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덜 갖는 삶에 대하여 - 돈과 물건에 휘둘리지 않고 사는 법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김슬기 옮김 / 유노북스 / 2026년 1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젯밤 옷장을 열었을 때 또다시 그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옷은 넘쳐나는데 입을 게 없다는 느낌. 이건 단순히 옷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는 어떤 아이러니다. 더 많이 가질수록 더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 기묘한 현상은 대체 어디서 시작된 걸까. 저자인 코이케 류노스케가 제시하는 관점은 명쾌하다.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적게 가져서가 아니라, 기준 없이 너무 많이 가져서라는 것, 마치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계속 먹는 것처럼, 우리는 무엇이 필요한지 모른 채 계속 채워 넣고 있는지도 모른다.
저자가 던지는 비유가 인상적이다. 디즈니랜드에서 2시간 줄 서서 1분짜리 놀이기구를 타는 것. 우리의 소비 패턴이 정확히 그렇다. 한 달 월급을 모아 명품 가방을 사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는 그 순간의 쾌감은 얼마나 지속될까. 일주일? 한 달? 그리고 나면 또 다른 무언가가필요해진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가지지 않는 삶'에 대한 영적 통찰이었다면, 코이케의 접근은 좀 더 현실적이다. 그는 청빈을 강요하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것은 제대로 사라고, 품질 좋은 것을 오래 쓰라 고 말한다. 중요한 건 소유의 양이 아니라 소유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라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물건을 살때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이것만 있으면 행복할 것 같아." 하지만 정작 그걸 손에 넣고 나면 행복보다는 다음 타깃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지평선을 향해 달려가는 것처럼, 도착할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우리는 계속 달리고 있는 건 아닐까.
흥미로운 건 저자가 과소비만큼이나 과도한 절약도 문제라고 지적한다는 점이다. 미래의 불안 때문에 현재 필요한 것조차 사지 못하는 사람들. 노후를 위해 저축한다며 지금 당장 필요한 치과 치료를 미루고, 낡은 신발을 신고 다니며 발을 다치는 사람들. 이것도 결국 돈에 휘둘리는 삶이라는 것이다. 절약이라는 이름의 인색함과 소비라는 이름의 낭비는 사실 같은 뿌리에서 나온다. 둘 다 돈을 기준으로 삶을 재단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짜 자유는 돈이 많아서 오는 게 아니라, 돈의 유무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에서 온다. 이 말이 처음엔 공허하게 들렸지만, 곱씹을수록 진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주변을 보면 월급이 비슷한데 누군가는 늘 쪼들리고, 누군가는 여유 있게 산다. 차이는 얼마를 버느냐가 아니라 무엇에 돈을 쓰느냐, 그리고 그 선택에 얼마나 확신이 있느냐의 문제다. 확신이 없으니 계속 비교하고, 비교하니 불안하고, 불안하 니 더 사거나 더 아끼게 되는 악순환이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음에 와닿았던 건 이 부분이다. "우리는 물건을 소유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탱하려 한다." 자격증, 학력, 직업, 심지어 인간관계까지도 일종의 소유물로 여긴다는 것. '가지고 있다'는 사실로 나의 존재를 증명하려는 마음. 이건 정말 뼈아픈 지적이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자신을 '명함'으로 소개한다. 어느 학교 나왔고, 어느 회사 다니고, 어떤 차를 몰고, 어디에 사는지. 그 목록이 나를 규정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목록 중 하나라도 사라지면 나는 흔들린다. 회사를 그만두면 불안하고, 연인과 헤어지면 공허하고, 명품 가방이 유행이 지나면 초라해진다. 반면 법정 스님은 송광사 작은 방에서 책 몇 권, 찻잔 하나로 살았지만 누구보다 단단한 존재감을 가지셨다. 그건 소유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자신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코이케가 말하는 '덜 갖는 삶'도 결국 이 지점을 향한다. 소유로 자신을 채우지 않아도 되는 자유다.
저자가 전달하는 또 하나 중요한 통찰은 우리가 진짜 집중하는 시간은 1초 중 0.2~0.3초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다. 뒤집어 말하면 평소엔 그 정도조차 집중하지 못하니 행복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는 얘기다. 이 관점에서 보면 명품 가방보다 중요한 건 지금 마시는 차 한 잔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다. 비싼 레스토랑보다 중요한 건 함께 앉은 사람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10만 원짜리 옷을 10벌 사는 것보다, 100만 원짜 리 옷 한 벌을 제대로 골라 오래 입는 게 나은 이유도 여기 있다. 선택과 집중. 결국 삶의 본질로 돌아가는 얘기다. 요즘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해한다. 물건을 무조건 적게 가지는 게 목표가 아니다. 저자도 강조하지만, 필요한 건 제대로 갖추되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를 빼앗기지 않는 것. 100개의 싼 물건보다 10개의 좋은 물건. 양보다 질 이라는 오래된 진리가 여기서도 통한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비움'에 방점을 찍었다면, 코이케의 접근은 '채움의 질'에 집중한다. 하지만 둘은 결국 같은 지점을 가리킨다. 외부의 것으로 내면을 채우려는 시도의 허무함. 진짜 풍요는 소유가 아니라 만족에서 온다.
요즘 집을 정리하면서 느끼는 게 있다. 물건을 버리면 공간이 생기고, 공간이 생기면 마음도 여유로워진다는 것. 옷장을 절반으로 줄이니 아침에 옷 고르는 시간이 줄었고, 책장을 정리하니 정말 읽고 싶은 책이 보인다. 비워야 보인다는 말이 이제야 실감난다. 저자가 말하는 '덜 갖는 삶'은 결핍이 아니라 선택이다. 무엇을 가질지보다 무엇을 가지지 않을지 결정할 수 있는 자유. 100가지 선택지에 시달리기보다 10가지로 줄이면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다. 역설적이지만 제한이 자유를 가져온다. 법정 스님은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풍요롭게 산다"고 하셨다. 코이케 역시 같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한다. 덜 가져도 충분히 풍요로울 수 있다고. 중요한 건 소유의 양이 아니라 소유를 대하는 마음의 자세라고 말이다. 소유는 근본적인 불안을 해소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이 가져도 결국 '교환 가능한 것'만 늘어날 뿐이다. 진짜 필요한 건 교환할 수 없는 것들. 내면의 평화, 관계의 깊이, 순간에 대한 집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