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범의 다시 만난 음악 나의 두 번째 교과서 시즌 2
조윤범 지음, EBS 제작팀 기획 / 영진.com(영진닷컴)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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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클래식 음악을 '모른다'고 생각했던게 아니라 '외면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렵다는 말 뒤에 숨어, 알아보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마치 오래전 헤어진 친구를 우연히 마주쳤을 때처럼, 클래식은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영화관 스크린 너머 슬픔이 밀려올 때, 카페 한구석에서 커피 향과 섞여 흐를 때, 지친 하루의 끝에서 나를 토닥이던 그 멜 로디들.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순간들이 사실은 클래식과의 만남이었다. 우리는 왜 클래식 앞에서 주눅이 드는 걸까. 어쩌면 그것은 '알아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바로크가 언제 시작되었는지, 소나타 형식이 무엇인지 시험지처럼 묻는 순간, 음악은 더 이상 음악이 아니게 된다. 하지만 음악은 원래 시험이 아니었다. 누군가의 심장이 뛰 던 리듬이었고,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던 감정의 언어였으며, 시대를 견디고 살아남은 인간의 목소리였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보면 어떨까. 클래식을 '공부'하려 하지 말고, 그저 '만나보는 것이다. 한 곡 한 곡이 품고 있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 담긴 작곡가의 숨결을 느껴보는 것. 마치 오랜 편지를 읽듯, 천천히 그 감정의 결을 따라가 보는 것. 그렇게 클래식과 화해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음악이 선물하는 진짜 행복과 마주하게 된다. 책은 우리를 클레식의 세계로 안내 한다.


음악에는 시간이 겹겹이 쌓여 있다. 18세기 빈의 촛불 아래에서 모차르트가 펜을 들던 순간, 19세기 파리의 살롱에서 쇼팽이 피아노 건반을 어루만지던 순간, 그리고 21세기 지금 이곳에서 이어폰을 꽂고 그 곡을 듣는 우리의 순간까지. 클래식은 그렇게 시간의 경계를 허물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바로크 시대의 음악이 고전파로 흐르고, 다시 낭만주의로 번져나가는 과정은 형식만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였고,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의 진화였다. 바흐의 엄격하고 질서 정연한 푸가 속에는 신에 대한 경외가, 베토벤의 격정적인 교향곡 속에는 운명에 맞서는 인간의 의지가, 차이콥스키의 애절한 선율 속에는 금지된 사랑의 아픔이 녹아 있다.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악기들의 조화는 인간 사회의 축소판 같다. 현악기의 따스한 울림, 목관악기의 서정적인 노래, 금관악기의 웅장한 외 침, 그리고 타악기의 명확한 리듬. 각자의 개성을 지닌 악기들이 하나의 목소리를 만들어내기 위해 숨을 맞출 때, 우리는 조화라는 것의 진정한 아름다움을 목격한다. 그것은 마치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과정과 닮아 있다. 실내악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소수의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친밀한 대화. 현악 사중주에서 첼로가 깔아주는 저음 위로 바이올린이 속삭이듯 노래할 때, 우리는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섬세한 교감을 엿듣게 된다. 그것은 마치 친구와 나누는 깊은 밤의 대화처럼, 크지 않지만 진실한 울림으로 가슴에 닿는다.

협주곡을 들을 때면 나는 종종 인생을 떠올린다. 혼자서 맞서야 할 때와 누군가와 함께 나아가야 할 때의 균형. 독주자는 오케스트라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려 애쓰고, 때로는 그 물결에 몸을 맡기며 더 큰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 아닐까. 때로는 주인공으로, 때로는 조연으로, 그러나 언제나 전체의 일부로서 살아 가는 우리의 모습이다. 오페라는 클래식의 세계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장르다. 노래와 연기, 무대미술과 의상이 어우러져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창조한다. 푸치니의<라 보엠>에서 미미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 비제의 <카르멘>에서 열정이 비극으로 치닫을 때, 우리는 무대 위의 이야기가 곧 우리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사랑과 질투, 배신과 용서, 야망과 좌절.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감정의 스펙트럼이 오페라 무대 위에서 펼쳐진다. 흥미로운 것은 오페레타라는 형식이다. 무겁고 진 지한 오페라와 달리, 오페레타는 유머와 풍자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삶이 늘 무거운 것만은 아니듯, 예술 역시 때로는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박쥐>를 들으며 웃고, 오펜바흐의<천국과 지옥>에서 경쾌한 캉캉 을 만날 때, 우리는 클래식이 결코 먼 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

음악이 울려 퍼지는 공간은 건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빈의 무지크페라인, 밀라노의 라 스칼라,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 이 공연장들은 수백 년의 역사를 품고 있으며, 그 안에서 수많은 거장들이 연주했고, 수많은 관객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벽면에 스며든 음향, 객석에 남은 박수 소리, 무대 위에 서린 연주자들의 숨결. 공연장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 이자 음악의 집이다. 공연장에서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특별한 의식이다. 어둠이 내리고 조명이 무대를 비출 때,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로지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시공간으로 이동한다.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한 정적 속에서, 첫 음이 울려 퍼지는 순간의 전율. 그것은 음원으로 듣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공기의 진동이 피부로 전해지고, 악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생생한 에너지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관객으로서의 예의도 음악을 완성하는 일부다. 연주가 끝나기 전에는 박수를 참고, 악장 사이의 침묵을 존중하며, 연주자와 함께 숨 쉬는 시간. 이 모든 것이 음악을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클래식 공연장은 음악과 청중이 하나가 되는 신성한 공간이며, 그 안에서 우리는 예술이 주는 최고의 선물을 받는다.

음악가들은 자신이 살던 시대를 외면할 수 없었다. 쇼스타코비치는 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 두려움과 저항을 동시에 악보에 새겼고,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의 이상을 교향곡으로 표현하려 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 속에서 많은 작곡가들은 망명길에 올랐고, 어떤 이들은 저항의 음악을 만들었으며, 또 어떤 이들은 침묵을 선택했다. 음악은 때로 정치적 도구가 되기도 했지만, 더 자주 인간성의 마지막 보루가 되었다. 수용소에서도 음악은 연주되었고, 폭격 속에서도 콘서트는 계 속되었다. 사람들은 절망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갈구했고, 음악은 그 갈망에 응답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힘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우리를 끝까지 지켜주는 힘이다. 작곡가들이 자신의 신념을 음악에 담았을 때, 그들은 단순히 아름다운 선율을 만드는 것을 넘어섰다. 그들은 역사를 기록했고, 저항했으며, 희망을 노래했다. 우리가 그 음악을 들을 때, 우리는 단지 과거의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대화 속에서 우리는 현재를 돌 아보고 미래를 상상하게 된다.


인공지능이 작곡을 하는 시대가 왔다. 수많은 클래식 악보를 학습한 AI는 바흐 스타일의 푸가를, 모차르트 풍의 소나타를 만들어낼 수 있다. 기술적으로 완벽하고, 이론적으로 흠잡을 데 없는 음악. 그렇다면 이것이 진정한 음악일까? 음악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다. 베토벤이 교향곡을 쓸 때, 그는 화음의 규칙만을 따른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쏟아부었다. 청력을 잃어가는 고통, 사랑에 대한 갈망, 운명에 대한 분노와 승리. 그 모든 인간적인 감정이 음표로 변환되었을 때 비로소 불멸의 음악이 탄생했다. AI는 패턴을 학습할 수 있지만, 고통을 겪을 수는 없다. 사랑에 빠질 수 없고, 절망할 수도 없다. 그러나 기술을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 AI는 음악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도구가 될 수 있고,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 예술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조하는 것임을 기억하는 일이다. 궁극적으로 음악을 만드는 것도, 그것에 감동하는 것도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시간을 초월한 대화에 참여하는 일이다. 수백 년 전 누군가가 남긴 감정의 메시지를 오늘 여기에서 받아보는 일. 그리고 그 메시지 속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고, 위로받고, 때로는 도전받는 일이다. 어렵다고 생각했던 음악이 사실은 가장 인간적인 언어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문 앞에 서게 된다. 그 문을 여는 데 필요한 것은 특별한 지식이 아니라 열린 마음이다. 한 곡을 온전히 집중해서 들어보는 용기, 낯선 감정과 마주할 준비, 그리고 아름다움 앞에서 감동할 수 있는 순수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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