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흑해의 역사는 비극으로 점철되어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아르메니아인 제노사이드, 그리스-터키 간 인구 교환, 스탈린 시대의 대량 추방. 흑해 연안은 민족주의와 전체주의가 빚어낸 참상의 현장이었다. 특히 1944년 크림 타타르인의 강제 이주는 충격적이다. 스탈린은 크림 타타르인 전체를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고, 단 며칠 만에 20만 명 이상을 중앙아 시아로 강제 이송했다. 수송 과정에서, 그리고 낯선 땅에서의 정착 과정에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수세기 동안 크림 에 뿌리내려 살았던 한 민족이 역사에서 지워진 것이다. 이는 크림 타타르인만의 비극이 아니었다. 그리스인, 아르메니아 인, 체르케스인, 칼미크인. 흑해 연안의 수많은 소수 민족들이 20세기의 광풍 속에서 고향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다. 다민족•다문화 공존의 전통은 민족국가 건설이라는 이름 아래 파괴되었다. 흑해는 문화적 다양성의 보고에서 민족 청소의 현 장으로 변모했다.
냉전 시대 흑해는 다시 한번 분단되었다. 북쪽 연안은 소련과 그 위성국가들이, 남쪽은 NATO 회원국 터키가 지배했다. 흑해는 철의 장막이 바다로 연장된 곳이었고, 양 진영의 해군이 대치하는 긴장의 공간이었다. 그러나 냉전기 흑해가 겪은 가장 심각한 위기는 군사적인 것이 아니라 환경적인 것이었다. 무분별한 공업화, 과도한 어획, 하수 처리 시설의 부재.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흑해는 심각한 생태계 파괴를 겪었다. 1980년대에는 빗살무늬 해파리 (Mnemiopsisleidy)라는 외래종이 우연히 유입되어 대번식하면서 재앙이 가중되었다. 이 해파리는 물고기 알과 치어를 잡아먹으며 어족 자원을 고갈시켰다. 수천 년 동안 인간에게 풍요를 제공했던 흑해가 '죽어가는 바다'가 된 것이다. 킹은 이 환경 위기를 자연 현상만이 아니라 정치경제 체제의 실패로 분석한다. 소련의 계획경제는 환경 비용을 무시한 채 생산 량 극대화만을 추구했고, 그 대가는 흑해 생태계가 치렀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소련의 붕괴는 흑해 지정학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왔다. 우크라이나, 조지아 같은 새로운 국가들이 탄생했고,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흑해와 관계를 재정의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초반, 역내 협력을 통해 안정되고 번영하는 흑해 지역을 건설하자는 낙관론이 대두했다. 2006년 부쿠레슈티 정상회의는 이러한 희망의 정점이었다. 그러나 킹이 우려했듯, 이 낙관론은 과도했다. 2008년 러시아-조지아 전쟁, 2014년 크림 병합과 우크라이나 동부 분쟁. 흑해는 다시 한번 지정학적 단 충선이 되었다. 러시아의 혹해 함대 문제, NATO의 동진, 에너지 자원을 둘러싼 경쟁. 냉전 시대의 대결 구도가 새로운 형태로 재현되고 있다. 동시에 문화적·경제적 차원에서는 연결성이 회복되고 있다. 터키와 루마니아, 불가리아 사이의 교역 이 증가하고, 관광산업이 발전하며, 흑해를 사이에 둔 가족과 친구들이 다시 만나고 있다. 국가 간 갈등과 민간 차원의 교 류라는 모순적 상황이 공존하는 것이 현재 흑해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