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면서 의외였던 부분은 몽골 제국이 중동 역사에 미친 영향이다. 13세기와 14세기, 칭기즈칸과 그 후예들의 정복 활동은 중동의 판도를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751년 탈라스 전투에서 압바스 왕조가 당나라를 물리친 후 제지 기술이 서쪽으로 전파된 이야기는 익히 알려져 있지만, 몽골이 화레즘 제국을 무너뜨리고 바그다드를 함락시킨 사건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지적처럼 이는 세계사가 여전히 서양 중심으로 서술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몽골 제국의 위세는 유라시아 대륙 전체를 뒤흔들었지만, 그들의 역사는 서양사의 주류에서 비껴나 있다. 그러나 몽골의 정복이 없었다면 중동의 이슬람화는 더 빠르게 진행되었을 것이고, 티무르 제국 같은 독특한 문화 융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티무르에 대한 평가는 복잡하다. 사마르칸트를 동방의 문화 수도로 만든 학문과 예술의 후원자이면서 동시에 무자비한 정복 전쟁으로 수많은 도시를 파괴한 폭군. 이런 양면성은 비단 티무르만의 것이 아니다. 역사 속 많은 정복자들이 그랬고, 어쩌면 모든 제국이 그런 모순을 안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문명은 때로 폭력을 통해 전파되었고, 문화 교류는 종종 정복의 결과였다.
20세기 이란의 역사는 급진적 근대화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팔라비 왕조의 백색혁명은 표면적으로는 토지개혁, 여성 참정권 확대, 교육과 보건 개선 등 진보적인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미국의 전략적 이해관계가 있었고, 전통적 지주 계층과 종교 지도자들의 반발을 억압하기 위한 공포정치가 있었다. 사바크라는 비밀경찰 조직이 CIA와 모사드의 지원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반대 세력을 고문하고 암살하는 모순적 상황. 이것이 결국 1979년 이란혁명으로 이어졌고, 호메이니가 이끄는 종교 국가가 탄생하게 된 배경이다. 만약 팔라비가 좀 더 점진적으로, 그리고 공포정치 없이 개혁을 추진했다면 어땠을까?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그 가능성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움이 남는다. 자유로운 복장의 여성들이 거리를 활보하던 1970년대 이란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지금의 이란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급진적 서구화에 대한 반발이 극단적 종교 국가를 낳았다는 역설. 이것은 문명의 충돌이 단순히 외부와의 싸움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서도 비롯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