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때때로 거짓말을 한다. 왕의 초상화는 실제보다 더 위엄 있게, 전쟁화는 패배를 승리처럼 그린다. 바빌론에 대한 서양의 인식이 그러했다. 성경의 영향으로 바빌론은 오랫동안 '악의 도시'로 기억되었다. 요한계시록의 삽화들은 바빌론을 일곱 머리 괴물 위에 탄 창녀로 묘사했다. 그러나 실제 바빌론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의 중심지였다. 네부카드네자르2세 시대의 공중정원은 고대 건축술의 정점이었고, 지구라트는 천문학의 산실이었다. 피터르브뤼겔의<바벨 탑>은 흥미로운 경우다. 성경의 바벨탑 이야기는 인간의 오만을 경고하는 교훈이지만, 브뤼겔의 그림에는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를 연구한 흔적이 역력하다. 신화와 역사, 상상과 고증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한다. 그림을 읽는다는 것은 표면의 이미지뿐 아니라 그 이면의 의도, 시대적 편견, 문화적 맥락까지 읽어내는 작업이다.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해적 이야기도 그렇다. 영국에서는 '바다의 개들'이라 불리며 영웅으로 칭송받았지만, 스페인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약탈자였다. 같은 사건 을 그린 영국과 스페인의 그림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에 하나의 객관적 진실이 없듯, 그림도 화가의 시선, 후원자의 의도, 시대의 이념을 반영한다. 그림을 비판적으로 읽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다.
역사는 아름답지만은 않다. 책이 담은 그림들 중 상당수는 인간의 고통을 증언한다. 흑사병 시대의 ' 채찍질 고행단 '을 묘사한 그림에서는 집단적 공포와 광기가 느껴진다. 전염병이 신의 징벌이라 믿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참회했다. 피로 얼룩진 등, 절규하는 표정, 황홀경에 빠진 군중의 모습이 섬뜩하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행렬은 오히려 전염병을 더 확산시켰다. 선의와 무지가 결합하여 비극이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을 다룬 그림들은 더욱 처참하다. 감자 역병으로 백만 명이 굶어 죽고 백만 명이 이민을 떠났다. 앙상하게 마른 아이들, 텅 빈 마을, '관 배'라 불린 이민선의 비좁은 선실이 그림에 담겼다. 자연재해였지만 영국 정부의 무관심과 경제적 착취가 재난을 증폭시켰다. 그림은 숫자로는 담을 수 없는 인간적 고통의 실체를 보여준다. 그러나 그림은 희망도 기록한다. 코르셋을 벗고 자전거를 타는 '뉴 우먼'의 모습은 여성 해방의 시작을 알린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을 숨 막히게 조였던 코르셋은 의복만이 아니라 여성의 몸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의 상징이었다. 자전거는 여성에게 물리적 이동의 자유뿐 아니라 사회적 해방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자전거를 타는 여성을 조롱하는 풍자만화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페달을 밟는 여성들의 모습을 담은 광고 포스터도 있었다. 같은 시대, 상반된 시선이 공존했고, 결국 변화의 흐름이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