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한국 풍수다 - 대자연활용법 창조론
박무승 지음 / 집사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과학의 시대를 살고 있다. 데이터로 증명되지 않는 것은 미신으로 치부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현상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현대인들은 여전히 '운'을 믿는다. 취업 면접을 앞두고 미역국을 피하고, 중요한 시험 전날 엿을 먹으며, 새해 첫날 해돋이를 보러 가는 것도 결국 보이지 않는 무언가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번에 박무승 저자의 저서를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풍수라는 것이 묘 자리만을 정하는 기술이 아니라 우리 삶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세계관이라는 점이었다. 저자는 개인의 운명부터 국 가의 흥망성쇠까지 모두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이는 극도로 개인주의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어떤 연결성에 대한 통찰처럼 느껴진다. 현대인은 스스로를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로 여긴다. 에어컨과 난방으로 사계절을 무력화시키고, 인공조명으로 밤을 낮처럼 바꾸며, 온라인 공간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팬데믹을 겪으면서 우리는 자연의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풍수가 말하는 '자연과의 조화'는 어쩌면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근본적인 생존 원리일 수도 있다.


저자는 풍수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했다. 1994년 방송 프로그램에서 부모와 자식 간의 기전달을 정자 실험으로 입증했다는 대목은 인상적이다. 전통 지식을 현대 과학의 언어로 번역하려는 시도는 분명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든다. 과학적 증명이 되지 않으면 풍수는 가치가 없는 것일까? 서양 과학은 재현 가능성과 보편성을 중시한다. 같은 조건에서 실험하면 누가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고, 시공간을 초월해 동일한 법칙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런데 풍수가 말하는 '명당'은 지극히 개별적이고 맥락 의존적이다. 특정한 산의 형상, 특정한 방향, 특정한 가문과의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서양 과학의 패러다임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인식론이다. 조선 왕릉 이야기는 이런 복잡성을 잘 보여준다. 당대 최고의 풍수가들이 선정한 왕릉이었지만, 27명의 왕 중 단 7명만이 정상적으로 왕위를 계승했다는 사실. 저자는 이를 중국 풍수의 한계로 설명하지만, 다르게 보면 권력과 정치라는 인간사의 복잡성이 자연의 법칙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명당에 묻힌다 해도 당파 싸움, 외세의 침략, 역병과 기근을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것은 풍수가 미신으로만 치부되지 않고 천 년 넘게 한반도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다. 신행정수도 후보지 선정 과정에서도 ' 배산임수' 라는 이름으로 풍수적 요소가 고려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자연 조건이라 불렀지만, 그 뿌리는 분명 풍수 사상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도 풍수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변형된 채로 살아있는 것이다.


책에서 불편했던 부분은 극단적인 운명론이다. '운이 구, 노력이 일‘이라는 주장은 개인의 노력과 선택을 거의 무의미하게 만든다. 조상의 묘 자리가 잘못되어 있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논리는, 현대적 가치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 시대는 '자수성가'와 '노력의 배신'이 공존하는 시대다. 한편으로는 흙수저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능력주의가 지배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모 찬스와 금수저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풍수의 운명론은 이 불편한 진실, 즉 출발선이 공정하지 않다는 사실을 정면으로 인정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자유주의적 능력주의보다 더 솔직한 세계관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사고방식은 위험할 수 있다. 만약 모든 것이 조상 묘 자리로 결정된다면, 개인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불행은 운명이므로 받아들이고, 행복은 조상 덕분이므로 감사하면 되는가? 이는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무력화시키고, 사회 변화의 동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흥미롭게도 저자는 동시에 '대자연 활용법'이라는 능동적 개념을 제시한다. 자연의 법칙을 이해하고 활용하면 운명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순전한 숙명론과는 다르다. 정해진 운명을 받아들이되, 그 안에서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결국 풍수는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 어디쯤에 위치하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공감했던 부분은 '장소가 힘을 갖는다'는 생각이다. 풍수를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지와는 별개로, 특정한 장소가 특정한 감정과 에너지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으로 안다. 산속 계곡에 있을 때와 도심 빌딩 숲에 있을 때 느껴지는 기분은 분명히 다르다. 어떤 집은 들어서는 순간 편안함을 주고, 어떤 공간은 이유 없이 불안하게 만든다. 현대 건축과 도시계획도 이런 장소의 힘을 인정한다. 채광, 통풍, 조망권, 녹지율 같은 개념들은 결국 사람이 특정 환경에서 더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풍수가 말하는 '배산임수'는 이런 환경심리학적 원리를 수천 년 전에 이미 직관적으로 파악한 것일 수 있다. 등 뒤에 산이 있으면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앞에 물이 있으면 시야가 트여 개방감을 준다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관찰이다. 문제는 이를 개인의 운명이나 국가의 흥망과 직결시킬 때 발생한다. 청와대 터가 명당이 아니어서 대통령들이 불행했다는 주장, 삼성 창업주 묘의 위치가 그룹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분석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통령의 성공과 실패는 정치적 판단, 시대적 상황, 우연한 사건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재벌의 흥망도 경영 전략, 기술 혁신, 시장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수가 완전히 무의미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어쩌면 좋은 환경이 심리적 안정을 주고, 그것이 더 나은 의사결정으로 이어지며, 장기적으로는 성공 확률을 높이는 간접적 영향은 있을 수 있다. 명당에 묻혔다는 믿음이 후손들에게 자신감을 주고, 그것이 실제로 더 적극적인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면, 이것도 일종의 '효과'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저자가 40년간 연구한 결과를 집대성했다는 사실은 존중받아야 할 것이다. 전통 지식을 계승하고 체계화하려는 노력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다. 특히 도선 대사로부터 이어진다는 ' 신안계물형설 '이 한국 고유의 풍수 전통이라는 점은 문화사적으로 중요하다. 중국에서 유입된 지식을 한반도의 지형과 문화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라면, 모방이 아닌 창조적 수용의 역사다. 그러나 전통을 보존하는 것과 그것을 절대적 진리로 주장하는 것은 다르다. 저자는 석가, 공자, 예수를 넘어서야 한다고 말하며, 자신의 '대자연 활용법'이 노벨상급 발견이라고 주장한 다. 이런 과도한 자신감은 오히려 풍수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 풍수는 하나의 문화적 렌즈이지,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만능 이론이 아니다. 더 생산적인 접근은 풍수를 환경 인문학의 한 갈래로 보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이 땅을 어떻게 읽었고, 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었으며, 그것이 삶의 방식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탐구하는 학문으로 말이다. 현대의 환경 위기 시대에 자연을 단순한 자원이 아닌 생명력 있는 존재로 보는 풍수적 관점은 생태 주의와 접점을 찾을 수 있다. 기후변화와 생태계 파괴가 심각한 지금, '대자연 활용법'이라는 개념은 새롭게 해석될 필요가 있다.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흐름을 이해하고 조화롭게 사는 방법. 단기적 이익이 아니라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고려하는 태도. 이런 방향으로 풍수 사상을 재조명한다면, 21세기에도 충분히 의미 있는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