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 -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초예측 지정학
최준영 지음 / 교보문고(단행본)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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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지도를 보며 단순하게 국경선과 도시 이름만 확인하는 사람과, 그 너머에 숨겨진 이야기를 읽어내는 사람. 이번에 읽은 최준영 박사의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는 후자가 되는 법을 가르쳐주는 안내서다. 그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지리'란 지명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땅이 품고 있는 생존의 비밀을 해독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지리는 운명론적이면서도 역동적이다. 한국이 반도국가로서 대륙과 해양 세력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 숙명을 지닌 것처럼, 모든 국가는 자신이 점유한 땅의 특성에 따라 고유한 생존 전략을 개발해야 한다. 하지만 지리적 조건이 절대적 제약은 아니다. 같은 조건에서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춥고 척박한 북유럽의 땅에서 태어난 이 나라는 기존의 상식을 뒤엎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했다. 최저임금도, 퇴직금도, 심지어 상속세도 없는 복지국가. 언뜻 모순처럼 보이지만, 이는 지리적 제약을 오히려 혁신의 동력으로 전환한 결과다. 개인의 복리후생을 기업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고, 기업은 순수하게 생산성에만 집중하도록 역할을 분담한 것이다. 이런 시스템이 가능한 것은 동질적인 인구 구성과 높은 사회적 신뢰라는 지리-문화적 조건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주택, 생존의 첫 번째 조건이다. 인간의 기본 욕구 중 가장 구체적이면서도 절실한 것은 거처에 대한 욕구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거점이자,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상징이며, 경제적 자산의 핵심이다. 그런데 같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도 각 나라의 주택 시장은 천차만별의 모습을 보인다. 오스트리아 빈의 경험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전후 절망적인 상황에서 시민들은 폐허가 된 도시 곳곳에 6만 개의 텃밭을 일궜다. 아름다운 석조 건물 사이사이를 모두 농지로 바꿔버린 것이다. 무질서해 보이는 이 과정은 사실 명확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야 집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다는 현실적 판단이었다. 더 흥미로운 것은 협동주택의 건설 방식이다. 조합원들이 직접 삽과 망치를 들고 건설에 참여하되, 개인 주택보다 공공시설을 먼저 완성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내 집'보다 '우리 집'을 우선하는 발상의 전환. 이를 위해 2,000시간 이상의 봉사가 요구되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꺼이 받아들였다. 이런 노력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현실과 대조적이다. 개인의 재산 증식에만 몰두하는 부동산 시장에서, 집은 거주의 수단이 아닌 투자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오스트리아의 사례는 주택 문제에 대한 근본적으로 다른 접근법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에너지는 현대 문명의 혈액이다. 21세기 지정학의 핵심은 에너지다. 석유 시대에서 탈석유 시대로의 전환 과정에서, 에너지원의 다변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하지만 새로운 에너지원들도 결국 지리적 조건에 의해 좌우된다. 말리에서 발견된 백색수소는 아프리카 대륙의 지정학적 위상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황무지 같던 땅에서 갑자기 미래 에너지의 핵심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미국의 셰일 혁명은 기술과 지리의 결합이 만들어낸 성공 사례다. 평지에 위치하고 단순한 지질 구조를 가진 미국의 셰일 개발지는 중국 쓰촨성의 복잡한 경사지와는 전혀 다른 조건이다. 같은 자원이라도 개발 난이도가 천양지차인 셈이다. 쿠바의 니켈 보유량은 이 작은 섬나라가 전기차 시대에 다시 주목받게 되는 이유다. 설탕과 시가로만 유명했던 나라가 2차 전지 혁명의 핵심 공급처로 부상하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침공을 받으면서 전 세계가 주목한 것도 단순히 영토 분쟁 때문이 아니다. 희토류를 비롯한 각종 전략 광물이 매장된 땅을 두고 벌어지는 자원 전쟁의 성격이 강하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 빈곤국인 한국의 전략은 무엇일까? 다양한 에너지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는 것, 그리고 에너지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지리적 조건을 기술력으로 극복하는 길만이 생존의 열쇠다.


인구는 미래를 결정하는 변수다. 인구 구조의 변화는 한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 중 하나다. 특히 현재 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저출생 현상은 단순한 인구 감소를 넘어 사회 전체의 패러다임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인구수 세계 1위라는 타이틀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구 구조의 변화다. 피라미드형 인구 구조에서 항아리형 구조로의 전환은 이 나라에게 역사적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육아와 교육에만 매달렸던 과거와 달리, 이제는 생산 가능 인구의 폭발적 증가로 인한 인구 배당 효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내수 경제 활성화, 소비 수준 향상, 고등 교육 투자 등이 본격적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반대로 카자흐스탄은 광활한 땅에 적은 인구라는 조건을 오히려 장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풍부한 자원을 소수가 나누어 가질 수 있고, 1인당 자원 보유량에서는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는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인구가 적다고 반드시 불리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플로리다의 경험도 흥미롭다. 은퇴자들의 도시로 각광받으면서 고령 인구가 급증하고 있지만, 이를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실버 이코노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실험장인 셈이다.


기후는 인류 공동의 도전이다. 기후 변화는 더 이상 환경 문제가 아니다. 국가 안보의 핵심 이슈이자, 경제 시스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변수다. 중국의 물 부족 문제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계 곡물 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중국에서 가뭄이 발생하면, 그 여파는 전 지구적으로 확산된다. 2022년 아르헨티나의 옥수수 생산량이 33% 감소했을 때의 충격을 생각해보면, 중국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의 파급 효과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호주의 산불은 또 다른 차원의 경고다. 한국처럼 부주의로 인한 실화가 아닌, 기후 변화에 의한 자연 발생적 재해다. 장기간의 가뭄으로 메마른 나무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자연 발화하고, 쌓인 마른 잎들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면서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간다. 이는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선 자연의 반격이다. 이런 상황에서 각 국가는 기후 적응력을 키우는 것이 생존의 조건이 되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것을 넘어, 변화하는 기후 조건에 맞는 새로운 사회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최준영 박사가 제시하는 '최소한의 지리'는 결국 지리적 사고법에 관한 이야기다. 모든 현상을 공간적 맥락에서 이해하고, 지역 간의 상호 연관성을 파악하며, 지리적 조건이 인간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분석하는 능력. 이것이야말로 급변하는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역량이다. 지리적 사고는 또한 겸손함을 가르친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과 자본을 가져도 지리적 제약을 완전히 극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 그리고 다른 지역의 조건과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동시에 창의적 해결책의 가능성도 보여준다. 같은 조건에서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지리학은 과거를 이해하고, 현재를 진단하며, 미래를 준비하는 통합적 학문이다. 땅이 말하는 언어를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생존을 넘어 번영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최준영 박사가 말하는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지리'의 진정한 의미이자, 현대인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필수 소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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