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실패의 두 번째 원인은 조직의 강력한 관성이다. 수십 년간 익숙하게 유지해온 방식을 바꾸는 것은 상상 이상으로 어렵다. 전기 시대 공장들이 중앙집중식 동력 전달 구조에 최적화되어 있었던 것처럼, 현대 조직도 기존 업무 방식에 깊이 적응되어 있다. 기계 배치, 작업 흐름, 관리 방식, 심지어 구성원들의 사고방식까지 모두 과거의 틀에 갇혀 있는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이를 경로 의존성이라 부른다. 한번 특정 경로에 들어서면, 더 나은 대안이 나타나도 쉽게 전환하지 못하는 경향을 말한다. 이미 투입된 막대한 자본, 익숙해진 작업 패턴, 기존 시스템에 적응한 인력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변화를 가로막는 것이다. 공장 천장을 가로지르는 벨트와 회전축의 소음이 오히려 산업 발전의 상징처럼 느껴졌던 것처럼, 비효율적인 관행조차 익숙함 때문에 정당화되곤 한다. 팬데믹 시기 원격 수업의 실패도 같은 맥락이다. 교육 당국은 물리적 교실을 온라인에 그대로 복제하려 했다. 아침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이어지는 시간표, 일방적 강의 방식을 디지털 환경에 억지로 이식했다. 매체가 바뀌면 전달 방식도 달라져야 함에도, 기존 교육 방식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한 것이다. 결과는 참담했다. 줌 피로라 불리는 인지적 과부하, 학습 격차의 심화, 교사들의 번아웃으로 이어졌다.
현대 혁신 프로젝트의 또 다른 착각은 충분한 데이터와 정교한 알고리즘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결코 현실 그 자체가 될 수 없다. 현실을 비추는 희미한 그림자일 뿐이다. 부동산 알고리즘은 집의 면적은 계산할 수 있어도, 오후 햇살의 따스함이나 지하실의 퀴퀴한 냄새는 담아내지 못한다. AI 챗봇은 인터넷 데이터를 학습하지만, 진실보다 거짓이 빠르게 확산하는 온라인 환경의 독성까지 함께 흡수한다. 의료 기록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환자의 고통에 대한 입체적 이야기를 보험사에 청구 가능한 몇 개의 코드로 환원해버린다. 의사의 전문적 판단과 환자와의 교감은 시스템이 요구하는 정형화된 데이터 입력에 자리를 내준다. 진료실은 더 이상 치유의 공간이 아니라 데이터 입력 작업장으로 전락한다. 가장 올바른 의사결정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는 종종 데이터화할 수 없는 영역에 존재한다. 시스템은 이 암흑물질을 보지 못한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세계의 속도가 물리적 세계의 실행 역량을 항상 앞지른다는 점이다. 클릭 한 번으로 집을 매입하는 속도를 실제로 그 집을 수리하고 판매하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할 때, 디지털 전략은 악몽으로 변한다. 첨단 자동화 창고의 로봇들은 ERP 시스템이 쏟아내는 오류 데이터 앞에서 멈춰선다. 비트의 세계와 원자의 세계 사이 간극을 메우지 못한 채 기술만 앞서가려 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