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 : 중동 편 - 6,000년 중동사의 흐름이 단숨에 읽히는
저스티스(윤경록) 지음 / 믹스커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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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장을 덮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역사는 결코 과거에 머물지 않는다'는 평범한 진리였다. 저스티스의 <한 뼘 더 깊은 세계사(중동 편)>은 6,000년 전 메소포타미아의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뉴스에서 끊임없이 접하는 중동의 분쟁과 갈등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 이삭과 이스마엘에서 시작된 형제의 이야기가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했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가족사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 같다. 본처 사라와 여종 하갈 사이의 갈등, 그리고 그 갈등의 희생양이 된 이스마엘과 이삭. 저자는 이 이야기를 종교적 상징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하지만, 이 상징이 현실에 미친 영향은 결코 상징적이지 않다. 이스마엘의 후손이 아랍인이 되고, 이삭의 후손이 유대인이 되었다는 서사는 수천 년간 두 민족의 정체성을 규정해왔다. 흥미로운 점은 이슬람이 초기에는 기독교와 유대교를 같은 계열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꾸란에도 성경을 받은 기독교인과 유대교인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그들은 세금만 낸다면 공존할 수 있는 대상이었다. 밀레트 제도나 지즈야 같은 시스템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차별적이지만, 당시로서는 나름의 공존 방식이었다. 오스만 제국이 수백 년간 다양한 종교와 민족을 포용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유연성 덕분이었다. 그런데 역사가 흐르면서 이 유연성은 점차 경직되었고, 특히 근대 이후 민족주의가 등장하면서 공존의 틀은 완전히 무너졌다.

유대인의 역사를 읽으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들의 생존력이다. 70년 로마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135년 제2차 유대-로마 전쟁 이후 완전히 땅을 잃은 민족이 어떻게 2,000년 가까이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저자가 언급한 제주 삼별초의 비유처럼, 그들은 끝까지 항복하지 않았다. 아니, 항복할 수 없었다. 땅을 잃은 민족에게 남은 것은 신앙과 공동체뿐이었다. 밀라노 칙령 이후 유대인들에 대한 박해가 본격화되었다는 대목은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오히려 예수를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낙인이 찍힌 유대인들은 로마 사회에서 시민의 기본권마저 박탈당했다. 농사를 짓거나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그 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이 제약을 오히려 기회로 바꾸었다. 상업과 금융업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유대 상인들의 네트워크는 놀라울 정도로 광범위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무역로에서 그들은 중개자이자 촉진자였다. 흩어져 있었지만 그 흩어짐이 오히려 전 세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토대가 되었다. 특히 네덜란드의 급부상에 유대인의 역할이 컸다는 언급은 디아스포라가 단순한 비극이 아니라 또 다른 형태의 힘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의외였던 부분은 몽골 제국이 중동 역사에 미친 영향이다. 13세기와 14세기,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의 정복 활동은 중동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압바스 왕조가 당나라를 물리친 후 제지 기술이 서쪽으로 전파된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몽골이 화레즘 제국을 무너뜨리고 바그다드를 함락시킨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는 세계사가 여전히 서양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몽골 제국의 위세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지만, 그들의 역사는 서양사의 주류에서 비껴나 있다. 그러나 몽골의 정복이 없었다면 중동의 이슬람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을 것이고, 티무르 제국 같은 독특한 문화 융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티무르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다.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문화 수도로 만든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무자비한 정복 전쟁으로 수많은 도시를 파괴한 폭군. 이런 양면성은 비단 티무르만의 것이 아니다. 역사 속 많은 정복자들이 그랬고, 어쩌면 모든 제국이 그런 모순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명은 때로 폭력을 통해 전파되었고, 문화 교류는 종종 정복의 결과였다.

20세기 이란의 역사는 급진적 근대화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팔라비 왕조의 백색혁명은 표면적으로는 토지개혁, 여성 참정권 확대, 교육과 보건 개선 등 진보적인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었고, 전통적 지주 계층과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억압하기 위한 공포정치가 있었다. 사바크라는 비밀경찰 조직이 CIA와 모사드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반대 세력을 고문하고 암살하는 모순적 상황. 이것이 결국 1979년 이란혁명으로 이어졌고, 호메이니가 이끄는 종교 국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만약 팔라비가 좀 더 점진적으로, 그리고 공포정치 없이 개혁을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움이 남는다. 자유로운 복장의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던 1970년대 이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이란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급진적 서구화에 대한 반발이 극단적 종교 국가를 낳았다는 역설. 이것은 문명의 충돌이 단순히 외부와의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서도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올린 질문은 "왜 역사는 반복되는가"였다. 형제에서 시작된 갈등이 수천 년이 지나도록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로마 제국에 의해 땅을 잃은 유대인들이 2,000년 만에 다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왔을 때, 그곳에 살던 아랍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시오니즘 운동이 유대인에게는 약속의 땅으로의 귀환이었지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디아스포라의 시작이었다는 아이러니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하지만 중동의 역사를 보면서 느낀 것은, 진정한 승자는 없다는 것이다. 모두가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다. 십자군 전쟁, 몽골의 침략, 오스만 제국의 흥망, 시오니즘과 팔레스타인 문제까지. 각각의 사건 속에서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싸웠고, 누군가는 정체성을 지키려 했으며, 누군가는 잃어버린 것을 되찾으려 했다.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오스만 제국의 밀레트 제도는 억압이 아닌 조율과 절충을 통한 공존의 모델이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각자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함께 살 수 있는 틀을 제공했다. 오늘날의 중동이 이런 포용의 원리를 되살릴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질문이지만,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책은 중동사를 다루지만, 결국 인간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생존과 번영, 갈등과 공존, 정체성과 변화.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된 인류 최초의 문명이 6,000년의 시간을 거쳐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경이롭기도 하고 비극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종종 중동을 '저 먼 곳'의 이야기로 치부하지만, 저자가 지적한 것처럼 몽골의 정복이 중동에도 영향을 미쳤듯이, 역사는 연결되어 있다. 13세기 몽골족의 활동이 한국사와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처럼 말이다. 중동의 역사는 곧 세계사이고, 세계사는 결국 우리의 역사와도 맞닿아 있다. 책을 덮으며 다시 한번 생각한다. 아브라함의 두 아들이 형제였듯이, 유대인과 아랍인은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지금의 끝없는 갈등이 이해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동시에 역사가 그토록 복잡하게 얽혀 있기에 쉬운 해답도 없다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우리가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가 아닐까. 중동의 6,000년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겁지만, 그 질문을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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