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 무기력의 비밀 - 우리 아이들의 의욕과 활기는 왜 사라졌을까
김현수 지음 / 해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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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생기로 가득해야 할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의욕을 잃고 공허하게 지내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다 포기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며, 마치 살아있는 시체처럼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이러한 현상을 목격하는 어른들은 당혹감을 느끼며 아이들을 게으르거나 나약하다고 평가하기 쉽다. 하지만 아이들의 무기력은 게으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시스템의 결과물이며, 아이들이 보내는 절망적인 신호이다. 이번에 김현수님의 우리 아이들의 무기력에 대한 원인과 그 해결책을 담을 신간을 읽을 기회가 있었다. <요즘 아이들 무기력의 비밀>이었다. 무기력의 진실은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저자의 진단을 생각하면서 읽어 본다.


현대 아이들의 무기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것이 개인의 성격적 결함이나 태생적 문제가 아님을 인식해야 한다. 무기력은 아이들이 겪어온 일련의 경험들이 누적된 결과이며, 더 이상 분노할 힘조차 남지 않은 상태에서 나타나는 마지막 방어기제이다. 많은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다양한 활동을 강요받으며 성장한다. 수영, 축구, 피아노, 영어, 수학 등 모든 분야에서 뛰어나기를 기대받던 아이들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갑작스럽게 오직 영어와 수학만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받게 된다.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던 축구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여겨지고, 오로지 성적만이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받는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의 '배신'으로 느껴진다. 우리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승자독식과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 한다. 성적에 따라 교실 배치가 달라지고, 급식 순서까지 결정되는 극단적인 차별 구조는 소수의 승자를 제외한 대다수 아이들을 패자의 자리에 고착화시킨다.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무기력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먼의 '학습된 무기력' 이론은 현대 아이들의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통찰을 제공한다. 아이들은 반복적인 실패 경험을 통해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학습하게 된다. 처음에는 열심히 시도하고 노력했지만, 계속되는 좌절과 실패 앞에서 결국 시도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현재 무기력한 상태로 지내는 아이들 역시 과거에는 분명히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수학을 포기한 아이도, 영어를 포기한 아이도, 심지어 학교 자체를 포기한 아이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포기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친 각고의 노력과 그에 따른 실망의 축적 결과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의 현재 모습만을 보고 판단하기보다는, 그들이 지나온 과정에 대한 이해와 공감을 바탕으로 접근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이 내뱉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다 싫다", "그냥 내버려둬"라는 말들은 단순한 투정이 아니다. 이는 절망에 빠진 영혼이 보내는 구조 신호이며, 희망을 잃어버린 마음의 비명이다. 겉으로는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면 깊은 곳에서 큰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종종 이러한 신호를 잘못 해석한다. 게으름으로, 불복종으로, 혹은 회피하려는 비겁함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는 아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적 반응이다. 마치 심장이 정지된 환자처럼, 이들에게는 즉각적이고 전문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 아동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아이들은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소비의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다.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 학원의 고객, 게임과 스마트폰의 중독자로만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아이들의 진짜 필요와 고통을 제대로 볼 수 없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어른들의 둔감함이다. 아이가 무기력해지는 과정을 미리 감지하지 못하고, 이미 무기력해진 후에야 뒤늦게 문제를 인식한다. 그리고 그 순간에도 아이를 혼내고 비난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이는 마치 이미 심장이 멎은 환자에게 더 열심히 뛰라고 소리치는 것과 같다. 민감한 부모나 교사라면 아이가 열정과 동기를 잃어가는 과정에서 조기에 개입하여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른들은 아이가 완전히 무기력해진 후에야 문제를 인식하고, 그 때는 이미 관계가 악화되어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관점부터 바꿔야 한다. 이들을 게으르고 나태한 문제아로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고통받고 있는 아이들로 인식해야 한다. 그들의 무기력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마지막 방어기제임을 이해해야 한다. 또한 무기력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오랜 시간에 걸친 좌절과 실망의 결과이므로, 회복 역시 시간이 걸리는 과정임을 받아들여야 한다.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인내심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접근할 때는 기존과는 정반대의 방식, 즉 역설적 접근이 필요하다. 혼나고 무시받을 것을 예상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의외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방어벽에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반복적인 잔소리를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다. 몇 년 동안 같은 내용으로 반복되어온 꾸중은 아이들에게 더 이상 영향을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악화시키고 아이들에게 핑계거리만 제공한다. 물건을 제자리에 두지 않는 것, 개인위생을 소홀히 하는 것, 스마트폰을 오래 사용하는 것 등에 대한 잔소리를 과감히 끊어야 한다. 잔소리를 멈춘 후에는 진심어린 걱정을 표현해야 한다. "여러 가지로 힘들지? 네가 힘들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걱정이 많이 돼"와 같은 메시지를 통해 아이에 대한 사랑과 염려를 전달해야 한다. 이는 아이들이 자신을 미움과 실망의 대상이 아닌 걱정과 사랑의 대상으로 인식하게 하는 중요한 전환점이 된다.

무기력한 아이들은 자신을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여기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환대이다. 이는 단순히 친절하게 대하는 것을 넘어서, 그들의 존재 자체를 축복하고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다. 가정에서는 아이가 집에 돌아온 것만으로도 충분히 환영할 일이다. 학교에서는 아이가 등교한 것 자체가 고마운 일임을 인식해야 한다. 많은 아이들이 집에서 학교까지,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동안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어려움과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부모의 다툼을 목격하고, 친구들과의 갈등을 겪으며, 이해할 수 없는 수업을 참아내면서 하루를 보낸다. 따라서 "잘 왔다", "수고했다", "오늘도 잘 지내보자"와 같은 간단한 인사와 격려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큰 위로가 될 수 있다. 환대는 아이들이 다시 살아갈 이유를 제공하고, 자신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강력한 도구이다.


환대 다음에 필요한 것은 아이들이 다양한 활동에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이때 강제적 참여가 아닌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야 한다. 아이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그들의 선택권을 인정하며, 실수나 실패에 대해서도 관대한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존중은 참여의 전제조건이다. 아이들을 독립적인 인격체로 인정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른의 기준에서 볼 때 미흡해 보일지라도, 아이들 나름의 노력과 시도를 인정하고 격려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격려이다. 하지만 진정한 격려는 단순히 "잘했다", "수고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낙담하지 않도록 도우며, 다시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북돋워주고, 주변 사람들이 진심으로 그들의 성공을 원하고 있음을 전달하는 것이다. 60점을 받은 아이에게 "40점을 틀렸다"고 말하는 대신 "60점을 맞혔다"고 말하는 것, 실패한 시도에 대해 "도전한 것 자체가 훌륭하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진정한 격려이다. 이러한 격려를 통해 아이들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 시도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된다. 격려할 때 중요한 것은 현재 아이에게 필요한 노력의 양을 강조하는 대신, 노력 자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강조하는 것이다. "지금 네 수준에서는 정말 많은 노력이 필요해"라고 말하는 것은 압박이지 격려가 아니다. 대신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멋있어"라고 말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의 회복 과정에서는 목표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때의 목표는 반드시 달성 가능한 작은 것이어야 한다. 불가능한 목표를 제시하는 것은 아이들을 다시 좌절로 몰아넣을 뿐이다. 목표는 개별적이어야 한다. 모든 아이들이 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는 없다. 각자의 특성과 상황에 맞는 개별화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했을 때 충분히 인정하고 축하해주어야 한다. 작은 성취를 자주 경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성취감은 자기효능감을 높이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 동기를 불러일으킨다. 따라서 가정과 학교는 다양한 성취가 가능한 공간이 되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의 회복에서 가장 핵심적인 요소는 어른과의 관계 회복이다. 많은 아이들이 무기력해진 이유 중 하나는 어른들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 모든 회복의 출발점이다. 신뢰 회복을 위해서는 일관성이 중요하다.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하고,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또한 아이의 속도에 맞춰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즉각적인 변화를 기대하거나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스스로 변화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성이다. 형식적이거나 기계적인 접근이 아니라, 진심으로 아이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져야 한다. 아이들은 어른의 진심을 민감하게 감지할 수 있으며, 진정성이 없는 접근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개별 아이들에 대한 접근과 함께 시스템 차원의 변화도 필요하다.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지닌 구조적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는 한, 무기력한 아이들의 문제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성적 중심의 평가 체계를 다양성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한 가지 기준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장점과 특성을 발견하고 키워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또한 경쟁보다는 협력을, 차별보다는 공정을 추구하는 학교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가정에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성적만을 중시하는 가치관에서 벗어나 아이의 전인적 성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양육 철학을 바꿔야 한다. 아이의 행복과 건강한 성장이 성적보다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현대 아이들의 무기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따라서 이 문제의 해결 역시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사회 전체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무기력해 보이는 아이들도 내면 깊은 곳에는 살고 싶은 욕구와 성장하고 싶은 열망을 간직하고 있다. 우리가 올바른 방법으로 접근한다면, 이들은 분명히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른들이 먼저 변화하는 것이다. 아이들을 바꾸려고 하기보다는 우리의 관점과 태도를 먼저 바꿔야 한다. 비난과 압박 대신 이해와 격려를, 경쟁과 차별 대신 협력과 존중을 선택해야 한다. 무기력한 아이들을 돕는다는 것은 단순히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희망을 심어주는 일이다. 그들이 다시 꿈을 꾸고, 도전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는 개별 아이의 인생을 구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밝게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한 번에 한 명씩, 진심을 다해 아이들을 구출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삶을 마음껏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이 져야 할 책임이자, 다음 세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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