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안을 감염시키고 있는가 - 다미주 세계로 연결된 우리는, 서로의 세계가 된다
스티븐 W. 포지스.세스 포지스 지음, 서주희 옮김 / 하나의학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선택의 순간들을 마주한다. 낯선 사람과 눈이 마주쳤을 때 미소를 지을 것인가, 아니면 시선을 피할 것인가? 중요한 회의에서 의견을 말할 것인가, 아니면 침묵할 것인가? 이러한 선택들은 단순히 의식적 결정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몸속 깊은 곳, 뇌간에서 작동하는 자율신경계의 상태에 의해 근본적으로 영향받는다. 스티븐 포지스(Stephen Porges)의 다미주이론(Polyvagal Theory, PVT)은 바로 이 자율신경계의 상태가 어떻게 우리의 행동, 생리, 심리적 반응을 형성하는 '신경학적 플랫폼'으로 작동하는지를 설명한다. 다미주이론이 제시하는 세계관은 혁명적이다. 전통적인 심리생리학이 자극-반응(stimulus-response)의 인과관계를 가정했다면, PVT는 자율신경 상태를 '매개 변수'로 위치시키는 자극-유기체-반응(S-O-R) 모델을 제안한다. 다시 말해, 동일한 자극이라도 우리의 자율신경계가 어떤 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렌즈를 제공한다.


우리의 자율신경계는 진화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PVT에 따르면,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는 세 가지 기본적인 신경회로를 가지고 있으며, 이들은 진화적으로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으로 위계를 형성한다. 첫 번째 회로는 가장 오래된 등쪽 미주신경(dorsal vagal) 체계다. 이 체계는 극단적 위협 상황에서 활성화되어 부동화(immobilization) 반응을 일으킨다. 고대 파충류로부터 물려받은 이 회로는 생명이 위협받는 순간 에너지 보존을 위해 신진대사를 급격히 낮춘다. 현대 인간에게 이는 해리(dissociation), 실신, 극도의 무력감으로 나타난다. 심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들이 "몸이 얼어붙는" 느낌을 보고하는 것이 바로 이 회로의 작동이다. 두 번째는 교감신경계(sympathetic nervous system)다. 이 체계는 투쟁-도피(fight-flight) 반응을 담당한다. 위험을 감지했지만 아직 행동으로 대응할 수 있을 때, 우리 몸은 심박수를 높이고 근육에 혈류를 증가시키며 전투 또는 도주를 위한 준비를 한다. 이는 대부분의 척추동물에게서 발견되는 생존 메커니즘이다. 세 번째이자 가장 최근에 진화한 것은 배쪽 미주신경(ventral vagal) 복합체다. 이것이야말로 포유류, 특히 사회적 포유류를 특별하게 만드는 신경학적 혁신이다. 약 2억 2천만 년 전, 고대 파충류에서 최초의 포유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심장 억제를 담당하는 뉴런들이 등쪽에서 배쪽 미주신경 핵으로 이동했다. 이 '배쪽 이동'은 단순한 해부학적 변화가 아니었다. 그것은 빨기-삼키기-발성-호흡 과정을 하나의 통합된 회로로 연결시켰고, 수유를 통한 안정화라는 포유류의 기본 특성을 가능하게 했다. 이 세 체계의 핵심은 그들이 위계적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안전할 때 우리는 배쪽 미주신경의 지배를 받으며, 이는 사회적 교류, 차분한 각성, 회복과 성장을 촉진한다. 그러나 위협이 감지되면 잭슨의 해체 원리(Jacksonian principle of dissolution)에 따라 진화적으로 더 오래된 회로들이 억제에서 풀려난다. 먼저 교감신경계가 활성화되고,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등쪽 미주신경이 작동한다

다미주이론의 중요한 기여 중 하나는 '미주신경 역설(vagal paradox)'을 해결한 것이다. 어떻게 동일한 미주신경이 건강한 호흡성 동성부정맥(Respiratory Sinus Arrhythmia, RSA)과 위험한 서맥(bradycardia)을 동시에 매개할 수 있는가? 포지스의 답은 명확했다: 그것들은 같은 미주신경의 다른 가지들이다. RSA는 호흡 주기에 따라 심박수가 미묘하게 변하는 현상이다. 들숨 때 심박수가 약간 증가하고, 날숨 때 감소한다. 이 리듬은 배쪽 미주신경의 건강한 기능을 반영한다. 높은 RSA는 유연한 자율신경 조절, 즉 환경 요구에 따라 적절히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는 정서 조절, 사회적 참여, 항상성 유지와 관련된다. 반면 신경성 서맥은 등쪽 미주신경의 활성화로 인한 급격한 심박수 감소다. 이는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서의 생존 반응이다. 주산기 의학에서 태아의 서맥은 심각한 고통의 신호로 해석된다. 심리생리학에서도 극단적 위협 반응으로 나타난다. 포지스의 천재성은 이 두 현상을 별개의 신경 경로로 구분하고, 각각을 측정 가능한 지표로 만든 데 있다. RSA는 이제 배쪽 미주신경 톤의 '포털'이 되어, 수백 편의 연구에서 스트레스 반응, 정서 조절, 사회적 행동을 예측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다미주이론의 가장 매력적인 측면 중 하나는 배쪽 미주신경 복합체와 얼굴 근육의 연결이다. 포지스가 명명한 '사회적 참여 시스템(social engagement system)'은 단순히 심장을 조절하는 것을 넘어선다. 그것은 얼굴 표정, 목소리 억양, 듣기, 심지어 중이 근육까지 통제한다. 이 통합은 진화적으로 깊은 의미를 갖는다. 수유하는 아기를 생각해보라. 빨기-삼키기-호흡의 리듬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동시에 어머니와의 눈 맞춤, 부드러운 소리, 차분한 각성 상태를 동반한다. 배쪽 미주신경은 이 모든 것을 조율한다. 생리적 필요(영양)와 사회적 연결(애착)이 동일한 신경 회로에 의해 매개되는 것이다. 이는 평생 지속된다. 우리가 안전하다고 느낄 때, 배쪽 미주신경이 활성화되면 자연스럽게 표정이 밝아지고, 목소리에 멜로디가 생기며,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게 된다. 반대로 위협을 느끼면 얼굴은 굳어지고, 목소리는 날카로워지며, 청각은 저주파 위협 소리에 민감해진다. 우리의 사회적 소통 능력은 자율신경 상태에 내재되어 있다. 이는 중요한 임상적 함의를 갖는다.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얼굴 표정을 읽기 어려워하거나, 타인의 목소리를 위협적으로 해석하거나, 눈 맞춤을 불편해하는 것은 단순히 심리적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만성적 위협에 의해 형성된 자율신경 상태의 직접적 결과다. 치유는 인지적 통찰만으로는 부족하다. 자율신경계가 안전을 느끼도록 돕는 것, 즉 배쪽 미주신경 톤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미주이론은 인간 사회성의 생물학적 토대를 재개념화한다. 우리는 흔히 개인을 독립적 단위로 생각하지만, PVT는 포유류가 근본적으로 '공동 조절(co-regulation)'을 위해 설계되었음을 보여준다. 공동 조절이란 타인의 존재와 행동이 우리 자율신경계의 상태를 조절하는 과정이다. 아기는 스스로 각성 상태를 조절할 수 없다. 양육자의 차분한 목소리, 부드러운 접촉, 안정된 호흡 패턴이 아기의 배쪽 미주신경을 활성화시켜 진정시킨다. 이는 단순히 심리적 위안이 아니라 생리적 필요다. 성인이 되어서도 이 필요는 지속된다. 우리는 친구와의 대화에서, 연인의 포옹에서, 공동체의 의식에서 공동 조절을 경험한다. 안전한 관계는 우리의 자율신경계를 안정화시키고, 이는 다시 더 나은 건강, 정서 조절, 인지 기능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만성적 고립이나 학대적 관계는 자율신경계를 만성적 방어 상태로 밀어넣어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해친다. 이는 '안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요구한다. 안전은 단순히 위험의 부재가 아니다. 그것은 배쪽 미주신경이 활성화되어 사회적 참여를 지원하는 신경생리학적 상태다. 진정한 안전은 타인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완전히 실현된다. 우리는 혼자서는 최적으로 기능할 수 없다. 우리의 신경계는 다른 신경계와의 리듬적 상호작용을 통해 조율되도록 설계되었다.


PVT는 트라우마 반응에 대한 연민 어린 이해를 제공한다. 생존 위협에 직면했을 때, 배쪽 미주신경의 사회적 참여 시스템이 실패하면 자동으로 해체(dissolution) 과정이 시작된다. 이는 '진화의 역행'이다. 먼저 교감신경이 활성화되고, 그것도 실패하면 등쪽 미주신경의 부동화가 일어난다. 이 과정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수억 년 동안 보존되어온 생존 메커니즘이다. 싸우거나 도망칠 수 없을 때, 몸은 에너지를 보존하고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지'한다. 성폭력 생존자들이 저항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것은 이 신경생물학을 이해하지 못한 결과다. 그들의 몸은 가장 오래되고 깊은 생존 본능을 따른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만성적 위협이 자율신경계를 재조정한다는 점이다. 반복된 트라우마는 방어 회로를 민감화시켜, 실제로 안전한 상황에서도 위협 신호를 감지하게 만든다. 이는 PTSD, 불안 장애, 많은 신체화 증상의 근간이다. 문제는 기억이나 생각에만 있지 않다. 자율신경계 자체가 만성적 방어 상태에 갇혀 있다. 그러나 PVT는 비관적이지 않다. 해체가 역전될 수 있다면, 회복도 가능하다. 치료의 목표는 단순히 증상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신경계가 안전을 경험하고 배쪽 미주신경 톤을 회복하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인지적 작업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신체 기반 치료, 리듬적 활동, 안전한 관계에서의 공동 조절이 필요하다.


다미주이론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연결이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생물학적 필수다. 우리의 신경계는 타인과의 공동 조절을 통해 최적으로 기능하도록 진화했다. 안전과 건강은 고립 속에서 달성될 수 없다. 그것들은 사회적 참여와 불가분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는 개인주의 문화에 대한 도전이다. 우리는 자기 의존과 독립을 미덕으로 칭송하지만, 신경생물학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상호의존적이다. 트라우마는 연결의 단절이고, 치유는 안전한 연결의 회복이다. 현대 사회의 많은 문제들은 이 연결의 결핍과 관련될 수 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생리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다. 스크린을 통한 소통은 배쪽 미주신경을 활성화시키는 얼굴 대 얼굴 상호작용을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PVT는 희망의 이론이기도 하다. 만약 자율신경 상태가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면, 그것은 또한 경험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안전한 관계, 리듬적 활동, 신체 기반 실천들은 배쪽 미주신경 톤을 회복시킬 수 있다. 트라우마의 유산은 영구적이지 않다. 우리는 다미주 세계(polyvagal world)에 살고 있다. 우리의 행동, 감정, 관계, 건강은 모두 자율신경 상태라는 보이지 않는 플랫폼 위에 구축된다. 우리가 서로를 안전하게 해줄 때, 우리는 서로의 신경계를 조절하고, 건강을 지지하며, 인간 번영의 생물학적 기반을 창조하고 있다. 이것이 다미주이론이 밝혀낸, 연결의 생물학적 명령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