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디츠 - 나치 포로수용소를 뒤흔든 집요한 탈출과 생존의 기록
벤 매킨타이어 지음, 김승욱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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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의 콜디츠 성(Colditz Castle)은 연합군 포로들에게는 탈출 불가능한 감옥이었지만, 동시에 창의성과 용기, 그리고 인간 정신의 불굴함이 집약된 무대이기도 했다. Ben MacIntyre의 <콜디츠 : Prisoners of the Castle>은 이 특별한 감옥에서 벌어진 놀라운 이야기들을 생생하게 그려내며,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의지와 창의력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

콜디츠 성은 일반적인 포로수용소가 아니었다. 이곳은 다른 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했던 '문제 포로들'을 위한 특별 감옥이었다. 라이프치히 근처 산중에 위치한 이 중세 성은 400년 된 견고한 건물로, 비나치 지역으로부터 400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했다. 독일군은 이곳을 탈출 불가능한 감옥으로 만들고자 했지만, 역설적으로 여기에 수용된 포로들은 더욱 창의적이고 대담한 탈출 계획들을 세우게 된다. MacIntyre는 콜디츠의 독특한 성격을 잘 포착해낸다. 이곳에는 "공산주의자들, 과학자들, 동성애자들, 여성들, 미학가들과 속물들, 귀족들, 스파이들, 노동자들, 시인들, 그리고 배신자들"이 모여 있었다. 이러한 다양성은 콜디츠를 단순한 감옥이 아닌 하나의 작은 사회로 만들었으며,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공통의 목표 - 탈출 - 를 위해 협력하는 흥미로운 무대가 되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포로들의 기발하고 정교한 탈출 시도들이다. 1943년 마이클 싱클레어(Michael Sinclair)의 변장 탈출 시도로 시작되는 이 책은 독자들을 즉시 긴장감 넘치는 탈출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영국 장교였던 싱클레어가 독일군 하사관으로 완벽하게 변장하고 20명의 동료 포로들과 함께 탈출을 시도하는 장면은 마치 스파이 소설의 한 장면 같다. 포로들의 창의성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들은 비누로 열쇠 본을 떠서 나무로 진짜처럼 작동하는 열쇠를 만들었고, 모노폴리 게임 돈 사이에 진짜 독일 화폐를 숨겨 받았으며, 책을 속을 파내어 밀수품을 숨겼다. 심지어 33피트 날개폭을 가진 글라이더를 다락방에서 비밀리에 제작하기까지 했다. 이 글라이더는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포로들의 불굴의 의지와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MacIntyre가 이 책에서 특히 잘 그려낸 부분은 독일군 관리들의 복잡한 모습이다. 콜디츠의 지휘관이었던 라인홀트 에거스(Reinhold Eggers) 중위는 프로이센의 학교 교사 출신으로, 영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며 영국을 사랑했다. 그는 나치가 아니었으며, 나치들을 기껏해야 어리석고 최악의 경우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에거스와 같은 독일군 장교들은 제네바 협약을 준수하려 노력했으며, 때로는 포로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이들은 포로들의 탈출 시도를 막아야 하는 의무와 인간적인 감정 사이에서 갈등했다. 이러한 묘사는 전쟁 중에도 존재했던 인간성과 직업적 양심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상황은 악화되었다. 1943년부터 정규군 장교들이 SS와 게슈타포로 교체되기 시작했고, 콜디츠의 분위기도 점점 더 어둡고 위험해졌다. 탈출 시도에 대한 처벌도 더욱 가혹해져서, 결국에는 총살형까지 가능해졌다.

MacIntyre는 콜디츠 내부의 계급 의식과 차별 문제도 솔직하게 다룬다. 장교들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부관(batman)이라는 개인 하인을 두었고, 이러한 주인-하인 관계는 감옥 안에서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또한 인도계 영국 장교인 비렌다나트 마줌다르(Birendanath Mazumdar)는 다른 포로들로부터 조롱과 의심을 받았으며, 많은 이들이 그를 스파이로 의심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독일군이 실제로 그를 스파이로 포섭하려 했지만, 그는 석방 제의를 거부하고 영국에 대한 충성을 지켰다. 이러한 묘사는 전쟁 포로들 사이에도 당시의 사회적 편견과 계급 의식이 그대로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MacIntyre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들을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다루며, 영웅적인 이야기 뒤에 숨겨진 인간적인 약점들도 솔직하게 드러낸다.

책의 전개 과정에서 전쟁 상황의 변화가 콜디츠에 미친 영향이 생생하게 묘사된다. 초기에는 상대적으로 여유롭고 '신사적인' 분위기였던 콜디츠가, 독일이 패전의 길로 접어들면서 점점 더 억압적이고 위험한 곳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잘 그려져 있다. 1944년 D-Day 이후부터는 탈출 시도가 거의 불가능해졌고, 포로들의 생명도 더욱 위험해졌다. 특히 마이클 싱클레어의 죽음은 이러한 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여러 차례 탈출을 시도했던 그는 1944년 9월 마지막 탈출 시도 중 사살당했다. 그의 죽음은 콜디츠에서 탈출이 더 이상 게임이 아니라 생명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1945년 4월, 콜디츠는 마침내 해방되었다. 흥미롭게도 이 역사적인 순간을 받아들인 것은 앨런 머피(Alan Murphy)라는 이등병이었다. 그는 정찰 임무를 수행하던 중 우연히 콜디츠를 발견했고, 유럽에서 가장 악명 높은 포로수용소 중 하나의 항복을 받아들이는 영예를 얻었다. 이러한 극적인 대조 - 이등병이 받은 유명한 성의 항복 - 는 전쟁의 아이러니를 잘 보여준다. 해방 후 많은 전 포로들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일부는 높은 정치적 지위에 올랐고, 많은 이들이 작가가 되었다. 에거스 중위는 전쟁범죄로 기소되지 않았지만, 동독에서 가짜 혐의로 체포되어 감옥살이를 해야 했다. 이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계속된 고난을 보여준다.

Ben MacIntyre는 철저한 자료 조사와 생동감 넘치는 서술, 그리고 균형 잡힌 시각이 조화를 이루어 깊은 감동과 교훈을 전달한다. 이 책은 전쟁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뿐만 아니라, 인간의 용기와 창의성, 그리고 불굴의 의지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인 것 같다. 콜디츠 성의 포로들이 보여준 것은 결국 인간 정신의 자유로움이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어떠한 물리적 구속도 인간의 상상력과 희망, 그리고 자유를 향한 갈망을 완전히 억누를 수는 없다는 것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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