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 비움은 자유다, 새롭게 정리한 개정증보판
김세중 지음 / 스타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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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두드릴 때, 나는 문득 내 방을 둘러본다. 책상 위에 놓인 스마트폰, 서랍 가득 쌓인 명함들, 언젠가 입으려고 옷장에 매달아 둔 옷들. 이 모든 것이 나를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리라 믿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조용한 새벽에 마주하는 진실은 조금 다르다. 내가 가진 것들이 나를 채우기보다는, 오히려 내 마음 한쪽을 조여 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철 스님의 삶을 떠올릴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경외심을 넘어선다. 그것은 어쩌면 부끄러움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평생을 가난과 함께 살아가신 분의 이야기는,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메말라가는 우리 시대의 영혼에 조용한 질문을 던진다. 과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많은 것을 움켜쥐려 애쓰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한자의 조형 속에 담긴 지혜는 때로 놀랍도록 직관적이다. 탐욕의 '탐'자가 화폐를 움켜쥔 손의 모습이라면, 가난의 '빈'자는 나누는 행위를 형상화한 것이라는 해석 앞에서 나는 한참을 멈춰 섰다. 우리가 오랫동안 오해해 온 것은 아닐까. 가난을 단지 결핍의 상태로만 여겨온 것이. 진정한 가난, 청빈이란 가진 것이 없음이 아니라 가진 것을 나눌 줄 아는 여유로움일지도 모른다. 봄날 공원을 걷다가 만난 노부부를 기억한다. 벤치에 앉아 빵 한 조각을 비둘기들과 나누던 그들의 얼굴에는 묘한 평화가 어려 있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충만함이 그들을 감싸고 있었다. 나누는 행위 속에서 피어나는 기쁨. 그것이 바로 무소유가 우리에게 건네는 첫 번째 선물이 아닐까.

혜능 대사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그 의미가 진정으로 가슴에 와닿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바람이 부는가, 깃발이 흔들리는가를 두고 다투던 사람들. 그러나 진짜 움직이고 있던 것은 그들의 마음이었다는 깨달음. 이 이야기는 단순한 선문답을 넘어, 우리 삶의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담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외부의 현상에 휘둘리며 살아가는가. 주가가 오르내릴 때마다, 날씨가 변할 때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우리의 마음은 요동친다. 하지만 정작 흔들리는 것은 밖의 세계가 아니다. 내 안의 집착과 욕망, 두려움과 기대가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키고 있을 뿐이다. 가을 저녁, 한강변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강물은 늘 그 자리에서 흐르는데, 어째서 어떤 날은 평온하게 느껴지고 어떤 날은 슬프게 다가오는가. 강이 변한 것이 아니다. 내 마음의 결이 달라진 것뿐이다. 우리가 세상을 보는 방식, 그것은 결국 우리 내면의 상태를 반영한다.


테레사 수녀의 말씀을 읽을 때면 가슴 한편이 뜨거워진다. 바다에 붓는 물 한 방울처럼 보일지라도, 그 한 방울이 없다면 바다는 그만큼 줄어든다는 진실. 이 시대는 우리에게 거창한 성공과 화려한 성취를 요구하지만, 정작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런 거대한 것들이 아니다. 한 번에 한 사람을 껴안는 따뜻함, 지금 이 순간 눈앞의 한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진심이 세상을 조금씩 밝게 만든다.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시절이 떠오른다. 업무에 치여 지쳐 있을 때, 옆자리 선배가 건넨 따뜻한 커피 한 잔. 그것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었다. 누군가 나를 보고 있고, 내 상태를 헤아려 주고 있다는 작은 신호였다. 그날 그 커피가 준 위로는 어떤 거창한 격려의 말보다 깊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결국 그런 것이 아닐까. 한 번에 한 사람씩, 작지만 진심 어린 손길을 건네는 것이다.

성철 스님의 용맹정진 이야기는 듣는 것만으로도 숙연해진다. 42일간 잠을 자지 않고 화두를 붙든 그 치열함 앞에서, 나는 내 일상의 나태함을 돌아보게 된다. 물론 우리 모두가 그러한 극한의 수행을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전하는 본질적 메시지는 분명하다. 진정한 깨달음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체험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정일여, 움직이거나 고요하거나 한결같은 상태. 이것이 과연 우리의 삶에서 가능한 일일까. 출근길 지하철 안에서, 회의실의 긴장된 공기 속에서, 주말 저녁 가족과의 식사 자리에서. 어느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유지한다는 것. 그것은 마치 불가능한 이상처럼 들린다. 하지만 가끔, 아주 가끔씩 그 경지가 엿보이는 순간들이 있다. 새벽 요가 매트 위에서 호흡에만 집중할 때, 아이의 맑은 눈동자를 들여다볼 때, 빗소리를 들으며 차 한 잔을 마실 때. 그 짧은 순간들 속에서 나는 느낀다. 세상의 모든 소란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있는 고요함을. 그것이 비록 몇 초에 불과할지라도, 그 경험은 내 안에 작은 씨앗을 심는다.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이야기를 새롭게 읽었을 때, 나는 그동안 놓치고 있던 중요한 차이를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스승을 배반했지만, 한 사람은 스스로를 용납하지 못해 무너졌고, 다른 한 사람은 자신을 놓아주며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이 대비는 우리 삶에 깊은 시사점을 던진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해서 곱씹으며, 스스로에게 가혹한 심판을 내린다. 하지만 진정한 성장은 자책이 아니라 놓아줌에서 시작된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걸어갈 용기를 내는 것. 그것이 바로 무소유의 또 다른 차원이 아닐까. 죄책감이라는 무거운 짐마저 내려놓는 것이다. 몇 년 전, 중요한 프로젝트를 망쳤던 일이 있었다. 한동안 나는 그 실패의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깨달았다. 그 실패를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은 과거를 바꾸지도 못하면서, 현재의 나만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그때 비로소 나는 그 경험을 놓아줄 수 있었다. 잊은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부터 배우되 거기에 묶이지 않기로 선택한 것이다.

자연의 순리는 언제나 우리에게 가장 아름다운 교훈을 준다. 제비꽃이 피어나는 데에는 제비꽃만의 노력이 있는 것이 아니다. 씨앗을 옮기는 개미의 부지런함이 함께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두 생명체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이것이 바로 세상의 작동 원리다. 우리 역시 혼자가 아니다. 내가 잘되기 위해서는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고,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 상호의존의 그물망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하지만 얼마나 자주 우리는 이 연결을 잊어버리는가. 모든 것을 혼자의 힘으로 이루려 하고, 다른 이들의 공헌을 당연하게 여긴다. 산책길에서 만난 제비꽃 군락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이 작은 꽃들이 여기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보이지 않는 손길이 있었을까. 바람과 비, 햇살과 흙, 그리고 수많은 미생물들과 곤충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 이 한 송이가 피어난다. 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인연들이 함께했다.


무소유를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삶의 본질을 묻는 일이다. 우리는 왜 사는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분주하게 움직이는가. 그 질문 앞에서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이 보여준 삶은 하나의 분명한 답이 된다. 행복은 많이 가진 데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필요한 만큼만 가지고, 나머지를 나눌 줄 아는 데서 온다. 자유는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다.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가벼움에서 온다. 평화는 모든 것을 통제할 때 오는 것이 아니다. 흐름에 맡기고 놓아줄 때 찾아온다. 오늘 아침, 나는 다시 내 방을 둘러본다. 어제와 같은 물건들이 같은 자리에 있다. 하지만 내가 그것들을 보는 눈은 조금 달라졌다. 이것들이 나를 정의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가진 것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것이다. 무엇을 쥘 것인가보다, 무엇을 놓아줄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 창밖으로 봄바람이 불어온다. 가볍고 따뜻한 바람. 그 바람처럼, 나도 조금 더 가벼워지고 싶다. 움켜쥔 손을 펴고, 마음의 문을 열고, 삶이 흘러가는 대로 함께 흐르고 싶다. 그것이 무소유가 내게 건네는 초대장이다. 비움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진정한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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