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 - 23개 질문으로 읽는 검찰 상식과 개혁의 길
박용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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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검사는 전시의 군대를 제외하곤 이 나라에서 가장 힘 있는 집단입니다." 80여 년 전 미국에서 울려 퍼진 로버트 잭슨의 경고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 그대로 적용된다. 언제부터인가 검찰은 우리 사회의 일상 속 화두가 되었다. 저녁 뉴스는 검찰의 동향으로 시작하고, 정치적 사건들은 검찰의 수사 방향에 따라 좌우된다. 이러한 현실은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의 모습일까? 현재 우리사회는 무소불위의 검찰청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대해 많은 논란과 함께 새 정부는 새로운 조직법을 준비하고 있다. 미래의 우리나라의 검찰은 어떤 모습을 해야할까... 이번에 박용현님의 <검찰의 세계 세계의 검찰>을 통해 새롭게 생각해 본다.


검찰이라는 기관이 가진 이중성은 명확하다. 한편으로는 사회 정의의 최후 보루로서 범죄를 척결하고 공공의 안전을 수호하는 역할을 맡는다. 다른 한편으로는 막강한 기소권을 통해 개인의 생명과 자유, 명예를 좌우할 수 있는 거대한 권력집단이기도 하다. 이 양면성이 균형을 잃을 때, 검찰은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위험에 처한다. 세계 각국의 검찰 제도를 살펴보면, 이러한 위험성은 보편적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각국이 이 문제를 해결해 온 방식은 제각각이다. 미국은 검사 선거제와 대배심 제도를 통해, 독일은 객관 의무와 법관 신분 보장을 통해, 프랑스는 예심 판사 제도와 분권화를 통해 검찰권의 남용을 견제해왔다. 반면 한국의 검찰은 세계 유례없는 독특한 진화를 거쳤다.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의 도구로 시작해,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정치적 탄압의 선봉장 역할을 했으며,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과도한 권력 집중의 문제를 안고 있다.


미국의 검찰 제도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형태 중 하나다. 19세기 잭슨 민주주의의 영향으로 도입된 검사 선거제는 검찰권을 시민의 직접적 통제 아래 두려는 시도였다. 현재 미국 47개 주에서 2,300여 명의 검사가 선거로 선출된다. 이는 검사가 시민 위에 군림하는 것을 방지하고, 주기적인 심판을 통해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제도적 장치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방제 구조 하에서 검찰권이 분산되어 있다는 점이다. 연방 차원에서는 연방 검찰이, 주 차원에서는 각 주의 검찰이 독립적으로 기능한다. 이러한 다원적 구조는 어느 한 기관이 기소권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한다. 또한 대배심 제도를 통해 기소 여부를 시민들이 직접 결정하게 함으로써, 검사의 자의적 판단을 견제하는 중요한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그러나 미국 제도도 완벽하지 않다. 인종차별적 법 집행이 고질적 문제로 남아있고, 유죄 판결에만 매몰되는 검찰 문화로 인해 무고한 사람이 처벌받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이는 검찰 제도 자체에 내재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동시에, 지속적인 개혁과 견제가 필요함을 시사한다.


독일 검찰 제도의 핵심은 '객관 의무'에 있다. 검사는 유죄 입증에만 매진하는 것이 아니라, 피의자에게 유리한 사정까지 객관적으로 조사해야 할 의무를 진다. 이는 검찰이 과거 법원의 업무를 분리해서 생겨났다는 역사적 맥락과 관련이 깊다. 법원처럼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혀 있는 것이다. 또한 독일에서는 검사를 법관과 동일한 신분으로 대우한다. 임기와 보수, 승진 체계가 법관과 같고,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보장받는다. 연방제 국가답게 연방 검찰과 주 검찰이 분리되어 있어, 권력 집중을 방지하는 구조적 장치도 갖추고 있다. 프랑스의 가장 독특한 제도는 예심 판사 시스템이다. 중요한 사건의 수사는 검찰이 아닌 법원 소속 예심 판사가 담당한다. 예심 판사는 상명하복의 조직 구조에 속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사건을 처리한다. 이는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를 통해 권력 남용을 방지하려는 제도적 고안이다. 또한 프랑스는 중앙집권적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35명의 고등검찰청 검사장이 각자 독립적으로 관할 지역을 담당하는 분권적 구조를 갖고 있다. 전국을 통합 지휘하는 단일한 검찰총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다원화는 권력 집중의 위험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갖는다. 영국은 1986년까지 별도의 검찰 기관이 없던 특이한 나라였다. 경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했는데, 이러한 권력 집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독립된 기소청을 창설했다. 비교적 늦은 출발이었지만, 이는 오히려 다른 나라들의 시행착오를 반면교사로 삼아 더 나은 제도를 설계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영국 기소청의 핵심은 철저한 독립성과 전문성에 있다. 정치적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기소 기준과 절차가 명확하게 제도화되어 있다. 또한 시민사회의 감시와 견제를 받는 투명한 운영 체계를 갖추고 있다.


한국 검찰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려면 그 역사적 기원을 살펴봐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검찰 제도는 식민통치의 효율적 수행을 위한 도구였다. 고문을 통한 자백 중심의 수사, 정치적 반대세력에 대한 탄압, 체제 유지를 위한 국가보안법 집행 등이 이 시기 검찰의 주요 기능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유산은 완전히 청산되지 않았다. 미군정기에 미국식 제도 도입이 시도되었지만, 1954년 형사소송법 제정 과정에서 검찰 중심의 체제가 오히려 강화되었다. 경찰에 대한 견제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검찰에게 막강한 권한이 부여된 것이다. 그러나 검찰 역시 과거 식민지배 도구였다는 점은 간과되었다. 이후 권위주의 정권 하에서 검찰은 '독재 정권의 시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반공 이데올로기의 선봉장으로서 좌익 세력을 척결하고, 정치권력의 입맛에 따라 검찰권을 행사했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 등 수많은 공안 사건들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민주화 이후에도 검찰의 본질적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정연주 전 KBS 사장 기소, 광우병 보도 관련 PD수첩 기소, 미네르바 기소 등 정권의 눈에 거슬리는 인물들을 표적으로 삼은 수사가 이어졌다. 조국 사태는 이러한 표적 수사의 새로운 차원을 보여줬고, 윤석열 정권에서는 검찰이 직접 정치 권력화되는 극단적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국 검찰 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검찰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단일 조직이 기소권을 독점한다는 점이다. 이는 세계적으로 매우 예외적인 현상이다.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들이 모두 분권화된 구조를 갖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러한 구조는 필연적으로 권력 남용의 위험을 내포한다. 검찰총장 한 사람의 의지에 따라 전국의 모든 검찰이 움직일 수 있고, 이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도구로 전락할 가능성을 높인다. 윤석열 정권에서 목격한 바와 같이, 검찰 조직 전체가 하나의 정치 결사체처럼 행동하는 것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검사동일체 원칙은 모든 검사가 하나의 의사로 행동한다는 개념이다. 원래는 검찰의 일관성과 통일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였으나, 한국에서는 상명하복의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변질되었다. 개별 검사의 독립성과 자율성은 무시되고, 조직의 결정에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이는 검사 개인의 양심과 판단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다. 설령 개별 검사가 올바른 판단을 내리려 해도, 조직의 압력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밖에 없다. 결국 '좋은 검사'가 되려는 개인의 노력보다는 조직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구조다.

한국 검찰 개혁의 핵심은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에 있다. 현재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모두 담당하면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두 기능을 분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2024년 발표된 검찰개혁안은 기존 검찰청을 폐지하고 공소청과 중수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공소청은 기소 업무만 담당하고, 중수청은 중요 범죄 수사를 전담하는 구조다. 이는 78년 만의 근본적 변화로, 성공할 경우 한국 형사사법 체계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개혁이다. 하지만 제도 변화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새로운 기관들이 기존 검찰의 폐해를 답습하지 않도록 하는 견제 장치와 문화적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특히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고, 시민사회의 감시를 받는 투명한 운영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


80년 전 로버트 잭슨이 경고했던 검찰권의 위험성은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현실이 되었다. 검찰이 정의의 수호자가 아닌 권력의 도구로 전락한 모습을 우리는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제 변화의 시기가 왔다. 검찰 개혁은 민주주의의 근본 원리인 권력 분립과 견제와 균형을 회복하는 일이다. 시민이 주인인 사회에서 검찰이 제자리를 찾도록 하는 일이다. 세계 각국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검찰 제도는 없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끊임없는 개혁과 견제를 통해 검찰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민주적 통제 아래 두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도 이제 그 대열에 합류해야 할 때다. 진정한 검찰 개혁은 검찰을 위한 것이 아니라 시민을 위한 것이다. 모든 시민이 법 앞에 평등하고, 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검찰이 존재해야 할 진정한 이유이자, 우리가 추구해야 할 정의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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