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읽는 그림 - 수천 년 세계사를 담은 기록의 그림들
김선지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부터 인류는 동굴 벽에 그림을 그렸다. 라스코 동굴의 들소, 알타미라 동굴의 사냥 장면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삶을 증언하는 기록이었다. 카메라가 없던 시절, 그림은 역사를 기록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였다. 왕의 초상화는 권력의 정당성을 증명했고, 전쟁화는 승리의 순간을 영원히 보존했으며, 풍속화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후세에 전했다. <시간을 읽는 그림>은 이러한 시각 자료가 지닌 역사적 가치에 주목한다. 책이 특별한 이유는 미술관에 걸린 명화만을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책 속 삽화, 신문의 풍자만화, 선전 포스터, 심지어 상품 광고까지, 당대 사람들의 눈과 손을 거쳐 만들어진 모든 시각 자료를 역사의 증거로 받아들인다. 루브르 박물관의 걸작이 왕과 귀족의 시선을 담았다면, 거리의 포스터와 팸플릿은 민중의 목소리를 담았다. 둘 다 역사를 구성하는 소중한 조각이다. 역사 교과서는 연도와 사건을 나열하지만, 그림은 그 사건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보여준다. 프랑스 혁명을 다룬 여덟 점의 그림을 보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는 군중의 흥분, 단두대 앞에 선 마리 앙투아네트의 표정, 혁명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기가 생생하게 전해진 다. 텍스트로는 결코 전달할 수 없는 감정과 분위기가 그림 속에 응축되어 있다.


저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을 제시한다. 하늘 높이에서 내려다보는 '새의 관점'과 땅 가까이에서 세밀하게 관찰하는 '곤충의 관점'이다. 새의 시선으로 보면 왕조의 흥망성쇠, 전쟁의 승패, 혁명의 과정이 한눈에 들어온다. 거대한 강물의 흐름처럼 역사의 방향성이 명확해진다. 그러나 그 강물은 무수한 물방울로 이루어져 있다. 곤충의 시선으로 한 방울 한 방 울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중세 장원을 다룬 장에서 이 두 시선의 조화가 빛을 발한다. 봉건제도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설명하면서도, 농노 보도의 하루 일과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새벽에 일어나 영주의 땅을 갈고, 해질녘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저녁을 먹고, 일요일이면 교회 마당에서 춤추고 노래했던 보통 사람들의 삶이 생생하다. 랭부르 형제의 <베리 공작의 호화로운 기도서> 속 3월 달력 그림은 쟁기를 끄는 소, 씨앗을 뿌리는 농부, 포도나무를 가지치기하는 사람들을 세밀하게 담았다. 이 한 장의 그림에서 우리는 봉건 사회의 구조뿐 아니라 그 속에서 땀 흘리며 살았던 개인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정기시를 묘사한 16세기 그림들도 마찬가지다. 중세 상업의 발전이라는 큰 흐름 속에서, 천막을 치고 향신료를 파는 상인, 애완용 원숭이를 구경하는 아이들, 류트를 연주하는 음유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거시사와 미시사가 한 화폭 안에서 만난다. 역사란 거대한 사건의 연속이 아니라, 수많은 개인의 선택과 경험이 모여 만들어진 것임을 그림은 웅변한다.


그림은 때때로 거짓말을 한다. 왕의 초상화는 실제보다 더 위엄 있게, 전쟁화는 패배를 승리처럼 그린다. 바빌론에 대한 서양의 인식이 그러했다. 성경의 영향으로 바빌론은 오랫동안 '악의 도시'로 기억되었다. 요한계시록의 삽화들은 바빌론을 일곱 머리 괴물 위에 탄 창녀로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 바빌론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의 중심지였다. 네부카드네자르2세 시대의 공중정원은 고대 건축술의 정점이었고, 지구라트는 천문학의 산실이었다. 피터르브뤼겔의<바벨 탑>은 흥미로운 경우다.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는 교훈이지만, 브뤼겔의 그림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를 연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신화와 역사, 상상과 고증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한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표면의 이미지뿐 아니라 그 이면의 의도, 시대적 편견, 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내는 작업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해적 이야기도 그렇다. 영국에서는 '바다의 개들'이라 불리며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약탈자였다. 같은 사건 을 그린 영국과 스페인의 그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에 하나의 객관적 진실이 없듯, 그림도 화가의 시선, 후원자의 의도, 시대의 이념을 반영한다. 그림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책이 담은 그림들 중 상당수는 인간의 고통을 증언한다. 흑사병 시대의 ' 채찍질 고행단 '을 묘사한 그림에서는 집단적 공포와 광기가 느껴진다. 전염병이 신의 징벌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참회했다. 피로 얼룩진 등, 절규하는 표정, 황홀경에 빠진 군중의 모습이 섬뜩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행렬은 오히려 전염병을 더 확산시켰다. 선의와 무지가 결합하여 비극이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 그림들은 더욱 처참하다. 감자 역병으로 백만 명이 굶어 죽고 백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 텅 빈 마을, '관 배'라 불린 이민선의 비좁은 선실이 그림에 담겼다. 자연재해였지만 영국 정부의 무관심과 경제적 착취가 재난을 증폭시켰다. 그림은 숫자로는 담을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림은 희망도 기록한다. 코르셋을 벗고 자전거를 타는 '뉴 우먼'의 모습은 여성 해방의 시작을 알린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을 숨 막히게 조였던 코르셋은 의복만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상징이었다. 자전거는 여성에게 물리적 이동의 자유뿐 아니라 사회적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조롱하는 풍자만화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페달을 밟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광고 포스터도 있었다. 같은 시대, 상반된 시선이 공존했고, 결국 변화의 흐름이 승리했다.


책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질문을 던진다. 르네상스는 정말 ' 빛의 시대 ' 였을까? 화려한 예술의 뒤편에는 메디치 가문의 부패와 보르자 가문의 음모가 있었다. 교황 알렉산데르6세는 성직을 매매하고 자식들에게 권력을 세습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들은 이러한 어둠의 후원으로 탄생했다. 빛과 어둠, 예술과 타락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었다. 산업혁명은 진보였을까, 재앙이었을까? 터너의<전함 테메레르>는 증기선에 예인되어 가는 범선의 쓸쓸한 모습을 담았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그림이지만, 동시에 거대한 변화의 순간을 포착한다. 산업화는 부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노동자의 극심한 빈곤, 아동 노동, 환경 파괴를 낳았다. 19세기 런던 빈민가를 그린 귀스타브 도의 판화는 '진보'의 이면을 폭로한다. 저자는 자신만의 눈으로 역사를 해석하기를 권한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사람마다 다른 것을 발견한다. 렘브란트의 <니콜라스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를 과학의 승리로 볼 수도 있고, 사형수의 신체를 도구화한 폭력으로 볼 수도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의 지적 열정을 읽을 수도 있고, 계급 간 권력 관계를 읽을 수도 있다.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림 앞에서 멈춰 서서 질문하는 행위 자체다.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상상하기 위함이다. 책이 소개하는 수많은 그림들은 지나간 시대의 유물만의 의미를 이야기 하지 않는다. 바빌론의 공중정원은 환경을 극복한 인간의 창의성을, 흑사병 시대의 광기는 집단 공포의 위험성을, 채찍질 고행단은 맹목적 신앙의 어리석음을 경고한다. 이 모든 것이 현재의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맥도날드로 상징되는 대중 사회의 획일화, 자동화, 소외는 21세기에도 여전하다. 아니, 더 심화되었다. SNS 시대에 우리는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이미지를 생산하고 소비한다. 하루에도 수천 장의 사진을 찍고 공유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들이 훗날 우리 시대를 증언하는 '기록화'가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무의미한 정보의 홍수로 사라질까? 저자가 늦가을 창가에서 책을 마무리하며 바란 것처럼, 수백 년, 수천 년 전 역사 속 인물들과 생각을 나누고,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 삶의 자취를 따라가는 경험을 하여 좋았다. 중세 농노 보도의 하루, 공중정원을 거닐던 아미티스의 향수, 코르셋을 벗어던진 뉴 우먼의 해방감, 흑사병 앞에 선 사람들의 공포. 이 모든 감정이 그림을 통해 시공간을 넘어 전달되었다. 그림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다리다. 우리는 그 다리를 건너 역사 속으로 들어가고, 역사는 그 다리를 건너 현재로 걸어 나온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