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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녀 할머니와 우당탕탕 가족 ㅣ 한솔 마음씨앗 그림책 136
김여나 지음, 이명환 그림 / 한솔수북 / 2025년 8월
평점 :
*본 포스팅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거친 파도가 해안가 바위를 두드리는 아침, 나는 한 권의 그림책에서 만난 해녀 할머니를 떠올린다. 말숙 할머니라는 이름 속에 담긴 정겨움과, 그녀 곁을 지키는 동물 가족들의 모습이 마음 깊숙이 파고든다. 이들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가 잃어버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울림으로 다가온다.바다는 언제나 무언가를 주고받는 공간이었다. 조개와 미역을 내어주기도 하고, 때로는 소중한 것을 앗아가기도 하는 그 바다 앞에서 해녀 할머니는 매일을 살아간다. 고무 잠수복을 입고 깊은 물속으로 들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삶에 대한 강인함과 동시에 생명을 향한 깊은 애정이 배어있다. 그 애정은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산물을 대하는 손길에서도, 집으로 돌아와 동물 가족들을 바라보는 눈빛에서도 똑같이 드러난다. 노랑이와 포, 그리고 네야. 이 세 생명체는 각각 다른 사연을 가지고 할머니 곁에 머물게 되었다. 혈연으로 이어진 가족이 아니지만, 이들 사이를 흐르는 정서는 그 어떤 핏줄보다도 진하다. 할머니가 바다로 나가면, 젖병 등대 앞에서 기다리는 노랑이와 포의 모습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것의 본질을 본다. 기다림, 그것은 사랑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 아닐까."고양이와 강아지와 사람은 하늘과 바다와 육지처럼 다르다"...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다. 다른 성격, 다른 습성, 다른 언어를 가진 채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다름을 거부하거나 억지로 맞추려 하지 않는다. 티격태격하는 동물들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인간 가족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의견으로 충돌하고, 때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속을 썩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갈등과 마찰 속에서도, 진정한 가족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다. 할머니가 동물들을 "토닥토닥 따스하게 품어주는" 모습에서, 가족이란 완벽함이 아니라 용서와 포용에서 시작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높은 곳에 홀로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는 열아홉 살 고양이 네야의 모습은 특히 인상적이다. 나이가 들어가는 가족 구성원이 보이는 고독함과 성찰의 자세가 그 속에 담겨있다. 네야는 아마도 많은 것을 보고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가족들을 지켜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바다는 생명의 근원이면서 동시에 죽음이 머무는 곳이기도 하다. 해녀 할머니는 매일 그 경계를 넘나들며 살아간다. 물속에서 생명을 건져 올리기도 하고, 때로는 위험 앞에서 자신의 생명을 걸기도 한다. 이런 삶을 살아온 할머니이기에, 생명의 소중함을 누구보다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고, 다정한 손길이 필요하다. 거친 바다와 매일 마주하며 체득한 삶의 지혜. 할머니의 손길 하나하나에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이 스며있고, 그 경외감이 동물 가족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현대 사회의 가족 관계를 돌아보게 된다. 혈연 중심의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흔들리고,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등장하는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작 가족 간의 정서적 유대는 약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각자의 바쁜 일상에 쫓겨 서로를 기다리고 보듬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김여나 작가가 30여 년간 바닷가에서 살며 해녀들과 어부들의 이야기를 모았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진정성을 더해준다.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이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작가 자신이 해녀들과 함께 바다에 들어갔다는 대목에서는, 작품에 대한 진정성과 열정을 느낄 수 있다. 이명환 작가의 그림 역시 이야기의 정서를 완벽하게 담아낸다. 바다의 거친 역동성과 할머니의 푸근함, 동물들의 개성이 조화롭게 표현된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치 그 바닷가 마을에 직접 서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작가가 직접 부산으로 내려가 현장을 체험하고 그림을 그렸다는 것에서, 작품에 대한 진심을 느낄 수 있다.이 이야기는 가족의 형태보다는 가족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한다. 혈연으로 맺어지지 않았지만 진정한 가족이 된 해녀 할머니와 동물들의 모습을 통해, 가족이란 함께하는 시간과 서로에 대한 배려,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대 사회에서 가족의 개념이 확장되고 있는 지금, 이 이야기는 더욱 의미 깊게 다가온다. 전통적인 가족 형태를 벗어난 다양한 가족들이 존재하지만, 중요한 것은 형태가 아니라 그 안에 흐르는 사랑과 돌봄의 정신이라는 것을 말이다.젖병 등대 앞에서 할머니를 기다리는 노랑이와 포의 모습에서, 나는 가족이라는 것의 가장 순수한 모습을 본다. 조건 없는 기다림, 변함없는 신뢰, 그리고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 이것이야말로 가족의 본질이 아닐까. 바다가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주듯, 가족도 매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잔잔하고 평화롭기도 하고, 때로는 거칠고 역동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모든 변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를 향한 사랑이다. 해녀 할머니와 동물 가족들이 보여주는 것처럼, 진정한 가족은 폭풍우가 몰아쳐도 서로를 놓지 않는 손길이다. 이 따스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우리 가족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포용하고 있는가? 조건 없는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 바닷가 마을의 해녀 할머니와 동물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가족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된다.