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병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한 가지 명확한 사실이 드러난다. 인류는 결코 감염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생물은 끊임없이 진화하며 새로운 형태로 나타난다. 항생제가 개발되면 내성균이 등장하고, 백신이 만들어지면 변이 바이러스가 나타난다. 이는 진화생물학자 리 밴 밸런이 제시한 '붉은 여왕 가설'과 일맥상통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붉은 여왕이 "같은 자리에 머물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달려야 한다"고 말한 것처럼, 생명체는 주변 환경과 경쟁자에 맞춰 계속 진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인류가 새로운 치료법을 개발하면 미생물도 그에 적응해 진화한다. 알렉산더 플레밍이 우연히 발견한 페니실린은 감염병 치료에 혁명을 가져왔다.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이 물질은 세균의 세포벽을 파괴하면서도 인체에는 무해했다. 수많은 생명을 구한 페니실린은 현대 의학의 기적이었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만에 페니실린 내성균이 나타났고, 이제는 다양한 항생제에 내성을 가진 슈퍼박테리아가 새로운 위협이 되고 있다.
감염병은 사람을 죽이는 데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사회 구조를 바꾸고, 과학 기술의 발전을 촉진하고, 인간의 세계관까지 변화시켰다. 페스트는 중세의 봉건제를 무너뜨리고 근대적 노동 관계를 만들었다. 콜레라는 도시 위생의 혁명을 가져왔고, 천연두는 백신이라는 위대한 발명을 낳았다. 감염병과의 싸움은 또한 국제 협력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병원균은 국경을 인식하지 못한다. 한 지역의 발병은 곧 전 세계의 위협이 될 수 있다. 천연두 퇴치는 국제사회가 힘을 합쳐 이룬 성과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은 지금, 우리는 감염병이 여전히 진행형의 위협임을 실감한다. 기후 변화로 모기의 서식 범위가 넓어지고, 산림 파괴로 야생동물과의 접촉이 증가하며, 전 지구적 이동이 일상화된 오늘날, 새로운 감염병이 언제든 출현할 수 있다. 역사는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감염병은 막을 수 없지만 대비할 수는 있다. 과학적 연구, 공중보건 시스템의 구축, 국제 협력 체계의 마련이 필요하다. 또한 감염병은 사회의 약한 고리를 드러낸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지역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다. 감염병 대응은 곧 사회 정의의 문제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과 인류의 공존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을 완전히 없앨 수 없지만,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는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고, 과학과 연대의 힘을 믿으며,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 그것이 감염병의 역사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