류의 희망이 아닐까. 완벽한 승리가 아니라, 다시 배트를 드는 용기. 무너진 담장을 걷어내고 벽돌을 다시 쌓는 끈기. 작가가 사십 줄에 접어들 어서도 "포기할 때가 절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그가 패배의 쓴맛을 충분히 알고도 여전히 게임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촬영을 하기 위해서라면, 온몸에 힘이 빠질 정도로 지쳐도, 밤새 설계도를 그리며 잠을 못 자도 좋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나는 질문했다. 나에게도 그런 일이 있는가?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을 만큼 하고 싶은 일이? 고단함마저도 기쁨으로 느낄 수 있는 무언가가? 많은 사람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이야기한다. 워라밸, 번아웃, 휴식의 중요성. 물론 그것들은 중요 하다. 하지만 작가가 말하는 것은 그보다 더 근원적인 무엇이다. 그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거의 종교적인 헌신에 가까운 열정이다. 팬데믹 시기,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도 작가는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한 손으로 절벽에 매달린 절박한 시간 속에서도 그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춤추는 사상>이라는 작품을 통해 소멸 위기의 지역에 에너지를 불어넣고자 했다. 생존의 문제와 예술적 지향을 동시에 붙잡으려 했다. 이것이 바로 직업 예술가의 삶이 아닐까. 그것은 낭만만으로도, 현실감각만으로도 유지될 수 없다. 두 가지를 동시에 움켜쥐고, 줄타기를 하듯 균형을 잡아가는 것.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다시 일어서며, 끊임없이 자신의 중심을 찾아가는 것이다. 장애인 스포츠 촬영 현장에서 작가가 느낀 자책감과 깨달음도 같은 맥락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선수들과 양팔을 잃은 선수들이 거침없이 바다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보며, 그는 자신의 나약했던 의지를 반성했다. 온전한 신체를 가진 자신이 겪었던 고통들이 "깃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고 했다. 이것이 바로 사진의 힘이 아닐까. 렌즈를 통해 타인의 삶을 목격하고, 그 안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 작가가 "소셜 포토그래퍼"라는 정체성을 갖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사진을 통해 세상과 연결되고,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그의 오랜 여정의 결과다.

실패의 경험은 성공의 토양이 되고, 방황의 시간은 내면을 정돈하는 치유의 과정이 된다. 언젠가 나도 "내 몸이 가루가 되어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될까? 그때까지 나는 작가처럼 무거운 가방을 메고 길을 걸을 것이다. 내 안의 빛을 찾아서, 내 삶의 디렉션 을 발견하기 위해서 나아갈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뒤돌아보았을 때, 지금의 이 방황조차도 빛나는 여정의 일부였음을 깨 닫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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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새로고침 365 - 부정적 감정을 끊어 내는 52가지 생각 설계 기술
라이언 부시 지음, 김익성 옮김 / 한빛비즈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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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나 생각이 통제 불가능한 것처럼 느낀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불안이 엄습하며, 나쁜 습관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 우리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체념하곤 한다. 그러나 Ryan A. Bush는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을 보여준다. 우리의 마음은 생물학적 컴퓨터이며, 그 안에서 작동하는 정신적 소프트웨어는 재프로그래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백만 년의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 우리의 마음은 특정 패턴으로 코딩되어 있다. 위험에 대한 과잉반응, 즉각적 보상에 대한 선호, 사회적 인정에 대한 갈망 등은 생존에 유리했던 옛 환경의 산물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기본 설정은 종종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 Bush는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뇌의 능력을 통해 우리가 이러한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의도적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바로 '심리공학(Psychitecture)'이다. 건축가 (architect)가 물리적 공간을 설계하듯, 심리공학자(psychitect)는 자신의 내면 공간을 설계한다. 책은 이와같은 마음 기술을 이용해서 우리의 생각을 설계할 수 있는 52가지의 방법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부시의 핵심적인 개념 중 하나는 감정을 '알고리즘'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두려움, 질투, 분노, 불안은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연스러운 반응이 아니라, 재프로그래밍 가능한 심리적 코드다. 이러한 관점은 전통적인 심리학적 접근과 구별되는 부시의 독특한 접근 방식이다. 그는 감정을 소프트웨어의 버그에 비유한다. 프로그래머에게 코드 오류가 있는 것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처럼, 현대 문화는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화내는 것이 괜찮다고 말한다. 물론 그것을 개인적으 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는 디버깅할 시간이다. 감정은 훈련될 수 있으며, 그 훈련에 전념하든 않든 이미 훈련되고 있다. 예를 들어, 파트너에 대한 지속적인 질투심은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정신적 소프트웨어의 문제다. 분노를 통제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강하게 벽을 쳤다 해도 그것은 약점이다. 심지어 타인에 대한 공감을 통제하지 못한다면, 역설적이게도 그것 역시 약점이며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감정을 안정화시키는 법을 배워야만 그것을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다. 부시는 부정적 감정 반응을 재프로그래밍할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지나치게 단순해 보일 수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수년간 자신의 경험을 통해, 감정적 알고리즘을 문제의 근원으로 보면 이러한 반응들이 완전히 제거될 수 있음을 반복적으로 증명했다고 주장한다. 각각의 원치 않는 감정 반응은 창의적 문제 해결을 위한 독특한 도전이다. 어떤 것은 다른 것보다 더 어렵다. 하지만 부정적 감정에 대한 체념이야말로 평온한 마음에 대한 가장 큰 장애물이다.

현대 심리학에서 회복탄력성(resilience)은 중요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불가피한 좌절에서 빠르게 회복하는 능력은 실용적이며 가치 있다. 하지만 부시는 더 높은 목표를 제안한다. 회복탄력성이 넘어진 후 다시 일어서는 것이라면, 정신적 강건성(emotional robustness)은 애초에 넘어지지 않는 것이다. 강건한 마음은 강력한 면역 체계를 가진 마음이다. 더 많은 것을 견디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 세네카의 말처럼 “어떤 일이 일어나도 당신을 동요시킬 수 없는 상태에 있는 것보다 더 확실한 위대함의 증거는 없다." 우리는 위협을 회피함으로써가 아니라, 그것을 준비함으로써 마음을 강화한다. 어려움에 노출시켜 마음이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을 배우도록 하고, 삶의 사건들에 의해 촉발될 가능성이 있는 감정적 알고리즘을 식별하고 재프로그래밍함으로써 해결이 가능하다. 감정을 억압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감정을 정밀한 도구로 인식하고 마스터하는 것이다. 감정은 위대한 일을 달성하는 데 사용될 수 있지만, 충돌하는 열정들은 거의 또는 보통 수준으로만 통제할 수 있다면 노력을 약화시킬 뿐이다. 감정이 원래 만들어진 반사적 기본 반응이라면, 오직 운만이 목표 달성을 도울 수 있다.

부시가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상태는 평정심(equanimity)이다. 이는 흔들리지 않는 평온과 심리적 안정의 상태로, 그리스 스토아철학의 아파테이아(apatheia), 에피쿠로스주의의 아타락시아(ataraxia), 불교의 우페카(upekkha)와 같이 거의 모든 실천철학과 종교에 동등한 개념이 존재한다. 빅쿠 보디(Bhikkhu Bodhi)는 평정심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것은 마음의 고른 상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자유, 이득과 손실, 명예와 불명예, 칭찬과 비난, 쾌락과 고통에 의해 동요될 수 없는 내적 균형의 상태다." 이러한 상태는 고대 현자들만이 달성한 영적 열망처럼 보일 수 있지만, 부시는 이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달성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의 통찰력 있는 사고 실험은 이를 명확히 설명해 주고있다. 평정심은 바로 지금, 현재의 문제들에 대해 5년 전 문제들을 바라보는 그 느낌을 갖는 것이다. 즉, 그것들이 문제가 아니거나, 저절로 해결될 문제이거나, 가질 만한 가치가 있는 문제라는 것. 이 상태는 당신을 방해하는 감정 반응을 식별하고, 재구 조화 및 조절 전술을 사용해 그것들을 교정하며, 환경에도 불구하고 거의 완전한 안정성을 얻을 때까지 각각을 재프로그 래밍하는 점진적 과정을 통해 달성된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비유처럼, 끊임없이 파도가 부서지는 바위 곶과 같이 되라. 하지만 그것은 굳건히 서 있고 그 주위의 물의 소용돌이는 잠잠해진다."

부시의 핵심 통찰은 우리가 환경의 희생자가 아니라 마음의 건축가라는 것이다. 두려움이 야망을 막고, 질투가 관계를 망치며, 산만함이 삶을 지배하고, 내면의 비평가가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기대를 제시한다면, 그것은 고칠 수 없는 결함이 아니라 재프로그래밍 가능한 알고리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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