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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다 - 동네 의사 30년의 결론
나가오 가즈히로 지음, 박현아 옮김 / 지상사 / 2025년 9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현대 사회는 속도와 효율을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자동차, 지하철, 엘리베이터가 우리의 발걸음을 대신하며, 걷기는 점점 '비효율적'이고 '시대에 뒤떨어진' 행위로 취급받는다. 하지만 나가오 가즈히로가 제기하는 도발적인 질문은 이러한 통념을 뒤흔든다. 과연 걷는 사람이 바보일까? 아니면 걷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건강과 삶의 질을 포기하는 것일까? 걷기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가진 가장 기본적인 이동 능력이자, 동시에 가장 완벽한 전신 운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놀라운 능력을 당연시하며 그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걷기는 생명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핵심적인 생활 습관이다.
걷기가 심장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수많은 연구를 통해 입증되었다. 하루 30분 이상의 걷기는 심혈관 질환 발병률을 30-40%까지 감소시킨다는 하버드 대학교의 연구 결과는 걷기의 의학적 가치를 명확히 보여준다. 걷기는 심박수를 적절히 상승시키면서도 심장에 과도한 부담을 주지 않는 이상적인 유산소 운동이다. 규칙적인 걷기는 혈액 순환을 개선하고 혈압을 안정화시킨다. 특히 고혈압 환자들에게 걷기는 약물 치료와 함께 병행할 수 있는 안전하고 효과적인 보조 요법이다. 혈관의 탄력성이 향상되고 콜레스테롤 수치가 개선되면서, 장기적으로 동맥경화와 같은 심각한 혈관 질환을 예방할 수 있다.
현대인의 대표적인 질병인 당뇨병에 대한 걷기의 효과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걷기 운동은 근육의 포도당 흡수율을 증가시켜 혈당 수치를 자연스럽게 낮춘다. 이는 인슐린 저항성을 개선하고 당뇨병 진행을 늦추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나가오 의사가 지적하는 바와 같이, 현대인의 치매 증가는 뇌의 당뇨병이라고 할 수 있는 현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과도한 당분 섭취로 인한 포도당 중독은 뇌 기능을 저하시키고 아밀로이드 베타의 축적을 촉진한다. 걷기는 이러한 악순환을 차단하는 자연스러운 해독제 역할을 한다. 걷기가 정신 건강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기분 전환의 차원을 넘어선다. 규칙적인 걷기는 우울증 발병률을 20% 이상 감소시키며, 불안 장애와 스트레스 관리에도 탁월한 효과를 보인다. 햇빛 아래에서의 걷기는 세로토닌과 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한다. 이러한 '행복 호르몬'들은 자연스러운 항우울 효과를 가져다주며, 정신적 안정감을 증진시킨다. 또한 걷기는 뇌로의 혈류를 증가시켜 기억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고, 장기적으로는 치매 예방에도 기여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중요한 점은 걷기와 수면의 관계이다. 적절한 걷기 운동은 자연스러운 피로감을 유발하여 수면의 질을 개선한다. 더 중요한 것은 양질의 수면 중에 뇌 속 노폐물인 아밀로이드 베타가 제거된다는 사실이다. 렘수면과 논렘수면의 정상적인 주기는 뇌의 자체 청소 시스템을 작동시킨다. 걷기를 통해 확보된 양질의 수면은 뇌 건강 유지의 핵심 요소가 되며, 이는 치매 예방과 직결된다.
걷기는 겉보기에 단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몸 전체의 근육과 관절이 정교하게 협력하는 복합적인 운동이다. 발목, 무릎, 고관절의 연동 움직임은 하체 근력을 고르게 발달시키며, 척추의 자연스러운 S자 곡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팔의 스윙 동작은 단순한 균형 유지를 넘어 상체 근력 강화에 기여한다. 나가오 의사가 지적한 바와 같이, 손을 크게 흔들수록 골반의 회전이 증가하고 보폭이 넓어진다. 이는 걷기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전신 근력 발달을 촉진한다. 걷기는 체중 부하 운동(weight-bearing exercise)으로서 뼈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걸을 때마다 뼈에 가해지는 적절한 압력은 골세포의 활동을 자극하여 골밀도를 증가시킨다. 이는 특히 중년 이후 여성들에게 중요한데, 폐경 후 급격히 감소하는 골밀도를 유지하는 자연스러운 방법이 된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프레일티(노쇠) 예방에서 걷기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프레일티는 전신의 기능적 쇠퇴를 의미한다. 규칙적인 걷기는 근력 유지, 균형 감각 보존, 인지 기능 유지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외출을 기피하게 된 중장년층에서 프레일티가 급증했다는 관찰은 걷기의 중요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지팡이를 짚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50-60대에서도 조기 노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걷지 않는 생활의 직접적인 결과이다.
현대 사회는 빠름을 곧 능력으로 여긴다. 하지만 걷기의 속도는 인간 본연의 리듬에 가장 가까운 속도이다. 이 느린 속도에서만 포착할 수 있는 세상의 모습들이 있다. 자동차나 지하철로는 놓치게 되는 계절의 변화, 사람들의 표정, 도시의 숨겨진 모습들이 걸음을 통해서만 온전히 경험된다. 걷기는 일종의 이동하는 명상이다. 발걸음의 규칙적인 리듬은 마음을 안정시키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여유를 제공한다. 복잡한 문제로 머리가 어지러울 때 걷기를 통해 해답을 찾는 경험은 많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다. 걷기는 우리와 공간의 관계를 재정의한다. 단순한 목적지 이동이 아니라 경로 자체가 의미를 갖게 된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날씨, 시간, 계절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도시의 길거리는 사회의 축소판이다. 걸으면서 관찰하게 되는 불평등, 환경 문제, 공동체의 단절 등은 걷기를 사회적 성찰의 기회로 만든다. 걷기는 일상에서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는 의식적 행위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과 각종 디지털 기기에 둘러싸인 현대인에게 걷기는 진정한 '연결 해제'의 시간이다. 외부의 소음과 자극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의 호흡과 걸음에 집중할 때, 내적 평화와 안정을 경험할 수 있다.
걷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가장 현명한 사람이다. 복잡한 운동 장비나 고비용의 헬스장 회원권이 없어도, 걷기만으로도 충분히 건강을 유지하고 증진시킬 수 있다. 걷기는 의학적으로 검증된 효과와 철학적 깊이를 동시에 가진 유일무이한 활동이다. 심혈관 건강부터 정신 건강, 치매 예방부터 면역력 강화까지, 걷기가 가져다주는 이익은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위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