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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 숨은 경제학 - 서양 고전 24편으로 읽는 경제 이야기
박정희 지음 / 더로드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을 작성한 리뷰입니다.
코스피가 5000을 찍던 그날, 나는 인터넷을 떠돌다가 한 문장과 마주쳤다. "나는 인버스만 탄다!" 그 순간 나는 그냥 지나쳤다. 무심하게, 무관심하게. 저녁 식탁에 앉아서야 문득 그 문장이 떠올라 남편에게 물었다. "인 버스가 무슨 버스야? 왜 그것만 탄다는 거야?" 남편의 설명을 듣는 순간, 나는 깨달았다. 버스(Bus)가 아니라 인버스(Inverse), 즉 역방향이라는 뜻의 금융 용어였다는 것을. 영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고 변명하고 싶었지만, 이미 남편은 다시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인버스, 인버스...' 하며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날 밤 나는 생각했다. 경제라는 것이 내 삶과 이렇게 동떨어져 있어도 괜찮은 걸까. 주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부동산에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며, 무엇보다 돈이 많지 않은 내가 굳이 경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과연 나는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나는 한 권의 책과 만났다. <문학 속 숨은 경제학>. 표지를 보는 순간 직감했다. 이 책이라면, 문학을 좋아하는 나도 경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인버스 충격에서 아직 회복하지 못한 나에게, 이 책은 구원처럼 다가왔다.책을 받은 것은 어제였다. 생각보다 얇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느껴지는 무게감이 달랐다. 왠지 이 책은 술술 읽힐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뜯자마자 바로 읽기 시작했다. 저녁부터 시작한 독서는 밤을 넘어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졌다. 나는 보통 책을 세 번 읽는다. 첫 번째는 속독으로 전체 흐름을 파악하고, 두 번째는 정독으로 세부 내용을 음미하며, 세 번째는 발췌독으로 중요한 부분을 다시 새긴다. 그러니 엄밀히 말하면 나는 아직 이 책을 다 읽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첫 번째 독서만으로도 충분히 감동받았다. 이 책은 정말로 청소년을 많이 가르쳐본 교사의 책답게, 어려운 개념을 쉽게 풀어내는 재주가 탁월했다. 저자는 20년간 경제, 정치, 법, 사회문화를 가르쳐왔다고 한다. 그 긴 시간 동안 쌓인 교육 현장의 경험이 이 책 곳곳에 녹아 있었다. 한 가지 개념을 설명할 때도, 단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작품을 통해 반복해서, 다른 각도에서, 새로운 예시로 다시 설명해준다.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더라도, 책을 읽어가는 동안 서서히 깨닫게 되는 구조다.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이야기를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읽게 만든다는 점이다. 괴테의 <파우스트>,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이 작품들을 나는 이미 읽었다. 어떤 것은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어떤 것은 대학 시절 수업에서, 어떤 것은 그냥 개인적인 독서로 만났다. 하지만 그때 나는 오로지 문학적 관점에서만 작품을 읽었다. 서사 구조, 상징, 주제 의식, 문체의 아름다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풍성한 독서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내게 묻는다. "정말 그것만으로 충분했나요? 그 이야기 속에 경제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나요?"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 왕은 세 가지 질문을 던진다.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나는 이 질문을 도덕적, 철학적 차원에서만 이해했다. 하지만 저자는 이 질문을 경제학의 세 가지 근본 질문과 연결한다. 무엇을 생산할 것인가, 어떻게 생산할 것인가, 누구를 위해 생산할 것인가. 순간,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문학과 경제학이 사실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선택하고, 그 선택은 어떤 결과를 낳는가. 희소한 자원을 앞에 두고 인간은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하는가. 그 선택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내는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다룬 장도 인상 깊었다. 나는 이 작품을 읽으며 윌리 로먼이라는 한 남자의 비극에만 집중했다. 아메리칸 드림의 환상에 사로잡혀 결국 파멸에 이르는 한 인간의 이야기. 하지만 저자는 이 작품을 GDP와 경제 성장 중심 사회가 개인에게 가하는 압박의 관점에서 읽어낸다. 윌리 로먼은 단지 실패한 개인이 아니다. 그는 경제 시스템이 만들어낸 희생자다. 성장과 생산성만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늙고 쓸모없어진 인간은 버려진다. GDP라는 숫자는 상승할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윌리 로먼 같은 사람들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있다. 이 해석을 읽는 순간, 나는 소름이 돋았다. 문학 작품이 이렇게 경제 비평이 될 수 있다니.이제 나는 다짐한다. AI를 켜놓고, 용어를 정리하면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겠다고. 두 번째 독서에서는 더 꼼꼼하게, 세 번째 독서에서는 내 삶과 연결하며 읽어보겠다고. 인버스도 몰랐던 경제 포기 여인이, 이제는 경제 좀 아는 여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이 책이 다루는 24편의 서양 고전 중에는 내가 이미 읽은 작품도 많고, 아직 읽지 않은 작품도 있다. 읽었던 작품은 이제 새로운 눈으로 다시 읽어볼 생각이다. 경제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보면, 분명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일 것이다. 읽지 않은 작품은, 이 책을 가이드 삼아 찾아 읽어볼 것이다. 책 곳곳에 포함된 이미지와 시각 자료도 큰 도움이 되었다. 단순히 텍스트만 읽는 것보다 훨씬 이해가 빠르고 몰입도 잘 되었다. 책을 통해 나처럼, 인버스도 몰랐던 사람이 경제를 향해 한 걸음 내딛게 되는 그 순간의 설렘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