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속 숨은 경제학 - 서양 고전 24편으로 읽는 경제 이야기
박정희 지음 / 더로드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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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젯밤 냉장고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남은 된장찌개를 데워 먹을 까, 라면을 끓일까. 별것 아닌 선택 같지만, 그 순간 나는 시간과 맛과 건강을 저울질하고 있었다. 5분을 아끼면 라면이지만 속은 불편할 것 이고, 된장찌개는 영양은 있지만 설 거지가 귀찮다. 결국 라면을 선택 했고, 그 대가로 자정이 넘어 속쓰림을 감수했다. 이게 경제학이라니. 이렇게 사소한 망 설임 하나하나가 말이다. 경제학 강의를 들을 때는 몰랐다. 교수님이 철판 가득 그린 수요곡선과 공급곡선이 대체 내 삶 과 무슨 상관인지. 균형가격이 어쩌고 탄력성이 어쩌고 하는 말들은 시험 직전 외웠다가 시험 직후 깔끔하게 잊어버리는 것 들이었다. 그 런데 소설 속 인물들의 선택을 따라가다 보니, 그 모든 개념이 갑자기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 이게 이런 뜻이었구나. 숫자가 아니라 삶 의 무게였구나.

문학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 안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고, 때로는 어리석고, 욕망과 두려움 사이에서 흔들 리는 사람들. 그 들의 선택이 때로는 공감되고 때로는 답답했지만, 어쨌든 그 모든 것 이 '이해'되었다. 반면 경제학은 늘 차 가웠다. 합리적 선택이라는 전 제부터가 비현실적이었다. 인간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으니까. 감정 에 휘둘리고, 후회하 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니까. 그런데 이 두 세계 가 만날 수 있다는 걸, 아니 애초에 하나였다는 걸 깨달았을 때의 충격 이란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고리오 영감이 딸들에게 모든 것을 퍼부으 며 파산하는 과정은 비합리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제적 선 택이었다. 그는 딸들의 사랑이라는 '재화'를 얻기 위해 자신 의 모든 자산을 투자한 것이다. 다만 그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 이 맞지 않았을 뿐. 딸들이 원한 건 아버지의 돈이었지 아버지의 존재가 아니 었으니까. 요즘 자주 생각한다. 왜 우리는 배 울 때와 사는 것을 분리 해왔을까. 학교에서 배운 지식은 시험지 위에만 존재하고, 실제 삶은 또 다른 곳에서 굴러간다고 여겼다. 경제학은 경제학과 학생들의 것이 고, 문학은 문학도들의 세계라고. 하지만 매일 아침 출근길에 커피를 살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퇴사를 결심하면서 안정과 자유를 저울질하 는 것도, 모두 경제적 의사결정이다. 그리고 그 모든 순간에는 이야기가 있다.

매몰비용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는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과 거에 투입한 비용은 의사결정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원칙. 합리적으로 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3년을 사귄 연인과 헤어질지 말지 고민할 때, "이미 들인 시간은 생각하지 말고"라는 조언이 얼마나 공허하게 들 리는지.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속 인물들이 과거에 집착하며 변화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비로소 매몰비용의 무게를 이해 했다. 그건 단순히 손해를 인정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아니라, 자신 이 살아온 시간의 의미를 부정하고 싶지 않은 인간적인 몸부림이었다. 동생이 최근 주식으로 큰 손해를 봤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오를 것 같아서"라는 말을 수없이 반복했다. 경제학적으로는 명백한 오류다. 손절해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 하지만 그 말 속에는 희망과 자기합리 화와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실패가 뒤섞여 있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향해 쌓아 올린 환 상의 성처럼, 동생도 오르지 않을 주식에 계속 의미를 부여하고 있었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심의 문제였고, 경제적 손실이 아니라 심리적 붕괴를 두려워한 것이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많이 마주하는 경제 개념은 아마도 기회비용일 것이다. 이 회의에 참석하면 그 시간에 할 수 있었던 업무를 포기하는 것이고, 이 프로젝트를 선택하면 저 프로젝트는 미뤄지는 것이고. 삶 의 모든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자주 '둘 다'를 원한다. 맥베스가 왕위와 양심을 둘 다 지키려다 결국 둘 다 잃 었듯이, 나 역시 많은 것 을 움켜쥐려다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낸 것들 이 많다. 문학이 경제학을 만났을 때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선사해 준 다. 서점에서 경제경영 코너를 지날 때마다 느끼는 압박감이 있었 다. 읽어야 할 것 같은데 읽고 싶지 않은 것들이 생각난 다. 중요한 것 같은데 재미없을 것 같은, 하지만 문학 코너에서 우연히 집어 든 책 속 에서 경제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이란 이루 말 할 수 없다. 내가 찾던 언어가.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로, 그래프가 아니라 감정으로 설명되는 경제이야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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