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해력을 위한 백석 전 시집 필사북 - 윤동주도 필사한 시인들의 시
백석 지음 / starlogo(스타로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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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처음 백석의 시를 펼쳤을 때, 나는 마치 지도없이 깊은 숲에 들어선 기분이었다.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 이 단어 들은 분명 우리말인데 어딘가 낯설었다. '아르간', '욱적하니', '무이징게국'은 거의 암호처럼 느껴졌다. 그냥 눈으로 읽을 때는 그저 스쳐 지나갔던 이 말들이, 펜을 들고 한 글자씩 따라 쓰기 시작하자 전혀 다른 무게로 다가왔다. 필사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요즘 세상은 너무 빠르다. 스크롤을 내리면 수백 개의 문장이 지나가고, 읽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제대로 읽은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 날들이 쌓이다 보니 문득 내가 언어를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말은 하지만 제대로 된 문장은 만들지 못하고, 감정은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어휘가 부족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필사였고, 백석이었다.

'여우난곬족'을 따라 쓰면서 나는 처음으로 '느림'이 주는 쾌감을 알았다. "저녁술을 놓은 아이들은 외양간섶 발마당에 달린 배나무동산에서" 이 한 문장을 쓰는 데만 몇 분이 걸렸다. '외양간섶'이라는 단어 앞에서 펜을 멈추고, 사전을 찾아봤다. '섶'은 땔나무를 쌓아둔 곳이라는 뜻이었다. 외양간 옆 땔나무 더미. 그 구체적인 공간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냥 읽었다 면 그냥 지나쳤을 단어였다. 하지만 손으로 쓰는 순간, 그 단어는 내 몸을 통과했다. 눈으로 보고, 뇌로 이해하고, 손으로 옮기는 이 과정에서 언어는 단순한 기호가 아니라 살아있는 무언가로 변했다. '쥐잡이', '숨굴막질', 등 이런 놀이의 이름들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단어들을 쓰면서 내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시대의 놀이터를 상상했다. 달빛 아래 뛰어노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필사는 나를 느리게 만들었지만, 동시에 더 깊게 만들었다. 한 분장을 쓰는 데 오래 걸렸지만, 그 문장은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백석의 문장을 빌려 쓰는 동안, 나는 잠시 백석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았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는 백석의 시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작품이다. 너무 유명해서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는 시. 하지만 직접 필사하면서 나는 이 시를 완전히 다시 읽게 되었다. "가난한 내가 /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이 세 줄을 쓰는데 왜 이렇게 오래 걸렸을까. '가난한 내가'와 '아름다운 나타샤 사이의 거리. 그 거리가 '눈'으로 채워진다는 것. 백석은 가난하기 때문에 나타샤를 사랑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사랑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사랑 때문에 눈이 푹푹 내린다. 필사하면서 나는 '푹푹'이라는 의성어의 정확함에 감탄했다. '펑펑'도 아니고 '소복소복'도 아닌, '푹푹' 이 단어는 눈이 내리는 소리이면서 동시에 가슴이 무너지는 소리 같았다. 손으로 '푹푹'을 쓸 때마다, 나는 정말로 눈이 내리는 겨울밤을 상상했다. 혼자 소주를 마시며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는 시인의 모습.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이 문장은 쓰는 내내 가슴이 뜨거웠다. 백석의 결기가 느껴졌다. 가난하지만 굴복하지 않는, 외롭지만 비굴하지 않은, 그 단단한 자존심. 나는 이 문장을 특히 천천히, 또박또박 썼다. 마치 이 문장을 내 것으로 만들고 싶은 것처럼 느껴젔다.

필사하는 날이면, 나는 오랫동안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 백석의 시를 필사하면서 나는 내가 잃어버렸던 많은 것들을 되찾았다. 우선 언어를 되찾았다. '아르간, '욱적하니, 개포가, 앞대’ 이런 낯선 단어들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사전을 찾아보고, 손으로 쓰고, 그 의미를 곱씹으면서, 이 단어들은 내 어휘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시간을 되찾았다. 빠르게 스크롤하던 손가락을 멈추고, 한 문장을 천천히 쓰는 시간.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호흡할 수 있었다. 필사는 명상과 비슷했다. 잡념이 사라지고, 오직 문장과 나만 남는 시간이다. 또한 감각을 되찾았다. 백석의 시는 온통 냄새와 촉감과 소리 로 가득하다. 가지취의 내음새, 김냄새 나는 비, 선선득하니 찬 음식들, 응앙응앙 우는 당나귀 소리. 이런 구체적인 감각들을 따라 쓰면서, 나는 내 주변의 감각들에도 더 민감해졌다. 차 한 잔의 온기, 비 오는 날의 냄새, 펜이 종이 위를 지나가는 소리 등, 이런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지금도 나는 가끔 백석의 문장들을 꺼내 읽는다. 아니, 읽는 것이 아니라 '만진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내가 한 글 자씩 쓴 그 문장들은, 이제 내 손끝에 기억되어 있다. 슬플 때는 "쓸쓸한 낯이 네날같이 늙었다"를 떠올리고, 외로울 때는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를 중얼거린다. 사랑할 때는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를 생각한다. 백석의 시는 이제 책 속에만 있지 않다. 내 손끝에, 내 마음속에, 내 일상 속에 살아 숨쉰다. 필사가 선물한 가장 큰 것은 바로 이것이다. 백석의 언어를 잠시 빌려 쓰면서, 나는 나만의 언어도 조금은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펜을 든다. 아직 쓰지 못한 백석의 시들이 기다리고 있다. 천천히, 한 글자씩, 내 손으로 옮기며 읽을 그 시간들을. 그 느린 여행이 나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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