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진 너머의 미래 - 누가 자동차 산업의 패권을 차지할 것인가
안병기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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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2024년 말, 전기차 시장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보장된 듯했던 전기차 산업이 급격한 냉각기를 맞이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코 예상치 못한 일이 아니었다. 업계 안에서 오랜 시간 현장을 지켜본 이들에게 이러한 조정 국면은 충분히 예견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문제는 너무나 많은 기업들이 낙관적 전망에만 의존한채 무리한 투자를 감행했다는 점이다. 전기차의 역사를 되짚어보면 흥미로운 패턴이 발견된다. 1881년 최초의 충전식 전기차 가 등장한 이래, 전기차는 여러 차례 부침을 겪었다. 1900년대 초반 미국에서 운행되던 차량의 38%가 전기차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을 준다. 당시 전기차는 소음과 냄새가 없고 시동이 간편해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 러나 1920년대 포드 모델 T의 등장과 주유소 인프라의 확산으로 전기차는 급속히 쇠퇴했다. 이후 1970년대 오일쇼크, 1990년대 GM의 EV1 등 여러 차례 부활의 기회가 있었지만, 매번 배터리 기술의 한계와 충전 인프라 부족이라는 동일한 장벽에 부딪혔다. 역사는 반복된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전기차가 직면한 근본적 과제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높은 생산 단가, 무겁고 충전 시간이 긴 배터리, 부족한 충전 인프라. 이 세 가지 문제는 1910년대에도, 2020년대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아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소비자 관심과 정부 지원이 부족했던 반면, 현재는 이 두 요소가 어느 정도 충족되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21세기 전기차 부흥의 중심에는 테슬라가 있다. 2003년 설립된 이 회사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2008년 로드스터 출시 당시만 해도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개발 비용 초과로 CEO의 개인 자금이 투입되고, 출시 일정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러나 2009년 미국 에너지부의 4억 6천만 달러 대출과 2010년 나스닥 상장을 통한 자본 조달로 숨통이 트였다. 특히 모델 S의 성공은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테슬라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단 한해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고, 누적 순손실은 65억 달러를 넘어섰다. 2019년 하반기 모델3의 대량생산 안정화로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는 회사 설립 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테슬라의 혁신은 전기차를 만드는 것을 넘어섰다. 태블릿 하나로 차량을 제어하는 시스템, 엔진룸을 트렁크로 활용하 는 발상, 노트북용 원통형 배터리 7천 개 이상을 사용하는 파격적인 배터리 팩 구성. 이 모든 것이 기존 자동차 산업의 상식을 깨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테슬라의 성공은 전기차 산업에 과도한 낙관론을 퍼뜨리는 부작용도 낳았다. 수많은 기업들이 테슬라를 모방하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애플과 다이슨 같은 거대 기술 기업도 전기차 사업에서 손을 뗐고, 코다, 어라이벌, 볼린저 등 수많은 스타트업이 사라졌다. 이들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전기차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과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테슬라가 연 전기차 시대의 문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중국 기업들이었다. 배터리 제조사로 시작한 BYD는 2024년 한 해에만 427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테슬라를 바짝 추격했다. 리샹, 지커, 샤오미, 화웨이 등 다양한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2024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 상위 10개 기업 중 4곳이 중국 기업일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우연이 아니다. 전통 내연기관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진입장벽이 낮은 전기차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했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인프라 투자가 뒷받침되었고, 2024년 말 기준 중국의 공공 충전기는 358만 대로 전 세계 공공 충전기의 70%를 차지한다. 중국 내 전기차는 3,140만 대로 전체 차량의 6.2%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산업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한때 500여 개에 달했던 전기차 스타트업 대 부분이 과도한 경쟁 속에서 부실기업화되었다. 내수 경기 침체로 고급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견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원가 이하로 수출하며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부동산 기업 다의 전기차 사업 실패는 상징적이다. 6억 달러를 투자하고 한국과 일본의 고급 인력을 대거 영입했지만, 막대한 부채와 경험 부족으로 결국 파산했다. BYD조차도 부품사 미지급금 문제, 대규모 리콜, 빈번한 화재 사고 등으로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위기는 단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전기차 생산과 판매의 60% 이상이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중국발 리스크는 곧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체의 악재가 될 수 있다.


한때 세계 자동차 산업을 주름잡던 디트로이트 빅3의 현 상황은 참담하다. GM은 2000년대 초 839만 대로 압도적 1위 였지만 2024년에는 600만 대로 줄어 5위로 밀려났다. 포드는 387만 대로 8위에 그쳤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GM과 크라이슬러가 파산하고 정부 구제금융을 받았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경쟁력은 더욱 약화되었다. 빅3의 몰락 원인은 복합적이다. 경직된 조직문화, 고비용 구조, 소비자를 고려하지 않은 전략, 그리고 과거 성공에 안주한 태도. 2005년 당시 GM, 포드, 크라이슬러는 생산하지 않는 노동자 1만 2천 명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잡스 뱅크 제도로 4년간 31억 달러를 썼다. 2008년 구제금융을 요청하러 가면서 회사 전용기를 타고 간 CEO 들의 모습은 방만한 경영의 상징이 되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미래 기술에 대한 준비 부족이다. 전기차 시대를 맞아 필요 한 기술 내재화 없이 부품사에만 의존하는 전략은 한계를 드러냈다. 수십 년간 함께 해온 신뢰할 만한 부품사들이 있었지만, 전기차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서는 완성차 업체의 명확한 리더십이 필요했다. 그러나 빅3는 그런 리더십을 갖추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조업 부활 정책이 효과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 오랜 기간 서서히 침몰한 제조업이 몇 년 만에 회복될 수 있을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전기차 보급 확대의 핵심 수단은 정부 보조금이었다. 미국은 2008년부터 최대 7,500달러의 세액공제를 제공했고, 한국도 2005년부터 하이브리드에 최대 310만 원, 전기차에는 더 큰 보조금을 지급했다. 이러한 보조금 정책은 초기 시장 형 성에 기여했지만, 동시에 심각한 부작용도 낳았다. 가장 큰 문제는 보조금이 전기차의 근본적 경쟁력 확보를 지연시켰다는 점이다. 2025년 현재 아이오닉5와 6은 동급 내연기관 대비 45~70% 더 비싸다. 보조금을 받아도 가격 차이가 크다. 20년 넘게 보조금이 지급되었지만 전기차 가격은 여전히 높다. 이는 2.6%의 전기차 소유자를 위해 국민 전체의 세금이 사용되는 형평성 문제로 이어진다. 하이브리드의 경우를 보면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프리우스는 초기 코롤라 대비 54% 비쌌지만, 20년 후 그 차이가 20% 수준으로 줄었다. 소나타 하이브리드도 출시 당시 63% 더 비쌌지만 10년 후 13%로 격차가 좁혀졌다. 배터리와 모터의 원가 하락, 규모의 경제 실현 덕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국가가 하이브리드 보조금을 폐지했다는 점이다. 보조금 없이도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전기차는 언제 이 단계에 도달할까? 배터리 원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지만, 내연기관 대비 10~20% 가격 차이까지 좁혀지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 각국 정부는 보조금 죽소 의지를 밝히면서도 시장 위축을 우려해 완전 폐지는 미루고 있다. 중국도 2020년 보조금 폐지를 발표했다가 철회했다. 보조금에 의존한 시장은 결국 지속가능하지 않다. 전기차가 자생력을 갖추는 시점이 언제가될지가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전 세계가 전기차 열풍에 휩싸였을 때 유독 한 기업은 다른 길을 걸었다. 바로 도요타다. 많은 전문가들이 도요타의 몰락을 예견했고, 노키아나 코닥처럼 될 것이라 경고했다. 그러나 2024년 전기차 캐즘이 가시화되면서 평가가 달라졌다. 도요타는 전기차를 개발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이었다. 도요타의 판단 근거는 명확했다. 자체 분석 결과 전기차 시장의 본격 확대는 2030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았다. 그때까지는 하이브리드로 충분하다는 전략이었다. 이 확신의 배경 에는 1997년부터 시작된 하이브리드의 성공 경험이 있다. 10년 이상 손해를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손익분기점을 돌파한 후 4년 만에 누적 손실을 모두 회수했다. 도요타는 배터리 기술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고체 배터리 특허 보유 수에서 세계 1위이며, 2위와 3위인 파나소닉과 이데미츠를 합친 것보다 많다. 2000년대에 이미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 개발 인력을 수백명 확보했다. 수소차 미라이도 양산했다. 즉, 도요타는 모든 환경차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시장 상 황에 맞춰 선택적으로 투자하는 전략을 취한 것이다. 2024년 하이브리드 판매가 급증하면서 도요타의 전략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전기차에 올인한 기업들이 배터리 공장 가동률 저하와 대규모 손실로 고통받는 동안, 도요타는 코롤라를 비 롯한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안정적 판매를 유지하며 판매 1위를 굳혔다. 하이브리드는 2kWh 미만의 작은 배터리로 연비 를 50% 향상시키고, 별도 충전이 필요 없으며, 전기차 대비 훨씬 저렴하다. 전기차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이나 충전 시간 을 부담스러워하는 소비자에게는 여전히 최선의 선택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핵심 키워드는 '미국 우선주의'다. 2025년 4월 2일 '해방의 날'에 발표된 새로운 관세 정책은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 수입품에 10% 기본 관세, 중국에는 총 104%의 관세가 부과되었다. 중국도 즉각 미국산 제품에 84% 관세로 맞불을 놓았다. 미중 무역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기존 패권국 미국과 급부상하는 도전자 중국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1985년 플라자 합의로 일본을 견제했던 미국이 이번에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다만 일본과 달리 중국은 15억 인구와 광대한 영토, 막강한 제조업 기반을 가진 만큼 쉽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은 이러한 패권 경쟁의 최전선이다. 전기차와 자율주행 기술은 운송 수단을 넘어 Al, 반도체, 배터리 등 핵심 기술의 집합체다. 미국은 IRA를 통해 자국산 배터리를 사용하는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주고, 중국산 모델은 제외했다. 유럽도 점차 비슷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에게 허용된 시장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한국은 이러한 미중 경쟁의 한가운데 있다.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의존하는 구조다. 전기차 배터리 분야에서 한국 기업들은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지만, 미국 공장 건설 비용은 급증하고 있고, 중국 시장은 자국 기업 우대로 진입이 어렵다. 어느 한쪽을 선택할 수 없는 딜레마 속에서 균형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자동차 산업의 현재 상황은 기술적 변혁과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의 경쟁, 자율주행의 상용화 시기, 미중 패권 경쟁, 각국의 관세 정책. 모든 것이 유동적이다. 과거 100년 동안 이처럼 많은 변수가 동시에 작용한 시기는 없었다. 그러나 역사는 교훈을 준다. 첫째, 충분한 검토 없는 무모한 투자는 재앙을 낳는다. 전기차 열 풍에 휩쓸려 플랜B 없이 올인한 기업들이 지금 고통받고 있다. 둘째, 공급자 중심이 아닌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만들고 싶은 차가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차를 만들어야 한다. 셋째, 타이밍이 중요하다. 너무 빠른 투자도, 너무 늦은 대응도 모두 위험하다. 지금 한국 자동차 산업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세계 3위의 자동차 기업, 5위의 생산국이라는 위상을 지켰지만, 앞으로 5~10년이 더 중요하다. 선진국의 견제와 중국의 추격 사이에서 우리만의 길을 찾아야 한다. 과거의 성공에 안주하면 몰락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냉정한 자기 성찰, 명확한 미래 비전, 그리고 현재의 올바른 실천.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룰 때 엔진 너머의 미래에서도 한국 자동차 산업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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