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예수의 13번째 제자 - 니체가 가장 만족한 저서 『안티크리스트』 거꾸로 읽기
김진 지음 / 스타북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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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제목만을 보면 주제가 쉽지 많은 않다. 김진님의 <니체, 예수의 13번째 제자>다. 종교사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비판자 중 하나인 니체를 '예수의 13번째 제자'라 부르는 것은 언뜻 모순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진정한 믿음의 본질을 드러내는 역설적 통찰이다. 마치 숙련된 의사가 병을 정확히 진단해야 치료법을 찾듯, 니체의 날카로운 비판은 기독교가 잃어버린 본래 모습을 되찾는 데 필수적인 거울 역할을 한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선언했을 때, 그것은 무신론을 단정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19세기 유럽 사회에서 형식화되고 권력화된 종교 체계가 더 이상 인간의 영혼을 살리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진단이었다. 이러한 진단 앞에서 기독교는 방어적 자세를 취하기보다는, 자신이 과연 예수가 보여준 본래의 복음을 제대로 구현하고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니체는 기독교가 '약자의 원한'에서 나온 도덕이라고 비판했다. 이는 진정한 힘과 생명력을 억압하고, 무기력함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정신적 노예상태를 만들어낸다는 의미다. 실제로 일부 기독교 문화에서는 비판적 사고나 자율적 판단보다는 맹목적 순종을 강요하고, 현실의 불의에 대한 정당한 분노조차 '죄'로 규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예수 자신의 모습을 보면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종교 권력자들의 위선을 강력히 비판했고, 사회적 약자들을 억압하는 구조에 맞섰으며, 불의한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했다. 예수의 겸손은 비굴함이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서 나온 자발적 섬김이었다.


흥미롭게도 니체는 '역사적 예수'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가 본 예수는 교리나 율법을 앞세우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삶 자체로 하나의 모범을 보여준 실존적 인물이었다. 예수는 복수를 거부하고 내적 평화와 사랑을 실천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현재적 실재로 살아냈다. 니체에 따르면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은 "진정한 삶, 영원한 삶이 이미 그대들 안에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미래의 보상이나 죽음 이후의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존재적 가치를 깨닫고 사랑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니체가 강조한 또 다른 통찰은 믿음이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라는 점이다. 복음이 진정한 힘을 발휘하는 것은 그것을 믿을 때가 아니라 그것대로 살 때다. 예수의 제자됨은 교리를 암송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의 방식을 따라 사는 것이다. 이는 현대 기독교에 던지는 근본적 질문이다. 우리는 예수에 대해 믿기만 하는가, 아니면 예수처럼 살고 있는가? 교회는 구원받은 자들의 안전한 피난처인가, 아니면 세상을 변화시키는 변혁의 전진기지인가?


니체의 비판을 통해 우리가 재발견해야 할 기독교의 첫 번째 본질은 무조건적 사랑이다. 이는 "예외나 거절, 거리감이 없는 사랑"이며, 모든 인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근본적 평등을 인정하는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은 도덕적 우월감이나 심판적 태도와는 정반대의 성격을 지닌다. 진정한 기독교적 사랑은 상대방의 조건이나 자격을 묻지 않는다. 그것은 종교적 배경, 도덕적 완전성, 사회적 지위와 무관하게 모든 존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귀히 여기는 태도다. 이런 사랑이 실현될 때 교회는 배타적 집단이 아닌 포용적 공동체가 된다.

니체가 지적한 기독교의 또 다른 문제는 구원을 미래의 사건으로만 이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가 선포한 하나님 나라는 "이미 와 있는" 현실이다. 구원은 죽음 이후에 받을 보상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경험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 방식이다. 이는 기독교 신앙을 현실 도피의 수단이 아닌 현실 변혁의 동력으로 만든다. 참된 신앙인은 불의한 현실 앞에서 체념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 땅에 구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예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고 말했다. 이는 종교적 권위나 전통에 맹목적으로 복종하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형태의 억압과 속박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이 복음의 핵심이다. 니체의 비판은 기독교가 때로는 이러한 자유를 제한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상기시킨다. 참된 기독교는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깊고 넓은 차원으로 확장시켜야 한다.


현대 기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예수 르네상스'다. 이는 2천 년 역사 속에서 축적된 교리적, 제도적 껍질을 벗고 예수 그리스도의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르네상스가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재발견함으로써 새로운 문명을 열었듯, 기독교도 예수의 원초적 가르침을 재발견함으로써 새로운 영성의 지평을 열어야 한다. 이러한 르네상스는 과거로의 단순한 회귀가 아니다. 현대의 과학적 지식과 인문학적 성찰, 그리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통해 예수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하고 창조적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니체의 도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기독교는 더 이상 독단적이거나 배타적일 수 없다. 진리에 대한 확신과 겸손한 대화 자세는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참된 진리는 열린 대화를 통해 더욱 명확해지고 풍성해진다. 이는 다른 종교나 사상과의 대화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부의 다양한 전통과 해석에 대한 개방성도 포함한다. 획일적 교리보다는 다원적 영성이, 권위적 가르침보다는 참여적 탐구가 미래 기독교의 특징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미래의 기독교는 말보다는 행동으로, 교리보다는 실천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야 한다. 니체가 강조했듯이 기독교인을 구별하는 것은 '신앙'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구체적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은 개인적 경건함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 책임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환경 문제, 경제적 불평등, 인종 차별, 성 평등 등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적 가치관에 입각한 구체적 해답을 제시하고 실행해야 한다.


니체를 '예수의 13번째 제자'라 부르는 것은 진정한 신앙이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통해 더욱 순수해지고 강해진다는 확신의 표현이다. 역설적이게도 기독교의 가장 강력한 비판자가 기독교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 니체의 '망치질'은 파괴를 위한 것이 아니라 견고한 기반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도전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 무엇이 본질이고 무엇이 껍질인지를 구별할 수 있게 되었다. 결국 니체가 우리에게 가르쳐준 것은 참된 기독교는 비판을 견디어낼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는 사실이다. 진리는 숨기거나 보호해야 할 연약한 것이 아니라, 모든 시험을 통과하며 스스로를 증명하는 강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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