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김효동 지음 / 아이스타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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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요즘 우리는 모두 바쁘다. SNS에는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나고, 자기계발서는 더 나은 내가 되라고 속삭인다. 그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받는다. " 당신은 행복한가요?"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자주 말문이 막힌다. 김효동 작가의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를 읽으며 문득 깨달았다. 우리가 불행한 이유는 부족해서가 아니라, 행복을 너무 열심히 쫓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작가는 어머니와 함께 몽마르트르 언덕에 오르며, 50년이 넘게 품어온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의 아련함을 포착한다. 기쁨 속에 스며든 서글픔. 그토록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만 닿을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의 무게다. 우리 삶도 그렇지 않은가. 언젠가 이루어질 행복을 위해 오늘을 유예하고, 미래의 성취를 위해 현재를 견딘다. 그러다 문득 돌아보면 삶은 이미 지나가버렸고, 우리는 여전히 행복이라는 종착역을 찾아 헤매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견딜 수 있는 작은 힘인 경우가 많다. 모두가 참 힘들게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깨달음은 역설적으로 위로가 된다.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것. 모두가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는 것. 이 사실이 때로는 큰 연대감을 준다. 해운대 독서살롱을 운영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또 다른 버팀을 발견한다. 모임을 준비하는 시간, 책장을 정리하고 책상을 닦는 그 고요한 순간이 오히려 더 소중하다는 고백. 결과보다 과정에서, 화려함보다 일상에서 찾는 평온. 이것이 어쩌면 우리가 놓치고 있던 행복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른다.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도망칠 용기'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끝까지 버티는 사람을 칭송한다. 포기는 나약함의 증거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작가는 묻는다. 정말 그런가? 때로는 손을 놓는 것이 더 큰 용기가 아닐까? 책을 읽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회사 상사를 이기기 위해서"라고 답한 젊은 회원의 이야기는 씁쓸하다. 책마저도 경쟁의 도구가 되어버린 현실. 하지만 동시에 그 솔직함이 우리 시대의 민낯을 보여준다. 우리는 자기계발조차 전쟁터로 만들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가 전업 작가를 고민하며 내린 결론도 같은 맥락이다. 다른 사람의 조언은 '참고용'일 뿐, 정답은 자신의 선택 속에 있다는 것. 성공한 사람의 말도, 실패한 사람의 경고도 모두 그들의 결과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내게 맞는 하루는 어떤 모습인지 스 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고백은 가장 날것의 솔직함을 보여준다. 따뜻한 사람이라고 믿었던 자신이 정작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는 퉁명스러울 때, 느끼는 자기혐오. 어머니의 희생을 뒤늦게 알았을 때 밀려오는 죄책감이다. "괜찮다"고만 말씀하셨던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자신을 탓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우리는 많은 관계의 모순을 본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진실을 듣지 못한 채 살아가는 우리들. 서로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거리를 만들어가는 아이러니다. 하지만 작가는 이 불완전함을 숨기지 않는다. 그것이 오히려 진정한 용기처럼 느껴진다. 완벽한 관계, 완벽한 효도, 완벽한 사랑은 없다. 우리는 모두 부족한 채로 서로를 사랑하며, 때로는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 어쩌면 진짜 성숙일지도 모른다. 책은 조용히, 오래 남는다. 마치 겨울밤 내린 눈처럼 소리 없이 쌓여 결국 세상을 덮는 것처럼 말이다. 작가는 매일 최대한 늦게 출근하고 가장 빠르게 퇴근한다고 고백한다. 출근길은 여전히 무겁고, 일하는 시간도 마냥 즐겁지는 않다. 그럼에도 퇴근 즈음이면 "이만하면 오늘 하루도 잘 보냈다"고 생각한다. 위로다. 우리는 매일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지 않아도 된다.

행복하지 않아도 괜찮다. 단지 오늘 하루를 무사히 견뎌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성취보다, 묵묵한 지속이 때로는 더 큰 용기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는 제목은 역설이다. 우리는 불행해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삶을 이해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버티는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 고통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작가가 독서살롱을 운영하는 이유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유도 결국 같은 맥락이 아닐까. 완벽하게 행복하지 않은 삶 속에서도, 그 불완전함을 견디고 이해하며, 때로는 아름답게 만들어가려는 노력. 그것이 글쓰기이고, 그것이 살아가기다.

책을 읽고 난다고 삶이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는다. 여전히 출근은 무겁고, 관계는 어렵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하지만 한가지는 달라진다. 오늘 하루를 견뎌낸 나 자신에게 "수고했어"라고 말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거창한 행복을 쫓느라 놓쳤 던 작은 평온들. 성공을 향해 달리느라 지나쳤던 일상의 온기들. 그것들이 사실은 우리가 찾던 행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글을 쓰는 사람은 불행한 게 아니라,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깊이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 자신을 만난다. 불완전하지만 충분히 괜찮은, 힘들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는, 행복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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