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5분 명언 필사 365 - 마음 챙김과 악필 교정을 동시에!
타타오(한치선)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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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침 햇살이 창가에 스며들 무렵, 나는 책상 앞에 앉았다. 손에 쥔 펜의 무게가 묘하게 든든하다. 디지털 기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감각이다. 종이 위에 펜촉이 닿는 순간, 세상이 조금 느려지는 것 같다. "당신이 하루 종일 무엇을 생각하는지가 당신의 일생을 이룬다." 오늘의 문장을 천천히 읽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읽는다. 단어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하루 종일, 생각, '일생'. 평소라면 스쳐 지나갔을 단어들이 오늘은 유독 또렷하게 다가온다. 첫 획을 긋는다. '당'자의 첫 획. 단순해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힘을 주는 강도, 펜을 떼 는 타이밍, 선의 각도. 모든 것이 의식적으로 조율되어야 한다. 평소 휘갈겨 쓰던 글씨와는 차원이 다르다. 정자체는 정직하다. 마음이 산만하면 글자도 흔들리고, 마음이 고요하면 글자도 안정된다.

스마트폰으로 메시지를 보내고, 키보드로 업무를 처리하는 일상. 손으로 글을 쓴다는 행위가 언제부터 이토록 낯설어졌을까. 손글씨는 이제 생일 카드나 특별한 편지를 쓸 때나 등장하는, 희귀한 의례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펜을 쥐고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써 내려가는 동안, 묘한 일이 벌어진다. 손끝에서 뇌로, 뇌에서 다시 마음으로 무언가가 흐른다. 단순히 문장을 베끼는 것이 아니다. 그 문장이 내 안으로 스며든다. 눈으로만 읽을 때는 지나쳤던 의미들이, 손으로 쓰는 동안 비로소 이해된다. '하루의 가장 달콤한 시간은 동트기 전의 새벽에 있다'는 문장을 쓸 때였다. '달콤하다'는 표현이 왜 쓰였을까 생각하며 '달'자를 쓰는데, 문득 어제 새벽 4시에 잠에서 깬 적이 떠올랐다. 세상이 아직 깨어나지 않은 그 고요함. 그것이 달콤함이었구나. 손으로 쓰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 쳤을 깨달음이다.

현대를 살아간다는 것은 빠르게 산다는 것과 같다. 빠른 배송, 빠른 응답, 빠른 성장. 모든 것이 속도를 요구한다. 그 속도에 익숙해지면서, 우리는 천천히 음미한다는 것을 잊어버렸다. 5분. 하루 중 고작 5분이다. 커피 한 잔 마시는 시간, SNS를 스크롤하는 시간보다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5분이 주는 평온함은 몇 시간 분량의 드라마나 영상이 주지 못하는 것이다. 명언을 필사하는 시간은 강제적인 느림이다. 빨리 쓸 수 없다. 정자체로 반듯하게 쓰려면 한 획 한 획에 집중해야 한다. 처음에는 답답했다. 타이핑하면 1분도 안 걸릴 텐데, 왜 이렇게 느리게 써야 하나. 하지만 며칠이 지나자 그 느림이 주는 선물을 알게 되었다. 느리게 쓰는 동안, 생각도 느려진다. 빠르게 지나가던 잡념들이 정리된다. 오늘 해야 할 일, 어제 있었던 일, 내일에 대한 걱정. 그 모든 것들이 잠 시 멈춘다. 지금 이 순간, 이 문장, 이 글자에만 집중한다. 그것이 명상이다.

나는 악필이었다. 학창 시절 필기 노트는 나조차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친구들은 내 글씨를 보고 "의사 될거나"며 농담했다. 그래서 포기했다. 어차피 컴퓨터로 치면 되니까. 손글씨 따위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데 필사를 시작하고 나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처음에는 저자가 써놓은 글자를 그대로 따라 그리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가'자 하나를 쓰는데도 삐뚤빼뚤했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쓰다 보니, 선이 곧아지기 시작했다. 글자 의 균형이 잡혔다. 100일쯤 지났을 때, 처음 썼던 페이지와 비교해보았다. 같은 사람이 쓴 글씨가 맞나 싶을 정 도로 달라져 있었다. 물론 아직도 완벽하지 않다. 가끔 삐뚤어지고, 크기가 들쭉날쭉할 때도 있다. 하지만 분명 나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이 즐겁다. 바른 글씨를 쓴다는 것은 글씨를 바르게 쓰려고 집중하는 그 시간이, 마음을 바르게 세우는 시간이었다. 글자가 반듯해지면서 마음도 반듯해지는 것을 느낀다.

책에는 365개의 명언이 실려 있다. 1년, 매일 하나씩이다. 어떤 날은 공자의 말씀이고, 어떤 날은 인디언 속담이고, 어떤 날은 이름 없는 현자의 지혜다.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그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놀랍도록 비슷하다. "행복은 나비와 같아서 쫓으면 도망가지만, 가만히 있으면 다가와 앉는다." 문장을 쓰는 날, 나는 최근 몇 달 간 얼마나 많은 것을 쫓아다녔는지 깨달았다. 성공, 인정, 성취. 그것들을 붙잡으려 애쓰느라 정작 곁에 있는 작 은 행복들을 놓쳤다. 필사하며 새긴 이 문장은, 그날 하루를 다르게 살게 만들었다. 명언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필사하는 과정에서 더 깊은 의미를 갖는다. 눈으로만 읽으면 좋은 말이네" 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손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쓰다 보면, 그 문장이 내 안에서 질문을 만든다. '이것이 나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나는 이 것을 실천하고 있는가?', '오늘 나는 이 가르침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처음에는 의지로 시작했다. '매일 5분씩 필사하기'라는 목표를 세우고, 달력에 체크 표시를 했다. 놓치는 날도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이유로. 하지만 다시 시작했다. 하루 이틀 놓쳐도 괜찮다. 중요한 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이제 의지가 아니라 습관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앉아 펜을 든다. 이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러워졌다. 오히려 필사를 하지 않으면 하루가 어딘가 허전하다. 석 달쯤 지나자, 습관이 아니라 필요가 되었다. 이 시간이 없으면 하루가 제대로 시작되지 않는다. 마치 아침 세수나 양치질 처럼, 필사는 나의 하루를 여는 의식이 되었다. 작은 루틴이 만드는 변화는 극적이지 않다.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365일이 지나고 돌아보면, 나는 분명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더 차분하고, 더 성찰적이고, 더 중심이 잡힌 사람으로. 필사는 결국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고, SNS의 알림을 무시하고, 오로지 나와 마주한다. 펜을 쥔 나, 종이를 응시하는 나,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스럽게 쓰는 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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