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모든 것은 별에서 시작되었다 - 천문학자가 바라본 우주와 인류의 발자취
조앤 베이커 지음, 고유경 옮김 / 북플레저 / 2026년 2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가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운다. 감동적인 영화를 보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들을 때처럼 눈물샘이 자극되는 것이 아니라, 뭔가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가가 뜨거워지는 그런 종류의 울음이다. 설명하기 어렵다. 슬픔도 아니고 기쁨도 아닌, 어쩌면 둘 다인 감정이다. 이번에 조앤 베이커의 Starwatchers를 읽으며 느낀 그 감정과 비슷할지 모르겠다. 도시에서 보는 밤하늘은 빈약하다. 몇 개 안 되는 별, 희뿌연 달, 가끔 지나가는 비행기.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저 별빛이 수십 년, 수백 년을 여행해 내 망막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현재가 아니라 과거다. 저 별은 이미 사라졌을 수도 있고, 폭발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여전히 그 자리에서 핵융합을 지속하고 있을 수도 있다. 나는 알 수 없다. 나는 그저 과거의 빛을 받아볼 뿐이다. 우주는 우리가 얼마나 절대적으로 작은 존재인지 상기시킨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작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위로가 된다. 내 고민이 작고, 내 실패가 작고, 내 존재가 작다는 것, 이것이 어째서 위안이 될까?솔직히 고백하자면, 나는 우주의 크기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아무도 못할 것이다. 우리 뇌는 그렇게 설계되지 않았다. 인간의 인지 능력은 사바나에서 사냥하고, 열매를 채집하고, 부족 사회를 유지하는 데 최적화되어 있다. 수십 미터 안의 거리, 수십 명의 관계, 수십 년의 시간, 이것이 우리가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스케일이다. 그런데 우주는 이 모든 것을 조롱한다. 가장 가까운 별까지 4.2광년. 빛의 속도로 4년이 넘게 걸린다는 말이다.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돌 수 있다. 그 빛이 4년을 쉬지 않고 달려야 도착하는 거리. 숫자로는 이해할 수 있다. 계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느낄 수 는 없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마젤란 은하, 하늘에서 흐릿한 구름처럼 보이는 그것이 각각 수십억 개의 태양을 품은 은하 라는 사실. 우리 은하만 해도 약 2천억 개의 별이 있는데, 관측 가능한 우주에는 약 2조 개의 은하가 있다. 2조 곱하기 2천 억. 이 숫자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니다. 그냥 '매우 많다'는 추상적 개념일 뿐이다. 그리고 시간. 우주의 나이는 약 138억 년. 인류 문명은 기껏해야 1만 년. 현생 인류는 30만 년. 인간 개인의 수명은 평균 80년. 우주의 나이를 1년으로 압축하면, 인 류 문명은 12월 31일 밤 11시 59분 50초쯤에 시작된다. 나의 삶은? 1초도 안 된다. 깜박임보다 짧다. 이런 비교를 할 때 마다 나는 현기증을 느낀다. 그리고 동시에 이상한 평온함을 느낀다.과학이 밝혀낸 가장 놀라운 사실 중 하나는 우리가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우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빅뱅 직후의 물리 상수들이 조금만 달랐어도 원자가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고, 별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우리 같은 복잡 한 생명체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지구의 위치도 절묘하다. 태양으로부터 조금만 가까웠어도 금성처럼 지옥이 되었 을 것이고, 조금만 멀었어도 화성처럼 얼어붙었을 것이다. 달의 존재가 지구의 자전축을 안정시키고, 목성이 소행성들을 끌어당겨 지구를 보호하고, 오존층이 자외선을 차단하고 수백, 수천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나의 존재. 부모님이 만나지 않았다면, 그날 그 순간에 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지 않았다면, 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부모도, 증조 부모도, 수백 세대에 걸친 조상들 중 단 한 명이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나는 없었을 것이다. 확률로 따지면 나의 존재는 사실상 0에 가깝다. 그런데 나는 여기 있다. 숨 쉬고, 생각하고,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경외감을 느낀다. 이 우주에 존재할 수 있어 믿을 수 없이 행운이다.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을 관측했지만 방문하지 못했다. 허블은 은하들의 후퇴를 발견했지만 그 은하에 가보지 못했다. 칼 세이건은 "창백한 푸른 점"을 보며 감동했지만 그가 꿈꾼 성간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실패한 걸까? 아니다. 그들은 인류의 시야를 넓혔다. 우리가 우주 속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특별하면서도 평범한지, 우리가 무엇을 모르는지 를 알게 해주었다. 나는 화성에 발을 닫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큐리오시티 로버가 보내온 사진을 볼 수 있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포착한 초기 우주를 볼 수 있다. 중력파 검출기가 두 블랙홀의 충돌을 기록한 데이터를 볼 수 있다. 나는 직접 탐험하지 못하지만, 인류가 집단적으로 탐험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여전히 밤하늘을 올려 다볼 수 있다. 도시의 빈약한 별빛이라도, 희뿌연 달이라도,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것들을 보며 나는 기억한다. 저기 저 점 하나하나가 태양 같은 별이고, 그 주위를 행성들이 돌고 있을 수 있으며, 어쩌면 그 행성 중 하나에서 다른 존재가 우리를 향해 올려다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책은 나의 오래된 열정을 상기시키기에 충분했다. 나에게 우주는 끊임없이 상기되어야 하는 대상이다. 일상에 파묻혀 살다 보면 잊는다. 내 문제가 우주 전체인 것처럼, 내 시간이 전부인 것처럼, 내가 중요한 것처럼. 그럴 때 나는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기억한다. 나는 작고, 짧고, 우주적으로는 무의미하다. 그리고 그것이 괜찮다. 아니, 그것이 아름답다. 저자가 일식을 보며 느낀 차분함과 안정감" 나도 안다. 우주의 시선을 받는다는 느낌. 물론 우주는 의식이 없고 우리를 보지 않는다. 하지만 우주 속에 존재한다는 것, 별먼지로 만들어진 우리가 별을 올려다본다는 것, 우주가 우주 자신을 인식한다는 것, 이 순환적 아름다움. 우주에 대한 책을 읽을 때만큼은, 가끔은 물리적 책을 권하고 싶다. 밤하늘 아래서, 손에 책을 들고, 페이지를 넘기며 읽는 것. 아날로그적 행위로 우주라는 가장 압도적인 주제를 대하는 것. 그 아이러니가 어쩐지 적절하게 느껴진다. 우주는 여전히 거기 있다. 나는 여전히 여기 있다. 그것만으로도 기적이고,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