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6
페르난도 사바테르 지음, 유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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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책은 철학사를 대중에게 친근하게 소개하려는 야심찬 시도작이다. 스페인의 대표적 철학자이자 작가인 사바테르는 이 책에서 서구 철학의 주요 인물들과 사상들을 유머와 위트를 곁들여 설명하며, 철학이 일상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련이 있는지를 보여준다. 제목에서 암시하듯, 저자는 철학을 어렵고 두려운 학문으로 여기는 편견을 깨뜨리고, 철학적 사유의 즐거움을 독자들과 나누고자 한다. 페르난도 사바테르는 스페인 바스크 지역 출신의 철학자로,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으며, 니체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학술적 철학 연구뿐만 아니라 대중을 위한 철학 에세이 집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왔다. 『윤리학 강의』, 『정치를 위한 용기』 등의 저작을 통해 철학을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 바 있다.

​사바테르의 가장 큰 강점은 복잡한 철학적 개념들을 일상적 언어로 번역하는 능력이다. 그는 전문 용어의 남발을 피하고, 구체적인 예시와 비유를 통해 추상적인 철학 이론들을 설명한다. 예를 들어,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설명할 때 동굴의 비유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하여 제시하고,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를 일상생활의 의심과 연결지어 설명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저자가 철학자들을 신화적 존재가 아닌 인간적 면모를 가진 실존 인물로 그려낸다는 것이다. 각 철학자의 개인적 배경, 시대적 상황, 심지어 사생활까지 언급하며, 그들의 사상이 어떤 맥락에서 형성되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책은 기본적으로 시대순으로 구성되어 있어 철학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기 용이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시작하여 중세 스콜라철학, 근세 합리론과 경험론, 근대 독일관념론, 현대 실존주의와 분석철학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체계적으로 다룬다. 이러한 통시적 접근법은 때로 철학적 주제별 깊이 있는 분석을 제한하는 한계를 보인다. 각 철학자나 사상에 할애되는 지면이 제한적이어서, 복잡하고 미묘한 철학적 논증들이 지나치게 단순화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20세기 현대철학 부분에서는 언어철학, 현상학, 구조주의 등 복잡한 사상들이 피상적으로만 다뤄지는 아쉬움이 있다.

사바테르의 글쓰기 스타일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유머의 적절한 활용이다. 그는 철학자들의 기이한 행동이나 모순적 면모를 재치 있게 지적하면서도, 그들의 사상 자체를 폄하하지는 않는 균형감을 보여준다. 이러한 접근법은 독자들로 하여금 철학에 대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동시에, 비판적 사고를 유도한다. 예를 들어, 쇼펜하우어의 염세주의를 설명하면서 그의 개인적 성격과 연결지어 설명하거나, 니체의 위버멘쉬 개념을 현대의 슈퍼히어로 문화와 비교하여 설명하는 등의 방식이 돋보인다.

사바테르는 전체적으로 합리주의적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철학사를 해석한다. 그는 인간의 이성적 능력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철학이 인간의 삶을 개선하고 자유를 확장하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특히 계몽주의 철학자들에 대한 긍정적 평가와 종교적 독단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으로 나타난다. 저자는 소크라테스로부터 시작된 비판적 사유의 전통을 높이 평가하며, 기존의 권위와 관습에 의문을 제기하는 철학의 역할을 강조한다. 동시에 그는 철학이 현실 도피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되며, 구체적인 인간의 문제들과 연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바테르는 니체 연구자답게 니체 철학에 특별한 관심을 보인다. 그는 니체를 허무주의자나 파시즘의 선구자로 보는 통속적 해석을 거부하고, 기존 가치체계에 대한 근본적 비판자로서의 니체를 부각시킨다. 특히 니체의 "신의 죽음" 선언을 현대 세속주의의 출발점으로 해석하며, 이를 인간 자율성의 확장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러한 니체 해석은 저자의 전체적인 철학관과 일치한다. 즉, 외부의 절대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고 삶의 의미를 구성해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철학 초심자들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접근성이다. 저자는 철학적 전문 지식이 없는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하여 글을 썼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해당 철학자의 핵심 개념들을 정리해주고, 현대적 의의를 간략히 언급하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철학사의 전체적 맥락을 파악할 수 있도록 각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배경을 함께 설명하는 점도 유용하다. 이를 통해 독자들은 철학이 시대와 무관한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 현실 문제에 대한 응답이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사바테르는 독자들이 스스로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그는 각 철학자의 이론을 소개할 때 그 한계와 문제점도 함께 지적하며, 독자들로 하여금 맹목적 수용보다는 능동적 사고를 하도록 한다. 특히 현대적 관점에서 과거 철학자들의 이론을 재평가하는 부분들은 독자들의 비판적 안목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아리스토텔레스의 여성관이나 노예제도에 대한 관점을 현대의 시각에서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부분들이 그러하다.

저자는 복잡하고 어려운 철학적 개념들을 일반인도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데 성공했으며, 철학이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었다. 물론 서구 중심적 시각, 여성 철학자들의 부재, 현대철학에 대한 피상적 접근 등의 한계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한계들을 고려하더라도, 이 책이 철학 입문자들에게 제공하는 교육적 가치와 철학 대중화에 대한 기여는 높을 것이다. 특히 사바테르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과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는 현재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많은 의미를 선사할 것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진실과 거짓을 구별하고, 기존의 권위와 편견에 도전하며, 자율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의 중요성은 오늘날 더욱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철학 전공자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고자 하는 모든 독자들에게 추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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