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의 뮤지컬 - 나만의 공간에서 즐기는 N차 관람 뮤지컬의 감동 Collect 37
윤하정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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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작년 여름, 몇년간의 준비로 방문한 영국 런던 여름 휴가. 연일 계속되는 폭염 속에서도 런던 극장가는 뜨거웠다. 휴가철이라는 핑계로 평소 미뤄두었던 문화생활에 몸을 맡겼고, 그렇게 두 편의 명작 뮤지컬과 조우하게 되었다. 바로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이었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세계 4대 뮤지컬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고, 무엇보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극장에서 시원하게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막이 오르고 첫 음표가 울려 퍼지는 순간, 나는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7월의 어느 무더운 저녁, 《오페라의 유령》의 객석에 앉아 있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유명한 작품을 보러 온 관객 중 한 명일 뿐이었다. 하지만 무대 위로 떨어지는 샹들리에와 함께 나의 일상도 산산조각이 났다. 팬텀의 첫 등장부터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 유명한 하얀 가면, 검은 망토, 그리고 오르간 선율과 함께 울려 퍼지는 'The Phantom of the Opera'. 수십 번도 더 들어본 곡이었지만, 실제 무대에서 듣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음향이 객석 전체를 감싸며 진동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크리스틴과 팬텀이 지하 은신처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숨을 멈췄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무대 위로 조용히 미끄러져 가는 보트, 그리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환상적인 듀엣. 250킬로그램의 드라이아이스와 280개의 촛불이 만들어내는 장관이라고 했지만, 그 순간 내가 본 것은 단순한 무대장치가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진 외로움과 갈망이 시각화된 공간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것은 팬텀이라는 캐릭터가 주는 복잡한 감정이었다. 그는 분명 악역이었다. 사람을 해치고, 크리스틴을 강제로 납치하며, 자신의 욕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주인공보다도 애틋하고 가슴 아픈 존재였다. 마지막 장면에서 크리스틴이 팬텀의 추한 얼굴에 입을 맞추는 순간, 극장 안은 숨막히는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팬텀이 두 사람을 놓아주며 홀로 사라져가는 모습에서는 객석 여기저기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공연이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 길, 한참 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The Music of the Night'의 선율이 맴돌고 있었고, 가슴 한편에는 묘한 여운이 남아있었다. 팬텀의 가면이 상징하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가면을 쓰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음에는 《레미제라블》을 만날 차례였다. 《오페라의 유령》이 개인적이고 내밀한 감정을 다룬다면, 《레미제라블》은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이야기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마주하고 보니, 그것은 규모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자발장의 첫 등장부터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어둡고 절망적인 무대, 굶주림과 가난에 찌든 사람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관통하는 무거운 현실. 《오페라의 유령》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세계로 나를 이끌었다면, 《레미제라블》은 처절하고 적나라한 현실 앞에 나를 세워두었다. 하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힘은 절망적인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인간의 의지에 있었다. 빵 한 조각을 훔친 죄로 19년을 복역한 자발장이 미리엘 주교의 자비로운 마음을 만나면서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과정, 그리고 그가 평생에 걸쳐 실천해나가는 사랑과 희생의 여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특히 1막 마지막에 등장하는 바리케이드 장면과 'One Day More'는 잊을 수 없다. 무대 위로 쌓아 올려지는 바리케이드, 그리고 그 위에서 결연한 의지를 다지는 학생들과 시민들의 모습. 혁명을 향한 그들의 열정과 의지가 노래를 타고 객석 전체로 퍼져나갔고,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고 있었다. 2막에서 펼쳐지는 전투 장면들은 더욱 처참했다. 하나둘씩 쓰러져가는 젊은이들, 그리고 그들의 이상과 함께 산산조각 나는 꿈들. 하지만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자발장이 마리우스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하수구를 헤쳐나가는 모습에서는 인간애의 숭고함을 느꼈다. 무엇보다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개별 캐릭터들이 각자 품고 있는 슬픔이었다. 딸에 대한 사랑으로 몸을 파는 판틴의 'I Dreamed a Dream', 마리우스에 대한 짝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에포닌의 'On My Own', 그리고 평생의 신념이 무너지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자베르의 고뇌까지. 이들은 모두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려 몸부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전체 캐스트가 등장해서 부르는 'Do You Hear the People Sing?'에서는 객석 전체가 하나가 되는 느낌이었다.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현재의 우리와도 맞닿아 있는 메시지,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불굴의 의지가 그 노래에 담겨 있었다.


작년의 감동을 간직한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을 생각하면서 이번에 읽어본 윤하정님의 <30일 밤의 뮤지컬>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뮤지컬에서 생각해 볼 좋은 기회가 되었다. 같은 뮤지컬이라는 장르 안에서도 이토록 다른 감동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경이로움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은 개인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어가는 작품이었다. 팬텀의 고독과 절망, 크리스틴의 갈등과 성장, 라울의 순수한 사랑이 만들어내는 삼각관계는 한 편의 서정적인 오페라 같았다. 화려한 무대와 의상, 그리고 무엇보다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아름다운 선율들이 이야기를 더욱 몽환적으로 만들어주었다. 반면 《레미제라블》은 사회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서사였다. 개인의 구원과 사회의 변혁이 만나는 지점에서 펼쳐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는 한 편의 장대한 교향곡 같았다. 클로드 미셸 쇤베르크의 음악은 《오페라의 유령》보다 더 직설적이고 힘찼으며, 때로는 행진곡 같은 박력으로 관객의 가슴을 두드렸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에서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이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팬텀이든 《레미제라블》의 자발장이든, 그들은 모두 완벽하지 않은 존재들이었다. 오히려 그 불완전함 속에서 더욱 인간적이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었다.


책을 읽으면서 새삼 깨달은 것은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갖는 독특한 매력이었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뮤지컬은 바로 내 앞에서 펼쳐지는 살아있는 예술이었다. 배우들의 숨소리까지 들릴 듯한 거리감, 실시간으로 변화하는 조명과 무대, 그리고 객석과 무대가 함께 만들어내는 특별한 에너지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에서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장면이나 《레미제라블》에서 바리케이드가 무너지는 장면에서는 영화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긴장감과 몰입감을 경험했다. 그것은 컴퓨터그래픽이 아닌 실제 물리적 현상이었고,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그 순간을 함께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전율을 느꼈다. 또한 배우들의 라이브 노래와 연기가 주는 감동도 특별했다. 음반으로 들었던 익숙한 곡들이 무대에서는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배우의 감정이 고스란히 전달되는 생생함, 그리고 그 감정이 객석 전체로 퍼져나가면서 만들어지는 일체감은 오직 극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었다.


'30일 밤의 뮤지컬'이라는 제목이 주는 설렘이 좋다. 30일 동안 매일 밤 다른 뮤지컬을 감상한다면 얼마나 풍요로운 시간이 될까. 각 작품이 주는 서로 다른 감동과 메시지, 그리고 그것들이 모여서 만들어내는 인생의 파노라마다. 실제로 뮤지컬을 30일간 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꼭 극장에 가지 않더라도, 때로는 음반으로, 때로는 영상으로, 때로는 책으로도 뮤지컬의 세계를 만날 수 있다. 이 책은 정말 뮤지컬을 현장에서 보는 듯한 실감을 느끼게 한다. 뮤지컬에서 중요한 것은 그 작품들이 전하는 메시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통해 조금 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작년 여름, 무더위를 피해 극장으로 향했던 발걸음이 결국 나를 더 넓은 세계로 이끌어주었다. 《오페라의 유령》과 《레미제라블》이라는 두 개의 문을 통해 들어간 뮤지컬의 세계는 생각보다 훨씬 깊고 넓었다. 그리고 그 세계에서 만난 수많은 캐릭터들은 지금도 내 마음 어딘가에서 각자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는 책을 통해서 새로운뮤지컬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정말로 30일 밤의 뮤지컬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매일 밤 다른 무대에서, 다른 이야기와 만나면서, 조금씩 더 성장하고 깨달아가는 그런 시간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문화적 휴가가 아닐까.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의 무대에서는 배우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내며 노래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딘가의 객석에서는 누군가가 나처럼 처음으로 뮤지컬의 감동에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무대와 객석이 만나 만들어내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상이 조금 더 아름다워 보인다. 화려한 30편의 뮤지컬을 볼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여름휴가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온 지 벌써 1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때의 감동과 여운은 아직도 생생하다. 가끔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자발장이 코제트를 품에 안고 부르던 노래를 떠올리기도 하고, 외로울 때면 팬텀의 'The Music of the Night'을 흥얼거리기도 한다. 무엇보다 두 작품을 통해 깨달은 것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우리 모두가 각자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때로는 팬텀처럼 가면을 쓰고 진정한 자신을 숨겨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자발장처럼 과거의 잘못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할 때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사랑과 용서, 희망과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배웠다. 책과 같이 30일 밤의 뮤지컬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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