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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봉아, 우울해? - 침몰하는 애인을 태우고 우울의 바다를 건너는 하드캐리 일상툰
향용이 지음 / 애플북스 / 2025년 10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평범한 연애를 이어가던 커플에게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중증 우울증. <상봉아, 우울해?>는 든든했던 연인이 우울증 환자가 되면서 시작된 두 사람의 특별한 동거 이야기입니다. 저자 향용은 22살에 만난 상봉과의 6년 차 연애 중, 그가 중증 우울 장애 진단을 받게 되면서 겪은 변화와 적응의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했습니다. 우울증을 겪는 연인과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의 진솔한 감정과 일상을 담아낸 기록인 것입니다. 저자는 상봉에게 직접 하지 못한 말들, 때로는 참지 못하고 내뱉어 상처가 됐던 순간들, 그럼에도 함께 만들어낸 소중한 시간들을 글과 그림으로 풀어냅니다.
공부를 좋아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던 상봉은 어느 날부터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게임으로 보내고, 곰처럼 긴 잠을 자는 날이 많아졌죠. 두세 시간씩 앉아서 공부하던 사람이 다리가 떨려 10분도 책상에 앉아 있지 못하고, 낯을 가리지 않던 사람이 아는 사람을 길에서 마주치면 일주일을 누워 지내야 했습니다. 치료저항성 우울증이라는 진단은 두 사람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었습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들의 관계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향용은 상봉이 들어간 우울증의 세계를 "어둡고 답답하지만 도망치고 싶은 곳은 아니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는 이것을 새로운 우주가 열린 것으로 받아들이며, 그 안에서 함께 게임하고, 요리하고, 끊임없이 대화하며 상봉이 세상과 연결되는 다리 역할을 자처합니다.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유쾌하고 따뜻하게 카툰 형식의 책은 부담스럽지 않게 읽힙니다. 그 비결은 저자가 유지한 '적당한 거리감'에 있습니다. 배우자나 가족이 아닌 연인의 시선이기에 가능한 이 거리는, 과도하게 몰입하거나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진심 어린 관심과 사랑을 담아냅니다. 책 속에는 두 사람의 엉뚱하고 발랄한 대화, 오랜 연애가 만든 든든한 유대감, 그리고 향용이 상봉에게 차마 하지 못한 속마음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습니다. 농담을 섞어 표현하자면 '우울증을 곁들인 뜨거운 연애 에세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책은 무겁지만은 않은 분위기를 유지합니다. 향용은 우울증을 이미 집에 자리 잡은 객식구 정도로 받아들입니다. 완전히 없앨 수는 없지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다는 태도입니다. 이런 수용의 자세가 두 사람에게 안정과 회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우울증을 인정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상봉에게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향용에게는 그런 그를 그대로 사랑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저자는 "흔하디흔한 그 말이 우리는 참 어려웠다"고 고백합니다. 상봉이 자신의 뇌가 잠시 전원을 끈 것이 아니라 전원 자체가 망가졌다고 말할 때, 그 인정의 순간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리뷰어가 이 부분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은, 우울증을 겪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기 때문입니다. 우울의 바다를 건너는 과정에서 상처가 되는 말들도 있었습니다. "편하게 살아서 그런 거 아니냐", "의지가 약해서 그렇다" 같은 말들은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을 더 깊은 자책으로 몰아넣습니다. 하지만 향용은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않고 상봉의 곁을 지켰습니다. 폐쇄 병동에 입원한 상봉을 응원하기 위해 병원 앞 카페에서 일하며 멀리서나마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구체적인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했습니다.
5년이나 연락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답장을 보내는 상봉의 모습, 자신을 위해 운동을 시작하는 모습은 조금씩 회복해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리뷰어가 이 장면에서 울었다는 것은, 연락하지 않은 것이 친구가 싫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는 사람만이 공감할 수 있는 깊은 감정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6년의 치료 끝에 상봉은 여전히 약을 복용하고 있고, 언제 재발할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이제 우울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우울증에 지지 않는 유일한 길은, 우울증이 사라지지 않더라도 괜찮은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책 속 한 구절은 특히 마음에 남습니다. "손아귀를 빠져나가 아무것도 남을 것 같지 않은 모래 한 줌도 한데 모아 조심히 거르고 거르다 보면 사금 한 톨이 반짝 제 모습을 드러내듯, 허무하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시간에도 이렇게 빛나는 순간이 있었다" 우울증으로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시간 속에서도 의미를 찾으려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을 보여줍니다.
<상봉아, 우울해?>는 우울증으로 힘든 사람들뿐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권할 만한 책입니다. 만화와 에세이가 결합된 형식은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접근할 수 있게 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전달합니다. 우울은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감정입니다.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우울증은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된 것입니다. 자신을 원망하지 말고 천천히 다시 행복해지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