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파민 가족 - 각자의 알고리즘에 갇힌 가족을 다시 연결하는 법
이은경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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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저녁 여섯 시, 한 가족의 거실 풍경이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훑는다. 어머니는 태블릿으로 내일 저녁 메뉴를 검색한다. 중학생 아들은 방에서 게임을 하고, 고등학생 딸은 침대에 누워 숏폼 영상을 넘긴다. 물리적으로는 한 공간에 있지만, 각자는 서로 다른 세계에 접속해 있다. 이것이 바로 교육 전문가 이은경이 <도파민 가족>에서 경고하는 현대 가족의 초상이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연결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믿는다. 언제 어디서든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화상통화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으며, SNS를 통해 서로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단절되어 있다. 특히 가족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망 안에서 말이다. 이은경은 이 현상을 세대 차이나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그는 뇌과학과 심리학의 렌즈를 통해 이 문제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친다.


도파민은 본래 인간의 생존을 위한 신경전달물질이었다. 배고플 때 음식을 발견하면, 위험을 감지했을 때 도망치면,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면 뇌는 도파민을 분비하며 "이것은 중요하다"는 신호를 보낸다. 이 시스템은 수십만 년 동안 인류가 살아남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는 이 고대의 메커니즘을 철저히 악용한다. 게임의 레벨업, SNS의 알림, 유튜브의 자동재생, 숏폼의 무한 스크롤—이 모든 것은 우리 뇌의 보상 회로를 의도적으로 자극하도록 설계되었다. 문제는 이러한 자극이 실제 생존과는 무관하다는 점이다. 우리는 화면을 보며 무언가를 성취하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제로는 의미 없는 자극의 연속에 노출될 뿐이다. 이은경이 지적하는 핵심은 여기에 있다. 아이들이 게임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다. 미성숙한 전전두엽을 가진 아이들에게 이런 환경은 저항할 수 없는 유혹이다. 마치 브레이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차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것은 어른들의 상황이다. 이미 발달이 완료된 뇌를 가진 성인조차 디지털 기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순한 습관의 문제가 아니라 신경학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증거다.

저자가 제시하는 통계는 충격적이다. 중고생 자녀를 둔 가정의 열 집 중 일곱 집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의 화면에 빠져 있다. 부모들은 아이가 속마음을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하지만, 정작 부모 자신도 자신의 하루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모두가 집으로 돌아오지만, 서로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이것을 이은경은 '조용한 단절'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가족 갈등은 적어도 소리를 동반했다. 다툼이 있었고, 감정의 충돌이 있었으며, 그 과정에서 서로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단절은 너무나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누구도 소리를 지르지 않고,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그 침묵 아래에는 점점 깊어지는 정서적 공백이 자리한다. 가족 치료학에서 말하는 '정서적 무시'가 바로 이것이다. 눈에 띄는 학대나 폭력이 없어도 사람을 서서히 고립시키는 상처가 있다. 감정을 나누려는 시도가 반복적으로 무시되면, 뇌는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학습한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감정은 밖으로 표현되는 대신 안으로 웅크린다. 표현되지 않은 감정은 시간이 지나며 오해로 굳어지고, 결국 관계의 균열로 이어진다.


저자는 특별히 식사의 의미에 주목한다. 가족의 다른 이름인 '식구'는 말 그대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수많은 일상적 경험 중에서도 식사는 가족 관계의 중심축이었다. 함께 준비하고, 기다리고, 마주 앉아 나누는 그 과정 자체가 관계를 직조하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도파민에 최적화된 현대 사회는 식사를 빠르고 편리하게 만들었다. 배달 앱 하나로 음식이 도착하고, 각자 원하는 것을 주문하며, 먹는 동안에도 각자의 화면을 본다. 효율성은 극대화되었지만, 그 과정에서 식사가 가진 관계적 의미는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식탁은 여전히 거실에 있지만, 그 주위에 모여 앉아 하루를 나누는 가족의 모습은 점점 희귀해지고 있다. 이것은 단지 식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느림의 경험이 사라진다는 것은 관계의 리듬을 잃는다는 의미다. 모든 것이 빠르고 즉각적이어야 하는 세상에서, 기다림과 지루함은 견딜 수 없는 것이 된다. 하지만 관계는 본질적으로 느린 과정을 필요로 한다. 서로를 이해하고, 감정을 나누고, 신뢰를 쌓는 일은 클릭 한 번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거실의 속도가 결국 사회의 속도를 결정한다고. 느림 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조급한 사회 구성원이 되고, 그런 구성원들이 모인 조직은 더 바쁘고 피로한 구조를 만든다. 문제는 개인이 아니라 시스템이며, 그 시스템의 시작점은 바로 가정이다.

우리는 역사상 가장 감정 표현이 자유로운 시대를 산다고 생각한다. 이모티콘이 넘쳐나고, 리액션은 무궁무진하며, 누구나 자신의 감정을 온라인에 쏟아낸다. 하지만 이은경은 정반대의 진단을 내린다. 우리는 감정을 가장 피상적으로 축약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이다. "노잼", "좀 그랬다", "별로". 이런 표현들은 복잡하고 섬세한 감정을 한두 단어로 압축한다. 서운함, 실망, 섭섭함, 불편함, 당혹스러움 등이 있다. 이 모든 미묘한 감정의 결들이 "좀 그랬다"는 말로 뭉뚱그려진다. 단어는 넘쳐나지만, 정작 자신의 내면을 정확히 설명할 언어는 빈곤해지고 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감정 어휘와 정서 지능이 직결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감정을 정확히 명명할 수 있는 능력은 그 감정을 이해하고 조절하는 능력의 출발점이다. 반대로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없으면, 그 감정은 명확한 형태를 갖지 못한 채 막연한 불편함으로만 남는다. 이것이 누적되면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타인의 감정도 공감하지 못하는 정서적 문맹 상태에 이른다.


SNS는 단순한 소통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공개된 평가 시스템이다. 좋아요 수, 조회수, 팔로워 수—이 모든 지표는 나의 일상이 타인에게 어떻게 평가받는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저자가 지적하듯, 은밀하고 사적인 감정이었던 부러움은 이제 구조화된 시스템이 되었다. 문제는 이것이 가족 관계에도 침투했다는 점이다. "우리 가족만 맨날 집에 있네?", "다른 집 보니까 우리 애들한테 미안해"..이런 말들은 비교의 피로가 의무로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가족 여행은 더 이상 휴식과 회복의 시간이 아니라,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콘텐츠가 된다. 어디를 가느냐보다 어떻게 찍느냐가 중요해지고, 그 순간을 온전히 경험하는 것보다 완벽하게 기록하는 것이 우선시된다. 저자는 이것을 '가족 여행이라는 스펙'이라고 표현한다. 가족의 행복과 휴식이 보장되어야 할 시간이 타인의 평가 대상이 되고, SNS 피드 속 경쟁의 소재로 변질된 것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것이 사랑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너 잘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말 뒤에는 종종 부모 자신의 불안이 숨어 있다. 아이가 잘되면 부모가 덜 불안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날카롭게 묻는다. 사랑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부모가 아이를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동기가 실은 부모 자신의 안도를 위한 것이라면, 아이의 뇌는 그것을 정확히 감지한다고 이은경은 설명한다. 마음은 감정을 속일 수 있지만, 뇌는 절대 속지 않는다. 도파민 시스템은 진심과 거짓을 본능적으로 구별한다. 성취 강박에 빠진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명상 기법이나 자기계발 프로그램이 아니다. 필요한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분위기다. 그 분위기는 자잘하게 반복되는 '괜찮음'에서 만들어진다. 실수해도 괜찮고, 느려도 괜찮고, 뒤처져도 괜찮다는 메시지. 그것이 반복될 때 비로소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로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저자가 강조하듯, 이것은 가족의 정서적 면역력이다. 끊임없이 성취를 요구하는 세상에서, 멈춰도 되고 실패해도 되는 안전한 공간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가족이 가족다운 이유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저자의 답은 명확하다. 부모가 먼저 화면에서 로그아웃해야 한다. 아이에게 스마트폰을 내려놓으라고 말하면서 정작 부모 자신은 식사 시간에도 휴대폰을 확인한다면, 그 어떤 교육적 메시지도 힘을 잃는다. 아이들은 부모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본다. 부모가 화면에서 벗어나 아이와 눈을 맞추기 시작할 때, 아이의 전전두엽에도 정지선이 생기기 시작한다. 멈춰 있던 관계의 회로가 다시 작동한다. 도파민이 자극을 통해 쾌락을 강화한다면, 옥시토신은 연결을 통해 안정감을 만든다. 지금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자극이 아니라, 느린 리듬의 관계 회복이다.

거창한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 번 온 가족이 스마트폰 없이 저녁을 먹는 것, 자기 전 10분간 서로의 하루에 대해 묻는 것, 주말에 함께 걸으며 아무 말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 이런 작은 실천들이 쌓일 때 관계는 회복된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것이다. 아이의 뇌를 설계하는 것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아니라 오늘 저녁 식탁의 대화라는 것. 자극보다 관계의 힘이 세질 때, 아이의 뇌는 건강하게 자란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시스템이다. 그리고 그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부모의 결단이다. 완벽한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디지털 자극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아이가 기댈 수 있는 안전한 연결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도파민이 아이의 뇌를 지배할 때, 아이를 지키는 유일한 연결망은 가족이다. 그리고 그 가족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잠시 멈추고, 화면을 내려놓고, 서로를 바라봐야 한다. 지금 뭘 해야 하는지 묻지 않고, 함께 있는 것만으로 채워지는 특별한 공간. 우리가 그 관계를 다시 회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족은 가족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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