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읽는 안목 서양 건축사 - 낯선 시대와 공간을 들여다보는 가장 흥미로운 방법
구니히로 조지 지음, 민성휘 옮김 / 북스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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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는 매일 건물들 사이를 지나다니며 살아간다. 아침에 일어나는 아파트에서부터 출근하는 오피스 빌딩, 쇼핑을 위해 들르는 백화점까지. 이 모든 공간들은 비바람을 막아주는 물리적 구조물만의 이미가 아니다. 그것들은 각자의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꿈과 욕망, 두려움과 희망이 켜켜이 쌓인 역사의 증언자들이다. 건축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바로 이런 무언의 증언들을 읽어내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왜 그토록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는지, 중세 유럽인들이 하늘을 찌를 듯한 고딕 성당에 평생을 바쳤는지, 20세기 모더니스트들이 모든 장식을 거부하며 차가운 콘크리트와 유리에 집착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는 곧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고, 무엇을 소중히 여겼으며, 어떤 미래를 꿈꿨는지를 읽어내는 일과 다름없다. 오랜만에 구니히로 조지의 신간을 읽었다. <세상을 읽는 안목 서양 건축사>였다. 건축의 역사와 함께 세상을 읽는 안목이 기대된다.


고대 이집트의 거대한 신전들을 마주할 때 우리가 느끼는 압도감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룩소르 신전의 거대한 석재 기둥들은 파라오의 절대권력을 상징하는 동시에, 죽음 너머의 영원한 삶에 대한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 이집트인들에게 건축은 단순한 거주 공간이 아니라 신과 소통하고 내세를 준비하는 신성한 의식의 장이었다. 반면 그리스인들의 파르테논 신전에서는 전혀 다른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도리아식 기둥의 정밀한 비례와 수학적 질서는 이성과 조화를 추구했던 그리스인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 이곳은 신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모여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공동체의 중심지였다. 건축을 통해 우리는 고대 그리스가 얼마나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였는지를 엿볼 수 있다. 로마인들은 또 다른 혁신을 보여준다. 판테온의 거대한 돔 구조와 콜로세움의 복잡한 공학 기술은 로마 제국의 실용주의와 웅장함을 동시에 드러낸다. 아치와 콘크리트 기술의 발달은 단순히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광활한 제국을 통치하고 다양한 민족을 통합해야 했던 로마인들의 현실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다.

중세로 넘어오면서 건축의 초점은 완전히 달라진다. 비잔틴의 아야 소피아에서 보이는 거대한 돔은 동방 기독교의 신비주의적 세계관을 반영한다. 이곳에서 신자들은 천상의 영역과 지상의 영역이 만나는 순간을 체험했다. 서유럽의 로마네스크 건축에서는 두꺼운 벽과 작은 창문이 특징적이다. 피사 대성당처럼 견고하고 육중한 구조는 혼란스럽고 불안했던 중세 초기의 시대 상황을 반영한다. 사람들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견고한 요새 같은 공간을 원했고, 동시에 그 안에서 신앙을 통한 위안을 찾았다. 고딕 건축에 이르러서는 건축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 도달한다. 노트르담 대성당이나 샤르트르 대성당의 수직적 공간감과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는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이 아니다. 이는 하늘을 향한 인간의 영적 갈망과 신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를 건축적 언어로 표현한 것이다. 플라잉 버트레스라는 혁신적 구조 기술은 벽을 얇게 하고 창을 크게 만들 수 있게 했으며, 이를 통해 성당 내부는 천상의 빛으로 가득 찰 수 있었다.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건축사에 있어서도 혁명적 전환점이었다. 브루넬레스키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돔은 단순히 기술적 성취가 아니라 인간 이성의 승리를 상징한다. 고대의 지혜를 부활시키면서도 새로운 혁신을 이뤄낸 이 돔은 '인간도 신과 같은 창조의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르네상스적 자신감의 구현이었다. 팔라디오의 빌라 로톤다에서는 완전히 다른 건축 철학을 발견할 수 있다. 대칭적이고 조화로운 비례,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배치는 인간의 삶 자체를 예술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제 건축은 신을 섬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품격 있는 삶을 위한 것이 되었다. 17세기 바로크 시대에 이르면 건축은 다시 한번 극적인 변화를 겪는다. 베르니니의 성 베드로 대성당 광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압도적인 공간감은 가톨릭 교회가 종교개혁에 맞서 보여준 반격의 의지를 담고 있다. 이곳에서 순례자들은 자신의 미미함을 깨닫는 동시에 교회의 위대함에 압도당하도록 설계되었다. 보로미니의 산 카를로 알레 콰트로 폰타네 교회는 바로크적 실험정신의 극치를 보여준다. 곡선으로 이루어진 벽과 타원형 돔은 기존의 모든 건축 규칙을 파괴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조화로운 공간을 창조해낸다. 이는 바로크 시대의 예술가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18세기 신고전주의 건축가들은 혁명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을 모색했다. 에티엔 루이 불레의 뉴턴 기념당 계획안에서 보이는 거대한 구 형태는 단순히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추구한 것이 아니다. 이는 이성과 과학을 숭배했던 계몽주의 시대의 세계관을 건축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등장한 공공 건축의 개념이다. 칼 프리드리히 싱켈의 알테스 뮤지엄은 왕실 컬렉션을 일반 시민들에게 공개한 최초의 공공 미술관이었다. 이는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시민사회의 탄생과 민주주의 이념의 확산을 상징하는 기념비였다. 예술과 지식이 더 이상 특권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시민의 것이라는 혁명적 발상이 건축을 통해 구현된 것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은 건축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조셉 팩스턴의 크리스털 팰리스는 기술 혁신이 어떻게 새로운 공간 경험을 창조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혁명적 사례였다. 철과 유리라는 신소재로 만들어진 이 거대한 온실은 대량생산과 조립식 건설의 가능성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적 혁신이 사회 개혁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점이다. 장 바티스트 앙드레 고댕의 파밀리스테르는 자본주의 시대의 모순을 건축을 통해 해결하려 한 이상주의적 실험이었다. 노동자들에게도 부르주아와 같은 삶의 질을 제공하려 했던 이 공동주택 단지는 건축이 사회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19세기 말 시카고 대화재 이후 재건된 도시는 인류 건축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루이스 설리번의 오디토리엄 빌딩은 철골 구조라는 혁신 기술과 고전적 미학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 이는 단순히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급속히 성장하는 자본주의 도시에서 제한된 토지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려는 현실적 필요에서 나온 것이었다. 시카고파 건축가들이 창조한 마천루는 20세기 도시 문명의 상징이 되었다. 수직으로 뻗어 오르는 건물들은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과 기술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 동시에 이는 개인주의와 경쟁을 바탕으로 한 미국적 가치관의 건축적 구현이기도 했다. 한편 유럽에서는 아르누보 운동이 산업화에 대한 또 다른 반응을 보여주었다. 빅토르 오르타의 타셀 저택에서 볼 수 있는 유기적 곡선과 철재 구조의 결합은 기계 문명 속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회복하려는 의지를 담고 있었다. 이는 단순한 장식적 취향이 아니라, 산업화로 인해 잃어버린 인간성을 되찾으려는 문화적 저항이었다. 안토니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이러한 경향을 극단까지 밀고 나간 사례다. 직선이 전혀 없는 이 건물은 자연 그 자체가 건축이 된 것 같은 경험을 제공한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것이고 곡선은 신의 것"이라고 했는데, 이는 기계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와 자연에 대한 종교적 경외심을 동시에 표현한 말이었다.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이전의 모든 양식과 단절하고 완전히 새로운 건축을 창조하려 했다. 아돌프 로스의 "장식은 범죄다"라는 선언은 단순히 미적 취향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는 민주주의 시대에 걸맞은 건축,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건축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었다. 르 코르뷔지에의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명제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그의 사보아 저택에서 구현된 '근대 건축의 5원칙'은 건축을 귀족적 예술품에서 해방시켜 모든 인간의 기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도구로 만들려는 의도였다. 필로티, 자유로운 평면, 수평 창문, 옥상 정원, 자유로운 입면은 모두 인간의 건강하고 합리적인 삶을 위한 처방전이었다. 발터 그로피우스가 이끈 바우하우스는 이러한 모더니즘 이념을 교육을 통해 체계화하려 한 혁명적 시도였다. 바우하우스 데사우 건물 자체가 하나의 선언문이었다. 장식을 배제한 기하학적 형태, 기능에 충실한 공간 구성, 산업 재료의 솔직한 사용은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미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미스 반 데어 로에의 "Less is more"라는 철학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완벽하게 구현되었다. 대리석, 유리, 철이라는 최소한의 재료로 만들어진 이 건물은 물질적 풍요보다는 공간적 경험의 질을 추구했다. 이는 소비주의 문화에 대한 은밀한 비판이자, 진정한 럭셔리는 과시가 아니라 정신적 만족에 있다는 메시지였다.

1930년대는 건축이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시대였다. 스탈린 체제하의 소비에트 궁전 계획은 사회주의의 위대함을 과시하려는 선전 도구였고,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의 건축 역시 무솔리니의 권력욕을 건축적 언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주세페 테라니의 카사 델 파시오는 모더니즘의 합리성과 고전주의의 권위를 결합시켜 파시즘의 '현대적이면서도 권위적인' 이미지를 창조했다. 반면 미국의 아르데코 건축은 자본주의의 활력과 기술 문명에 대한 낙관을 표현했다. 크라이슬러 빌딩의 화려한 금속 장식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의 압도적인 높이는 대공황의 어둠을 뚫고 나아가려는 미국인들의 의지를 상징했다. 이는 이념적 대립이 건축을 통해서도 표현되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러시아 구성주의 건축가들은 혁명의 이상을 건축을 통해 구현하려 했다. 콘스탄틴 멜니코프의 소련관 파빌리온은 기존의 모든 건축 규칙을 파괴하고 완전히 새로운 조형 언어를 창조했다. 이는 단순한 미적 실험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에 대한 탐구였다. 하지만 이러한 실험들은 스탈린의 사회주의 리얼리즘 정책에 의해 탄압받았다. 혁명의 자유로운 상상력은 체제의 안정성과 충돌했고, 건축가들은 서구로 망명하거나 침묵을 강요받았다. 이는 예술과 정치권력 간의 긴장 관계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제2차 대전 이후 서구 세계는 새로운 국제질서를 건설해야 했고, 건축도 이에 부응했다. 유엔 본부 건물은 여러 나라 건축가들의 협력으로 만들어진 국제주의 건축의 상징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를 비롯한 세계적 건축가들이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민족과 이념을 초월한 보편적 건축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미국의 레빗 타운과 같은 대량 주택 단지는 전쟁에서 돌아온 군인들을 위한 주거 문제를 해결하려는 현실적 필요에서 나왔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새로운 생활 양식을 건축을 통해 구현한 것이기도 했다. 교외의 단독주택과 자동차 중심의 도시 계획은 20세기 후반 서구 문명의 라이프스타일을 결정지었다. 이 시기 건축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통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공간들을 창조해냈다. 에로 사리넨의 TWA 터미널은 제트 여행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 건축이었다. 조류의 날갯짓을 연상시키는 곡선 지붕은 단순한 미적 유희가 아니라 항공 여행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루이스 칸의 소크 생물학 연구소는 과학과 건축의 만남이 얼마나 아름다운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태평양을 바라보는 연구실들과 빛의 흐름을 고려한 공간 구성은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건축이 인간의 창조적 활동을 촉진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일본의 모더니즘 건축가들은 서구의 이론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들만의 독특한 해석을 제시했다. 단게 겐조의 가가와현 청사는 르 코르뷔지에의 구조 시스템을 사용하면서도 일본 전통 건축의 미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는 근대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고민을 건축적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메타볼리즘 운동은 이러한 일본적 특성을 더욱 발전시킨 사례다. 구로카와 기쇼와 기쿠타케 기요노리 등이 제시한 '신진대사하는 건축'은 서구의 고정적 건축 개념과는 전혀 다른 발상이었다. 이는 변화와 성장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는 동양적 세계관이 건축 이론으로 발전한 것이었다. 1970년 오사카 세계박람회는 일본이 메타볼리즘 건축을 세계에 선보인 무대였다. 교환 가능한 캡슐, 성장하는 구조, 해체 가능한 건축 등의 개념들은 당시로서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는 전후 일본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기술 발전에 대한 자신감을 반영하는 동시에, 서구와는 다른 미래 비전을 제시하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19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모더니즘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되었다. 로버트 벤추리의 "Less is bore"라는 선언은 모더니즘의 금욕주의적 미학에 대한 도전이었다. 마이클 그레이브스의 포틀랜드 빌딩과 같은 작품들은 건축에 유희와 상징, 역사성을 되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복고주의가 아니었다. 포스트모던 건축가들은 현대인의 복잡하고 모순적인 욕구를 인정하고, 획일적이지 않은 다양성의 가치를 건축을 통해 표현하려 했다. 이는 민주주의가 성숙해지면서 나타난 다원주의적 세계관의 건축적 반영이었다. 1990년대 해체주의 건축가들은 더 나아가 건축의 기본 전제들까지 의문시했다. 프랭크 게리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은 컴퓨터 기술의 발달로 가능해진 복잡한 곡면을 활용해 전혀 새로운 공간 경험을 창조했다. 이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건축 언어를 모색한 실험이었다. 이러한 건축들은 '건축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더 이상 건축은 기능을 담는 그릇만이 아니라 사유와 경험의 매체가 되었다. 이는 21세기 지식 정보 사회에서 건축의 역할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징표다.


서양 건축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은 인간 정신의 진화 과정이다. 신을 향한 경외에서 시작해서 인간 이성에 대한 신뢰, 기술에 대한 낙관, 그리고 현재의 복잡하고 다층적인 세계 인식까지. 건축물들은 각각의 시대가 무엇을 꿈꾸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제 우리 주변의 건물들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 아파트의 획일적인 창문들에서는 대량생산 시대의 효율성 추구를, 고층 오피스 빌딩의 유리 외벽에서는 투명성과 개방성을 지향하는 현대 기업 문화를, 대형 쇼핑몰의 화려한 내부에서는 소비사회의 욕망을 읽을 수 있다. 각각의 건축물은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지를 무언으로 말해주고 있다. 건축사를 안다는 것은 바로 이런 무언의 메시지들을 읽을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안목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고, 더 풍부하게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매일 스쳐 지나가던 도시의 풍경이 인류 역사의 장대한 서사로 읽혀질 때, 우리의 일상은 한층 더 의미 있고 흥미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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