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는 어떻게 부와 권력을 이끄는가 - 부의 흐름을 포착하는 풍수의 비밀
김두규 지음 / 해냄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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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린 시절, 할머니는 새집을 구할 때마다 반드시 동네 어르신 한 분을 모시고 가셨다. 그분은 대문 앞에서 한참을 서 계시다가, 집 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고개를 끄덕이거나 저으셨다. 그때는 그저 미신적인 관습쯤으로 여겼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수천 년을 이어온 생존의 지혜였다. 햇빛은 잘 드는지, 바람은 어떻게 통하는지, 물은 어디로 흐르는지를 감각으로 읽어내는 행위. 그것이 바로 풍수의 시작이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풍수는 여전히 살아 숨 쉰다. 재벌 총수가 사옥을 옮기고, 정치인이 선산을 이장하며, 평범한 직장인이 새 아파트를 계약할 때조차 우리는 무의식중에 '기운'을 따진다. 이것이 미신일까, 아니면 현대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또 다른 차원의 지식 체계일까. 김두규 교수의 책을 읽 으며 나는 이 질문 앞에서 한동안 멈춰 섰다.


흥미로웠던 대목은 삼성 서초사옥에 관한 이야기였다. 직육면체 박스들이 맞물린 형태가 풍수적으로 '비어 있고 깨진 모양의 흉상이라는 분석. 그리고 그 이후 이어진 오너 일가의 시련들. 물론 이것을 단순한 인과관계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건축물의 형태가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심리와 에너지 흐름에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현대 건축학에서도 공간 심리학이라는 분야가 있지 않은가. 천장의 높이, 창문의 위치, 복도의 구조가 인간의 감정과 생산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 풍수는 이를 수천 년 전부터 직관적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 설명 방식이 '기의 흐름'이라는 동양적 언어로 표현되었을 뿐이다. 강남역 부근의 물난리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복개된 물길, 막힌 수구. 풍수적 관점을 차치하더라도 이는 명백한 도시계획의 실패다. 하지만 풍수는 이를 단순히 토목공학의 문제가 아니라 "땅의 호흡'이 막힌 것으로 본다. 그리고 그 해법 역시 단순한 배수로 확장이 아니라 '옛 물길의 복원'이라는 자연 친화적 접근을 제시한다.

풍수와 회화의 관계는 신선했다. 중국 송나라 화가 곽희의 말처럼, 좋은 그림은 자연 그 이상이 될 수 있다. 나는 미술을 시각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로만 여겼는데, 풍수적 관점에서 보면 그림은 '기가 생동하는 또 다른 자연'이다. 황주리 화가의 '그대 안의 풍경' 분석은 흥미로웠다. 커피 잔이 수구이고, 비둘기가 기구라는 해석. 처음에는 다소 견강부 회처럼 느껴졌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림을 보는 또 하나의 깊이 있는 방법이었다. 우리는 왜 어떤 그림 앞에서 오래 머물고, 어떤 그림은 스쳐 지나갈까. 그것은 취향의 문제만이 아니라, 그림이 발산하는 에너지와 우리의 내면이 공명하는지 여부일 수 있다. 김병종 화가의 '화홍산수' 연작에서 붉은 꽃이 기구라는 설명도 그렇다. 그림 속 붉은 점 하나가 관람자의 시선과 상상력을 끌어들이는 입구라는 관점. 이는 미술 감상에 새로운 차원을 더한다. 우리는 그림을 볼 때 무엇을 보는가. 물감의 배치인가, 형태의 조화인가, 아니면 그 너머의 무언가인가.


사주와 풍수를 '시간의 학문'과 '공간의 학문'으로 구분한다. 인간의 운명은 태어난 시간(사주)과 사는 공간(풍수)의 합작품이라는 것. 융이 던진 질문,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동양적 답변이 바로 이것이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운명의 주인이라고 믿는다. 노력하면 성공하고, 계획하면 이를 수 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얼마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통제 밖에 있는가. 어느 시대에 태어났는지, 어느 나라 어느 동네에서 자랐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지. 이 모든 '우연'들이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을 만든다. 대통령의 생가와 선영에 대한 풍수 분석은 흥미로우면서도 조심스러웠다. 폐쇄적인 지형, 강한 기운, 서쪽으로 흐르는 물. 이것들이 정말로 한 사람의 성격과 운명을 결정하는가. 아니면 그저 사후적 해석에 불과한가.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우리가 자란 환경은 우리의 세계관과 성격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 풍수는 이를 땅의 형세와 물의 흐름으로 설명할 뿐이다.

보석과 풍수의 관계는 책에서 가장 예상 밖의 주제였다. 보석을 장신구가 아니라 땅 속 깊은 곳에서 생성된 응축 기운으로 보는 시각. 중세 독일의 힐데가르트 수녀가 보석으로 질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 자수정이 술에 취하지 않게 한 다는 전설, 진주를 갈아 먹던 서태후의 미용법 등. 현대 과학은 이를 플라시보 효과나 미신으로 치부할 것이다. 하지만 보석이 특정한 진동 주파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수정 시계가 작동하는 원리를 생각해본다. 그렇다면 보석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박정희 대통령이 익산에 보석단지를 조성하려 했던 구상은 수출 진흥 차원을 넘어선 것이었을지 모른다. 보석 산업은 작은 부피에 큰 가치를 담는, 가장 효율적인 산업 중 하나다. 그리고 그것은 경제적 가치만이 아니라 문화적, 상징적 가치를 동시에 지닌다. 조선시대에 보석 문화가 쇠퇴한 것은 경제적 이유만이 아니라 '산을 중시하고 물을 경시한' 풍수관과도 관련이 있다는 분석은 통찰력 있다.


책을 읽으며 내내 고민했던 질문은 이것이다. 풍수는 과학인가, 미신인가. 아니면 그 둘 사이의 무언가인가. 저자는 풍수를 '지성의 구조'라고 정의한다. 하늘과 땅의 관계를 사유하고, 그 안에서 인간의 삶을 재배치하려는 지적 체계라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풍수는 오히려 현대의 환경심리학, 도시계획학, 건축학과 맞닿아 있다. 다만 그 언어 체계가 다를 뿐이다. 현대 과학이 '통풍, 채광, '동선'이라고 말하는 것을 풍수는 '기의 흐름', '명당, '수구'라고 표현한다. 본질은 같되 표현이 다른 것이다. 물론 풍수의 모든 것이 과학적으로 검증 가능한 것은 아니다. 조상의 묘 자리가 후손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동기감응설'은 현대 과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가 있을까. 현대 물리학의 양자얽힘 현상도 한때는 '으스스한 원격작용'이라고 비판받지 않았던가.


풍수는 '읽기'의 기술이다. 땅을 읽고, 물을 읽고, 바람을 읽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읽어낸다. 이것은 환경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는 생태학적 지혜다. 강남역 물난리의 해법이 복개된 물길의 복원이라는 것, 삼성 사옥의 문제가 건축 형태에 있다는 것, 좋은 그림이 공간의 기운을 바꿀 수 있다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있다.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지 말고, 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보이지 않는 것에도 귀 기울이라는 것이다. 책을 덮으며 문득 깨달았다. 현대인이 잃어버린 것 중 하나가 바로 '보이지 않는 것을 느끼는 능력'이라는 것을, 우리는 측정 가능한 것, 증명 가능한 것만을 믿으려 한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늘은 대부분 측정 불가능하다. 사랑, 행복, 평안, 그리고 어쩌면 '기운 ' 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풍수는 우리에게 묻는다. 내가 사는 공간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가. 아침에 들어오는 햇빛의 각도, 창문 너머로 보이는 산의 모양, 집 앞을 흐르는 물의 방향. 이 모든 것이 당신의 하루하루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은가. 할머니가 새집을 구할 때마다 어르신을 모시고 가던 그 행위는, 어쩌면 단순한 미신이 아니라 삶의 터전을 선택하는 데 있어 최대한의 신중함을 기하려는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신중함 속에는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풍수가 정말로 부와 권력을 이끄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하다. 풍수는 우리에게 우리가 사는 공간 을, 우리가 딛고 선 땅을,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자연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응시 속에서 우리는 어쩌면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땅과 하늘과 인간이 하나였던, 그 오래된 조화의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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