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9가지 심리실험 - 위로와 공감편, 개정판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심리실험
이케가야 유지 지음, 주노 그림,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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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느 날 문득, 나는 내가 누군가에게 위로받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힘든 하루를 보낸 뒤 집에 돌아와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을 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려주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의 본질적인 갈망이었다. 이케가야 유지 교수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59가지 심리실험: 위로와 공감편>을 읽으며, 나는 이 갈망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뇌에 새겨진 생존 전략임을 알게 되었다.

프레리들쥐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전기충격을 받은 동료를 보살피기 위해 그루밍 시간을 두 배로 늘리는 작은 설치류. 이들에게 공감은 학습된 미덕이 아니라 본능이었다. 놀라운 것은 이 본능이 인간에게도 그대로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누군가의 고통을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유, 슬픈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뇌가 타인의 감정을 내 것처럼 느끼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공감에 서툴러졌다. 스마트폰 화면 너머로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정작 옆에 앉은 사람의 표정은 읽지 못한다. 공감이 생존에 필수적이라면, 왜 우리는 점점 더 고립되어가는 걸까. 책은 이와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과학적 실험과 뇌과학의 언어로 풀어낸다.


막스플랑크연구소의 흥미로운 연구가 있다. 다섯 살 어린이들에게 여러 장의 낯선 얼굴 사진을 보여주고 마음에 드는 얼굴을 고르게 했더니, 아이들은 자신의 얼굴 특징을 절반쯤 반영한 합성 사진을 30퍼센트 더 많이 선택했다. 특별한 교육을 받지 않았는데도, 본능적으로 자신과 닮은 얼굴에 끌린 것이다. 이 실험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유상종'의 비밀을 밝혀준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이는 것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뇌의 전략이다. 낯선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익숙한 무언가를 찾으려는 본능, 예측 가능한 것에 안도하려는 욕구가 우리를 닮은 사람에게로 이끈다. 어두운 골목길을 걸을 때 불안해지는 것처럼, 미지의 것은 뇌에게 위협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나와 비슷한' 신호를 보내는 사람을 찾아 헤맨다. 하지만 이 본능은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배척하는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잠재 연합 시험'은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무의식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음을 증명한다. 의식적으로는 평등하게 대하려 해도, 특정 집단에 대한 부정적 연상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편견은 바꿀 수 없는 걸까. 다행히도 뇌과학은 희망을 이야기한다. 노스웨스턴대 연구팀은 수면 중 특정 소리를 들려주는 방식으로 편견 완화 훈련의 효과를 장기화하는 데 성공했다. 뇌는 고정된 기계가 아니라, 새로운 경험으로 다시 프로그래밍될 수 있는 유연한 존재다. 편견은 본능일 수 있지만, 그것을 극복하려는 노력 역시 인간의 능력이다.

침팬지를 대상으로 한 신뢰 게임 실험은 특히 인상적이었다.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자신이 먹을 수 있는 낮은 등급의 먹이를 선택하거나, 자신은 아무것도 먹지 못하지만 짝꿍에게 최고급 먹이를 주는 것.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전자를 선택하는 것이 안전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대가 친한 동료일 때, 침팬지들은 후자를 선택할 확률이 두 배나 높았다. 이 실험이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신뢰는 손해를 감수하는 행위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을 때 상대방이 외면할 수도 있다는 위험을 안고 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신뢰를 선택하는 이유는, 그것이 모든 사회적 관계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털을 골라주고, 먹이를 나누고, 함께 일하는 모든 행위는 신뢰에서 시작된다. 현대 사회에서 신뢰는 점점 더 희귀한 자원이 되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배신당할까 두려워 마음의 문을 굳게 닫는다. 하지만 신뢰 없이는 진정한 연결이 불가능하다. 침팬지도 감수하는 용기를, 우리는 왜 내기 어려워하는 걸까. 어쩌면 너무 많은 것을 계산하고 예측하려는 이성이, 본능적으로 타인과 연결되려는 뇌의 신호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모른다.


책에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트라우마 본딩'에 관한 내용이었다. 새끼 쥐에게 페퍼민트 향과 함께 전기충격을 주었을 때, 성체 쥐는 페퍼민트를 피했지만 새끼 쥐는 오히려 그 향에 끌렸다. 더 놀라운 것은 학대당한 새끼가 어미에게 더 강한 애착을 보였다는 사실이다. 이 현상은 인간에게도 적용된다. 학대받은 아이가 부모를 증오하는 대신 집착하는 이유, 폭력적인 관계를 반복해서 선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린 시절 우리는 부모 없이 생존할 수 없다. 설령 그들이 고통을 준다 해도, 뇌는 생존을 위해 그들에게 집착하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래서 학대는 단순히 신체적 상처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랑과 고통을 연결하는 왜곡된 회로를 뇌에 새긴다. 이 대목을 읽으며 나는 왜 어떤 사람들이 자신을 아프게 하는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비극적 결과였다. 동시에 치유의 가능성도 보였다. 뇌가 학습으로 형성되었다면, 다른 학습으로 다시 쓸 수 있다. 건강한 관계의 경험이 쌓이면, 왜곡된 회로도 조금씩 바뀔 수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은 교육과 경영의 격언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말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의 실험에 따르면, 뇌는 강화학습으로 작동한다. 쾌감을 느끼면 그 행동을 반복하려 한다. 문제는 이 메커니즘이 본질과 무관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맑은 날 만난 사람을 비 오는 날 만난 사람보다 좋게 평가하는 것처럼, 뇌는 인과관계가 없는 것들을 연결시킨다. 칭찬도 마찬가지다. 칭찬받는 경험이 반복되면, 사람은 칭찬 자체에 중독된다. 옳은 일을 해서가 아니라, 칭찬받기 위해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칭찬해주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자신을 왜곡하기도 한다. 이것이 칭찬의 소름 끼치는 측면이다. 타인의 평가에 의존하게 만들고, 내적 동기를 잠식한다. 책의 다른 실험에서 가짜 명품을 산 사람이 더 많이 거짓말을 한다는 결과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신의 신념을 배신한 경험은 도덕성을 무너뜨린다. 진품을 샀다고 믿은 사람보다, 가짜임을 알면서도 산 사람이 윤리적 해이를 보인 것이다. 그렇다면 칭찬을 하지 말아야 할까. 그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칭찬하느냐다.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신의 성장을 인정하는 칭찬이 필요하다. 뇌는 강력한 학습 기계지만, 그 방향을 설정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책의 리뷰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있다. 회사에서 음성 인식 기기가 사람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상황을 불편해하던 사람이, 결국 인공지능과의 상담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은 100번을 들어도 짜증내지 않고, 비밀을 누설하지도 않는다. 완벽한 경청자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우리가 원하는 위로일까. 인간 상담사는 불완전하다. 자신의 감정에 영향을 받고, 때로는 내담자가 원치 않는 조언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진정한 공감의 증거가 아닐까. 인공지능의 위로는 알고리즘이 생성한 텍스트일 뿐, 진심 어린 마음의 교류는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인공지능을 선택하면서, 진정한 연결의 기회를 포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 관계는 예측 불가능하고 때로는 아프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우리는 성장하고, 더 깊은 이해에 도달한다. 완벽히 안전한 관계는 진짜 관계가 아니다.

자신의 외모를 다른 사람보다 34퍼센트 높게 평가한다는 연구 결과는 웃음을 자아낸다. 우리는 모두 자기 얼굴의 열렬한 팬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 접촉 효과' 때문이다. 매일 거울에서 만나는 얼굴은 가장 익숙한 얼굴이고, 익숙한 것은 호감을 낳는다. 이 사실은 자존감의 기초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우리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이유는, 뇌가 본능적으로 익숙한 것을 좋아하도록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것은 왜 자기혐오가 위험한지도 설명한다. 가장 자주 마주하는 대상이 자기 자신인데, 그 대상을 싫어한다면 뇌는 끊임없이 부정적 신호를 받게 된다. '치어리더 효과'도 흥미롭다. 혼자 있을 때보다 집단에 있을 때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현상인데, 이는 뇌가 평균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흐릿한 사진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다. 뇌는 불완전한 정보를 이상형으로 채워 넣는다. 이 모든 연구는 우리 지각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보여준다. 우리가 보는 세계는 객관적 현실이 아니라, 뇌가 해석한 버전이다. 누군가의 외모를 평가할 때, 그것은 상대에 대한 판단이라기보다 내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한 고백에 가깝다.

책은 뇌와 뇌를 직접 연결하는 '브레인넷' 실험도 소개한다. 원숭이 세 마리가 각자 맡은 축을 조정해 가상공간의 공을 움직이는 실험에서, 뇌가 직접 연결되었을 때 놀라운 협력이 가능했다. 각 원숭이는 전체 목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단지 자신에게 주어진 신호에 반응했을 뿐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한 팀워크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과 닮았다. 우리는 전체 그림을 보지 못한 채 각자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연결망을 통해, 개인의 행동은 집단의 성과로 이어진다. 차이는 우리의 연결이 기계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감정으로, 언어로, 공감으로 연결되어 있다. 브레인넷이 주는 진짜 통찰은, 완벽한 소통이 반드시 깊은 이해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침팬지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읽지 못해도 신뢰한다. 프레리들쥐는 동료의 고통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위로한다. 공감은 완벽한 이해가 아니라, 함께 있어주려는 의지다.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공감이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에는 공감을 위한 회로가 있지만, 그것을 작동시키려면 연습이 필요하다. 편견을 완화하는 훈련처럼, 공감도 훈련으로 강화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경청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해결책을 떠올리거나 조언을 준비하지 말고, 그저 듣는 것. 프레리들쥐의 그루밍처럼, 때로는 말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두 번째는 자기 인식이다. 무의식적 편견을 인정하고, 그것이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 살펴보는 것. 책에서 소개한 것처럼, 편견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꿀 수 있다. 하지만 변화의 첫걸음은 인정이다. 세 번째는 취약성을 드러내는 용기다. 신뢰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라고 침팬지 실험이 보여주었다.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상처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서도.

책을 덮으며 나는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했다. 우리는 혼자서는 살 수 없도록 설계된 존재다. 뇌의 구조 자체가 타인과의 연결을 전제로 한다. 공감 회로, 신뢰 메커니즘, 유유상종 본능, 이 모든 것은 우리를 서로에게로 이끈다. 동시에 우리는 실수하고, 상처주고, 오해받는다. 편견을 가지고, 때로는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한다. 하지만 그것이 인간다움이기도 하다. 완벽하지 않기에 성장할 수 있고, 불완전하기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책이 전하는 메시지는 우리 모두는 위로가 필요하고, 그 위로는 서로에게서 나온다는 것이다. 뇌과학이 밝혀낸 수많은 실험 결과는, 공감과 연대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임을 증명한다. 오늘밤, 나는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해볼 생각이다. "요즘 어때?"라고 묻고, 대답을 기다리는 것. 그것이 프레리들쥐의 그루밍처럼, 상대에게 "나는 네 편이야"라고 말하는 방법일 테니까. 뇌과학이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우리가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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