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전기차 부흥의 중심에는 테슬라가 있다. 2003년 설립된 이 회사는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2008년 로드스터 출시 당시만 해도 회사의 미래는 불투명했다. 개발 비용 초과로 CEO의 개인 자금이 투입되고, 출시 일정은 계속 연기되었다. 그러나 2009년 미국 에너지부의 4억 6천만 달러 대출과 2010년 나스닥 상장을 통한 자본 조달로 숨통이 트였다. 특히 모델 S의 성공은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테슬라의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2010년부터 2019년까지 10년간 단 한해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고, 누적 순손실은 65억 달러를 넘어섰다. 2019년 하반기 모델3의 대량생산 안정화로 겨우 흑자 전환에 성공했지만, 이는 회사 설립 후 17년 만의 일이었다. 테슬라의 혁신은 전기차를 만드는 것을 넘어섰다. 태블릿 하나로 차량을 제어하는 시스템, 엔진룸을 트렁크로 활용하 는 발상, 노트북용 원통형 배터리 7천 개 이상을 사용하는 파격적인 배터리 팩 구성. 이 모든 것이 기존 자동차 산업의 상식을 깨는 도전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이러한 테슬라의 성공은 전기차 산업에 과도한 낙관론을 퍼뜨리는 부작용도 낳았다. 수많은 기업들이 테슬라를 모방하려 했지만 대부분 실패했다. 애플과 다이슨 같은 거대 기술 기업도 전기차 사업에서 손을 뗐고, 코다, 어라이벌, 볼린저 등 수많은 스타트업이 사라졌다. 이들의 실패가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전기차 산업의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과 성공이 보장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다.
테슬라가 연 전기차 시대의 문으로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중국 기업들이었다. 배터리 제조사로 시작한 BYD는 2024년 한 해에만 427만 대 이상을 판매하며 테슬라를 바짝 추격했다. 리샹, 지커, 샤오미, 화웨이 등 다양한 기업들이 전기차 시장에 뛰어들었고, 2024년 전 세계 전기차 판매 상위 10개 기업 중 4곳이 중국 기업일 정도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중국의 전기차 굴기는 우연이 아니다. 전통 내연기관 분야에서 선진국을 따라잡기 어렵다고 판단한 중국 정부는 진입장벽이 낮은 전기차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육성했다. 막대한 정부 보조금과 인프라 투자가 뒷받침되었고, 2024년 말 기준 중국의 공공 충전기는 358만 대로 전 세계 공공 충전기의 70%를 차지한다. 중국 내 전기차는 3,140만 대로 전체 차량의 6.2%에 달한다. 그러나 중국 전기차 산업에는 심각한 구조적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한때 500여 개에 달했던 전기차 스타트업 대 부분이 과도한 경쟁 속에서 부실기업화되었다. 내수 경기 침체로 고급 전기차에 대한 수요가 줄어든 가운데,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의 견제가 강화되고 있다. 중국 전기차 기업들은 원가 이하로 수출하며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려 하지만, 이는 장기적으로 지속 가능한 전략이 아니다. 부동산 기업 다의 전기차 사업 실패는 상징적이다. 6억 달러를 투자하고 한국과 일본의 고급 인력을 대거 영입했지만, 막대한 부채와 경험 부족으로 결국 파산했다. BYD조차도 부품사 미지급금 문제, 대규모 리콜, 빈번한 화재 사고 등으로 이미지가 실추되고 있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위기는 단지 중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전기차 생산과 판매의 60% 이상이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만큼, 중국발 리스크는 곧 글로벌 전기차 시장 전체의 악재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