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은 왜 실패하는가 - 글로벌 기업들의 25가지 시행착오를 통해 살펴본 메타 착각
박종성 지음 / 세종(세종서적)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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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곤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는 기술이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90억 달러를 투입한 GM의 로봇 공장, 1,700억 원을 쏟아부은 BBC의 디지털 프로젝트, 16시간 만에 인종차별주의자로 전락한 마이크로소프트의 AI 챗봇 테이.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기술 그 자체에 대한 맹목적 신뢰였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도 전에 화려한 기술적 해법을 먼저 제시하고, 그것이 마법처럼 모든 난제를 해결해줄 것이라 착각했다. 1900년대 초 전기 혁명은 이러한 착각의 원형을 보여준다. 당시 공장주들은 전기를 단순히 더 깨끗하고 효율적인 증기기관 정도로 인식했다. 그들은 거대한 증기기관을 전기 모터로 교체하면 생산성이 자동으로 향상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30년이 지나도록 기대했던 혁신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전기의 진정한 잠재력은 중앙집중식 동력이 아닌 분산 가능성에 있었기 때문이다. 각 기계마다 소형 모터를 설치하여 독립적으로 작동시킬 수 있다는 근본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낡은 시스템에 새로운 기술을 억지로 끼워 맞춘 것이다. 이는 오늘날 AI 도입 과정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많은 기업이 AI를 단순히 기존 업무를 자동화하는 도구로만 취급한다. 업무 프로세스 전체를 재설계하지 않은 채 AI 시스템만 도입하여, 결국 기대했던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기술의 겉모습만 빌려왔을 뿐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혁신 실패의 두 번째 원인은 조직의 강력한 관성이다. 수십 년간 익숙하게 유지해온 방식을 바꾸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전기 시대 공장들이 중앙집중식 동력 전달 구조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처럼, 현대 조직도 기존 업무 방식에 깊이 적응되어 있다. 기계 배치, 작업 흐름, 관리 방식, 심지어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까지 모두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경로 의존성이라 부른다. 한번 특정 경로에 들어서면,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나도 쉽게 전환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미 투입된 막대한 자본, 익숙해진 작업 패턴, 기존 시스템에 적응한 인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공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벨트와 회전축의 소음이 오히려 산업 발전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비효율적인 관행조차 익숙함 때문에 정당화되곤 한다. 팬데믹 시기 원격 수업의 실패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 당국은 물리적 교실을 온라인에 그대로 복제하려 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시간표, 일방적 강의 방식을 디지털 환경에 억지로 이식했다. 매체가 바뀌면 전달 방식도 달라져야 함에도, 기존 교육 방식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줌 피로라 불리는 인지적 과부하, 학습 격차의 심화, 교사들의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현대 혁신 프로젝트의 또 다른 착각은 충분한 데이터와 정교한 알고리즘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결코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현실을 비추는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다. 부동산 알고리즘은 집의 면적은 계산할 수 있어도, 오후 햇살의 따스함이나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는 담아내지 못한다. AI 챗봇은 인터넷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진실보다 거짓이 빠르게 확산하는 온라인 환경의 독성까지 함께 흡수한다. 의료 기록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고통에 대한 입체적 이야기를 보험사에 청구 가능한 몇 개의 코드로 환원해버린다.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환자와의 교감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정형화된 데이터 입력에 자리를 내준다. 진료실은 더 이상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 입력 작업장으로 전락한다. 가장 올바른 의사결정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는 종종 데이터화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시스템은 이 암흑물질을 보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세계의 속도가 물리적 세계의 실행 역량을 항상 앞지른다는 점이다. 클릭 한 번으로 집을 매입하는 속도를 실제로 그 집을 수리하고 판매하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때, 디지털 전략은 악몽으로 변한다. 첨단 자동화 창고의 로봇들은 ERP 시스템이 쏟아내는 오류 데이터 앞에서 멈춰선다. 비트의 세계와 원자의 세계 사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기술만 앞서가려 한 결과다.


자동화 시대의 가장 위험한 착각은 시스템의 가장 약한 고리가 인간이라는 믿음이다. 인간의 판단은 편견에 오염되고, 손은 실수를 저지르며, 집중력은 쉽게 흐트러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진보란 불완전한 인간을 프로세스에서 제거하는 것이라 여긴다. 하지만 이는 치명적 오만이다. GM의 90억 달러 로봇 공장은 이 착각의 극단을 보여준다. 분당 60대 생산이 목표였지만 첫 주에 고작 60대를 만들었고, 그나마 절반이 불합격품이었다. 로봇 팔은 엉뚱한 곳을 용접하고, 도장 시스템은 자동차 대신 다른 로봇에 페인트를 뿌렸다. 인간의 판단력과 직관을 제거한 결과였다. 시스템 설계자들은 인간의 경험과 적응력을 측정 불가능한 잡음으로 치부하고 제거했다. 하지만 그것은 잡음이 아니었다. 경직된 시스템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을 막아주는 최후의 안전장치였다. 보잉의 MCAS 시스템 역시 같은 오류를 범했다. 조종사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만든 자동화 시스템이 역설적으로 인류 역사상 가장 혹독한 인지적 과부하를 안겨주었다. 조종사들은 서로 모순되는 경고를 동시에 들으며 사투를 벌여야 했다. 자동화는 상황 이해와 합리적 판단에 필요한 현실 감각 자체를 파괴하는 왜곡장을 만들었다. 오카도 자동화 창고의 화재 사례는 더 극적이다. 완벽한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 신뢰가 요란한 경보음 속에서도 신고를 한 시간이나 지연시켰다. 자동화 편향이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킨 것이다. 인간을 배제한 시스템은 세 가지 유령을 소환한다. 첫째는 자동화 편향으로, 기계의 답을 맹신하며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을 포기하게 만든다. 둘째는 책임의 공백으로, 시스템이 치명적 오류를 범해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기이한 상황을 만든다. 셋째는 취약성의 증폭으로, 과거 한 사람의 실수로 끝났을 문제가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키는 재앙으로 돌변한다. 효율을 위해 제거했던 인간이라는 완충지대가 실은 시스템 붕괴를 막는 마지막 보루였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많은 혁신 프로젝트가 실패하는 근본 원인은 리더십 철학의 오류에 있다. 복잡하고 살아 숨 쉬는 인간 시스템을 단순한 하향식 명령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팬데믹 시기 원격 수업이 대표적이다. 전 세계 16억 아이들에게 온라인으로 학습하라는 일괄 지시가 내려졌다. 파일럿 테스트도, 지역적 특성 고려도, 현장 이해관계자와의 충분한 소통도 없었다. 리더가 펼친 지도는 평탄했지만, 교실이라는 현실의 지형은 울퉁불퉁했다. 그 지형에는 낯선 것을 밀어내는 인간의 본능, 교사의 정신적 한계, 학생마다 다른 출발선, 통제할 수 없는 학생들의 저항이 뒤섞여 있었다. 줌 폭격이라는 현상이 이를 극명히 보여준다. 대다수 공격이 외부 해커가 아닌 내부자 소행이었다. 학생들이 의도적으로 회의 링크를 유출하며 강요된 질서를 파괴한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안 사고가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실패를 알리는 경고였다. 인지적으로 피곤하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환경에 대한 학생들의 깊은 불만이 폭력적으로 표출된 것이다. 런던 응급의료 시스템 붕괴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새 배차 시스템 도입 후 36시간 동안 아비규환이 벌어졌다. 긴급 호출이 시스템에서 증발하거나 중복 접수되었고, 한 뇌졸중 환자는 11시간을 기다리다 스스로 병원을 찾아갔다. 리더들은 기술이 정치 문제까지 해결해줄 것이라 착각했다. 하지만 프로젝트 성패는 코드 품질이 아니라, 리더십이 조직 내 정치적 지뢰밭을 어떻게 헤쳐가느냐에 달려 있었다. 진정한 혁신은 리더의 일방적 지시가 아니라 현장의 고통스러운 문제 해결 과정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다. 원격 수업에서 성공한 모델은 혼합형 학습과 비동기 학습이었다. 이는 위에서 강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자들이 새로운 매체의 특성을 이해하고 학습 행위 자체를 근본부터 재설계한 결과였다. 교사의 역할이 지식 전달자에서 학습 촉진자로, 학생의 역할이 수동적 수용자에서 능동적 탐구자로 전환되었다.

혁신의 또 다른 함정은 기술의 우수성에 도취되어 그것이 놓일 사회적 맥락을 간과하는 것이다. 세그웨이가 대표적이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발명품이었지만 도시 생태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다. 보행자에게는 위협적이고 차량 흐름에는 방해가 되었다. 인도와 차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이방인이 되었다. 제품은 진공 상태가 아닌 복잡한 현실의 제약 속에 놓인다. 기능적 우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존 인프라 및 제도와의 조화가 필수적이다. 구글 글라스도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손에 든 멋진 망치에 취해 정작 박아야 할 못이 무엇인지, 그 못이 박힐 벽이 어떤 재질인지 살피지 않았다. 인간 상호작용의 문법과 사회적 수용성이라는 본질을 간과한 채 기술적 우아함에만 매몰되었다. 착용자가 상대를 보는지 화면을 보는지 알 수 없게 만들어 가장 원초적 신뢰의 기반인 눈 맞춤을 불가능하게 했다. 결과는 사회적 거부였다. 이는 문제를 정의하기도 전에 해답부터 만드는 착각에서 비롯된다. 혁신의 순수한 형태는 고요한 실험실에서 탄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누군가의 절박한 필요에 대한 응답이 아니라 기술 가능성 탐사에서 나온 유레카라면, 시장은 그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기술이 스스로 문제를 정의하고 수요를 창조할 것이라는 기술적 메시아주의는 위험한 환상이다.


결국 이 모든 실패의 주범은 기술이 아니다. 사람과 기술이 얽힌 문제를 단순한 기술 문제로 치부한 것이 원인이다. 우리는 잘못된 프로세스, 뒤틀린 보상 체계, 해묵은 정치적 갈등은 그대로 둔 채 증상만 기술로 덮으려 했다. 기술 만능주의의 전형적 함정이다. 데이터 기반 시스템이 객관적이고 중립적일 것이라는 믿음도 착각이다.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 창조자의 편견과 가치, 목표를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다. 100년 전 전기 혁명의 교훈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진짜 의미 있는 변화는 기술 도입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과거 방식대로 사용하지 않겠다고 결정하고 전체 작업 흐름을 새롭게 창조하는 순간 시작된다. 범용 기술의 완전한 잠재력은 그 기술 하나만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보조적 기술, 혁신적 업무 프로세스, 새로운 사업 모델, 성공적 현장 적용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진정한 해답은 더 거대한 데이터나 복잡한 시스템에 있지 않다. 기술이 작동하는 현실, 즉 복잡하고 때로는 비합리적인 인간 사회의 맥락을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에 있다. 현실의 지도를 현실보다 더 신뢰하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인간 전문가를 돕는다는 시스템이 실제로는 그들을 부속품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은지, 조직의 정치적 문화적 DNA를 무시한 완벽한 솔루션의 진짜 비용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물어야 한다. 이 모든 교훈이 가리키는 가치는 겸손함이다. 최고 리더는 모든 답을 아는 지휘관이 아니라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안내자다. 기술은 배움을 위한 도구일 뿐 배움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결국 어둠을 밝히는 유일한 등불은 기술이 아닌 사람이다. 이 단순하고도 강력한 진실을 다음 혁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가장 먼저 떠올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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