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화 치료의 시대 - DNA부터 뇌까지 최신 트렌드로 보는 12가지 건강수명 전략
이영진 지음 / 아침사과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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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노화를 자연스러운 생명의 과정으로 받아들여왔다. 주름이 늘어나고, 체력이 떨어지며, 기억력이 감퇴하는 것을 단순히 시간의 흐름이 남긴 흔적으로 여겼다. 하지만 이영진 박사의 <노화 치료의 시대>는 이러한 통념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노화는 정말 피할 수 없는 숙명일까, 아니면 우리가 개입하고 치료할 수 있는 생물학적 현상일까? 40년 넘게 노화 의학과 통합의학 분야를 개척해온 저자는 노화를 질병의 범주로 재정의한다. 최근 20여 년간 축적된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패러다임의 혁명이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암, 심혈관 질환, 치매, 대사성 질환 등은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세포 수준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세포 수준의 변화들은 이제 측정 가능하고, 진단 가능하며, 무엇보다 치료 가능한 대상이 되었다.


책은 노화를 유발하는 열두 가지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체계적으로 제시한다. 매일 십만 번씩 발생하는 DNA 손상과 그 복구 능력의 감소, 세포 분열 횟수를 제한하는 텔로미어의 단축, 염증 물질을 분비하며 주변 세포까지 노화시키는 좀비 세포의 축적, 세포 내 노폐물을 재활용하는 자가포식 기능의 저하 등이 그것이다. 이 메커니즘들은 독립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하나가 무너지면 다른 것들도 연쇄적으로 악화된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한 가지를 개선하면 다른 것들도 함께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고혈압이 심혈관 질환의 위험 요인이듯, 이 열두 가지 세포 수준의 이상은 대부분의 노화 관련 질환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위험 요인이다.

DNA 손상을 예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세포는 자외선, 환경 오염물질, 대사 과정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 등으로 인해 끊임없이 공격받는다. 젊을 때는 복구 시스템이 활발하게 작동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효율이 떨어진다. 그러나 열량을 제한한 식단, 규칙적인 운동, 항산화제 섭취 등으로 DNA 손상을 평균 20~30% 줄일 수 있다는 임상 연구 결과가 있다. 더 나아가 식물의 폴리페놀을 꾸준히 섭취하면 복구 속도가 18% 향상되고, NAD+ 같은 핵심 효소를 보충하면 손상이 40%까지 감소한다는 것이다. 텔로미어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염색체 끝을 보호하는 이 구조물은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며, 일정 길이 이하로 줄어들면 세포는 더 이상 분열하지 못하고 노쇠 상태에 빠진다. 그런데 만성 스트레스를 받는 여성의 텔로미어는 그렇지 않은 여성보다 평균 10년이나 빨리 짧아진다. 스트레스가 단순히 심리적 문제가 아니라 세포 수준에서 실제로 우리를 늙게 만든다는 과학적 증거다. 반대로 명상, 운동, 사회적 지지 같은 스트레스 관리법이 텔로미어 보호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 결과도 제시된다.


특히 인상적인 개념은 노쇠 세포, 일명 좀비 세포다. 이들은 더 이상 분열하지는 않지만 죽지도 않은 채 염증성 물질을 분비하며 주변의 건강한 세포까지 노화시킨다. 마치 좀비 영화에서 감염이 퍼지듯, 이 세포들은 노화를 전염시킨다. 그런데 이런 노쇠 세포를 선택적으로 제거하는 세놀리틱 약물을 투여하자 실험동물의 건강 상태가 개선되고 수명이 연장되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세놀리틱이 증상이 나타난 후에 대응하는 기존 치료법과 달리, 노화의 근본 원인을 다룬다는 점이다. 암이나 심혈관 질환, 신경 퇴행성 질환 등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수 있다는 의미다. 수명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로 살아가는 시간, 즉 건강 수명을 증가시킨다. 자가포식 시스템도 흥미로운 주제다. 세포 내에서 낡고 손상된 단백질이나 소기관을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이 메커니즘은 젊을 때는 효율적으로 작동하지만 나이가 들면 약해진다. 마치 쓰레기 처리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아 노폐물이 쌓이는 것과 같다. 그런데 간헐적 단식이나 열량 제한, 운동 등이 이 시스템을 활성화시킨다. 더 흥미로운 것은 메트포르민, 라파마이신, 레스베라트롤 같은 약물들이 실제로 단식하지 않아도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이다.

세포의 발전소라 불리는 미토콘드리아의 기능 저하도 노화의 핵심 메커니즘이다. 에너지를 생산하는 이 소기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세포는 활력을 잃고, 활성산소가 증가하며, 결국 세포 전체의 기능이 떨어진다. 나이가 들수록 NAD+ 같은 핵심 조효소가 급격히 감소하는데, 이것이 사백 개 이상의 대사 반응에 관여하기 때문에 그 영향은 전신적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건강한 조직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를 손상된 부위에 이식하는 치료법까지 시도되고 있다. 토끼와 돼지 실험에서 심근경색 부위에 미토콘드리아를 주입하자 심근 괴사가 현저히 줄고 심장 기능이 개선되었다. 간, 폐 등 다른 장기에서도 비슷한 효과가 확인되고 있다. 노화 치료가 단순히 증상 완화를 넘어 손상된 조직의 실질적 복구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후성 유전적 변화에 관한 설명은 또 다른 차원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부모에게 물려받은 DNA 염기서열은 바뀌지 않지만, 그 DNA가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환경, 생활습관,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DNA에 붙는 메틸기나 아세틸기 같은 화학적 표지가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는데, 이것이 바로 후성 유전적 변화다. 놀라운 것은 이런 변화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후성 유전적 세포 재프로그래밍을 통해 노화 시계를 되돌리거나 재설정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에피드러그라 불리는 이런 약물들은 암 치료뿐만 아니라 건강한 노화, 만성 질환 예방, 손상된 조직의 재생에도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세포의 나이를 실제로 젊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은 공상과학 소설 같지만, 이제 과학적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나이가 들면서 우리 몸의 각 조직에 있는 줄기세포도 기능이 떨어지거나 숫자가 줄어든다. 피부, 장, 뇌, 근육, 간 등 모든 장기의 줄기세포가 노화하면서 조직 재생 능력이 감소한다. 하지만 저자는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자신의 지방 조직에서 추출한 줄기세포를 배양하여 손상된 부위에 주사하는 치료법이 이미 임상에서 활용되고 있다. 특히 줄기세포가 분비하는 엑소좀이라는 미세 소포체가 주목받고 있다. 이 작은 입자들은 세포 간 통신 수단으로, 단백질, RNA, 성장인자 등을 담아 다른 세포에 전달한다. 노화한 세포의 엑소좀은 염증과 노화를 전파하지만, 젊고 건강한 줄기세포의 엑소좀은 손상된 조직을 회복시키고 염증을 억제한다. 실제로 지방 줄기세포 유래 엑소좀을 피부에 적용하면 주름이 개선되고, 탈모 부위에 적용하면 모발이 재생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면역 시스템의 노화도 빼놓을 수 없다. 나이가 들면 면역세포의 다양성이 감소하고, 만성 염증이 증가하며, 새로운 병원체에 대한 반응이 둔해진다. 그런데 백세 이상 장수 노인들을 연구해보니 그들의 면역 시스템에는 특별한 특징이 있었다. 염증을 조절하는 능력이 뛰어나고, 면역세포의 기능이 잘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내 미생물의 역할도 점점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다. 우리 몸에는 수십조 개의 미생물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소화, 면역, 신경전달물질 생성, 염증 조절 등 다양한 기능에 관여한다. 일반 노인과 장수 노인, 쇠약한 노인의 장내 미생물 구성은 확연히 다르다. 장내 미생물 불균형이 노화와 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면, 프로바이오틱스나 대변 미생물 이식을 통해 이를 개선하는 것도 노화 치료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흥미롭게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나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 같은 신경발달 질환에서도 특정 유산균이 증상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연구가 있다. 장과 뇌가 연결되어 있다는 장-뇌 축 이론이 실제 치료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의학은 주로 질병이 발생한 후에 개입해왔다. 증상이 나타나면 진단하고, 약을 처방하고, 수술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노화를 질병으로 본다면, 증상이 나타나기 훨씬 전부터 세포 수준에서 예방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 물론 모든 노화를 완전히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도 각 메커니즘마다 가능성과 한계를 분명히 언급한다. 개인마다 유전자, 환경, 생활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될 수는 없다. 하지만 방향성은 명확하다. 노화는 더 이상 속수무책으로 맞이해야 할 운명이 아니라, 이해하고 관리하며 대응할 수 있는 생물학적 과정이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단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다. 건강 수명, 즉 활기차고 의미 있게 살아가는 시간을 늘리는 것이다. 백 세까지 산다 해도 마지막 20년을 병상에서 보낸다면 그것이 진정한 장수일까? 저자는 삶의 마지막까지 자신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것이 진정한 건강 수명이라고 강조한다. 수면, 운동, 스트레스 관리, 균형 잡힌 식사라는 기본 위에 자신에게 맞는 전략을 하나씩 단계적으로 실천하라고 권한다.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그것이 건강 수명 연장과 삶의 질, 존엄성을 지키는 가장 지혜로운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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