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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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어제 저녁, 커피에 설탕을 넣으며 문득 멈춰 섰다. 하얀 알갱이들이 뜨거운 액체 속으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이 작은 결정체 하나하나에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응축되어 있을까 생각했다. 이번에 <설탕 전쟁>을 읽고 난 후, 일상 속 가장 평범한 순간들이 갑자기 무거워졌다. 달콤함 뒤에 숨겨진 쓰라린 진실을 알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 없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마음 한편이 먹먹해졌다. 포츠머스의 귀부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그 '차이'라는 음료, 그 안에 녹아든 하얀 알갱이가 훗날 얼마나 많은 피와 눈물을 흘리게 할지 그들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영국의 티타임이라는 우아한 문화 뒤편에는 아프리카 대륙에서 강제로 끌려온 수백만 명의 절규가 메아리치고 있었던 것이다.

설탕의 어원을 따라가면서 나는 언어의 여행이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를 깨달았다. 산스크리트어 '샤르카라'에서 시작되어 페르시아어 '샤카르'를 거쳐 아랍어 '슈카르'가 되고, 마침내 영어 '슈거'로 정착하기까지. 한 단어가 문명을 넘나드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단맛을 위해 희생되었던가. 언어의 전파는 때로는 문화의 교류를 의미하지만, 설탕의 경우에는 정복과 착취의 역사와 궤를 같이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자메이카 육상선수들의 이야기였다. 트랙 위를 질주하는 우사인 볼트의 모습을 보며 저자가 그의 선조들이 사탕수수밭에서 혹사당했을 모습을 떠올렸다는 대목에서, 나는 한동안 책을 덮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 우리가 박수갈채를 보내는 그들의 질주 뒤에는 채찍 아래에서도 굴복하지 않았던 조상들의 강인한 의지가 흐르고 있는 것이다. 진정한 영웅이 누구인지 묻는 저자의 질문에 나는 답을 찾기 어려웠다.

브라질에서 벌어진 노예 사냥꾼 '반데이라'의 이야기는 인간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깃발을 든 채 원주민을 사냥하러 다녔다는 그들의 모습을 상상하니 소름이 돋았다. 예수회 선교사들과 농장주들 사이의 갈등에서도 결국 승리한 것은 탐욕이었다. 신의 이름으로 원주민을 보호하려 했던 선교사들의 노력도 설탕에 대한 욕망 앞에서는 무력했던 것이다. 쿠바에서 만난 한인계 소녀들의 이야기는 특별히 가슴을 울렸다. 20세기 초 멕시코를 통해 쿠바로 건너간 한인 여성의 후손이라니. 우리 민족의 디아스포라가 설탕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라를 잃은 슬픔을 안고도 낯선 땅에서 뿌리내리며 살아가야 했던 그들의 삶이 얼마나 힘겨웠을까. 럼에 관한 이야기에서는 아이러니를 느꼈다. 아프리카 노예들이 현실의 고통을 잊기 위해 몰래 만들어 마셨던 술이 오늘날 쿠바의 대표적인 특산품이 되었다니. 고통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결국 그 땅의 문화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인간의 적응력과 동시에 역사의 아이러니를 발견했다. 세계 각지의 술들이 모두 "삶의 깊은 고단함과 눈물 속에서 빚어졌는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책을 덮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마트에서 설탕을 볼 때마다, 카페에서 설탕을 넣을 때마다 이 책의 내용들이 떠오른다. 달콤한 맛 뒤에 숨겨진 쓰라린 역사를 알게 된 지금, 나는 더 이상 무심하게 설탕을 소비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설탕을 완전히 끊거나 죄책감에 시달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것은 기억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달콤함이 어떤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억압받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이다. <설탕 전쟁>은 설탕의 역사만을 다룬 책이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역사를 만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누가 희생되고 누가 이익을 얻는지를 보여주는 거대한 서사다. 제국주의, 식민주의, 인종차별, 자본주의의 모순이 모두 설탕이라는 하나의 소재 안에 녹아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얻었다. 기존의 역사책들이 주로 정치사나 전쟁사에 집중했다면, 이 책은 일상 속 소재를 통해 역사의 이면을 조명한다. 설탕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접근하니 딱딱하게만 느껴지던 세계사가 생생하게 다가왔다. 특히 인상깊었던 것은 저자가 직접 여러 나라를 다니며 느낀 경험들을 함께 서술한 부분들이었다. 쿠바 엑스포에서 만난 한인계 소녀들의 이야기나, 브라질에서 목격한 인구 구성의 변화 등은 역사가 단순히 과거의 일이 아니라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나는 설탕을 볼 때마다 이 책의 내용들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역사 속에서 희생된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할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려온 노예들, 터전을 잃고 사라져간 원주민들, 이국땅에서 조국을 그리워했던 우리 선조들까지 말이다. 달콤함에는 항상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그리고 그 대가를 치른 것은 대부분 약자들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것이 <설탕 전쟁>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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