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황에서 뉴질랜드 출신의 영국 외과의사 해럴드 길리스가 등장했다. 1915년 프랑스 전선에 파견된 32세의 그는 처참한 안면 부상자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 충격을 받았다. 턱뼈가 사라지고, 코가 날아가고, 혀가 찢어지고, 안구가 탈출한 병사들. 전차나 항공기 화재로 얼굴 전체가 녹아내린 이들. 기존의 의학 지식으로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환자들이었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참고할 교과서가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구순구개열 교정이나 귓불 수술 같은 초보적인 성형술은 전쟁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이처럼 광범위한 안면 재건은 전례가 없었다. 치료의 과학은 파괴의 과학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길리스는 문자 그대로 백지상태에서 시작해야 했다. 그는 먼저 프랑스와 벨기에 전선에서 치과의사들이 턱과 코가 손실된 병사들을 돌보는 모습을 관찰했다. 거기서 영감을 얻은 그는 안면 재건만을 전담하는 전문 센터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처음에는 올더샷의 케임브리지 군병원에 병동 하나를 배정받았고, 1917년에는 시드컵의 조지아풍 저택과 주변 목조 건물들로 이루어진 퀸스 병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길리스의 천재성은 단순히 외과 기술에만 있지 않았다. 그는 외과의사, 치과의사, 마취과의사, 간호사,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로 구성된 다학제 팀을 최초로 구성했다. 이는 현대 의료에서 당연하게 여겨지는 협진 시스템의 선구적 모델이었다. 치과의사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했다. 항생제가 없던 시대였기에 입 내부에서 금속판으로 뼈를 고정할 수 없었다. 대신 얼굴 외부에서 틀과 핀으로 턱을 고정하면서, 외과의사가 다른 부위를 치료할 수 있도록 했다. 환자가 음식을 먹고 말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재건 수술 성공의 핵심이었다. 화가와 조각가들도 필수 인력이었다. 그들은 수술 전후의 모습을 세밀하게 기록했고, 수술이 불가능한 환자들에게는 전쟁 전 사진을 참고해 정교한 금속 마스크를 제작했다. 이러한 시각적 기록은 다른 의사들이 복잡한 재건 수술을 배우고 재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술과 의학의 협력은 성형외과의 독특한 특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