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은 생각한다 - 인간은 동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리하르트 다비트 프레히트 지음, 박종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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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과 동물의 관계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재정의되어 왔다. 석기시대 사냥꾼들은 자신을 자연의 일부로 여겼고, 동물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인식했다. 그들에게 동물은 먹잇감만이 아니라 함께 생존의 전장을 누비는 동반자였다. 신석기 혁명 이후 농경과 목축이 시작되면서 이러한 관계는 근본적으로 변화했다. 동물은 이제 이용의 대상이 되었고, 인간의 필요에 따라 사육되고 길들여지는 존재로 전락했다. 이러한 변화는 경제적 관계의 변동에 그치지 않았고, 동물에 대한 인식의 전 환은 철학적, 종교적 사유 체계 전반에 걸쳐 일어났다. 일신교가 등장하면서 인간은 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특별한 존재로, 동물은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피조물로 규정되었다. 헤라클레이토스가 제시한 '로고스' 개념은 이성적 능력을 가진 인간과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 사이에 넘을 수 없는 장벽을 세웠다. 이 장벽은 2천년 넘게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루며, 동물 착취를 정당화하는 철학적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계몽주의와 함께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동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단순하지만 강력한 통찰이 도덕적 고려의 범위를 확장했다. 제레미 벤담은 문제는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고통받을 수 있는가"라고 물으며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동물의 도덕적 지위를 옹호했다. 20세기 들어 피터 싱어와 같은 철학자들은 '종 차별주의'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 중심주의를 비판하며, 동물에게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현대 신경과학과 동물행동학의 발전은 이러한 철학적 논의에 과학적 근거를 제공한다. 침팬지의 도구 사용, 코끼리의 애도 행동, 까마귀의 문제 해결 능력 등은 동물의 인지 능력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동물을 단순한 자극-반응 기계로 볼 수 없다. 그들은 감정을 느끼고, 관계를 맺고, 고통을 기억하며, 미래를 예 측하는 주체적 존재다. 현대인의 동물에 대한 태도는 극단적인 모순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반려동물에게는 가족과 다름없는 애정을 쏟으면서, 동시에 매년 수백억 마리의 동물을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서 생산하고 소비한다. 개와 고양이에게는 최고급 사료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돼지와 소에게는 평생 몸을 돌릴 수조차 없는 좁은 우리를 제공한다. 이 극명한 이중 잣대는 우리의 윤리적 체계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일관성이 없는지를 드러낸다. 이러한 모순은 심리적 방어 기제를 통해 유지된다. 우리는 고기를 먹을 때 그것이 한때 살아 있던 생명체였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망각한다. 포장된 고기는 도축장의 현실과 단 절되어 있고, 우리는 그 단절을 편안하게 받아들인다. 프레히트가 지적하듯,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축장 내부를 본 적이 없다." 보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 책임감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모르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다. 현대 공장식 축산의 실상은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이 미치는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 닭은 평생 A4 용지보다 좁은 공간에서 살다가 도축된다. 돼지는 새끼를 낳기 위해 임신 틀에 갇혀 움직일 수조차 없다. 송아지는 태어나자마자 어미와 분리되어 우유를 빼앗긴다. 이런 시스템에서 동물은 생명이 아니라 생산 단위, 상품일 뿐이다. 더욱 문제적인 것은 이 착취 시스템이 법적으로 정당화된다는 점이다. 동물보호법은 동물에게 고통을 가하는 것을 금지하면서도, '합리적 이유'가 있으면 허용한다고 규정한다. 그런데 '합리적 이유'의 범위는 너무 넓다. 경제적 이익, 과학적 연구, 심지어 취미 활동까지 도 합리적 이유가 될 수 있다. 매년 수백만 건의 동물 실험이 정말 모두 필요한가? 화장품 테스트를 위해 토끼의 눈에 화학 물질을 떨어뜨리는 것이 합리적인가? 이러한 질문에 우리는 정직하게 답해야 한다. 채식주의자와 비건의 증가는 이러한 모순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보다 동물의 권리 에 더 민감하다. 이들은 동물 착취가 환경 파괴, 기후 변화, 건강 문제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한다. 육식 중심 의 식생활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개인적 실천을 통해 변화를 만들려고 한다.

동물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철학적 전환이 필요하다. 프레히트가 제안하는 '무지의 윤리'는 이러한 전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동물의 내면 세계에 대해 실제로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소나 달팽이가 무엇을 느끼고 경험하는지 확실히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무지를 인정하고, 그들의 경험을 존중하는 신중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 확실히 알 수 없기 때문에 더욱 조심스럽게 행동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단순하게 동물을 인간과 비교하는 것을 넘어선다. 전통적 동물권 논의는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비슷한지를 기준으로 도덕적 지위를 부여했다. 침팬지는 인간과 유사하므로 높은 도덕적 지위를, 곤충은 그렇지 않으므로 낮은 지위를 부여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것도 여전히 인간 중심적 사고다. 새로운 윤리는 인간과의 유사성이 아니라, 각 생명체의 고유한 가치와 존엄성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법적 차원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동물을 '물건'으로 규정하는 민법의 조항은 시대착오적이다. 동물보호법이 동물을 '공동 피 조물'로 인정한다면, 법적으로도 주체로 대우해야 한다. 이는 동물에게 인간과 동등한 권리를 부여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생명권, 자유권, 고통받지 않을 권리 등 기본적인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자는 것이다. 일부 국가에서 이미 유인원에 게 특별한 법적 지위를 부여하거나, 돌고래 포획을 금지하는 등의 조치가 시행되고 있다.

결국 동물 윤리의 문제는 동물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지, 우리의 도덕적 상상력이 얼마나 확장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다. 동물을 더 인간적으로 대우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 자신을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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